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우화3  

 

1.

돌멩이가 항아리 위에 떨어져도

그것은 항아리의 불행이다.

항아리가 돌멩이 위에 떨어져도

그것은 항아리의 불행이다.

 

2.

숲 속 호랑이 권위는 거의 절대였다.

무서웠지만 힘을 바탕으로 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랑이가 나이 들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여우가 호랑이를 찾아가 괴롭혔다.

점차 힘이 없어지자 끌어내어 다른 짐승들에게 끌고 다니며

없는 죄까지 문책하도록 했다.

 

 

3.

군중은 마침내 선한 임금을 끌어내리고

거짓은 정당화된다.

선동은 진실이고 참됨은 힘이 없다.

 

금연법

 나른한 봄날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잠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옛날 같으면 이런 때 딱 좋은 게 있다. 바로 담배다. 아, 담배... 그러나 담배는 마약보다 더 위험한 것이 되고 말았다. 피우다 걸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체포된다. 징역 3년 이상에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다. 아무리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해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는 생각해서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모든 감각을 타고 올라와서 몸이 뒤틀릴 지경이다. 지난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죽을 각오로 몰래 담배를 피웠다. 화장실에서 문을 꼭 걸어 잠그고 한 모금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변기에 목을 쳐 박고 물을 내렸다.

아, 담배... 그것은 끔찍한 상상이다.

A는 다리를 책상에 올려놓고 한결 편안한 자세를 취해본다. 간절한 담배 생각을 억제하면서 막 낮잠을 자려는데 건너편 건물 창에 한 사내가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그가 뭔가를 소리치고 있었다. A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뭔지를 알고 있었다. 필시 담배 때문이었다.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발각되어 창밖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창밖은 10층 아래 까마득한 높이었다.

A는 벌떡 일어나 창을 열고 내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20층 건물 중간쯤에 매달려 있었고 좌우 아래 위에서 경찰이 에워싸고 있었다. 여차하면 곧 뛰어내릴 자세다. 그는 온 몸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누군가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경찰이 출동했고, 그는 체포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맞서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요즘 와서 꽤 흔한 모습이었다. 며칠 앞서 명동의 한 비밀 지하 카페에서 10여 명이 집단으로 담배를 피우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반발하며 체포를 거부하다가 경찰이 발포한 총탄에 한 명이 사살된 뒤에야 전원이 체포되는 무시무시한 사건이 있었고, 어제께는 경기도 광주시 인근 야산에 숨어서 담배 피우던 청년이 역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검거에 불응하여 계곡으로 도주하였다가 일주일 만에 잡히기도 했다는 등 연일 흡연자 소탕작전에 관한 소식들이 신문과 방송을 장악하고 있었다.

딱 한 해 전에 담배퇴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는 없다. 자신의 골방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다. 그동안 1갑에 5만원까지 올려 규제하던 것도 모자라 아예 판매를 금지시키고 말았다. 판매금지뿐 아니라 소지하는 것도 금지했다. 담배 피우는 행위 자체가 범죄이며, 그것도 아주 악질적 사회악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도 밀수나 국외로부터 숨겨 들어오는 담배로 흡연자 적발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적발되면 현장에서 체포되며 체포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면 사살을 할 수도 있으며, 최하 3년 이상의 징역형이었다. 

 

나의 하렘 2

 

단지 안에 아이들이 가득하다.

모두 내 새끼들이다.

히히호호 아이들은 즐겁게 놀고 있다.

단지 중앙에 커다란 바구니가 놓여 있다.

그 안에 명태포가 가득하다.

모두 아이들에게 먹일 양식이다.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와 부러운 표정으로 질문한다.

“모두 댁의 자녀들입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다고 한다.

“대단히 많네요. 수십 명은 넘어 보입니다. 모두 몇 명입니까?”

“아무튼 많습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아이들 이름은 다 있나요? 다 있다면 누가 지었나요?”

그는 기자처럼 질문을 물고 늘어진다.

“물론 다 있지요. 하나하나 내가 지어줬습니다. 하지만 난 아이들 이름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얼굴은 다 압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자랑스러워한다.

 

 
우리 동네 좀머씨 

 

 

그는 늘 걷기만 하는 사람이다.

카우보이모자 푹 눌러 쓰고

좌우 둘러봄 없이 그저 걷기만 하는 사람,

야위고 긴 다리는 남들보다 훨씬 빠른 것 같은데도

열심히 걷기만 하는 사람

오로지 걷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걷는 것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걷기만 하는 사람이다.

몇 해 전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니 그에게 ‘좀머씨’라는 별명을 붙이고부터

그를 볼 때마다 그것이 궁금했다.

왜 걷기만 할까...

오늘 그 해답을 알았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그가 걷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너무 신기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지켜보았다.

그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심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친구는 멀리 군산에 있었다.

혼자 술 마시지 말고 자신을 불러달라고 했다.

아무리 멀어도 같이 마시러 가겠노라고

너무 외로우니까.

나 헌 농 속에 갇혔네

 

한밤중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다.

화장실은 멀고 갓방 헌 농속으로 들어간다.

혼자 웅크리기에 딱 맞는 공간이다.

문을 닫으니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답답해서 농문을 미니 열리지 않는다.

오줌이 마려워 참을 수 없다.

그대로 오줌을 싼다.

오줌은 농속을 차올라 가슴까지 다다른다.

그래도 나는 꼼짝할 수 없다.

내 몸은 오줌에 저려 점점 소태가 된다.

-날 살려다오-

이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그러나 내 소리는 모기소리보다 더 작다.

몇 번이고 질러본다.

악을 쓰듯 질러본다.

이러다 나는 미라가 될지 모른다.

헌 농은 잘 쓰지 않으니 식구들이 농문을 열 리 만무하다.

내가 며칠,

아니 몇 달 없어져도 집사람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종 말없이 사라져 여행을 가니까

아, 나는 몇 년 뒤 완전히 소태가 된 미라로 발견될지 모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내게 닥치는가.

나는 다시 몸을 움직여 본다.

역시 꼼짝할 수 없다.

소리 질러 본다.

앵앵

소리는 여전히 모기소리보다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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