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빛나게

 

키가 작고 몸이 약했던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 게 없어 늘 자신감이 부족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달리기하면 꼴등 이거나 꼴등에서 2등을 주로 했다. 동네 친구 L은 키도 크고 달리기를 하면 언제나 1등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손 솜씨도 좋아 무엇이든 잘 만들었다. 어린 마음에 내가 친구보다 상대적 열세라는 사실에 두려움이 컸다. 내가 못 가진 것을 다 가지고 함께 크는 친구와 달리 나는 그저 그러한 아이로 성장했다. 번번이 꿈이 바뀌던 나는 진로를 잡지 못하고 혼돈의 시간 속을 오래 걸으며 열등감에 빠졌다.

나는 누구인가? 자아를 찾지 못해 답답한 생활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를 모른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와 맺은 인연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의문이 들 뿐이다. ·고등학교와 사회생활에서 맺은 대인관계는 한때 나를 괴롭혔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의견 차이로 언쟁을 벌일 때가 가끔 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특히 언쟁을 벌일 때면 가슴속의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말이 느리지 않고 말을 더듬는 편도 아닌데도 옳고 그름을 가리는 언쟁에서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언쟁에서 지고 나면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다. 밤새 이렇게 말해보고 저렇게 말을 가져다 이어보며 지난 순간을 떠올린다. ! 오늘 낮에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을 했을 때 내가 이렇게 되받아쳤어야 했는데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해 혼자서 애를 태웠다. 언쟁에서 패했다는 느낌이 들면 속상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면서도 언쟁을 벌이면 언제부터인가 항상 지는 습성이 생겼다. 상대방의 말을 멋지게 되받아칠 수 있는 말이 생각난 순간, 그때는 이미 흘러간 시간이 되어 버렸다.

나는 아직도 언쟁에서 꼭 이겨야겠다는 악착같은 마음이 없다. 아니 바보같이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당구를 치면서도 농담 반, 진담 반 언쟁이 벌어져도 항상 마지막 화살을 쏘지 못하고 친구의 화살을 맞는다. 친구는 나에게 상처의 화살을 쏘는데 왜 나는 현을 당기지 못하고 망설이는 걸까.

언쟁 끝에 깔끔하게 승부를 짓는 말이 떠올라도 말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내가 마지막 화살을 쏘면 상대가 마음에 상처받을 텐데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무안한 상태를 만들고 싶지 않고 차라리 내가 아픔을 감수하는 편이 나았다. 내가 이런 마음에 활시위를 당기지 않았다는 것을 상대는 알지도 못하고 알아주지도 않는데 말이다. 상처 줄까 말 한 마디 못하다가 한발 늦게 혼자 있을 때 그냥 활을 쏘아 상처를 줄 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했다.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말이 떠올라도 끝내 말 못 하고 왜 꾹 참는 것인지···. 꾹 참는 이유는 아마 남보다 부족하다는 열등의식에 아픔을 일찍이 알게 된 이유에서다. 아픔을 받기만 했던 나는 아픔을 주고 싶지 않은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센 폭풍우와 싸우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해변의 갯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속에 잠겼다가 몸을 드러낸 갯바위들이 점잖은 미소를 흘리며 나를 반긴다. 상대의 화살을 맞고 상처를 받는 나와 거대한 파도에 맞으며 아픔을 감내하는 갯바위의 모습은 서로 닮은 모습이었다.

갯바위와 가장 가까운 파도는 늘 변덕스럽다. 파도는 갯바위에게 봉두난발(蓬頭亂髮)한 모양새로 몸을 던지기 일쑤다. 그래도 갯바위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갯바위는 물속에서는 바다색으로 물들이고 물 밖에서는 하늘색으로 물들인다. 강한 파도와 맞서는 갯바위는 자신도 모르게 표면이 부서지고 상처가 생겨도 침묵으로 감싼다. 매번 파도에 흠씬 맞으면서도 품고 기다리면서 끌어안기만 하는 갯바위와 나는 저항을 포기한 아픔의 상처가 가득한 채로 살아왔다. 갯바위가 홀로 파도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다 힘들어 지칠 때면 자신을 보듬고 위로하여 속에 품은 상처를 치유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언쟁 중에 아주 알맞은 말로 되받아쳤다면 싸움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르고 나는 이겼다고 의기양양해 사람을 우습게보고 오만함으로 절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그대로 내뱉지 않고 말을 삼키고 참는 습관은 나의 인성을 다듬고 나를 곧추세웠다. 확실히 응대할 수 있는 찰나에 마음은 섬이 아닌 섬이 되어 여운과 느낌 사이로 나의 숙명을 받아들였다. 남들은 나를 바보라고 말해도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의 뜻을 새기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그대를 빛나게하는 것으로 체면을 세우고 승리할 수 있게 하여 그대가 웃을 수 있다면 나는 마음 아파하지 않겠다. 우리네 삶이 내가 상처를 주고 이겼다고 으스댈 것도 내가 졌다고 마음 아파할 일도 아니다. 덧없이 보내버린 시간도 세월 속에서 점점 커가는 추억으로 자라고 순간의 인연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쓸데없는 괜한 감정에 사로잡혀 괴로워하지 말고 나와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하다.

