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 / 백한의 마라탕 이야기 (1)ㅣ 코너 [백마이]를 시작하며

어쩌다 보니 팔자에도 없는 마라탕가게를 운영하게 됐다. 음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이 직업에서 얻는 성취감 또한 글로 독자들과 소통할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에 버금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긴 근무시간과 고된 체력노동으로 소설을 쓸 여력이 없게 되자 나는 억울했다. 가게를 그만두고 소설을 쓸까 하는 고민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괴롭혔다. 글 쓸 시간이 없을수록 쓰고 싶다는 욕망은 더욱 강렬해졌다. 글 쓰는 일 또한 다른 형태의 체력노동임을 안다. 일간 (日刊) 이슬아처럼 매일 글을 쓸 순 없어도 격주간 (双周刊) 백한으로 살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불행할 것 같았다. 글밤 계정에 글을 연재하게 된 계기다. 오늘부터 격주간으로 수필 또는 소설의 형태로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글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 어떤 조합도 잘 어울리는 마라탕처럼 그 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겪었던 체험과 에피소드를, 앞으로 맞닥뜨릴 위기와 실패와 절망과 희망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낼 생각이다. 가끔은 맵찔이처럼 담백하게, 가끔은 마니아맛처럼 얼얼하게, 방금 끓여낸 따끈따끈한 마라탕처럼 현재 진행형으로 독자들과 대면하고 싶다.

가게문이 벌컥 열리더니 웬 아주머니가 장바구니를 들고 쑥 들어섰다. 이 불청객은 누구시지?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기도 전에 낯선 아주머니는 이미 장바구니를 새 테이블 위에 턱 하니 올려놓았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러졌다. 조립해서 세팅 해놓은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새하얀 테이블이다. 글쎄, 밥그릇이 테이블 위에 놓인다면 몰라도 물건이 잔뜩 들어있는 저 장바구니가 왜 저 위에 올라와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불청객이 금방 나가줄 사람이 아닐 건 분명했다.

주방 인테리어가 이제 막 끝나서 주방집기 들여오고, 홀의 벽과 바닥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일은 많았다. 도시가스도 신청해야 하고, 식재료며 일회용 용기며 사들여야 할 물건은 끝이 없다. 창고를 만들어준 인부들을 금방 보내고 잘못 달아놓은 에어컨을 떼서 새로 달아야 하는데도 비용이 곱으로 든다고 해서 한숨을 풀풀 쉬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지 2초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안녕하세요?"

동생이 아는 체 인사를 했고 나는 벙어리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창문을 등지고 앉은 우리를 마주한 채 말문을 열었다. 아니,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여기 인테리어 다 끝났네? 얼마나 걸렸어요? 나 요기 길 건너 철물집 하는 사람인데, 여기 바닥이 원래 이렇게 높낮이가 달라요. 전에 여기 들어왔던 집이 빵가게였는데 장사를 잘 못해서 결국 6개월도 못 버티고 나갔어. 지네가 빵가게를 차리면 같은 동네에 사는 내가 당연히 지네 빵을 사먹지, 먼데 가서 빵 사먹을 일 있겠어요? 인테리어 한다고 첨에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길래 가격 다 알려줬더니 결국은 지들끼리 알아서 한다고 하더만, 젊은 사람들이 아직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런 거 같아요. 동네장산데 이웃들이랑 잘 지내야지……"

", 제 남편이 안 그래도 필요한 거 있어서 철물점에 갔었어요. 보시다시피 우리 가게는 작아서 인테리어 할 것도 별로 없고, 본사에서 다 소개해서 하는 거라서 우리 절로 할 게 별로 없네요."

난 그제야 대화가 돌아가는 상황을 조금 파악할 수 있었다. 인테리어 할 때 자기네 가게의 물건들을 사서 쓰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래요? 여기 빵집 다음에 온 사람들도 인테리어 한다고 그러더니 뭐가 안 맞았는지 일주일도 못 돼서 나가더라고. 아마 주방은 인테리어를 다 하고 나갔을 걸? 권리금 달라고 안하던가요?"

"주방 바닥 조금 하다가 말았더라고요, 우리가 들어와서 다 새로 했어요."

