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의 역할과 기능

1. 프롤로그

 

문민정부 이후 언론의 통제가 해제되자 많은 신문들이 봇물 터지듯이 발행되기 시작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발행자의 의욕이 넘쳐난 결과였다. 이들 신문들도 신춘문예 제도를 신설하여 신춘문예의 신인들의 기하급수적 배출에 기여해 양적 팽창을 실현했으나 이들 신문에 내건 문단의 참신한 시인으로 새바람을 일으킨다.”는 슬로건은 공염불로 그쳤고, 오히려 문단 질적인 수준을 저하시켜 신춘문예의 신뢰와 공신력을 떨어뜨렸으며, 문학 지망생들에게 신춘문예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신춘문예는 당대문학의 방향키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양적 팽창에 따른 질적 하락은 당대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이 당선작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문학적인 기초가 탄탄한 신인의 패기 있는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혀야 함에도 문학작품을 판별하는 안목이 없는 자격미달의 심사자들에 의해 참신한 작품을 뽑는다는 전제하에 기본기능이 없는 신인들의 작품들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내밀고 있다. 따라서 그야말로 객관성이 없는 주관적인 넋두리 같은 미숙한 작품이나 당선작품으로 수준 이하의 작품이 당선작품으로 뽑히기도 하고,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떠도는 작품들을 모방하거나 짜깁기 표절하는 작품이 당선되는 등 심사자의 자질이나 공정성까지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럼으로써 신춘문예제도의 역할과 기능이 마비되어 신춘문예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는 실정이 오늘날이 신춘문예 현주소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신춘문예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고 신춘문예가 옛날처럼 역량 있는 유능한 신인을 뽑는 창구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탐색해보기로 한다.

 

2. 신춘문예의 역할과 기능

 

신춘문예는 매일신보1914신년문예모집으로 문학작품을 모집하다가 1919년 처음으로 신춘문예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신춘문예제도를 도입한 것을 신춘문예제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1924년 동아일보의현상공모 대모집을 필두로 1925년 신춘문예로 모집하기 시작했으며, 이 무렵 조선일보도 신춘문예제도를 도입했다. 그 이후 중앙신문에서 신춘문예제도를 신문사의 문화행사기능으로 연례적으로 12월에 작품을 모집하여 11일자 신문지상에 발표해왔다.

 

신춘문예는 한국의 근대문학에서부터 출발하여 1세기를 넘게 지속해왔고, 문학 지망생들에게 희망과 기대, 그리고 좌절감의 진원지였고, 연말만 되면 문학 지망생들의 열병증상이 나타나는 연례적인 뫼비우스의 띠였다.

 

한국문단의 신인문인의 배출 창구는 외국의 출판사의 작품집 출간으로 인정하는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한 독자들의 수요창출로서의 문인인정 제도와는 달리 신춘문예제도와 문학지의 추천제도, 출판사의 현상공모 등을 통해서다. 그러나 이 중에서 신춘문예제도는 신문사의 문화행사기능에 의한 일회용 행사의 신인배출 창구이다. 신년의 신문에 당선작을 발표하여 신인들을 집중 조명한다. 그렇지만 화려한 일회용 조명으로 끝나는 행사에 불과하다. 신문사에서는 이들이 문인으로써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중들에게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발표매체를 지니고 있는 문예지나 출판사와의 2차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만 대중들에게 이들의 작품이 소개되고 역량을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출판사의 문학작품 출판 기회와 문예지의 문학작품 발표 기회를 얻으려면, 이차적으로 이들 관계자들과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신인들의 역량을 인정받아 한국 문학의 견인차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려면, 신춘문예 공모로 배출한 신인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책임의식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의 지속적인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문단미아가 속출한 것이고, 신춘문예 당선으로 1회적인 집중조명을 받는 것으로 끝나버리게 된다. 물론 영업을 목적으로 그 해에 당선된 작품들을 모아서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을 발간하는 출판사가 있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역량을 인정받도록 2차적인 작품집을 발간하는 출판사는 없는 실정이다.

 

역량 있는 신인의 배출 창구로는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배출 창구가 있고, 출판사의 공모, 그리고 문예지의 신인상 제도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문학의 대중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후죽순처럼 발행되는 문예지가 범람하여 신인들을 무더기로 배출하고 있다. 이들 문예지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신인상 제도나 신인 추천 제도를 신설하여 독자들에게 인정받는 문학작품을 쓸 능력이 전무한 문학 향유자들을 대거 신인으로 등단시켜 고객을 유치해오고 있다.

