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짓날이었다. 여자가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올려다봤다. 오후 5시 50분. 세 번째 방문이었다. 여전히 진회색의 낡은 패딩에 같은 색상의 머플러 차림, 뒤로 아무렇게나 묶은 파마머리, 안경알 뒤에서 불안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홀에서 식사하고 가도 되죠?”

“네, 안쪽에 자리 하나 비어있으니 그쪽에 앉으시면 돼요.”

마음 같아서는 예약석이라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녀가 홀에서 식사하는 걸 막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여자는 벽쪽의 빈 의자에 가방과 머플러를 내려놓더니 바구니를 가지러 갔다. 여자는 내게 그다지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다. 오픈한지 한 달도 채 안된 우리 가게를 세 번이나 찾아준 고객이라면 단골이라고는 확정 지을 수 없지만 (우리 가게에는 매일 마라탕 먹으러 오는 손님도 꽤 있다) 반갑게 대해야 할 손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여자손님에겐 반가운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외모만큼이나 하는 행동도 이상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자가 내용물이 담긴 바구니를 내게 내밀었다. 성인 1인용 치고는 적은 6천원에 겨우 미치는 내용물이었다.

“매운 맛 단계는 몇 단계로 해드릴까요?”

“짜지 않게 해주세요. 짜지 않게.”

그녀는 짜지 않게 해달라는 말만 반복하며 벌써 테이블로 돌아가고 있었다.

“네. 매운 맛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맵게요, 조금만 맵게요.”

우리 가게의 매운 맛은 맵찔이들을 위한 1단계부터 욕이 튀어나오는 맛인 4단계까지 무려 5가지 맛을 선택할 수 있고 대부분 고객들은 정확하게 자기가 원하는 매운 맛을 선택한다. 그런데 여자의 요청사항은 애매모호하다. 나는 그냥 여자가 선택한 6천원어치의 내용물에 어울릴 정도로 적당량의 소스를 배합하고 조리준비를 하는 남편에게 소리쳤다.

“1번 덜 짜게.”

그리고는 앞 접시에 단무지를 담았다. 냉장고에 넣어둔, 조금 전에 개봉한 단무지에는 살얼음이 끼어 사각거렸다. 단무지를 여자의 테이블에 올려주고 주방에 돌아오자 남편이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피웠다.

“지난번 그 고객이지? 당신을 가르치려던 그 고객?”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과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이번에는 또 내게 어떤 걸 가르치려고 들까? 남편도 내 생각을 훤히 꿰뚫어보았다는 듯 도리머리를 했다.

여자 앞에 마라탕 그릇을 내려놓으며 맛있게 드세요, 했을 때 여자는 두 팔을 과장스레 벌리며 수저는요? 하고 물었다. 그 모습은 마치 수저도 안 갖다 주고 음식만 내오면 무슨 수로 먹냐고 항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이나 수저는 셀프코너에서 직접 가져와야 한다는 걸 여자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말없이 셀프코너에서 수저를 가져다가 그녀의 테이블에 놓고 얼른 주방으로 들어왔다. 상대하고 싶지 않은 손님이니까.

여자가 드디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창가 테이블 남자손님은 이미 식사를 마쳤고, 여자의 옆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던 젊은 청년은 단무지를 한 번 더 추가했다. 창가쪽 테이블을 치우고 주문 들어온 주문표의 내용물을 담기 위해 내가 바구니와 집게를 들고 쇼케이스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릴 때까지 여자는 가게를 나서지 않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내 뒤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존재가 아무리 걸러내도 잘 걸러지지 않는 숙주나물 껍데기처럼 걸리적거렸다. 내가 내용물을 다 담고 돌아서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저기 과자는 파는 거에요?”

“어떤 과자요?”

“저기 테이블 아래에 있는 거요.”

“아, 그거요? 그거 파는 거 아니고 가끔 장애인들이 와서 좀 사달라고 부탁을 해서 사놓은 거에요.”

‘짱이야’ 스낵이 있다는 걸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셀프코너의 책상 서랍 안에 있는 걸 그녀는 언제 뒤져본 걸까? 가끔 어린이 고객이 왔을 때 생각나면 한봉지씩 안겨줄 때도 있지만 그녀에게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그녀가 얼른 제 갈길을 갔으면 하고 내심 바랐다. 그녀는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주방으로 향하는 통로를 막아서고 내게 말을 걸었다.

“단무지가요,”

“네?”

단무지에게 무슨 일이 있으랴만 일단 고객에게 나간 음식에 관한 이야기라면 무시할 수가 없다. 단무지는 상태가 좋다. 냉장고에 넣어뒀던, 금방 개봉한 단무지를 담아서 내왔는데 단무지에서 신맛이 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제 접시에요, 한입 먹다 남긴 단무지가 딸려 나왔어요.”

“네?”

놀라움과 함께 내 눈길은 그녀가 앉았던 테이블로 향했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세 조각 남아있는 단무지 접시에는 입으로 한입 베어 문 흔적이 역력한 단무지 한 조각이 있었다. 고춧가루도 살짝 묻어있었다.

“어떻게 이럴 리가요? 이거 제가 금방 개봉해서 꺼낸 거에요.”

남편도 주방에서 나왔다.

“글쎄요, 먹다 보니 이런 게 있더라구요.”

“죄송합니다.”

엄연한 물증 앞에서 나는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나와 남편은 반쯤 얼이 빠진 얼굴로 단무지 접시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자는 표연히 사라졌다.

“혹시 단무지를 만들 때 무가 잘려나간 부분이 먹은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남편은 냉장고에서 단무지통을 꺼내 반달형이 아니고 모양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단무지는 골라서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

“아니야. 이건 기계나 칼로 절단한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입으로 베어 문 흔적이야.”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담아낼 때 실수로라도 이런 흔적이 있는 단무지를 담았을 가능성도 전혀 없었다. 단무지라고 해봤자 반달형의 단무지조각 열조각 미만으로 담아내는데, 저런 게 있다면 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CCTV 확인해보자.”

“그래, 생각 못했네, 이때 CCTV 써먹는 거지.”

“암튼 특이한 손님이야.”

그날 영업을 마감하고 나와 남편은 CCTV를 확인했다. 여자는 젓가락으로 마라탕 그릇의 내용물을 끊임없이 휘저었다. 닭이 낱알더미를 파헤치듯이. 나와 남편은 인내심을 갖고 화면만 응시했다. 드디어 그녀가 단무지를 집었다. 완벽한 반달형의 단무지 한 조각. 그녀는 한 입 베어물고는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끊임없이 마라탕 그릇을 헤집고. 드디어 젓가락이 두 번째로 단무지그릇으로 향한다. 그녀는 처음에 집었던 단무지를 재차 집어서 입에 넣었다. 다시 마라탕 그릇을 이리저리 휘젓는 젓가락질. 우리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화면을 쳐다보았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중요한 범죄현장을 놓칠 것만 같았다.

“이제 새 거 집을 차례네.”

남편이 말했고 나는 응, 하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녀의 젓가락이 세 번째로 단무지접시로 향했고 완벽한 반달형의 단무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한 입 떼어 물고는 접시에 내려놓았다.

“자, 자, 이번이 관건이야.”

