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숙 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천숙 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지난해 나는 근 5개월 동안 중국도자기경매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 1만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중국도자기는 고대과학과 예술이 절정에 이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요즘은 99%이상의 기물들이 방품(倣品)이긴 하지만 그 예술성은 역시 뛰어 난다. 그리고 도자기마다에는 모두 뜻깊은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경매를 진행할 때마다 도자기의 특징과 도자기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간단히 설명하군 하는데 특별한 기물에 한해서는 사전을 찾아서라도 꼭 자세히 설명하군 하였다. 설명이라 하기보다는 나도 함께 공부하는 셈이였다. 

좀 특별한 기물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예술적 가치도 가치지만 도자기에 담긴 그림과 글들은 그렇게 긴 역사가 지난 오늘 날에도 인생의 교훈이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주 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기도 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도자기그림 "伯牙絶絃"에 대한 이야기이다.

옛날 호파(瓠巴)가 비파를 타자 물속에 있던 물고기가 나와 들었고,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자 수레 끄는 여섯 필의 말들이 먹이를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고 하듯이 백아의 연주 실력은 당시(중국춘추시대 후기) 어느 누구도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종자기(鍾子期)라는 벗이 있었는데 백아의 연주를 그 누구보다도 제대로 감상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지음"(知音)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었다.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연주하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종자기는 " 아, 멋지다. 하늘 높이 솟은 느낌은 마치 태산같구나!" 라고 감탄했고, 큰 강을 생각하며 연주를 하면 역시 종자기는 "음, 훌륭해, 넘치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황하(黃河)같구나!" 라고 했다고 한다.

또 두 사람이 놀러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이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 가서 빗소리에 맞추어 거문고를 당겼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곡조인 "霖雨之曲"을, 그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곡조인 "崩山之曲"을 연주했다. 종자기는 그 때마다 그 곡이 의미하는 비가 무엇인지를 조금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알아 맞췄다. 

이처럼 마음이 서로 통하는 연주자와 청취자였던 두 사람의 우정은 그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이 깊었다. 백아에게는 그의 연주를 누구보다도 이해해주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어 행복했고, 종자기에겐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 주는 백아라는 친구가 있어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종자기는 병에 걸려 앓아눕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소중했던 벗 종자기의 죽음을 보고 절망한 나머지, 종자기의 묘앞에서 자신의 거문고 줄을 끊으며 "이젠 나의 연주를 들어 주고 이해해줄 진정한 사람이 세상에 없으니 더 이상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며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친구를 사귀거나 친구를 배신하는 현대사회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도자기 그림에 깃든 고사성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정한 친구는 좋을 때보다 어쩌면 어려울 때 생각나는 존재이며, 어려울 때 짐을 져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든 시기가 진정한 친구를 데려온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하루에 세 가지를 반성했는데 그 중 한가지가 "벗을 사귀면서 신의를 저버린 적은 없는지?" 이다.

좋은 벗은 그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호상간의 믿음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슬픔까지도 등에 지고 갈 수 있어야 진정한 벗이다. 친구를 사귈 때도 내가 누군가의 친구가 될 때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나의 "음"(音), 즉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깊은 속마음까지 알아주고 위하는 그런 우정이 현실에서 얼마나 존재할까?
지인은 많아도 지음(知音)은 만나기 어렵다.

지음난멱(知音難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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