 

이들 문예지들은 대부분 출판사의 자구책으로 창간되는 경우와 영리와 허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문예지를 창간한 경우로 구분된다. 이들 문예지들은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독자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제공하기보다는 문예지를 창간하여 신인상 제도나 신인 추천 제도를 악용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정당한 실력을 갖춘 신인이라기보다는 고객 유치를 위한 신인 배출 창구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이들 문예지들은 문학지망생들이나 문학작품 향유자들의 허영심을 부추겨 엉터리 문인자격을 부여하는 등 문예지의 추천제도를 변질 악용하여 문단질서를 무너뜨리고 혼탁한 문학풍토를 조성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들 영세한 문예지들은 문단등단이라는 명분으로 습작기 수준의 작품을 신인상으로 내보내는가 하면, 추천위원이나 심사위원을 문인의 이름만 빌려 발행인이 제멋대로 신인상을 뽑고 있다. 이는 문예지 발간비의 충당과 영리를 목적으로 문예지 작품 게재 및 출판물 판촉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인상제도나 추천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문예지 추천의 등단은 해당 문예지가 인정하는 일종의 단골 고객으로 가짜 사설 문인자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문학지망생들이나 문학 향우자들에게 허명의식을 부추기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칭 신인 장사를 하는 등 무분별하게 무자격 신인들을 대거 양산하고 있다.

 

이들 영세한 문예지들은 문학작품 향유자들을 문예지의 운영비의 충당을 목적으로 신인 추천제도를 활용하여 짝퉁문인으로 등장시켜 이들을 고객화하고, 이들의 발표지면을 제공함으로써 공생을 해왔다. 이들 문예지들은 근대문학 시기의 문예지 신인 추천 제도를 악용하여 유명문인들의 이름만 빌리거나 문인이 아닌 출판업자가 신인 추천위원이 되어 신인 추천 제도를 운영하는 등 그야말로 무자격자 심사위원들이 무자격 신인들을 추천하고 있다. 문단 등단이라는 허울만을 내세워 동인지 성격의 문예지들을 통해 조잡한 문학작품을 발표하는 등 이른바 독립체산제의 영업 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따라서 이들의 운영방식은 자사가 배출한 무자격 신인들로 후원회 성격의 모임을 만들어 각종 문학놀이 판을 벌이고 있으며, 이들의 작품을 수록하여 서로가 수요공급자가 되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 구조로 배출된 향유자 층 유사문인들을 한국의 공식문인단체에서 입회비 충당과 회지 발간을 위한 영구독자 판촉활동으로 공식문인단체 회원으로 입회시켜왔다. 따라서 이들 단체들은 한국문학의 짝퉁문인들의 합법적인 활동을 보장해주는 교량적 역할을 해왔고, 한국문학의 질적 저하를 가속화시켰으며, 양적 팽창으로 문인홍수시대의 난맥상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봇물 터지듯이 이미 창간된 많은 신문사들이 자사의 홍보효과를 의식하여 신춘문예제도를 신설하여 신인을 배출하는가 하면, 출판사들의 현상공모를 통한 신인 배출 등으로 독자들의 수요가 없음에도 문인자격증을 남발하여 자기과시를 위한 허명의식을 부추기는 풍토를 조성하는데 일조해왔다. 엉터리 작품들을 발표하여 자기 만족하는 독자가 없는 문예지들 난맥상에서 신춘문예는 그나마 차별화된 정상적인 문인의 배출창구의 역할을 수행하여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예지들이 무분별하게 문학작품 향유자들을 신인상이나 추천제도로 신인을 양산하는데 반해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자는 역량 있는 신인의 배출로 차별화하여 문학의 본질적인 활동을 정상화하는 역할과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함에도 이들은 배출신문사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해주지 않으므로 차별화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이 신춘문예제도의 한계이다.