그녀의 젓가락이 네 번째로 단무지접시로 향했을 때 나와 남편은 숨조차 죽이고 젓가락만 응시했다. 그녀가 방금 베어 먹었던 단무지를 집지 않고 다시 완벽한 반달형의 단무지를 집어올렸다.

“이봐, 이봐! 지가 그랬다니까.”

“잠깐만, 아직 끝이 아니야.”

끝까지 보지 않곤 아직 판단할 수 없다. 지금 접시에는 두 개의 먹다 남은 단무지가 있다. 3시간만큼 긴 30여분의 시간이 지나고 반조각의 단무지는 마지막까지 접시에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친년, 지가 그런 거 맞네.”

“혹시 건망증, 아니 치매환잔가?”

“하여튼 첨부터 수상하더라니까.”

“눈빛 봐봐. 이상하잖아.”

“담에 오면 확인사살 시켜줘?”

이런 옘병, 환장할 사람이라구야, 나와 남편은 우리가 아는 욕을 총동원해서 한바탕 상대도 없는 가게에서 욕을 퍼부었다. 동짓날이라 끓여먹으려고 했던 팥죽은 이상한 여자의 등장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유난히 밤이 긴 하루였다. 꿈에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엄마, 아버지, 고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와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서 무를 먹는 꿈이었다. 동생들은 초저녁에 이미 잠에 곯아떨어졌고 나는 깔깔대며 달큰한 맛이 나는 무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2

출입문쪽을 비추던 햇살이 서서히 자리를 옮겨 창가쪽 테이블과 벽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겨울 오후 세시경의 햇살은 제법 강렬하다. 나는 난롯불을 쬐듯이 손가락을 쫙 펴서 테이블위에 양손을 올려놓는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햇살의 온기를 느껴본다. 배달위주의 장사다보니 브레이크타임이 따로 없지만 그래도 오후 세시경이면 조금 한가하다. 남편은 튀김꽃빵에 곁들이는 연유소스가 떨어져서 급히 보충하려고 마트에 갔다. 나는 통유리창으로 바깥세상을 관찰했다. 맞은편의 형제 바리스타 커피숍에는 중년아저씨 둘이 커피를 마시며 가끔 내쪽을 힐끔거렸고 대각선으로 마주 향한 감자탕집 젊은 사장은 오늘도 야구모자를 챙이 뒤로 향하게 눌러쓴 채 나와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옆집 치킨가게 사장은 배달을 다녀온 지 5분도 채 안된 것 같은데 또 주문이 들어왔는지 콜라병이 삐죽이 튀어나온 비닐봉지를 들고 나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도 미소를 피워 올리며 고개를 까딱했다. 치킨가게 사장은 이 동네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해온 동네 대빵이다. 풍문으로는 건물주(집주인)가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하는 걸 나갈려면 당신이 나가라며 버텼는데 결국 소송까지 갔고 소송에서도 이겨서 집주인도 어쩌지 못한다고 한다. 남편은 인테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치킨가게 사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지냈다.

“가게 차리면 이웃과의 관계처리도 무시할 수 없어.”

남편은 물론 우리가게 오른쪽 순대국밥집 여사장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다. 처음부터 누님, 누님 하면서 살갑게 군 덕분이다. 여사장은 나와 마주칠 때마다 남편이 참 부지런하고 성격도 좋은 거 같네요, 했다. 그때마다 나는 눼, 눼, 저한테만 안 그러고 남들한텐 간, 쓸개 다 빼줄 듯이 쓸데없이 친절하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았다.

“장사하는 사람은 아침에 나올 때 간과 쓸개는 집에 놔두고 나오라고 했어.”

남편이 입버릇처럼 내게 하는 말이지만, 남편 말대로라면 겨울날 빨랫줄에 넌 언 빨래처럼 꼬장꼬장한 나에게는 남편의 장사철학이 교과서 내용처럼 들렸다. 나는 실제 응용에서는 항상 서툴렀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남편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니, 어쩜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진리다. 진리는 거스를 수 없다.

나는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거두어들였다. 벽을 등지고 앉은 나의 정면, 출입구 쪽에는 정수기며 수저, 냅킨과 바구니, 집게가 놓인 테이블이 있고 그 위의 선반에는 책꽂이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편견”은 내가 최근에 주문한 책이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1,2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부터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까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남편이 내 서재에서 한 줄을 뭉텅 뽑아서 가게로 모셔온 책들이다. 가게에서 이 책들의 작용은 북인테리어다. 나는 테이블에서 천천히 손을 거두며 동시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정수기 곁으로 다가가 책꽂이에서 백과사전처럼 두터운 “편견”을 내리다가 손을 움츠렸다.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원체 생겨먹기를 손목이며 손가락이 가는 나는 무거운 일을 할 체질이 아니다. 가게를 하고부터 나는 늘 손이 아파서 잠을 깼다. 잠에서 깨어나면 손가락이 젤 먼저 반응을 했다. 오므릴 수도 펼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다. 어린아기가 잼잼을 하듯이 누워서 양손으로 느릿느릿 몇 번 잼잼을 하고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정형외과에 가봤으나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다고 했다. 뜨거운 파라핀에 손을 5초 간격으로 담궜다 꺼냈다를 반복하는 것 외에, 손목에 마사지기를 장착시켜 십여분 동안 마사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어떻게 하면 손이 안 아플까요?

-이 일을 안 하면 안 아프죠. 일을 하는 동안은 계속 아플 겁니다.

노답이다. 그 뒤로 나는 두 번 다시 정형외과를 찾지 않았다. 옆집 치킨가게 사장의 병신 손가락이 떠올랐다. 30년을 치킨만 튀긴 옆집 사장은 오른손 무명지가 병신이 되었다. 뒤로 해까닥 제껴져서 원상복구가 안되는 것이다. 전번 날은 방구들 닦듯이 두손으로 힘을 주며 바닥을 닦고 있는 나를 보더니 언제 들어왔는지 한 마디 했다.

“장사는 오래 하면 안된다니까. 내가 말했지. 장사 오래 하면 번 돈으로 나중에는 병원출입만 한다고. 동생, 내 말 듣고 둘이서만 하지 말고 알바 써서 해, 제수씨 저 가느다란 손목으로 몇참 못 버틴다.”

가게 인테리어를 할 때 책을 스무권 정도 배치하자는 나의 제안을 남편은 너무나 쉽게 수락했다. 늘 책만 사들인다고 구박하던 남편이 웬 일인가 싶었는데 남편은 다른 마라탕가게와 차별화되게 인테리어를 하자는 취지에서 책을 가져다놓으면 왠지 있어보이고 학구적으로 보인다는 생각에서였던 것이다. 물론 나의 생각은 남편과는 정반대였다. 내 생각은 어디까지나 가게에서도 틈틈이 독서를 하자는 목적이었다. 책을 보는데 장소를 가릴 것이더냐. 나는 늘 손이 가는대로 책을 꺼내서 읽다가 손님이 오면 주방에 들고 들어와 케첩통이 잔뜩 놓여있는 선반 위에 되는대로 꽂아놓군 했다. 그러나 일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 책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혀있었다. 남편은 책이 아무 곳에나 꽂혀있는 꼴을 못 참는 인간이다. 모든 것은 항상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남편의 철칙이다.

