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이남철 교수 
이남철 교수 

메인(Maine)주는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의 가장 북쪽에 있는 주로 주도는 오거스타이다. 남쪽과 동쪽은 대서양에 닿아 있으며, 북동쪽은 캐나다의 뉴브런즈윅, 북서쪽은 퀘벡 북서쪽과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는 미국 뉴햄프셔주와 경계를 하고 있다. 아카디아 국립 해상공원과 바닷가재의 주산지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미국 50개 주에서 크기로 39위에 불과한 아주 작은 주이다.

필자는 뉴저지주 공립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작은딸과 주말을 이용하여 뉴저지 집을 출발해서 뉴욕주를 걸쳐 미국의 탄생지 뉴잉글랜드인 코네티컷주, 매사추세츠주를 거쳐 메인주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뉴잉글랜드는 3개 주 외에 뉴햄프셔주, 로드아일랜드주 등 총 다섯 개의 특별한 주로 구성되어있다. 가는 도중 평소 관심이 많은 코네티컷주에 있는 예일대학(1701년),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하버드대학(1639), 매사츠세츠공대(1865)을 구경하면서 오랜 전통을 가진 세계적인 대학들의 개척자적 정신과 캠퍼스 향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유학 시절 우연히 어느 신문에서 감명 갚게 읽고 필자의 뇌리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생각나게 하는 롱펠로우(Henry W. Longfellow) 집을 여행 중 꼭 가보고 싶었다. 롱펠로우가 75세가 되어 그의 임종이 가까운 어느 날 어떤 기자가 그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부인의 사별뿐 아니라 여러 가지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가 있었습니까.”롱펠로우는 마당에 서 있는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조금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받아 인생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대 문호 톨스토이는 “고통은 깨달음을 준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후에 우리는 진리 하나를 얻는다. 만약 지금 당신에게 슬픔이 찾아왔다면 기쁘게 맞이하고 마음속으로 공부할 준비를 갖추어라. 그러면 슬픔은 어느새 기쁨으로 바뀌고 고통은 즐거움으로 바뀔 것이다.”라고 말했다.

롱펠로우는 1807년 2월27일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당시 매사츠세츠)에서 질파 워즈워스 롱펠로와 스테판 롱펠로의 8명 자녀 중 둘째 아들로 출생하여 만 75세인 1882년 사망했다. 양부모 모두 명문가 출생이었으며 뉴잉글랜드 지방 초기 정착가들의 후손이었다. 그는 학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6세에 라틴어에 아주 능했다고 한다. 당대 롱펠로는 미국의 어느 시인도 누려보지 못한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그를 “불멸의 왕관을 쓴 시인”으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단순한 리듬과 강한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진설명: 메인주 최초의 하우스 박물관으로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우가 자란 곳. 이 집은 Peleg Wadsworth 장군에 의해 1785에 지어졌음. 1807에 태어난 헨리는 이 집에서 자랐음. 헨리의 여동생 인 앤 롱펠로 우 피어스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살았음. 이 집에는 식물원이 있어 많은 나무와 꽃들이 있음.
사진설명: 메인주 최초의 하우스 박물관으로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우가 자란 곳. 이 집은 Peleg Wadsworth 장군에 의해 1785에 지어졌음. 1807에 태어난 헨리는 이 집에서 자랐음. 헨리의 여동생 인 앤 롱펠로 우 피어스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살았음. 이 집에는 식물원이 있어 많은 나무와 꽃들이 있음.

미국 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그의 흉상이 비치되고 있다. 그는 당대에 “에반젤린”, “인생찬가” 등과 같은 명시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고 또한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신곡을 포함한 단테의 문학작품을 완벽하게 번역한 충실한 학자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시인이자 교육자이다. 그는 또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예 코미디(Dante Alighieri's Divine Comedy)를 번역한 최초의 미국인이었으며 뉴잉글랜드 출신의 노변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녔으나 아버지 권유로 교사가 됐다. 1825년 메인주에 있는 보드윈대학(Bodwin University)을 졸업하고 1929년까지 유럽을 여행하면서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 이태리어, 라틴어 등 8개 국어를 익혀 뛰어난 어학실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어학실력으로 후일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게 되었다. 유럽 여행 중 많은 것들을 유적과 문화유산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이 경험은 그의 문학에 대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제까지 상상 속에 들어있었던 파편화된 세계의 이미지들과 테마에 역사성을 부여해 구체적으로 구성해 나갔던 것이다. 그는 보드윈대학에서 8년 동안 근대어를 가르치면서 문학에 대한 혼을 깨우기 위해 유럽여행을 떠나는 등 문학에 대한 많은 지식을 착실하게 쌓아나갔다. 1835년 매리 포터와 결혼한 후 첫 출산을 앞두고 함께 유럽을 여행하는 중 출산하다가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사랑의 이별은 롱펠로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사랑의 아픔은 오랜 고통의 시간을 거쳐 10여년 후 아름다운 사랑의 대서사시 ‘에반젤린’을 탄생시킨다. ‘에반젤린’은 알프렐여사와 재혼하고 4년여 시간이 흐른 후 마음에의 평화를 찾은 때 씌어졌다. 