 

오랫동안 신문사의 신춘문예는 차별화된 신인들을 배출하여 이들이 한국문학의 선도적인 역할과 견인차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많은 신문사들이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하고 신인을 배출하나 작품을 보는 안목이 없는 작가를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내세워 능력 있는 신인을 뽑지 못하고 문예지가 배출하는 시인들과의 다를 바없는 차별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 예로 여기저기 남의 작품을 짜깁기 한 표절 작품을 신춘문예 당선작품으로 뽑아 물의를 빚는 일이 있었으며, 신춘문예 심사위원이 자신과 인간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작품을 신춘문예 당선작품으로 내세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여 물의를 빚은 등의 사례는 신춘문예제도의 공신력에 대해 치명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춘문예제도는 문학지망생들의 희망의 등불의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으나 문예지 출신의 작가의 작품과 점점 차별화의 기능이 미미해져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은 신춘문예제도의 불신을 조장하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원인을 보면, 신문사 담당 기자와 심사위원의 친밀한 유착 관계일 때, 또는 문학단체의 우두머리를 심사위원으로 모시거나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교체하지 않고 수년간 고정하여 심사를 맡게 하는 경우에 심사위원과 신춘문예 투고자와의 미리 결탁할 개연성이 상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시중에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심사위원과 신춘문예 당선자와 스승과 제자 관계인 경우, 같은 문학 단체의 회원인 경우, 심사위원이 투고자와 미리 결탁하여 금품 수수조건을 내걸고 신춘문예 당선 신인으로 배출해냈다는 등 신문사 신춘문예의 공신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풍문들이 낙선자들이 불만을 털어놓은 것들이 와전되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신춘문예 당선작품의 수준들이 문예지들이 배출한 신인들의 작품과 차별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이다.

 

이러한 신춘문예 불신에 대해 공신력을 인정받으려고 신문사들마다 자사의 신춘문예 공신력을 차별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자기 신문에서 배출한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신문사가 있는가 하면, 역량 있는 신인들을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거나 매년 심사위원을 교체하는 등 신문사마다 자사 신춘문예의 권위와 공신력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채택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신춘문예 당선에 얽힌 불신이 뜬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신문사들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자사 신춘문예 당선자를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채택한 것은 새로운 시도일지 모르지만, 신인의 작품을 보는 검증되지 못한 안목으로 뽑은 신춘문예 당선자가 신춘문예의 공신력을 유지할만한 차별화된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지 못했다는 사실은 신춘문예 제도가 로또복권화가 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신문사의 신춘문예는 자사의 한국문학의 견인차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작을 두고 잡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뽑는 심사위원의 선정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능력 없는 심사위원이 신춘문예의 공정성이나 한국문학 사회에 미칠 파장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자신의 고정된 안목에 따라 자기 아류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결과일 것이다. 이들의 신춘문예 심사평을 읽어보면 뽑은 작품과는 관련이 없는 엉뚱한 이야기로 얼버무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실체가 확연히 드러난다. 따라서 신춘문예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고 신춘문예가 문예지 배출신인들과 차별화가 된 역량 있는 유능한 신인을 뽑는 창구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기한다.

 

인품을 갖춘 공신력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문인을 심사위원으로 채택해야 한다. 문인으로서의 인품을 갖춘 문인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문인들이 존경하는 사회적으로 신망이 두터운 문인은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므로 공정한 심사를 할 조건을 갖추고 있을 개연성이 큰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사람의 인품과 작품을 보는 안목이 갖추고 있는가하는 것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문인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기자의 매서운 눈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정한 심사위원을 모시기 위해 신문사 나름대로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첫째, 문학단체의 우두머리를 했거나 현재의 문학단체의 감투를 쓰고 있는 문인들은 편파적으로 자기 이해관계에 치우질 우려가 많다. 정치적인 편견으로 공정성을 유지할 수 없는 가질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을 심사위원으로 채택하기 때문에 신춘문예 심사위원이나 각종 대회 심사위원으로 자신을 돋보이려는 정치적인 술수가 능한 사람들이 문학단체 감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결국 신문사에서 이런 분들을 심사위원으로 내세우면 문학단체의 파벌의식이나 감투의식, 공명심을 부추기는 시너지 효과로 발휘하게 될 것이다. 문학단체의 감투를 쓴 문인은 이미 공정성을 상실한 문인이거나 정치성이 짙어 공정성을 무시하고 편파적인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둘째, 출판사나 문예지 발간 등 문학관련 유사 업체에 종사하고 있는 문인을 심사위원으로 내세우면 공정성보다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할 개연성이 많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학단체의 장처럼 문예지 발간이나 문학 관련 유사 업체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부적격이다.