나는 “편견”을 집어드는 걸 포기하고 “백년의 고독”을 빼낸다. 1이든 2든 상관없다. 전반적인 내용은 이미 알기에 나는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잠깐 읽는다. 나는 아직도 부엔디아와 우르슬라 외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늘 헷갈려하지만 이것은 내가 이 소설을 읽는데 결코 방해가 되지 않는다. 마르케스의 위대함은 어느 페이지를 읽든 독자를 흥미진진한 이야기속으로 끌어당긴다는 데 있다. 나는 이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마콘도라는 가상의 마을로 걸어 들어간다. 책장을 덮으면 나는 마콘도에서 벗어나 내 추억속의 고향으로 떠난다. 나의 할머니도 마르케스의 할머니처럼 전설이나 신화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하셨다. 할머니와 바구니를 들고 돼지풀을 뜯으러 다니던 일이며, 할아버지와 미꾸라지를 잡던 일이며, 자전거 바퀴를 손질하는 아버지 곁에 앉아있는 모습, 엄마와 배추며 무를 캐던 가을의 텃밭이며...... 그리고 마당에는 할아버지가 매준 그네가 있었다. 그 그네에 올라서 몇 번 구르면 나는 우리집 초가지붕을 훌쩍 넘어서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나의 사유는 자그마한 가게의 주방을 벗어나 멀리, 동해를 넘고, 유럽대륙을 지나 라틴아메리카로 날아간다.

남편이 연유소스를 사서 들어섰다.

“조용하네. 그동안 배달이 하나도 없었어?”

“응”

“배달주문이 많아야 할텐데”

“그러게”

나는 습관적으로 책을 선반의 케첩통 사이에 끼워넣고 냉장고에서 단무지통을 꺼내 과도로 포장지를 찢는다. 소금기를 제거한 다시마도 꺼내서 잘라야 하고 목이버섯도 꼭지를 일일이 따야 하고 햄도 썰어야 하고 중국당면도 불려야 하고 할 일은 영원히 끝이 없었다.

 

3

나는 여자가 처음 우리 가게를 찾아들어왔을 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진눈깨비가 살짝 휘뿌리다가 만 소설이었다. 오후 네시경이었고 나는 가게 건너편의 청국장집에서 주문한 마라탕 두 그릇을 갖다 드리고 오는 길이었다. 왼쪽 옆구리에 쟁반을 끼우고 오른손으로 가게 문을 여는데 통유리창 밖에서 진회색의 패딩을 입은 여자가 가게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여자에게 말을 걸려다가 그냥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들어온 후에도 여자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자는 성급히 바구니와 집게를 집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한눈 팔다가 앞으로 불려 나와 수학문제를 푸는 학생처럼 메뉴판을 마주하고 한참이나 서서 두리번거렸다. 볼이 홀쭉하고 턱이 길었다. 여자의 몸에서는 불안한 기류가 흘렀다. 작정하고 마라탕을 먹으러 온 게 아니라 길 가다가 누군가에게 쫓겨서 급히 몸을 숨길 요량으로 우리 가게에 아무렇게나 들어온 사람 같았다.

“마라탕은 어떻게 먹는 거에요?”

마라탕은 중국의 사천성에서 기원한 것이며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육수를 부어서 끓인 후에 매운 소스와 얼얼한 소스 등을 넣고 먹는 음식이라고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드렸다.

“그럼 마라샹궈는 뭐에요?”

마라샹궈는 재료는 똑같은데 국물 없이 얼얼하고 매콤하게 볶아서 나오는 거라고 설명을 해드리자 여자는 이번에는 꿔바로우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여자는 결국 빵 중간에 새우가 들어간 작은 샌드위치를 튀긴 멘보샤 하나를 포장해서 갔다. 염탐꾼 같기도 하고 호기심 가득한 어린애 같기도 한 여자의 행동에 나는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에 진입을 해서 오후 9시까지 영업제한을 한 시점이었다. 8시 조금 넘어서 온 여자는 홀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그녀는 주방에 있던 내가 홀에 바구니와 집게를 갖다놓거나 쇼케이스에서 물건을 담을 때마다 내게 말을 걸었다. 대개는 본인이 먹고 있는 마라탕 그릇 속에서 내용물을 꺼내서 뭐냐고 묻는 식이었다.

“이건 뭐죠?”

“새송이버섯인데 저희가 조리할 때 잘랐어요. 식감 괜찮죠?”

새송이버섯을 모르는 한국인도 다 있나 싶었지만 잘라서 나온 새송이가 원형태를 잃었으니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뭐에요?”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왕성한 호기심을 보였다.

“아, 이건 뉴진맨이라고 하는데요, 소힘줄처럼 쫀득한 당면의 한 종류에요.”

식사를 마치고 그녀는 나를 불렀다.

“이거 남은 거 싸가려고 하는데 싸가도 돼요?”

“그럼요.”

나는 홀로 나가서 그녀가 건네주는 마라탕 그릇을 들었다.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포장해가면 따로 비용 받던데......”

“네, 대부분 식당에서 그렇게 하는데 저희는 따로 비용 안 받아요. 너무 야박하잖아요.”

“탕이 짜요. 국물은 조금만 담아주세요.”

그녀는 국자로 마라탕 그릇의 국물을 세 번 정도 공기에 퍼냈다가 다시 공기에서 한 국자를 마라탕 그릇에 담더니 그제야 그릇을 내게 넘겨주었다. 패딩의 지퍼를 올리고 머플러를 두르고 포장된 마라탕을 받아 들고도 그녀는 갈 념을 않고 쇼케이스 앞에서 서성거렸다. 내가 그녀 옆에 다가가자 그녀가 쇼케이스안의 분모자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이건 뭐에요?”

“분모자에요. 이것도 당면의 일종인데 식감이 쫀뜩쫀득하고 맛있어요.”

“아, 내가 다음번에 또 올 건데 이름을 알아야 시킬 수 있어서 물어본 거에요.”

“네.”

한참을 서서 이것저것 물어보던 그녀는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서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내가 지금 가려고 하는데 나한테 ‘수고하세요’, 하고 인사할 거죠?”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내가 왜 식사하고 가는 손님에게 ‘수고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야 하지?

그녀는 내 표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식사를 하고 가는 손님들이 수고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식당에서는 손님들에게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해요. 그런데 제가 식사를 하면서 내내 지켜봤는데 식사하고 가는 손님들에게 수고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길래 알려주는 거에요.”

나는 점점 더 오리무중에 빠졌다. 이 분은 대체 뭐지? 왜 근거없이 이런 얘기를 하지? 단언컨대 여자가 식사를 하는 동안 홀에서 식사를 한 다른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그 동안 왔다간 사람들은 포장주문을 하거나 혹은 “배달의 민족”의 라이더들이었다. 아마도 일부 라이더들이 유니폼을 입지 않아서 그녀가 손님으로 착각했나 싶어서 나는 친절하게 알려드렸다.

“아, 식사하고 가시는 손님에겐 당연히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하죠. 조금 전에 오셨던 분들은 손님이 아니라 배달원이에요. 저희 음식을 안전하게 배달해달라고 부탁하는 의미에서 수고하세요, 라고 인사한 거고요. 배민1은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가 콜을 잡으면 오시는데 배달원들처럼 유니폼을 입지 않아서 아마 손님으로 착각하셨나봐요.”

