베이징올림픽, 한복의 수난을 지켜보면서

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지난 4일 열린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조선족 처녀가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매번 국가적 행사에 소수민족들이 전통복장을 착용하고 참석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매김 되어 왔기에 당연한 것인데 한국은 ‘동북공정’이니 ‘문화공정’이니 하면서 한바탕 난리법석이다. 처음엔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시작되었는데 이를 메이저급 언론들이 기사화하여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고 정치권의 대선후보들이 가세하여 문화마찰 문제까지 거론되었다.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국사회의 몰역사적인 편협한 국수주의와 막연한 반중정서에서 나오는 조선족 혐오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한국인이 주변국가 일본과 중국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조선족이 한복을 착용하고 국가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관례이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를 침소봉대하여 한바탕 크게 판을 벌리고 키우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어온 피해의식의 발로라고 지적하고 싶다.먼저 이번 사태를 둘러싼 여론의 쟁점들을 종합해 본다.

편협한 국수주의 이데올로기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이번 개막식에서 조선족 처녀의 한복 착용 사건에 대해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한복공정으로 명명하고 그 사례로 베이징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념해 중국이 제작했던 홍보 영상에서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상모를 돌리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조선족이 한복차림으로 국가적 행사에 참석한 횟수를 따지자면 수십 차례도 더 된다. 2019년 신중국 창립 70주년을 맞아 제작한 영상에서 한복을 입은 소녀가 중국 국가를 부르면서 한복이 ‘조선족의 전통의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2008베이징올림픽 때도 마찬가지로 대회 개막식은 물론이고 식전행사에 연변가무단이 한복을 입고 민속 공연도 있었다. 이렇듯 꾸준하게 이어온 일에 대해 뜬금없이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니?

서 교수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모아 한국과 중국의 문화마찰을 이야기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중국내 소수민족인 조선족에게 한복 착용을 금지시킨다면 이것이야말로 문화마찰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학계에서 생성된 편협한 국수주의 이데올로기는 여과 없이 정치권으로 옮아갔다.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복을 입고 이번 개막식에 참석하였는데 이것을 중국에 대한 무언의 항의라고 변명했다. 그는 또 5일 중국 베이징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소수 민족이라 할 때는 하나의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경우를 주로 말하는데, (한반도에) 큰 나라가 존재하는 데 양국 간 관계에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소수민족 개념에 대한 이해가 이 수준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소수민족이란 거주국에서 소수의 숫자로 살아가는 민족 집단을 가리킨다.

또 베이징에 간 박병석 국회의장은 중국 측에 한국 내 논쟁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일부에서는 황희 장관과 박병석 의장을 향해 구경만 하고 할 소리 하지 않았다고 공격하였지만, 만약 국가적 차원으로 항의를 제기했더라면 어떤 외교적문제가 불거질 것인가? “우리 중국 실정을 제대로 알고 난 후에 얘기하세요.”라는 면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야당은 정부와 여당이 소극적‧저자세로 대응하고 “우리 정부는 동북공정과 문화침탈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고, 오히려 각종 외교 사안에서는 저자세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 백주대낮에 보물을 도둑맞고도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다.”며 치졸한 국민선동을 부추겼고 대선 후보들이 앞다투어 여기에 가세하였다.

최근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얻는다.’는 말로 외국인 건강보험 실태를 왜곡하고 사드추가배치 공약으로 반중 정서를 일으키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고구려와 발해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럽고 찬란한 역사”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한복은 대한민국 문화"라며 "중국 당국에 말한다. 한푸가 아니라 한복이다"라고 했다.

중국에 대해 여태껏 비교적 신중론으로 대응해 왔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중국은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축제를 문화공정으로 이용하는 건 아닌지 답해야 한다.”며 강경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어 “김치, 한복, 심지어 스타 연예인까지 언급할 정도로 우리 자존심을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또 페이스북에는 "문화를 탐하지 말라 문화공정 반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민주당 박찬대 선대위 대변인은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중대한 문제다. 중국 정부의 문화공정 중단을 요구한다.”고 반응했다.