 

셋째, 작품을 보는 안목이나 문학 이론적인 능력을 겸비한 대학 교수를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채택하는 신문사가 많다. 어느 정도 학계나 문화예술계에서 검증되었기 때문에 대학의 문예창작과 강의를 맡고 있는 학자를 공정성이라는 입장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다. 이들을 심사위원으로 뽑았을 때는 어느 정도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문인 아니고 학계에서 유명한 분을 심사위원으로 모시면 작품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 좋은 작품을 뽑기는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작품을 창작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당선자들의 인품이나 앞으로의 지속적인 활동 여부를 판가름하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문인이면서 이론적으로 박식한 문예창작과 강의를 맡은 분을 심사위원으로 내세우면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를 당선자로 뽑을 개연성이 많고 실제로 이런 문제로 잡을 야기한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이런 분들이 공정한 심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다른 두 세분을 공동 심사위원으로 내세우는 방법으로 자기 아류를 뽑을 우려를 차단해야 한다.

 

넷째, 자기 이론이 무장되어 있고 창작관련 저서가 있는 유능한 심사위원을 선정하여야 한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이 되려면 확고한 자기 이론이 있어야 작품을 보는 안목이 검증된다고 할 수 있다. 창작관련 저서도 독창적인 저서여야 실력을 인정받지 여기저기 남의 이론을 모자이크한 창작 저서가 있는 분은 배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들 중에서 위원 문학단체나 문학관련 업체 종사자 등 자신의 이해관계로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분 또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신춘문예 심사위원은 절대로 해마다 바꿔야 한다. 물이 고이면 섞는 이치와 같이 특정신문사에서 고정되거나 여기저기 다른 신문사에서 심사위원으로 오랫동안 하고 계시는 분은 공정성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그리고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오랫동안 함으로써 공명심을 부추기고 자신의 아류적인 세력권을 형성하여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안식년제를 두어서 심사를 맡게 해야 할 것이다.

 

3. 에필로그

 

오늘날 한국문학은 대중화시대에 접어들어 혼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학향유자들의 공명심을 부추기는 문예지들이 수준미달의 작품을 신인상이나 추천제도로 신인으로 양산하여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향유자 층의 유사문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춘문예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는 길은 향유자 층의 유사문인들과 차별화된 작품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뽑아 한국문학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만이 향유자 층의 유사문인과 창작문인의 변별력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신문사의 신춘문예는 신문사들의 문화행사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한국문학의 본질적인 발전을 선도하는 향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많은 예비신인들이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모델로 삼아 꾸준히 습작을 한다는 점에서 신춘문예는 당대 문학의 교과서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신문사들이 편파적으로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뽑거나 안목이 없는 신출내기들을 공정성을 빌미로 심사위원으로 내세워 졸속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세우거나 고정된 심사위원을 내세워 공정성을 해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을 개연성을 차단하는 일은 곧 신춘문예의 역할과 기능을 되찾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최근 신춘문예가 신춘문예 작품으로써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문예지의 신인들과 차별화되지 못하는 신인을 배출하고 있는 원인은 출판사나 문예지들의 이해관계에 눈이 어두운 독선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정하지 못한 신춘문예 심사위원의 선정 및 안목이 없는 심사위원이 봉사 문고리 잡듯이 좋은 작품을 선정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신춘문예의 역할과 기능이 정상화둘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보았다. 아무쪼록 신춘문예가 제 기능을 발휘하여 혼탁한 한국문학을 정화시켜줄 샘물이 되길 바랄뿐이다.

 

 

강태공들에게 바란다

 

휴일이면 강이나 저수지, 수로 등에 낚시꾼들이 찾아온다. 이들 중에는 낚시꾼이 지켜야 할 규칙을 잘 지키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가져온 폐낚시용품, , 페트병, 비닐, 음식물 등 쓰레기를 되가져가지 않고 낚시터에 그냥 버리고 가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낚시꾼들의 공중도덕을 실천 여부는 그 사회, 그 나라의 교양 수준을 가름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라고 해서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는다. 국민들 모두의 민주적인 국민의식이 성숙되어 공중도덕을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남을 배려하는 공공의식과 행동에 대해 나무랄 데가 없는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되었다고 하지만,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한 상황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이 머물다가는 공공장소에 가면, 꼭 흔적을 남기고 간다. 온갖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특히 강이나 하천, 호수, 저수지 등 낚시터에는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그해서 낚시터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낚시꾼들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낚시터에 와서 그 지역 주민들의 경제에 보탬을 주기보다는 온갖 쓰레기를 버려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낚시꾼들을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다.