주방에서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남편이 나와서 한 마디 거들었다.

“우리 집사람 작가에요. 한국에서 책도 냈어요.”

“당신도 참,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

나는 남편을 주방으로 떠밀었다. 여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눈길로 우리를 번갈아보더니 씽하고 나가버렸다.

“손님 민망하게 왜 그런 얘기를 해?”

“웃기잖아. 우리를 그 정도 인사도 할 줄 모르는 사람 취급하니까 그러지.”

“뭐, 나쁘게 생각할 일은 아니지. 호의로 말해준 거니까.”

“호의는 무슨 호의? 지가 뭔데 우릴 가르치려 들어? 우리에 대해서 알기나 해? 우리가 중국에서 온 거 알고 한국예의를 모른다 싶어서 가르치려고 하는 거잖아. 꼰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자를 그냥 오지랖이 조금 넓은 고객쯤으로 여겼다. 가게를 하다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될 거고 어쨌거나 여자는 호의에서 이런 얘기를 해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어보였다. 여자는 어쩌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사는 사람, 친구가 없는 외로운 사람, 어떤 편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그런 사람인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처럼 혼밥 먹으며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킬킬대지도 않았고 여자는 오직 식사를 위한 식사를 했다.

하지만 단무지사건이 있은 이후로 나는 여자의 행동이 결코 호의에서 비롯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정체성이 억수로 궁금해졌다. 그녀는 누구랑 살까? 왜 매번 혼자 와서 식사를 할까? 치매환잔가? 아니면 조현병인가? 그것도 아니면 싸이코패슨가? 어디에 살고 있으며 누구랑 살고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걸까? 외로운 걸까? 아니면 어디에서 마라탕가게를 운영하는 우리의 라이벌인가?

“혼자 사는 외로운 여자지,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어디에 가도 환영 못 받는 진상고객이야. 우리 가게에서나 받아주지 다른데 가면 상대도 안 해줄 걸?”

남편은 진상고객이라고 단정 지었다.

친한 언니가 우리 가게에 찾아왔을 때 나는 ‘수상한 고객’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았다.

“언니, 되게 수상해요, 그 고객. 대체 왜 그럴까요?”

“암튼 조심해야 돼. 스낵은 안 판다고 한 거 잘했어. 아무거나 팔면 걸릴 수 있거든.”

“담에 오면 cctv 확인 시켜줄까요?”

“지가 그래놓고 무슨 낯으로 또 올까? 혹시라도 와서 또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그땐 CCTV 있으니까 CCTV 확인해보자고 인지를 시켜줘.”

4

양력설날이다. 축복처럼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야채를 씻고 다듬고 물에 불궈둔 각종 면류와 냉동식품으로 쇼케이스를 채우는 동안 남편은 우리가게와 이웃한 가게들의 마당의 눈을 열심히 쓸고 큰 무쇠가마에 식용유를 부었다. 준비를 마치고 나니 10시 50분, 아직 영업개시까지는 10분의 여유가 있다. 이런 여유있는 날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적어서 나는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서 오랜만에 호사스런 모닝커피타임을 가졌다. 창밖에서는 떡가루같은 흰눈이 부실부실 내리고, 커피가 든 종이컵은 따듯했다. 소설 쓰는 선배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와 거의 같은 시기에 소설쓰기를 시작했지만 선배는 남편의 대폭적인 후원으로 전업작가 행세를 하다 보니 쏟아내는 창작물이 나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언니, 요즘 글 많이 썼어요?

-중편 하나 탈고하고 지금 두 번째 중편 쓰는 중이야. 가게는 잘 돼?

-그럭저럭요. 그나저나 글 쓸 시간이 없어서 큰일이에요.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더니 선배는 여기서도 원고청탁을 받았고 저기서도 원고청탁을 받아서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며 내 속을 박박 긁었다. 나도 청탁 받은 데가 몇곳 있었지만 자랑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자랑할 신세도 못되었다. 글을 쓸 시간이 있어야 쓰든가 말든가 하지. 내 기분은 물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 통에 넣어놓은 목이버섯처럼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참, 니가 전에 보여줬던 “발 없는 새”, 그거 내 소설에 써먹어도 될까?

-“발 없는 새”? 안돼요, 절대! 노노!

나는 격하게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배는 전에도 내가 쓰고 있는 글의 구절을 자기가 먼저 인용해서 발표를 한 적이 있는 전과자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이었다. 어느날 밤, 나는 소설을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고 선배는 청탁받은 수필을 쓰고 있었다. 소설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근사한 문장 하나 만들어놓고 혼자 감상하기엔 아까워서 나는 선배에게 위챗을 띄웠다.

-언니, 이 글귀 멋있죠?

글을 쓰는지 선배는 말이 없었고 나도 내 소설을 마무리하느라 머리를 쥐어짜다 새벽에야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선배한테서 문자가 왔다.

-어제 그 글귀 멋지더라

-그쵸, 그쵸, 내가 만든 문장이지만 볼수록 흐뭇하더란 말이에요.

하지만 위챗창에 잇따라 나타난 선배의 문자를 보는 순간 나는 잠이 확 깼다.

-그래서 이 문장 내가 수필에 써먹었다

-뭐라고요? 안돼요, 내 거에요, 치사하게 이럴 거에요?

나는 애원 반 원망 반으로 문자를 보냈다.

-ㅋㅋ 나 벌써 탈고했어

탈고?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그 뒤로 나와 선배는 한동안 사이가 벌어져 말도 안 했다. 설상가상으로 선배는 그 글로 무슨무슨 문학상까지 탔다. 그런 선배가 또 이렇게 한방을 먹일 생각을 하다니. 절대 안된다. 내가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랴!

-아, 그거 내 소설에 써먹으면 딱 좋은데

-안된다구요, 내가 쓸 거라구요

-내 이번 소설의 한 챕터에 들어가면 완벽하게 어울리는데

-안돼요, 언니 상상력 좋잖아요, 다른 거 만들어 넣어요.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언니가 쓴다면 내 소설 아이디어 도용했다고 내가 다음 작품에서 밝혀버릴 거야.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너 안 쓰기만 해봐라.

후, 거의 협박을 하다시피 반발을 하고나니 한숨이 나간다. 내 노트북에서 아직도 동면하고 있는 내 “새끼”들 잠을 언제 깨워줄까? 쓸 거야, 내가 쓸 거라고. 잠자는 시간을 줄이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줄이든 쓰고야 말테다. 더 안 쓰다가는 선배한테 내 “소스”를 언제 도둑맞을지 모른다. 소스가 얼마나 중요한데? 마라탕집이 서울에 수백개가 있어도 결국 맛의 차이는 육수와 소스의 차이다. 나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흰눈은 푹푹 내리고 커피는 향긋한데 마음은 착잡하다.

-쓸 거에요, 제목도 다 생각해놨어요.

-그래? 제목이 뭔데?

-단무지는 죄가 없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다. 문자를 입력하고 나서 나도 사실은 황당했다. 그냥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문장이다. 어쩌면 선배에게 더 이상 내 아이디어를 도적 맞히지 않기 위한 일시방편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 궁금해지는데?

