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뒤로 물러서 
             

이제 한 발 뒤로 물러서 
세상을 바라보기로 합니다

한 발 뒤로 물러서 
바라보면
세상이 다 보입니다 

사람도 한 발 뒤로 물러서 
바라보면
머리에서 마음까지 
훤히 다 보입니다 

한 발 뒤로 물러서 
바라보면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도
굽이굽이 다 보입니다  


나무가 제일 예쁜 때
          

나무가 제일 예쁜 때는 
쥐암쥐암 햇살을 쥐고 나온 아기손 같은
새잎이 피어날 때이다.

새잎이 새새끼처럼 연둣빛 부리로
바람이 가르쳐 주는 말을 배울 때이다

새잎이 빗방울에 몸을 통당거리며 
청개구리처럼 몸을 푸르게 물들일 때이다

그럴 때 나무는
젖망울에 젖물이 망울망울 고인다


한 봉지의 행복
            

어머니가 사오던 콩나물 한 봉지면
콩나물시루 같던 우리 집도
콩나물국으로 잘잘잘 끓었습니다
아랫목도 잘잘잘 끓었습니다

아버지가 사오던 군고구마 한 봉지면
올망졸망 고구마 같던 우리들도
군고구마로 따끈따끈 익었습니다 
겨울도 따끈따끈 익었습니다 

참 춥고 배고프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 봉지면 배부르고 행복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불빛 
     

기름을 아끼려고 
어머니가 바느질할 땐
심지를 낮췄다가

내가 공부할 땐
심지를 돋구어주던 

호롱불 
머언 
불빛 


얼음이 녹는다
           

강물 얼음이 녹는다
꽝꽝 언 얼음이 녹는다
얼음였을 때는
돌멩이를 던지면
탕, 탕 튕겨내더니
얼음이 녹으니
돌멩이를 품에 품는다
피라미 붕어 새끼 
품에 품고
물총새 물오리 
품에 품고 흐른다
갈대의 얼었던 뿌리도 녹이고
강마을 아이들
얼음 박힌 발도 녹이고
강물은 스스로
깊어지고 넓어져서
꽃 피는 산 하나
품에 품고 흐른다 

 

동시인 이준관
동시인 이준관

 

 

 

 

 

 

 

 

 

■ 프로필 ■

· 전북 정읍 출생
·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 및 <심상> 신인상 시 당선
· 시집 「가을 떡갈나무 숲」 「부엌의 불빛」 
· 동시집 「쥐눈이콩은 기죽지 않아」 「흥얼흥얼 흥부자」 
· 수상 : 소천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영랑시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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