"가게일은 오래 해봤어요? 가게 하려면 이웃들과 잘 지내야 돼요……"

아주머니는 장바구니에 슬쩍 손이 닿는가 싶더니 다시 손을 거두었다. 우리 자매를 청중으로 한 아주머니의 격앙에 찬 연설은 어느덧 10분 넘게 진행이 되었고 나는 눈도 마주치기 싫어서 창밖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때 마침 신의 가호처럼 옆집 치킨가게 사장이 나타났다. 배달을 마치고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그에게 나는 눈짓으로 도움을 청했고 그는 대번에 우리가게 문을 활짝 열고는 문밖에 서서 소리쳤다.

"이거 누구야? 철물집 아줌마 아니야? 여기서 뭐하는 거여 지금? 얼른 나와, 얼른! 바쁜 사람 붙잡고 무슨 수다를 떠는 거야!"

"수다는 무슨 수다? 내가 볼일이 있어서 들어온 건데, 모르면 삐치지나 말아요."

철물집 아줌마는 호령하는 치킨가게 사장의 기세에도 눌리지 않고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얼른 가, 얼른!"

치킨가게 사장은 한 번 더 호령을 한 후 문을 열어놓은 채로 자기 가게로 들어갔다.

", 정말 별꼴 다 보겠네. 저런 사람이랑 이웃이라 참 골치 아프겠다. 조심해요, 저 사람 완전 건달이야, 맨날 친구들 서넛 데리고 바깥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허송세월하고…… 지가 뭔데……"

아주머니는 그러고도 5분 정도 더 떠들다가 갔다. 그 와중에 동생이 수다쟁이 아주머니에게 커피라도 한잔 하시죠? 해서 그것이 인사말인줄 알면서도 나는 기겁을 하며 동생을 흘겨봤다.

훈수꾼들이 많을 거니 조심하라는 옆집 치킨 가게 사장의 말이 맞았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그들의 눈에 나와 동생은 이방인이었고 타자였다. 게다가 우린 그들에 비해 한참 젊었다. 철물집 아주머니처럼 난데없이 튀어나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며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저런 사람을 왜 상대를 하냐? 그냥 가라고 하지"

난 동생을 나무랐다.

"그래서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거야. 옆집 오빠가 첨부터 주의를 주더라고.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와서 한마디씩 삐칠 거라고."

동생이 말하는 옆집 오빠가 바로 치킨가게 사장이다. 철물집 아주머니 말대로 '옆집 오빠'는 건달이 맞다. 아니, 과거에 깡패었다고 한다. 주먹 하나로 세상을 제패하던 호기로운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한 주먹에 서너놈은 허영 쓰러 넘길 수 있었다고. 부인은 키가 크고 눈매가 선한 여자인데 모 중학교의 급식 조리장이다. 퇴근만 하면 그녀는 가게에 나와서 남편을 도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치킨을 튀긴다. 나와 동생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른다.

"언니가 하도 따라다녀서 할 수 없이 결혼한 거야. 나 같은 건달 만나서 고생 많이 했지."

언니 앞에서 스스럼없이 그렇게 말하는 '옆집 오빠'는 영락없는 공처가다. 그러면 언니는 토 하나 달지 않고 서글서글한 웃음만 지을 뿐이다. 건달이 온천한 처자를 만나서 개과천선한 현실 케이스다.

'옆집 오빠'는 치킨가게를 한 지 30년이 된다. 그 동안 건물주가 한 번 바뀌었고 새로 바뀐 건물주가 가게세를 올리겠다며 나가라고 했지만 '오빠'는 절대로 가게세 못 올린다고 나누웠고 결국은 소송까지 갔는데 '오빠'가 이겼다. 한마디로 그는 우리 동네 대빵이다.

"오빠가 말이야,"

치킨가게 사장은 늘 이렇게 오빠라 자청하지만 단연코 나는 한번도 그를 오빠라 불러본 적이 없다. 동생은 나와는 달리 오빠라고 곧잘 부르는데 거기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인테리어를 할 때 '옆집 오빠'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제부가 동생에게 옆집 가게 사장을 '오빠'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허용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옆집 오빠'는 우리랑 대화할 때면 항상 스스로를 오빠라고 칭한다.

