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동네 이발소에 걸려있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중략-. 그 당시에는 이 글의 특별한 의미를 몰랐지만 성인이 되어 이 내용을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시는 러시아의 시인 푸신킨의‘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미국 시인 넬러(M. Kneller)가 영역한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학회 논문 발표를 마친 후 세미나에 참석한 학자들과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서북쪽 700km 정도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그곳은 18~19세기 제정 러시아 당시 수도, 러시아 최고 관광지로 각광을 받았던 곳으로 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로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스크바 강(Москва-река)은 모스크바 주와 스몰렌스크 주를 흐르는 강으로 오카 강의 지류임. 유역 길이는 503Km임.
모스크바 강(Москва-река)은 모스크바 주와 스몰렌스크 주를 흐르는 강으로 오카 강의 지류임. 유역 길이는 503Km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 시로 네바 강 하구에 있으며, 그 델타지대의 형성된 자연 섬과 운하로 인해 생긴 수많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발트 해의 핀란드 만에 접해 있으며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러시아 제국의 차르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설립한 이 도시는 1713년 모스크바에서 천도하여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1918년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2021년 기준으로 538만 명 정도가 이곳에 살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수도 모스크바 다음으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52년 10월7일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으며, 197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여 1975년 법학학사를 취득하였다.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이자 국민 시인 푸시킨은 모스코바에서 1799년 6월 6일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837년 1월 28일 사망하였다. 그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맨 처음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 문인들은 푸시킨 외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도스토예프스키, 고골리, 체호프,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고리키,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숄로호프 등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12월에는 낮이 거의 없는 백야이며 많은 기간 동안 밤이 계속되는 곳이기도 하다. 백야는 위도 48.5도 이상인 지역에서 여름 동안 밤에 밝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하얀 밤’이라는 표현은 러시아에서 쓰는 것으로, 스웨덴 등 다른 지방에서는 이를 ‘한밤의 태양’으로 부른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밤이 길면 출산율이 높아져 인구가 팽창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현재 러시아의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지속적인 인구감소이며 이는 특히 러시아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푸틴은 러시아처럼 큰 나라는 적어도 5억 정도의 인구(2016년 통계: 러시아 인구는 1억4,672만 명)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러시아의 낮은 출산율을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은 높은 이혼율과 낙태율이다. 러시아의 이혼율은 2020년 인구 천 명 당 4.7퍼센트 내외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2.1퍼센트(2021년)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바로 이러한 높은 이혼율이 가임여성의 출산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높은 이혼율과 함께 높은 낙태율 역시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이혼문제를 개인문제로만 국한하지 말고 사회적인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니콜라이 1세(Николай I Павлович, 1776년7월6일-1855년3월2일) 동상. 러시아 제국의 황제겸 폴란드 국왕(재위 1825년-1855년)임. 뒤쪽은 성이삭 성당임.
니콜라이 1세(Николай I Павлович, 1776년7월6일-1855년3월2일) 동상. 러시아 제국의 황제겸 폴란드 국왕(재위 1825년-1855년)임. 뒤쪽은 성이삭 성당임.

필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 후 푸시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푸시킨은 1799년 6월6일, 모스크바의 현재 바우만가에서 탄생하였다. 그의 기구한 운명은 단테스로 끝이 나게 되었다. 1836년 11월5일 아내에게 구애하는 망명 프랑스인 단테스는 노골적으로 아내에게 구애하였다. 1837년 1월 10일, 단테스는 푸시킨의 처형 예까 쩨리나와 결혼하였지만 그 후에도 단테스는 노골적으로 푸시킨의 아내에게 구애했다는 사실이다. 1월27일 푸시킨은 단테스에게 모욕적인 서신을 보내자 이번에는 단테스가 결투를 신청하였다. 1월27일 하오 4시 반 결투 후 푸시킨은 치명상을 입고 1837년 1월29일 아내, 자식, 친구들과 고별하고 향년 3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월1일,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으며 정부는 일반 민중의 참여를 금지하는 동시에 과격한 추도 기사를 못 쓰게 언론기관에 명령하였다. 2월5일, 유해는 헌병들에 의해 스바야트 골스키 수도원으로 옮겨져 2월6일 새벽에 매장되었다. 

사랑이 이런 것인가! “힘을 기르소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국민에게 고한 말이 생각이 난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힘이 없으면 상대방에게 당하게 되어있다. 필자는 푸시킨의 삶의 과정을 알고 푸시킨이 신혼살림을 했던 엣 집을 방문한 후 감회가 새로웠다. 러시아의 천재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이 비참한 농노제하의 러시아 현실을 그리고 있지만, 세상을 향한 순수함과 열정이 시와 소설 속에 번뜩인다. 러시아 황제는 그런 그가 미워 시베리아로, 북극 아래 백해의 솔로베츠키 수도원으로 유배시켰다. 이후 푸시킨은 가난과 엄격한 검열에 시달렸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2013년 11월 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서 열린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 동상 제막식에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트 스퀘어’ 공원 중앙에 서 있는 푸시킨 동상은 미하일 아니쿠쉰’의 작품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필자는 천천히 읽고 또 읽었다.“푸시킨은 청아한 인격을 갖고 있다. 그의 행동은 단순했고 그의 사고는 명료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 위대한 시인의 청아한 이미지를 숨길 수도 있는 디테일한 부분들을 모두 제거하고자 했다.”라고---. 

푸시킨과 그의 부인 나탈리아 곤차로바 동상.
푸시킨과 그의 부인 나탈리아 곤차로바 동상.

푸틴 대통령은 푸시킨 동상 제막식 축사를 통해 "오늘 박근혜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유라시아 공동 인프라 구축이 꿈이라고 말씀하셨고 인도주의적 인프라 구축은 협력을 위한 기초"라며 "이런 차원에서 푸시킨의 동상이 서울 한복판에서 제막된 것은 한·러 관계의 질적 격상을 위한 공동 노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푸슈킨 동상을 통해 서울시민과 서울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러시아 문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활발한 인도주의적·문화적 교류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우연에 일치일까 푸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1952년 동갑내기이다.  

필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만난 푸시킨을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다니! 문학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하게 되는 2022년 2월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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