최근에는 낚시꾼들도 낚시하는 물고기들에 따라 특정 물고기에 대해 전문화가 되어있다. 우리 고장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영산강에 낚시를 하려고 온 낚시꾼들은 베스 루어낚시를 즐기려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장어 낚시를 하려오는 낚시꾼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철 베스 낚시꾼들이 영산강을 찾곤 한다. 이들은 보트를 강에 띄우고 베스의 서식지를 찾아서 낚시를 즐긴다. 베스는 토종 물고기들의 씨를 말려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어종이다. 그래서 이들이 베스를 퇴치하여 토종 물고기를 보호하려는 낚시꾼들이라면, 모두들 환영할 일이겠지만, 베스를 퇴치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베스와 놀다가는 낚시꾼이어서 눈총을 받고 있다. 이들은 베스를 낚시로 잡아 모두 다시 강에다 놓아주고 돌아간다.

영산강 베스 낚시는 외래어종 베스와 가짜 먹이로 유인하여 잡는 낚시의 손맛 즐기고 돌아가는 어처구니없는 낚시 오락문화가 펼쳐지고 있다. 베스는 입이 크고 포악하여 우리 토종 물고기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습성을 가진 포악한 어종이다. 베스들은 생존 본능은 붕어나 잉어보다 생존 우위를 차지한다. 토종 물고기들보다 먼저 부화하여 베스 치어들이 나중에 부화하는 붕어나 잉어의 치어를 잡아먹는다. 토종 물고기들이 살아남을 수 없도록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요즈음 겨울철 낚시에 걸린 암컷 베스들은 12월인데도 뱃속에 모두 알이 꽉 차있다. 보통 붕어나 잉어는 4월이나 5월에 산란하기 위해 물가의 얕은 수초 부근으로 몰려든다. 이 무렵 토종 붕어 낚시는 수초가 있는 얕은 물에서 낚시꾼들이 월척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토종 붕어가 사라지면 붕어 낚시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베스는 초봄 물의 온도가 15도가 되면 산란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른 봄에 산란하여 치어들이 나중에 부화하는 토종 물고기의 어린 새끼들을 잡아먹는 등 나름대로 영산강을 자신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강과 호수, 저수지 등에서 살아가는 토종 물고기는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다다르고 있다. 그 대신 외래어종인 블루길, 베스 등이 활개를 치고 살아가고 있다.

각 지방국토관리청 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 지방자치단체, 또는 이와 관련된 기관, 낚시 동호회 등에서는 우리 토종 물고기 어종을 보존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따라서 베스 낚시를 하는 낚시꾼들에게 잡은 베스를 놓아주지 않고 잡아서 퇴치하는 생태계 복원운동을 펼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일정량의 베스를 잡아온 낚시꾼에게 생태계 교란어종 퇴치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준다거나 베스낚시 퇴치 대회를 개최하는 등 기타 여러 묘책을 마련해서라도 낚시꾼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베스를 잡는 손맛만 즐길 것이 아니라 외래어종의 물고기를 잡아 토종물고기들의 생태계 환경을 되돌려주는 생태계의 지킴이 또는 파수꾼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낚시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민물낚시는 낚시꾼들 사이에서 뭐니 뭐니 해도 붕어낚시를 으뜸으로 쳐준다. 붕어낚시의 손맛을 지속적으로 느끼려면 토종물고기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외래어종이 우리의 강과 호수, 저수지를 점령하는데도 그대로 방치해두어서는 안 된다. 낚시꾼들은 앞으로 베스를 잡는 손맛만 즐기고 갈 것이 아니라 외래어종의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생태계 지킴이 역할까지 하는 등 일거양득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낚시문화를 조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칼럼리스트 김관식
칼럼리스트 김관식

 

 

 

 

 

 

 

 

 

 

■ 프로필 ■ 

 학력 : 광주교육대학, 한국교원대대학원, 숭실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과박사과정             수료 
 전남일보 신춘문예문학평론 입상(1976년), 자유문학신인상 시 당선(1998년) 
 저서 : 동시집 토끼 발자국 외17권. 시집 가루의 힘 외17권, 문학평론집 한국현대         시의 성찰과 전망 외 9권, 
 수상 : 백교문학상대상, 김우종문학상문학평론부문본상, 황조근정 훈장 외 다수
 현) 계간 창작산맥운영이사. 계간서정문학운영위원, 계간한글문학자문위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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