"오빠가 겪어봐서 아는데 말이야, 오빠가 장사를 해보니까 말이야……"

그는 우리가 가게를 비울 때면 우리 가게로 배달된 물품을 대신 받아뒀다가 가져다 주기도 하고 배달대행회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젠 주인이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내가 나갈 거야. 30년동안 치킨만 튀겼더니 남은 건 병밖에 없어. 동생네가 장사 잘 되면 우리 가게까지 임대해서 가게 확장해. 내가 다른 사람한텐 몰라도 동생네한텐 싸게 내놓을게. 이 거리도 새로 물갈이 할 때가 됐어. 자네처럼 젊은 사람들이 와서 가게를 많이 열어야 더 활성화가 되지."

평소에 그는 통유리로 장식되어 가게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우리 가게를 눈여겨보고 우리가 밥 먹을 시간이다 싶으면 치킨이며 떡볶이며 치즈볼튀김 같은 걸 가져다 주곤 했다. 어떤 날은 저녁 늦게 금방 튀겨낸 치킨을 대접에 넘치게 담아와서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실수로 너무 맵게 만들었어. 난 매운 걸 못 먹잖아."

외지에서 출근하는 딸이 온 날이면 그는 무조건 우리 가게를 찾는다. 불쑥 들어와서는 테이블 위에 현금 만오천원을 내놓고는

"하나 맹글어줘, 오늘 딸내미가 왔거든."

딸이 오지 않은 날에도 불쑥불쑥 찾아와서 현금을 내밀면서 마라탕 하나 말아줘, 하는 인정 있는 사람이다. 그뿐인가? 가끔 낯 모르는 손님이 찾아 들어와서 "2인분 만들어줘요, 배달은 옆집으로 해주면 돼요." 할 때면 십중팔구는 '옆집 오빠'가 보낸 손님들이다. 우리 가게에선 술을 팔지 않는데 꼭 술을 마시겠다는 진상손님들이 있다. 그럴 때면 '옆집 오빠'는 선뜻 그런 고객들을 자기네 가게로 모신다. 그래서 치킨가게에서는 치맥을 앞에 두고 얼큰한 마라탕을 국자로 떠서 먹는 치..맥 진풍경이 펼쳐진다. 어떤 날 콜라가 품절이 되어서 급히 달려가서 한 캔 빌려달라고 하면 "먼저 갖다 써" 하면서 한 박스를 둘러메고 와서 우리 가게에 놔두고 가는 사람이다.

그날도 '옆집 오빠'는 우리가 퇴근할 무렵에 치킨을 들고 왔다.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하는 말.

"오빠가 실수로 너무 맵게 만들어서"

동생의 말을 빈다면 "专业炸鸡30"을 한 사람이 실수라니, 말이 되는가?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남은 치킨을 동생네 집에 들고 가서 조카애랑 셋이서 밤새도록 먹었지만 워낙에 양이 많은지라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아저씨는 왜 자꾸 치킨 들고 와? 제발 실수 좀 그만 하라 그래!"

치킨을 먹다가, 먹다가 조카애가 참지 못하고 내뿜었다. 그 말에 나와 동생은 빵 터졌다. 그래요, 오빠, 실수는 이제 그만, 우리 치킨 먹다가 배 터져서 죽겠어요.

후더운 이웃 치킨가게 사장의 이야기다. 우리 덕분에 마라탕에 입문한 '옆집 오빠'는 아직도 매운맛은 1.5단계에 머물러있다. 버는 것보다 내는 세금이 더 많아서 올해 계약이 끝나는 4월까지만 하고 가게를 내놓을 계획이라는 '옆집 오빠'는 요즘 따라 우리에게 갖고 오는 음식의 종류가 부쩍 다양해지고 있다. 치킨 외에도 곱창볶음, 소떡소떡꼬치, 로제떡볶이, 호떡…… 어쩌면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우리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가게 접으면 뭐하시게요?"

"뭐 하긴 뭐해? 병원출입이나 해야지."

그런데 오빠, 사내대장부가 마라탕 1.5단계가 뭐에요? 왕년에 깡패란 이름값에 어울리게 얼얼한 3단계나 4단계는 먹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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