 

바퀴 달린 집

 

2층 거실 유리창에 달팽이가 나타났다. 1층 화단 야생화에서 부화하여 2층 거실 유리창까지 올라 온 것 같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며칠 동안 최선을 다해 2층까지 오르다니 신기하고 놀랍다. 10mm 정도 되는 작은 몸뚱이가 바퀴처럼 생긴 다리로 2층 거실 유리창까지 오르다니 믿기지 않는다. 달팽이 걸음으로 4m까지 오르려면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력을 다한 달팽이가 거실 창을 당당히 걷고 있다. 움직이고 있는 건지, 멈추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움직임으로 유리창을 오르고 또 오른다. 달팽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더듬이를 세우고 두리번거린다.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길을 나선 달팽이는 세상 풍경에 환한 미소를 짓는다.

달팽이는 머리가 뚜렷하고 발은 넓고 편평하며 몸 전체의 신축성이 매우 뛰어나다. 머리에는 두 쌍의 더듬이가 있고 큰 더듬이의 끝에는 아주 작은 눈이 있다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동하는데 필요한 그 많은 양의 점액질이 어디서 생기는지도 궁금하다.

달팽이는 더듬이를 세우고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제집을 지고 기나긴 여정 중이다. 천적의 위험을 각오하고 출발한 달팽이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알 수 없다. 4m 높은 곳에 도착한 녀석은 아마 길을 잘못 들어선 모양이다. 천적으로부터 노출된 달팽이는 잘못 선택한 길이라는 걸 알기나 할까. 삶이란 사람이나 미물이나 본인의 뜻과 다르게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곳으로 향하기도 한다. 경로 이탈한 달팽이는 시행착오 끝에 길을 찾아 숲속 주인공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달팽이는 숨어 있던 곳에서 밤이나 비 오는 낮에 활동한다. 쉬엄쉬엄 오르던 녀석은 물기 없는 유리창을 자근자근 밀다가 멈추고 숨을 몰아쉰다. 풀과 이슬을 먹고 성장했을 달팽이가 갈증을 느끼고 물을 찾는 듯하다. 종족 번식의 본능으로 탄생한 귀한 몸도 험난한 길을 피해 갈 수는 없나 보다. 오르기 벅찬 위험한 절벽을 오르며 깨달음의 경지를 이룬 양 미소를 머금는다. 마치 암벽 등반가처럼 벽에 붙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가끔 볼 수 있는 달팽이 걸음은 느리지만, 최선을 다하는 걸음은 기적이 된다.

멧새가 능소화나무에 앉아 달팽이를 노리고 있다. 달팽이가 붙어있는 유리창의 허허벌판은 몸을 숨길 곳도 없다. 너무 느려 빨리 피신할 수도 없는 달팽이는 천적을 직감한 듯 경계태세를 갖춘다. 달팽이의 위기 모면은 몸을 집에 넣어 움직임을 멈추는 것뿐이다. 달팽이의 운명은 선택의 기회조차 없이 천적의 선처를 바랄 뿐이다. 달팽이가 제집으로 몸을 숨기고 움직임을 멈추자 멧새는 다른 먹이를 찾아 날아간다. 세월을 등에 업고 이소를 시작한 달팽이는 천적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서기를 한다.

달팽이가 안쓰러워 분무기로 유리창에 물을 뿌려주자 더듬이를 세우고 몸을 크게 움직인다. 물방울로 몸을 적시며 휴식을 취한 달팽이가 다시 어금니를 악물고 출발한다. 쉴 새 없이 오르고 내리며 살 속을 파고드는 바람의 채찍을 맞으며 귀 막고 눈 감고 달리는데 전력을 다한다. 부지런히 성장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겨울잠 잘 곳을 찾아야 한다.

녀석은 어떤 길을 만나도 피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길을 잘못 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풀과 벽에 붙어서 크게 한 발 내딛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내리막을 내려갈 때도 오를 때와 변함없이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거칠고 딱딱한 벽돌을 오르고 돌출된 창문틀을 넘고 걷기에 불편한 방충망을 오르다 되돌아서기도 한다. 힘들어도 불평등한 운명을 받아들이며 조물주가 준 집을 내려놓지 않고 하늘의 해도 모래알처럼 작게 보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제집을 짊어지고 평생 살아야 하는 삶이지만 주어진 숙명에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미물이나 사람이나 삶을 살아가는 고행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느려도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부족해도 훔치거나 탐내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고행으로 지쳐 숨 고를 시간조차 없어 곤두박질칠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부럽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조금씩 몸에 힘이 붙고 생장하며 생각이 커진다.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여유가 빨리빨리 급하게 사는 우리네 삶보다 더 귀하고 값져 보인다. 우리가 평생 겪을 수 없는 일을 달팽이는 보란 듯 몸소 실천하고 있다. 느려서 답답하다고 비웃을 자 누구인가. 느리게 산다고, 하찮은 미물이라고 업신여기지 말아야겠다. 더위에 지쳐 발바닥이 상하고 패이고 갈라져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다.

조물주가 가장 낮은 곳에서 느리게 최선을 다하는 미물에게 배우라고 달팽이를 탄생시켰으리라.

 

수필가 손민준
수필가 손민준

 

 

 

 

 

 

 

■ 프로필 ■

• 등단 : 공무원문학
• 저서 : 수필집 흰 눈 속에 꽃이 있다 외
• 수상 : 향촌문학대상. 대한민국문학대상수필부문. 인창문학대상 외 다수
• 전) 구리시청근무
• 현) 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사무국장. 명예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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