그러나 이들 대선 후보들이 자신들 주장의 역사적 맥락과 인과관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를 의식한 국민선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선족 처녀의 한복 착용이 ‘동북공정’ ‘문화공정’의 이슈로 대선정국 한복판에 부상하자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림픽 한복 논란, 중국 동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중국 국적을 갖고 중국 영토 내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복은 우리의 것일 뿐만 아니라 동포들의 것이기도 하며, 중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 역시 자신들의 문화와 의복을 국가로부터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중국의 다양한 민족의상 중에 한복만 제외되었더라면, 중국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의 입장에서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겠냐?"라고 지적했다.

중국 국가적 행사에 조선족이 한복을 착용하고 참석한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건’에 대해 이토록 전체 대한민국이 부정적인 여론으로 들끓고 있는 것은 중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에 대한 이해가 아주 무지한데서 빚어지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조선족과 관련하여 불필요하고 부질없는 논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한국사회가 조선족 호칭 유래, 조선족 중국에서의 법적 지위, 중국소수민족 우대정책, 조선족이 한반도 전통문화를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는지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조선족 호칭의 유래와 법적 지위

조선족의 전신은 조선인, 조선 사람이다. 조선에서 왔다고 하여 이렇게 붙여진 ‘호칭’이다.

조선인, 조선 사람은 19세기 60년대부터 도강하여 만주에 이주해간 집단이다. 생계형 이주로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 강제이주와 독립투쟁을 위한 이주 등 여러 유형의 이주민 조선인, 조선 사람들이 만주에서 개척한 경작지가 한반도의 두 배나 되는 무려 40만km2였다. 하지만 당시 장개석 국민당 정부는 조선인, 조선 사람들이 불법으로 개간한 것이기에 토지경영권을 부여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때 야당인 공산당이 조선인, 조선 사람들을 찾아와 두 가지 ‘공약’을 제안한다. ‘당신들이 공산당 따라 항일에 적극 나서준다면 우리가 집권한 후 당신들에게 토지경영권을 부여하고, 호적을 부여하여 법적 중국공민으로 만들어주겠다.’

‘젖 주는 게 어미’라는 말이 있다. 농부에겐 토지가 생명줄이다. 코너에 몰린 조선인, 조선 사람은 당당하게 토지경영권을 부여받고 중국공민권을 얻기 위해 공산당에 협조하여 적극 항일에 나서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쳤다. 중국인민해방군 문인 하경지(賀敬之)는 1960년대 연변 방문 시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열사비(山山金達來, 村村烈士碑)’라는 시문을 남겼다. 주은래 총리는 “오성홍기에 조선인(조선족의 전신)의 피가 물들어 있다.”고 말했다.중국은 1945년 항일전쟁이 끝나고 곧 이어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 내전이 있었다. 이 전쟁에서도 조선인, 조선 사람들이 적극 공산당 편에 서서 싸웠다. 결과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었고 따라서 조선인은 토지경영권을 가졌고 중국공민으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중국에는 55개 소수민족이 있다. 중국정부는 1952년 조선인, 조선 사람에게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설립해 주었다. 중국 행정상 구(區)는 성급에 해당되는데 연변의 인구와 면적이 성급에 이르지 못해 3년 뒤인 1955년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편되었다. 따라서 이때부터 조선인, 조선 사람은 중국소수민족의 하나로 인정받았고 법적으로 조선족으로 등용되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조선족의 호칭은 중국에서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 얻은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고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한편 조선족이란 호칭에 대해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폄하와 소외의 뉘앙스를 풍기는 정치적인 용어로 착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족이란 호칭은 법적 호칭이지 정치적인 용어가 아니다. 해외 720만 동포 중에 중국조선족만 유일하게 거주국 법적 호칭이 있다. 그러므로 고국 한국은 조선족이란 호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정책

