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업 프로필 : 남, 1959년 흑룡강성 녕안시에서 출생. 자유기고인. 중문 시집 《경업의 시》,《안해》,《2017》과 영문시집《SAFE HARBOR:LIFE WITH MY OLD LADY》등과 번역서 40여 권이 있음. 현재 길림성 길림시에 거주.
전경업 프로필 : 남, 1959년 흑룡강성 녕안시에서 출생. 자유기고인. 중문 시집 《경업의 시》,《안해》,《2017》과 영문시집《SAFE HARBOR:LIFE WITH MY OLD LADY》등과 번역서 40여 권이 있음. 현재 길림성 길림시에 거주.

 

 

아무런 생각 없이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악마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금과를 포식할 때 마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은
조상을 유혹했다고
악마를 저주했다


 

송편

 

곱게 가리마를 낸
수주움이여

마지막 반 조각의
빛으로 

꺼져가는 향수를
불러 본다


 

뒷모습

 

흩날리는 낙엽과
타오르는 단풍이
한데 어울려
울긋불긋한 모습은
아득히 멀어져가는
시월의
뒤모습이다

어렵사리
여기까지 찾아 왔다가
덤덤히 돌아서는
그 모습이다


 

꿀벌

 

꽃은 볼 새도 없이
화분만 채집할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고 싶다

안깐힘을 다해 모은 
달콤한 꿈을 
누군가 말도 없이 가져갈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고 싶다

너의 모든 노력과 심혈이
왕벌의 밥이 되었을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고 싶다


 

다리 

 

너와 나 사이에
무지개 다리를 놓던가
아니면
창칼이 오고가는
살벌한 전쟁터를 만들던가
안니면
어정쩡히 피끗 보고
말 없이 지나가 버리던가
아무튼 첫눈에 반하는
그런 일은 없겠지만

어느날 말을 타고
너의 곁으로 갈거라고
저렇게 무던히
지키고 있는 것 아니냐

 

 

등잔불

 

희미한 콩기름 등잔불이
가물 거리는 밤
허리를 굽히고
새끼를 꼬는 아버지의 
산악 같은 그림자가
온 집안에 가득 찬다

나와 누나들과 동생도
작은 손으로 
어른들을 따라 새끼를 꼰다
스르륵 스르륵
벼짚을 부비는 소리 가운데

콩기름등잔불 보다 
더 밝은 
할머니의 옛말 소리
마음을 비춘다

태풍

 

9호 태풍으로
문을 나설 수 없어
집에 박혀 심심한 데

창문을 여니
비릿한 바람이
살 때를 만났다고
아우성치며 달려든다

바람을 맞아 
가슴을 펴니
로즈가 곁에 
없기는 했지만
타이타닉
제크의 낭만이 
찾아 든다


 

썰물

 

그날
내 말라 붙은
눈거풀에
이슬 한 방울
살풋이 내려 놓고
가 버린
사람아

파도는 
거품을 씻어 내
멀리 
해안선에 뿌리고
말 없이
돌아 선다


 

종소리

 

그날 아버지가 
솜신을 깁어 주느라
시간을 놓쳐 버렸다

좀만 늦게 울려 주라며
그날 나는 허둥 지둥 
눈 덮인 길을 달렸다
그래도 지각

송춘자 선생님이
나를 난로 곁에 앉혀 주어
얼어든 마음을 
녹혀 주셨다

이젠 아득히 사라져 가는
50여년 전의 종소리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장마철

 

비가 오지 않아도
장마철은 장마철이라고
하늘은 언제나 찌뿌퉁하니
심술만 부린다

늦어 다가온
올해 장마철
사랑은 어데 갔는 지 
말끔히 사라져
옥수수는
아이 하나 업지 못하고
바람에 
서걱서걱 넉두리만 한다


 

9.18의 진혼곡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보았다
가사를 쓸까
곡을 엮을까
아니면 시를 쓸까

장 보러 나가 
파를 고르는 데
길게 울리는 
애처로운 경적소리
그 소리에
과일 팔던 아낙네가
벌떡 일어나 
휘어든 허리로
꿋꿋이 서서
3분 간 
숙연한 표정으로
꼼짝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진혼곡은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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