독수리의 억센 발톱에서 가까스로 병아리를 구원해낸 암탉처럼 나는 한숨을 휴 내쉬었다. 창밖에는 눈발이 더 거세졌다. 남편이 눈 쓸기를 포기하고 들어와서 어깨의 눈을 털어냈다.

“뭔 한숨이야? 아침부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남편의 호령에 난 잘못을 하다가 들킨 어린 아이처럼 당황해서 커피를 한모금 홀짝였다.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틈만 나면 멍 때리고 있다니까.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에는 배달기사들이 배달을 안할라고 해서 내가 배달 나가야 되는데 정신 좀 바짝 차리고 영업 준비나 해.”

“아직 시간 남았잖아. 커피 한잔 마셔도 안돼? 새해 첫날부터 꼭 이러고 싶어?”

나도 역정을 냈다. 성질을 부리고 나니 괜히 흩날리는 눈꽃에게 미안했다. 고향생각이 났다. 고향의 겨울이 그립다. 고향집 마당에는 사과나무도 있고 살구나무도 있고 앵두나무도 있었다. 겨울에는 과일나무 열매는 없었지만 마당의 흙을 뚜지면 당근이 나왔고 움에는 김장김치며 무가 들어있었다. 여자들 팔뚝처럼 통통하고 새싹처럼 연푸른빛이 도는 무는 보기만 해도 싱그러웠다. 나의 작은 손으로는 하나를 받쳐 들기에도 버거웠다. 정전이 된 저녁에 촛불을 빌어 숙제를 하고 있노라면 시간은 잘도 흘러갔고 일찌감치 먹은 저녁식사는 어느새 소화가 되었는지 촐촐해난다. 그때면 할머니는 김치움에서 무를 한놈 집어와서 껍질을 슥슥 깎아서는 두툼하게 썰어서 접시에 내왔다. 아, 그 맛이란! 아삭아삭한 식감이며 한입 베어물면 물이 주르륵 흐르는 속살, 사과보다 더 달큰한 그 맛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무가 왜 설탕과 식초물에 푹 쩔어서 본연의 상큼한 맛을 잃고 단무지로 둔갑을 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게 고까옷을 입고도 메인 메뉴는 되지 못하고 사이드 메뉴다. 식탁에 올려도 대부분 젓가락의 터치도 한 번 못 받아본 채 그대로 음식물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단무지는 죄가 없다.”

나는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단무지가 뭐라고?”

“아니야,”

“아, 진짜 답답하네. 아침부터 비 맞은 중처럼 혼잣말 중얼거리고. 가게에 나왔으면 제발 장사에만 집중하자. 응? 성공하려면 올인을 해야 한다고, 올인! 더군다나 요즘이 어떤 상황인데? 문 연 집이 열 개면 여섯집은 문 닫는다잖아.”

5년만 고생하자, 남편이 말했다. 그래, 남편말이 맞았다. 아니, 맞다. 이 가게가 어떻게 차린 가게인가? 한국에 온지 6년 동안 내집 없이 내내 반전셋집으로 살다가 이번에 집주인이 전세금을 저그마치 2000만원이나 올리고 거기에다 월세까지 20만원을 올리겠다는 터무니없는 제안에 홧김에 반전세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고 비싼 월세집으로 이사를 해버렸다. 월세는 올랐지만 덕분에 6년 동안 보증금으로 걸어놓았던 돈을 한꺼번에 받게 되자 뭘 할까 하다가 마라탕가게를 차리게 된 것이다. 남편으로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전 재산을 걸고 배팅한 셈이다.

상해에서는 그래도 외자기업에 다니면서 영업을 하던 남편이지만 한국에 오니 회사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가구 만드는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말이 영업직이지 실은 노가다였다. 몸으로 떼우는 일은 자신이 없다며 반년을 못 넘기고 때려치웠다. 이번에는 가이드자격시험을 본다며 반년 동안 들어앉아서 선비처럼 공부만 했다. 드디어 그 어렵다는 필기시험과 면접을 무사히 마쳤다. 남편은 그길로 제주도로 날아갔다.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운 좋으면 하루에도 몇백만원 번대.”

이제 드디어 손에 쥐가 날 정도로 돈 셀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제주도로 간 지 3개월 만에 사드문제가 불거져 중국관광객들은 한국에 발길을 끊었다. 제주도를 거쳐서 가는 중국 크루즈 여행객 3천명은 제주도에 한 명도 내리지 않았다.

태국으로 가면 돈 벌수 있어, 중국관광객들이 다들 태국으로 몰려간대, 원래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였다. 남편은 먼저 가이드일을 시작한 친구의 말에 귀가 솔깃해서 태국행을 결심했다. 컵쿤크랍(감사합니다), 싸왓디크랍(안녕하세요), 커톳크랍(죄송합니다) 그 어려운 태국어도 열심히 배워 태국으로 간 남편이 나는 대견스러웠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중국에서 올 때 상하이 변두리에 있는 13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서 가져온 밑천도 이제 거덜이 날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웬 태국남자가 우리집 거실에 떡하니 앉아있었다. 남편이었다. 새카맣게 그을은 얼굴로 남편은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덜렁 집에 돌아왔다.

“아니, 말도 한마디 없이 이렇게 돌아오면 어떡해?”

반가움은 1도 없고 짜증이 치밀었다.

“내 집에 내가 돌아오는데 허가를 맡아야 돼?”

새카맣게 그을은 얼굴은 제법 태국인 다웠지만 음식도 안 맞고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고 했다. 내가 십년 넘게 같이 산 남자가 이렇게 대책 없는 남자였나 싶었다. 그렇게 가이드공부는 나무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 후에 가이드증으로 가끔 한국 면세점에 와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해주고 인센티브를 받는 일은 내 몫이 되어버렸다. 남편은 집을 떠나기 싫어했다. 기러기 가족이 흔해빠진 이 시대에도 남편은 그래도 가족은 함께 붙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훈으로 삼았다.

“왜 식구라고 했어?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라고 식구라고 하는 거지.”

새로 이사한 집은 원래 집보다 많이 작았다. 말이 좋아 방 두 개지 방 하나는 너무 작아서 드레스룸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큰 방은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고등학교 2학년생 딸애의 공부방 겸 침실로 만들었다. 내 서재는 고스란히 딸내미 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남편은 거실에서 잠을 잤다. 그러고 보니 부부생활을 못한 지도 꽤 되었다.

남편말처럼 그날은 정신없이 바빴다. 배달이 폭주했고 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주문전표에 적힌 고객들의 요청사항을 빠짐없이 읽어보고 일일이 재료를 담아야 했다. 9천원짜리 마라탕 한 그릇 먹는데도 참 요구사항들이 다양했다.

-연근, 다시마, 고구마떡 빼주세요.

-땅콩소스 빼고 매운소스랑 단무지 많이 챙겨주세요.

-버섯은 팽이버섯 외에 다 빼주세요.

-당면종류는 모두 따로 담아주세요.

-매운 맛은 진라면과 신라면 사이로 해주세요

이런 미치고 환장할, 젠장!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당신네들 요청사항 맞추느니 차라리 밖에 나가서 눈을 맞으며 하늘에서 내리는 눈꽃 개수를 세겠다.