중국은 56개 민족이 더불어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중국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소수민족 정책을 잘 펼치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은 각급 정부 및 각 기관에서 소수민족 비례에 따라 소수민족 간부등용 할당제를 실행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이와 같은 정책은 소수민족에 대한 지대한 배려이다.
다문화라는 개념은 한 나라 안에 30%이상의 민족이 여려 개가 있으면 다문화라고 명명한다. 이 다문화라는 호칭이 캐나다에서 시작되었고 영국을 거쳐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중국에서는 30%이상의 인구가 되는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 자치구, 자치주, 자치현, 자치향(自治區, 自治州, 自治縣, 自治鄕)을 설립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이농현상이 활발해짐에 따라 소수민족 인구가 30%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현과 향이 있지만 중국정부는 쉽사리 자치현, 자치향이란 ‘간판’을 없애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에 대한 관용과 배려의 정책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중국정부는 소수민족에게 인구비례에 따라 자치정부를 세워준 것은 자민족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 하게끔 엔진을 달아준 것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우 소학교(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민족학교를 갖고 있고, 방송, 출판, 및 소수민족 문화예술 관련 정부기관이 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중국정부로부터 받았던 수소민족 혜택을 간단히 소개해보련다. 필자는 연변에서 태어나 길림성 소재지 장춘에서 대학을 다녔다. 1980년대 초중반이라 대학교 화식이 썩 좋지 못했다. 입쌀밥을 월, 수, 금, 일 점심만 제공하는데 우리 조선족학생에게는 쌀밥을 좋아한다고 한 달에 여덟 근의 쌀밥 식권을 주었고 한족학생에게는 한 달에 두 근밖에 주지 않아 우리 조선족학생들은 남아돌고 한족학생들은 늘 모자라 우리한테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다른 민족인 만족이나 몽골족한테는 한족과 같은 두 근밖에 주지 않았다. 한족학생과 다른 소수민족학생들이 우리 조선족을 부러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학생에게는 소수민족비를 주었다(처음에는 2위안이었다가 4위안으로 올랐음. 당시 한 달 용돈이 10위안이면 족할 때 4위안은 큰돈이었음).

조선족, 한반도 전통문화 계승 발전 상황

해외 720만 동포 중에 중국조선족이 한반도 전통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켰다는 것은 한국 엘리트 사회에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우 해마다 자치주 명절인 ‘9.3’이면 향을 단위로 혹은 현급 및 자치주급 축제(5년에 한 번)를 개최하는데 민속씨름, 그네, 민속장기, 윳놀이 및 일부 지역에서는 사물놀이와 상모춤과 같은 전통 민속무용 종목도 있다. 물론 민족의 축제이기 때문에 저마다 한복을 차려 입고 참석한다. 산재지역 일부에서는 오월 단오에 민속축제를 개최한다. 장춘에서 경험한 것인데 장춘시 조선족문화관에서 주최하고 각 소수민족이 근무하고 있는 직장의 협조로 남호공원에서 대형 축제를 열었다. 그때 조선족들이 한복을 착용하고 축제에 참석하여 즐기는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조선족이 많은 대학교들은 학교 지도부의 배려로 음식을 차려 주고 필요한 놀이기구도 지원해주었다.

조선족 거주지 지방마다 민속행사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조선인, 조선 사람 이주 정착 첫 터였던 용정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볕집태우기 민속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중국조선족이 민속문화 항목 가운데서 고국 한국에서 가장 내세울 것은 민속장기(民俗將棋)이다. 대한민국 모든 장기대회에서 재한조선족이 한국 장기9단들을 물리치고 9할 이상의 우승을 차지하고 있고 2000년대 들어 지금까지 전반 랭킹 1위도 늘 조선족의 몫이다. 심지어 최근 몇 년래 KBS장기 왕중왕전도 우승은 조선족의 몫이다.한편 중국조선족은 민족 축제 때는 물론이고 가문의 결혼식, 회혼례, 아이돌 등 행사가 있으면 반드시 한복을 착용한다. 각급 정부는 행사가 열릴 때면, 예를 들어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정치협상회)가 열릴 때에도 소수민족은 반드시 자민족 전통복장을 입고 참석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정부는 특히 국가적 행사에는 소수민족이 반드시 자민족 전통복장을 착용하게끔 배려하고 있다.그리고 중국에서 특히 조선족이 민족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계승발전이 활발한 것은 정부의 우대정책과 조선족 스스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지키려는 노력이 하모니를 이룬 결과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국수주의와 피해의식이 한복 논란을 키워