그는 하버드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854년까지 18년 동안 현대 언어학, 프랑스어 등을 가르쳤다. 이후 문학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에서 물러나 창작에만 온 힘을 쏟았다. 1842년 ‘노예의 시’를 시작으로 많은 시를 발표했다. 다른 나라의 민요를 번역하기도 하고 민요를 바탕으로 작품을 쓰기도 했다. ‘밤의 목소리’, ‘마을의 대장간’, ‘불루우즈의 종탑’, ‘노예의 시’, ‘노번여인숙 이야기’, ‘하이와사의 노래’, ‘마일즈 스탠디쉬씨의 청혼’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대가의 명성을 얻게 된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찬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그의 부인인 알프렐 여사가 드레스에 불이 붙은 채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파머를 위해 밀랍향초에 불을 붙이다 드레스에 불이 옮겨 붙었던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사랑하는 부인이 그의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큰 화상을 입었으며 이로 인해 서서히 죽어갔다. 이 모습에 또 한 번의 큰 충격을 받았으며, 마음에 가득 찬 번뇌와 아픔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가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면서 천상의 장면을 무서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부인과 이러한 경험들과 아픔이 많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신곡’은 이탈리아어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 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원본보다 더 훌륭하게 번역해 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는 험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운명들을 정면에서 극복하고 돌파해 나갔다. 운명 앞에 당당하게 맞섰으며,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았다. 인생의 황혼기에 잃은 두 번째 부인으로 인해 더욱 영적으로 깊은 삶을 살았으며, 성자와 갈은 생활을 했다. ‘인생에 대한 찬가’가 위대한 것은 이러한 단장(斷腸)의 깊은 슬픔을 찬란한 슬픔으로 바꾼 문학의 힘이 더 위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인간의 한계와 비애를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한 찬가를 노래했다.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니 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중략---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코로나19시대에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중장년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선지자적 가르침인가!

사진설명: 아카디아 국립공원 입구에서 필자.

롱펠로우는 〈비 오는 날〉에서 ‘슬픈 마음이여! 한탄하지 말라’고 노래한다. “내 인생 춥고 어둡고 쓸쓸도 하다. 비 내리고 쉬지도 않고. 중략---조용하거라, 슬픈 마음들이여! 그리고 한탄일랑 말지어다. 
구름 뒤에 태양은 아직 비치고 그대 운명은 뭇 사람의 운명이러니. 누구에게나 반드시 얼마간의 비는 내리고 
어둡고 쓸쓸한 날 있는 법이니.”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적극적으로 보았던 롱펠로우는 사랑하는 첫 번째 부인 매리 포터와 사별하고 그 아픔을 승화시켜 사랑의 장편 대서사시인 ‘에반젤린’을 쓰게 된다. ‘에반젤린’은 1755년 아카디아(지금의 노바스코샤)의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영국군에게 쫓겨 강제로 이주 당했을 때의 실화를 배경으로 쓴 시로 아카디아 지방 초원에 있는 마을을 배경으로 대장장이의 아들 가브리엘과 부유한 농부의 천사같이 아름다운 딸 에반젤린의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목가적인 그랑프레 마을의 젊은 남녀 가브리엘과 에반젤린은 결혼식 날 영국군이 마을을 점령하자 추방당하여 이별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 남편을 찾아 미국 각지를 떠돌던 에반젤린은 악성 전염병이 돌던 필라델피아의 의료원에서 환자를 간호하던 중 죽음에 임박한 남편을 만나게 됨을 그리고 있다. ‘에반젤’에서 에반젤린의 남편으로 묘사된 실제 인물 루이 아르세노가 노바스코샤에서 추방된 후 살았던 집으로 여겨지는 집이 미국 루이지애나주 남부 세인트마틴빌 북쪽에 있는데, 이곳을 ‘롱펠로 에반젤린 주립 기념지역’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롱펠로우처럼 시련을 극복하면서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실행한다면 우리도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1박 2일 일정으로 500마일(800km), 2,000리 길, 힘든 여정이었지만 유별나게 붉은 석양을 바라보면서 롱펠로우와 그의 가족들이 생활했던 집을 뒤로하고 뉴욕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 필자는 앞으로의 인생여정을 깊게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다. 긍정적인 삶과 쓰라린 고통의 속에서도 아름다운 시를 쓴 롱펠로우를 생각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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