“오늘은 우리가 중랑구 전체 주민의 점심 저녁을 책임지고 만든다.”

남편은 신이 나서 구호를 외치듯이 소리쳤다. 홀에는 손님이 빠지게 바쁘게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손님들이 테이블을 차지했고 배달주문과 포장손님이 끊이지 않아 내 혼을 쏙 빼놓았다. 시계를 쳐다볼 새도 없었다. 포장을 기다리는 손님 몇은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몇시쯤 되었을까, 식사를 마친 손님에게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하다가 창밖에서 가게안을 들여다보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홀에서 식사를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이내 눈길을 돌려 내 할 일을 했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는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다시 바삐 돌아쳤다. 저녁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 11시 마감인데 10시 59분까지 주문이 들어와서 주문받은 오더를 다 쳐내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집에 오니 자정이 넘었다. 그날은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5

여자는 이내 바쁜 내 일상에서 잊혀졌다. 불쾌한 일보다는 기쁜 일이 더 많았고 무엇보다도 여자가 ‘염탐꾼’이거나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남편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여자는 어쩌면 남자에게 버림받았거나 아니면 우울증에 걸렸거나 가족이 없거나 이 중 하나일 것이었다. 이런 여자 한 명 없다고 우리 가게의 매출에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여자는 단골이라는 말에 어울리지도 못할 존재였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어서 다들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울상을 하는 판에도 우리 가게는 배달과 포장 주문량이 눈에 띄게 늘었고 단골과 새로운 고객이 꾸준히 늘었다. 단골들과는 제법 친해져서 이제는 한국에 오게 된 계기며 나와 남편, 딸애가 마라탕을 하도 좋아해서 마라탕가게를 차렸다는 이야기도 주고받게 되었고 가끔은 마라탕을 포장하러 와서 색다른 커피며 과일이며 스낵을 건네주는 단골들 덕분에 사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그믐과 음력설에는 배달이 폭주해서 배달앱을 한시간씩 닫아야 할 지경이었다. 나와 남편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가게는 서서히 안정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가게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은 남편의 의지대로 명실상부한 인테리어의 한 부분이 되었다.

-선생님, 마라탕 가게도 하시면서 소설도 쓰셔야죠. 글감이 많을 텐데요.

-선생님, 12월말에 주신다고 약속하셨던 소설 완성하셨나요?

“장백산”의 홍편집과 리편집은 번갈아 독촉문자를 보내왔다. 이런 문자를 받은 날 밤에는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면 글을 써야지, 하루에 단 천자라도 써볼까, 했지만 이튿날 눈을 뜨면 나는 대충 찍어바르고 가게에 나가서 청경채를 다듬고 배추를 다듬고 각종 면류에 물을 새로 받아 쇼케이스를 채우느라 분주히 보내고 있었다. 다람쥐 채바퀴 돌리는 일상이었다.

내 예상대로 여자는 다시 우리 가게를 찾았다. 여자의 네 번째 방문, 나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올려다봤다. 저녁 7시 30분. 그녀가 가게를 찾는 시간은 늘 이렇게 대중없었다. 여전히 거무튀튀한 진회색의 패딩에 파마머리를 뒤로 대충 묶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패딩과 같은 계열의 머플러를 쓴 그녀의 눈이 안경 뒤에서 불안하게 떨고 있었다. 양력설에 못본척 해서 화가 나진 않았을까 싶어 여자의 표정을 살폈으나 별다른 티가 나지 않았다. 이번엔 또 어떤 일로 내게 트집을 잡을까? 나는 신경을 바싹 곤두세웠다.

여자가 마라탕 재료를 다 담아서 내게 내밀었을 때 나는 저울에 나타난 6987원이라는 숫자를 그녀에게 두 번이나 확인시키고 영수증도 드렸다. 그리고 여자의 앞에 단무지박스를 통째로 내와서 접시에 단무지를 퍼 담았다. 이제 그녀에게 예의 같은 거 지키고 싶지 않았다. 무언의 반항이자 위협이기도 했다.

겉과 속이 전부 샛노란 단무지처럼 그녀가 제발 위선적이지 않고 솔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편으로는 그녀의 등장에 사뭇 기대감이 솟구치기도 했다. 그녀는 오늘은 또 어떤 황당한 질문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까? 단무지에 대한 질문이라면 얼마든지 대답해줄 수 있다. 그동안 나는 단무지에 대해 속속들이 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단무지얘기를 꺼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줄 참이었다.

“단무지는요, 원래는 일본에서 발명한 건데 타쿠앙즈케라고 불렀어요.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부터 처음 대중화되었는데 한국명인 단무지의 뜻은 뭔지 아세요?”

나는 그녀가 입을 하 벌리고 초점 잃은 뿌연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는 단무지사건의 서사를 신나게 써내려갔다. 나는 결코 그녀에게 입을 열 기회도 주지 않고 재빨리 말을 이을 것이다.

“한국명인 단무지의 뜻은 ‘단맛이 나는 무짠지’의 줄임말이에요. 현지화 된 단무지는 사실상 한국화 된 일식이지만 특이하게도 한국화 된 중국음식인 중국집 요리와 궁합이 좋아서 자장면이나 마라탕에 곁들여서 나오죠. 마라탕의 매운맛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했다. 하지만 그녀가 갑자기 “무로 왜 단무지를 만들었까요? 무는 그 자체로도 맛있잖아요.”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하지? 단무지의 본질은 무다, 하지만 무가 단무지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이렇게 따진다면 지금은 미국국민양념으로 둔갑한 케첩도 원래는 중국의 복건성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썩 더 흥미롭지 않은가? 그래, 나도 지금 한국의 서울에서 마라탕가게를 하고 있지 않은가? 가끔 손님들에게 사장님으로 불리면서.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나는 내가 팔자에도 없는 마라탕가게 사장노릇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서울에 온 건 순전히 대학원을 다니면서 문학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더 나은 작품을 써내겠다는 일념이었다. 하지만 대학원은 고사하고 여태 맞벌이부부로 일만 해왔다. 그래도 그 동안 문학에 대한 꿈은 저버리지 않아 에세이집도 한 권 내고 소설도 꾸준히 발표를 해오던 참이었다. 허나 마라탕가게를 운영하고부터는 노트북을 펼칠 시간이 없었다. 내 모든 시간은 가게의 주방에서 속절없이 흘렀다. 단무지 빠진 김밥이요, 앙금 없는 단팥빵 혹은 거품 빠진 맥주 같은 시들한 시간들이었다.

여자는 오랫동안 식사를 했다. 그녀가 식사를 마쳤을 때는 8시 45분이었다. 홀에는 그녀 외에 단골 모녀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월요일이었다. 저기요, 예상대로 그녀는 또 무슨 용건이 있는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의 앞에 마주앉았다. 그녀가 어떤 얘기를 해도 다 받아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계산서를 꺼냈다.

“그런데 계산서가 6900원으로 나와서, 6800원 아니었던가요?”

하, 나는 뒷골이 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이럴 걸 대비해서 내가 아까 확인까지 시켜주지 않았던가?

“6800원이 아니고요, 정확하게는 6987원이었는데 그냥 6900원만 계산했어요. 고객님들한테 적게 받으면 받았지 많이 받진 않아요.”