이렇듯 조선족은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가문의 결혼식, 회혼례, 아이돌 같은 경사 때에 한복을 입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조선족에게 한복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또 조선족 장기 선수가 추석과 설에 열리는 KBS왕중왕전에 출전하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최측 KBS는 한복을 입힌다. 한두 번이 아니다. 조선족 김철 선수 한 사람만 네 번 출전했는데 모두 한복을 입었다.

그렇다면 조선족이 서울에서 한복을 입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베이징에서 입으면 안 된다는 말인가?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일을 갖고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게 난리법석인 것은 한국이 1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대국이라면서도 아직도 역사적인 피해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으로밖에 이해가 안 된다. ‘노루가 제 방귀에 놀란다.’는 속담이 생간난다. 말로만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지 말고, 제발 노루처럼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화들짝 놀라지 말고 자신감 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 민족의 전통문화는 그 민족의 구성원의 공동소유이다. 해외 720만 동포도 당연하게 소유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는 편협하게 전통문화를 마치 현재 한반도에서만 소유해야만 한다는 국수주의에 젖어 있다.

2011년 조선족 아리랑이 국가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조선족 매체 중 하나인 길림신문이 이를 보도하자 이튿날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 중국이 한국문화를 도둑질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당시 ‘아리랑 수난’이란 제목의 글을 발표했는데 아리랑은 전체 백의민족의 대표적인 노래이지 현재 한반도 한국인만의 소유가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리고 중국정부가 아리랑을 무형문화재로 등록하면서 조선족 전통문화라고 밝히는 동시에 아리랑의 출처가 한반도라고 분명하게 밝혔기에 문제 삼을 까닭이 전혀 없었는데 웬 도둑질 얘기가 나오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중국은 각 소수민족 전통문화에 대해 매우 중시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는 조선족 문화 중에 성급문화재까지 합쳐 현재까지 60종에 달하는 전통문화를 무형문화재로 등록했다. 중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조선족 역시 자신들의 문화와 의복을 국가로부터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또 자신들의 문화와 의복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이를 왜곡하거나 폄하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한국사회의 조선족 혐오와 반중정서

재한 조선족의 수는 80만에 달하고 있다. 이들 다수는 내국인들이 꺼리는 3D업종에 종사하고 여성들은 음식점, 가정부,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한날한시에 이 땅을 빠져 나간다면 대한민국 산업은 붕괴를 맞아 주저앉게 된다. 이렇듯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지만 한국사회는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언론이 받아쓰고 정치권이 가세하여 조선족에 대한 혐오가 더욱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지난 4.13총선을 즈음하여 한국사회에 뜬금없는 ‘차이나 게이트’와 ‘조선족게이트’가 등장했다. 요지는 중국정부와 조선족사회가 한국총선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크게 떠들어 판을 키웠다. MBC문화방송은 이 사태를 여러모로 취재하고 실체가 없는 헛소문이고 가짜뉴스로 결론을 내렸다. 필자는 MBC 스트레이트 프로에 출연하여 이렇게 말했다. “조선족이 언제 한국인을 세뇌시키고 한국정치 부정선거에 개입할 만큼 힘이 커졌느냐?”

그 당시 황교안 새누리당 대표는 “세금도 내지 않는 외국인은 반드시 내국인과 임금을 차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에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이 재한 외국인이 세금을 내는지 여부에 대해 무지한 것은 실로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의 말로 그냥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 ‘가짜뉴스’가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조선족 혐오 현상에 부채질하고 있다. 어느 드라마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세금도 내지 않는 너희 외국인은 이 땅에서 사라져라.”