얼굴엔 웃음을 발랐지만 내 목소리엔 조금 날이 섰다. 그녀는 아무래도 6987원을 6800 얼마로 본 것이 분명했다.

“아, 그래요?”

생각 같아선 그녀 앞에서 다시 무게를 달아 확인시켜 주고 싶지만 이미 그녀의 뱃속에 다 들어간 마라탕 재료를 무슨 수로 소환해서 중량을 다시 체크한단 말인가? 나는 정말이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요, 마라탕에 이상한 털이 하나 있어서......”

털? 이상한 털? 머리카락도 아니고 이상한 털이라니? 온몸의 솜털이 빳빳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머리카락은 아닌 같고, 꼬불꼬불한 털이던데......”

여자는 내겐 청천벽력같은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하게 내뱉으며 국물이 두 숟가락 정도 남아있는 마라탕 그릇에서 젓가락으로 뭔가를 찾았다. 그녀가 집어올린 건 과연 털이었다. 머리카락이라고 하기엔 많이 짧고 가짜속눈썹보다는 훨씬 긴, 마라탕국물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3센티 정도 길이의 털이었다. 불규칙적으로 꼬불랑한 이상한 털. 저건 누가 봐도, 성인이면 다 알만한 그 곳의 털로 여길법한 그런 털이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또 한 번 여자에게 허망 당했다는 생각에 나는 분노로 휩싸였다. 여자의 공격은 매번 이렇게 방어불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죄송하단 말이 나가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여자에게 속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여자의 꼼수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심한 모멸감으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쇼케이스를 올려다봤다.

‘예쁜 언니들, 머리카락 안 들어가게 꼭꼭 묶어주세요.’

쇼케이스의 제일 위에 내가 붙여놓은 문구다. 나는 이 시각, 이 털이 머리카락이라고 우기고 싶었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그러고 싶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여자를 마주했다. 여자는 젓가락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옆 좌석의 모녀가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게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요?”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나도 몰라요, 다 먹고 보니까 있더라고요. 근데 대체 무슨 털일까요?”

여자는 집요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저희 실수에요. 너무 죄송합니다. 오늘 식사하신 건 전액 환불해드리죠. 다음부턴 꼭 조심하겠습니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몇 번이고 여자에게 허리를 굽혔다. 남편은 여자에게 7천원을 환불해드리고 음료수까지 한 병 들려보냈다.

“일부러 트집 잡는 거잖아.”

“어쩔 수 없어, 저런 건 CCTV 로 확인을 해도 안 나올거야.”

여자와 모녀고객이 떠나간 후 나는 주방에서 남편에게 화풀이를 했다.

“언제는 이상한 여자라며? 왜 고객편을 들어줘?”

“하, 당신도 참 답답하다. 왜 그렇게 꼬장꼬장하냐고. 이 상황은 우리한테 불리했어. 다른 고객도 계시고, 이럴 땐 무조건 그냥 싹싹 비는 거야. 글고 항상 조심해. 음식물에 불순물 안 들어가게......”

“됐어. 그만해.”

“내가 말했잖아, 장사하려면 간과 쓸개는......”

“듣기 싫어. 그 말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게 자존심 문제야?”

눈물이 나왔다. 음식물에 속눈썹 한 올이라도 들어갈까봐 노심초사하며 내가 얼마나 살피는데, 저게 어떻게 가능해? 혹시라도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올 걸 대비해서 남편은 긴 내 생머리를 싹뚝 잘라 양털처럼 뽀글뽀글하게 파마까지 시켰다. 생머리가 파마머리보다 잘 빠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서럽고 분하고 원통했다. 모든 것이 다 억울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고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내 신세가 단무지가 된 것 같았다. 간과 쓸개는 고사하고 영혼도 없는 이 짓거리를 내가 언제까지 해야만 하는지 생각하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졌고 숨이 턱턱 막혔다.

 

6

리뷰와 좋아요 1000개는 확보해야 맛집 랭킹 순위에 오를 수 있고 그래야 우리 가게 노출도가 높아서 배달주문이 많아진다며 남편은 전단지도 돌려보고 버스에 광고도 넣고 매일 궁리를 했다. 남편은 리뷰에 목을 맸다.

-재주문의사 100%, 마라탕 생각나면 시켜먹을 수 있는 곳 생겨서 너무 기쁨. 앞으로 인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집.

-기타사항 너무잘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또 단무지 많이달라했는데 인심이 후하시네요

-느슨해진 마라계에 긴장감을 주는 신흥강자 두두등장

-아 진짜 너무 맛있어요 두 번째 먹는건데 감동해서 눈물 한바가지 흘리고 먹었어요 가족들이 아직 영롱한 마라탕을 맛보지 못한게 한이에요 반드시 영입해서 524번 더 시켜먹을게요 사장님 왕 많이 대박 번창하세염

-핵존맛탱구리. 정신없이 먹었음. 고기 엄청 주시고 재료 골고루 다 들어가있어서 대만족

남편은 하루에 적어서 네댓개 많으면 열댓개씩 달리는 리뷰에 일희일비했다. 틈만 나면 책을 보려는 내게 남편은 그 시간이면 댓글이나 달아야지, 하고 바가지를 긁었고 리뷰에 댓글 다 달고 나면 남편은 다른 가게에 들어가서 다른 가게 사장들이 어떻게 댓글을 달았는지 살펴보면서 배우라고 했다.

“작가가 댓글도 멋있게 못 달아? 그렇게 성의 없이 간단하게 달지 말고 좀 길게 써.”

“장편소설도 아니고 뭘 길게 써? 남들이 보면 우리가 장사가 없어서 댓글만 달고 있는 줄 알겠다.”

“중요해, 내 말 들으라니까. 고객들은 다 리뷰와 댓글보고 시킨다고.”

어느날, 단무지를 안 줬다는 이유로 한 고객이 별점 5개에서 1점만 준 것이다. 4점도 아니고 1점을, 그 바람에 항상 5점을 유지하던 우리가게 별점은 평점 4.9로 하락이 되었다. 남편은 대노했다. 단무지는 원래 달라고 요청하는 고객들에게만 나간다로부터 시작하여, 주문한 마라탕과 꿔보러우는 맛있다고 하지 않았냐, 여태 우리 가게에 올라온 리뷰만 봐도 다들 단무지를 듬뿍 줘서 인심이 좋다고 하지 않았냐는 식의 장문의 댓글을 당장에서 달고도 성이 차지 않는지 씩씩거리더니 냉장고문을 활 열었다.

“이놈 단무지가 화근이네.”

남편은 냉장고에서 개봉한 단무지통을 꺼내더니 통째로 싱크대에 활 쏟아 부었다.

“단무지가 무슨 잘못이라고”

“에이, 재수 없어, 앞으로 단무지 주지 마. 우리 가게는 단무지 없다고 해. 지난번에 그 이상한 여자도 단무지를 탈 잡더니, 하여튼 간 단무지가 말썽이 많아.”