지난해 법무부가 한국에서 태어난 동포2세에게 간이절차로 한국국적을 부여한다는 입법개정안을 발표하자 야권에서 또 난리 났다. 그때 황교안 대표는 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한국청년들이 그들의 복지까지 책임지는 똥박을 차게 생겼다.”고 말했다. 요지는 중국동포는 세금을 내지 않고 현 정부가 혜택만 부여한다는 비판이다.

『한비자』에 이런 말이 있다.“한 마리 개가 헛것을 보고 짖으면 백 마리 개가 따라 짖는다.”
실체가 없고 팩트에 맞지 않는 정치인들의 말 한 마디가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한비자가 말한 바와 같이 현실이 되고 있다.
요즘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전혀 사실에 맞지 않는 외국인 건강보험 논란과 사드추가배치 공약으로 조선족 혐오와 반중정서를 고조에 오르게 하고 있다. 이번 한복사태도 이러한 정치권의 발언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에 강민진 대표가 “정치권은 중국에 항의할 시간에 국내 만연한 중국동포 이주민 혐오부터 개선하라.”고 지적했듯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실제 현황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여론도 있음을 언급해 둔다.

한국정부는 조선족 전통문화를 폄하하지 말라

백의민족 전통문화 가운데 ‘본(本貫)’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인도 적관(籍貫)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백의민족의 본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은 우리민족만의 고유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조선족 특히 연변에서 살아온 조선족은 아이가 태어나 말을 떼기 시작하면 반드시 ‘본’을 가르쳐 준다. 필자의 ‘본’이 경상도 선산인데 딸애가 태어나 ‘선산 김’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본’을 후대가 태어나면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이렇듯 중국이란 대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오면서 굳건하게 지켜온 ‘본’의 문화가 한국정부한테 외면당하고 있어 매우 슬픈 일이다.

한국 관공서 공문서, 이를테면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관계증명서에 모두 ‘본’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한국인은 모두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족이 한국인으로 귀화할 경우 ‘본’을 기재해 주지 않는다. 가령 필자가 ‘선산 김’인데 귀화신청서에 명백히 밝혔으나 기재해주지 않는다. 이유를 물었더니 “당신이 선산 김‘이라는 증거가 뭐가 있느냐?”고 되 묻는다.

족보를 제출하든지, 대한민국 문중에서 증빙서류를 발급받아오면 기재해주겠다는 것이다. 필자 왈, “조상을 속이고 가짜로 자기의 본을 주장하는 사람이 천하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자기의 본을 속여 사실과 다르게 기재하여 얻는 이익이 무엇이 있겠는가? 또 본이란 백의민족의 전통문화인데 무슨 증빙서류가 필요한가?”라고 따지고 들면 위에서 그렇게 하라 하니 우리 공무원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다. 알고 보니 ’본‘의 기재 허락여부는 대법원의 소관이란다.

정부 행정이 조선족 고유 ‘본’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거주지에 따라 새로운 ‘본’을 지어야 한다. 이른바 창본(創本)이다. 조선족 한 가족이 여럿이 거주지가 다르면 ‘본’이 모두 다르다. 형이 구로에서 살면 ‘구로 김’으로 하고 동생이 부여에서 살면 ‘부여 김’이 된다. 만약 ‘구로 김’이 약하다고 생각되면 폼 나게 ‘서울 김’으로 하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주민등록증에 한국인은 전부 한문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가령 조선족이 귀화하면 한문 나라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문이름을 기재해주지 않는다. 만약 한문이름 기재를 요구하려면 개명신청을 제출하라고 한다. 세상에 본래 분명히 한문이름을 갖고 있는데 개명이라니?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을 연상케 하여 기분이 되게 씁쓸해진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다. 정부 행정이 이럴진대 민간에서 일어나는 조선족 혐오와 차별을 더 말해 무엇 하랴!

(*본 칼럼은 세계한인신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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