잠깐 여자를 떠올렸다. 단무지와 털 사건으로 여자에게 학을 뗐지만 나는 무슨 근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가 꼭 우리 가게를 다시 찾아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7

하지만 여자가 정작 우리 가게를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정말이지 더 이상 응대하고 싶지 않았다. 다섯 번째 방문이었다. 여자는 이번에도 6천원을 조금 넘나도는 분량의 마라탕을 시키고는 벽쪽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한 옷차림에 퀭한 두눈, 축 처진 턱. 마침 손님이 적어서 나는 주방의 의자에 앉아서 cctv로 손님들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아니, 나는 무엇보다도 여자에게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살펴보고 싶었다.

여자는 습관처럼 닭이 볏짚낫가리를 헤집듯 이리저리 휘저으며 먹었다. 하나하나의 재료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는 듯 오래오래 먹었다. 나는 온통 그녀가 한번씩 집어올리는 건더기와 단무지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배달의 민족, 주문!”하는 소리에 일어나서 주문전표를 뽑고 바구니와 집게를 집고 홀로 나갔다. 그때였다.

“이 개새끼, 너 오늘 죽었어!”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홱 몸을 돌렸다. 여자가 젓가락을 비수처럼 꼭 잡은 채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는 남자에게 겨누고 있었다. 흐릿한 눈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광기가 돌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나와 남자고객의 애인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개새끼, 여기는 사람이 들어오는 곳이지 너같은 짐승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야.”

여자가 젓가락을 남자에게 뿌렸고 남자고객의 애인이 비명을 질렀다. 다행이도 젓가락은 남자를 비껴가 창문유리에 맞은 후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니까.”

남자는 화가 났다기보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러놓고 여자는 정작 아무 일도 없는 듯 태연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여자는 어떤 결과도 바라지 않고 가게문을 나서려 했다.

“이봐요, 사과하셔야죠.”

나는 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의 애인은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아마 잘 못 알고 그랬을 거에요.”

나는 한편으로는 젊은 연인에게 사과하며 한 편으로는 여자의 팔을 잡았다. 여자가 뭐라고 한 마디라도 했으면 하는 간절한 애원의 눈길로 나는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나를 잠깐 일별하더니 그대로 휭하니 가버렸다.

“경찰에 신고는 말아주세요,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 같아요. 전에도......”

한바탕 소동이 가라앉고 남편이 배달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결국은 입을 다물었다. 남편의 꼭지가 도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8

코로나 확진자수가 음력설을 넘은 후에는 연일 3만명을 기록하고 있었다. 홀에서 식사하는 손님이 현저히 줄었다. 여자는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 고객 오랫동안 안 왔네.”

“어느 고객?”

“그 여자 있잖아. 늘 와서 혼밥하는 여자”

“아, 그 정신 좀 이상한 여자? 안 오면 좋지.”

“혹시 오미크론에 걸린 걸까?”

“무슨 오지랖이야? 별 쓸데없는 걱정 다 한다. 그럴 시간에 무슨 재료 빠졌나 체크하고 얼른 재료주문이나 하지 그래?”

하긴 단골들도 이제는 포장을 해가거나 배달주문을 하는데 그 여자가 와서 식사를 할 리가 있을까 싶었다.

코로나의 장기화, 일일 확진자가 4만9천명을 넘던 날 나도 드디어 양성판정을 남았다. 주방에서 불 앞에 서 있어도 자꾸 뒷목이 시리고 재채기가 났다. 혹시나 하는 우려에 이튿날 아침 자가진단키트를 사서 검사를 해봤더니 양성이었다. 선명하게 두 줄의 보라색이 나타났다. 그길로 보건소로 향했다. 다음날 나온 PCR 검사에서 나는 양성 판정을 받았고 남편과 딸아이는 음성이었지만 수동감시자로 격리를 해야만 했다.

“조심하라고 했잖아, 내가. 리뷰 500개 겨우 만들어놓고 이제 좀 자리를 잡을라하니 개판 됐네.”

“여보, 이참에 우리도 좀 쉬자. 가게 오픈하고 여태 쉬는 날도 없이 달려왔잖아.”

“한주일, 열흘씩 가게문 닫으면 야채는 어쩌냐고? 식품들은 다 어쩌냐고?”

남편은 화가 나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부산하게 떠들었다.

“방에서 좀 나가줄래? 격리 몰라?”

목안은 타는 듯했고 줄기침이 터져나왔다. 잠깐 누웠다가 기침이 나면 몸을 일으켜야 했다. 잠을 자다가도 기침이 터지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품 완성되셨나요?

리편집이었다. 그랬지, 이번달까지는 꼭 써서 보내기로 약속을 했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주일만 더 기다려주시면 꼭 원고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한글창을 띄웠다. 그리고 ‘단무지는 죄가 없다’, 라고 제목을 입력했다. 불안하게 움직이던 그 여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늘 문제거리를 던져주고는 답을 바라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지던 여자. 그녀는 왜 그랬을까? 그녀는 무엇을 바랐던 걸까? 나는 골똘히 사색에 잠겼다. 어쩌면 그녀도 나처럼 단무지가 되고 싶지 않은 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무지면 또 어떠랴. 어디에 있든 어떤 형태로 있든 내 본질이 무면 되는 거지. 내 자신이 그걸 잊지 않으면 되는 거지.

“배달의 민족 주문!”, 하는 주문소리도 없었고 시도 때도 없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도 없다. 모든 방해꾼이 사라졌다. 방에서 천장까지 옷으로 꽉 둘러싸인 자그마한 드레스룸은 창문까지 다 막아버려서 낮에도 전등을 켜야 했지만 나는 통유리창이 있는 가게에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로웠다. 열이 나서 다행이었다. 목안은 타들어가는 듯 아팠고 기침이 터져 나올 때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가슴은 오랜만에 희열로 벅찼다. 내 열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듯 현란하게 움직였다.

 

9

거짓말처럼 오랫동안 여자는 우리 가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지만 여자는 여전히 우리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다. 봄아지랑이처럼 증발해버린 걸까? 혹시 코로나에 걸렸을까? 아니야,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매정하게 대했나? 아무리 그래도 그쪽은 고객인데. 두 번 다시 오지 말았으면 하던 고객인데 여자가 정작 모습을 감추자 갑자기 소식을 끊은 애인처럼 기다려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요상하다.

내가 여자를 다시 본 것은 춘분날이었다. 나무들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치우는 소리가 요란한 날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꽃샘추위에 볼이 알싸했다. 그날 이른 저녁에 여자는 연두색의 봄쟈켓을 입고 나타났다. 분명 그 여자였다. 묶지 않고 풀어놓은 파마머리는 어깨를 살짝 덮었고 옷차림이 바뀌었지만 나는 여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자는 자기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의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여자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파마머리가 리듬감 있게 출렁거렸다.

-여보, 빨리 와봐.

-뭔 일인데 호들갑이야.

-그 여자가 지나가고 있어. 어떤 남자랑 같이.

남편이 주방에서 늘쩡거리며 나왔을 때 여자는 이미 코너를 돌아서 사라지고 없었다.

-잘못 봤겠지. 그 여자에게 무슨 남자가 있겠어. 남자 있는 여자가 명절에 맨날 혼밥 하냐?

-그래도 사람일이란 모르지, 그렇게 단정 짓지 마.

여자가 이젠 어쩌면 두 번 다시 우리 가게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단순히 슬프다거나 기쁘다로 정의할 수 없이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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