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백한

50대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가게에 들어오더니 마라탕은 처음이라며 기본구성으로 1인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때 마라탕을 먹던 서연이가 삐친다.

-본인 취향에 따라서 셀프로 고르셔도 돼요.

-그래?

-셀프로 하면 맛있어요, 소고기 추가하면 더 맛있고요.

-꼬맹이가 제법인데, 너 몇살이니?

-여덟살이요.

-따님이 여간내기가 아니네요.

-호호, 제 딸애 아니에요.

-네?

-우리 가게 최연소 고객이에요.

-난 또 꼬마주인인줄요.

이렇게 야물딱지고 어물쩍한 서연이는 말 그대로 우리 가게 최연소 마라탕 마니아다. 처음엔 엄마랑 함께 와서 마라탕을 먹던 서연이는 요즘은 혼자 와서 마라탕을 먹고 서너시간씩 놀다가 간다. 서연이에게 우리 가게는 놀이터자 힐링 공간이다. 마라탕을 먹으면서 양쪽 볼에 번갈아 바람을 넣기도 하고 각설이 타령도 부르고 그것도 성차지 않으면 태권도 동작을 한참 자랑하고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마라탕을 먹고, 자기가 아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쌍둥이 오빠의 흉도 맘껏 볼 수 있다.

-이모 이 노래 알아요?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아주 오래 전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내가 이 노래 부르면 우리 할머니는 비가 오는데 왜 눈물이 나냐고 팩트를 날리는 거 있죠? 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음)

-이런 노래도 부를 줄 아는구나.

-이모, 그럼 이 노래는요? “돼지토끼요”

넌 돼끼돼끼해 또 말랑말랑해

니 냄새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이 안보이게 웃으면 심장이 아프잖아

넌 토끼토끼해 또 뽀실뽀실해

니 뱃살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워

……

-이 노래가요, 우리 엄마 핸드폰 컬러링인데 전화를 하면 엄마가 하도 안 받아서 내가 가사를 다 외워버렸잖아요. 우리 오빠는요, 집에서 맨날 나한테 혼나요. 누가 날 건드리라고 해? 내가 이렇게 목을 확 조여버리면 삘 울면서 엄마 찾아요.

서연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로 목을 조르는 흉내를 낸다.

서연이네는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외할머니네도 강아지를 키운다고 한다. 서연이와 쌍둥이인 오빠는 같이 태권도를 배우러 다니는데 동작이 어설퍼서 늘 선생님께 꾸지람 듣는다고. 외할아버지가 많이 아팠고 엄마가 간병을 하느라고 고생을 했다고. 아빠는 엄마 말을 잘 듣고, 오빠는 자기 말을 잘 듣는다며 묻지 않아도 술술 다 이야기한다. 몇 번만 더 오면 서연이네 집 숟가락이 몇 개고 젓가락이 몇 개인 줄도 속속들이 알게 될 판이다.

이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다짜고짜 할인이 안되냐고 물으신다.

“우리 손자들이 매일 마라탕 시켜먹는데 한번 시키면 몇 만원 어치 시키더라고, 할인 안돼요? 할인 되면 내가 와서 포장해갈라고.”

방문포장은 2000원 할인해드린다고 알려드렸더니 알았다며 기뻐하신다. 할머니가 가시자 서연이가 대뜸 한마디 한다.

“나도 여기 지날 때마다 마라탕 먹겠다고 엄마한테 징징대는데.”

뭐든 여사로 지나치는 법이 없다.

나와 동생이 "오늘은 왜 배달이 안들어올까?" 하면 서연이는 "배달의 민족 주문! 이때쯤이면 주문이 들어올 시간인데"하면서 우리 가게의 장사까지 걱정한다.

서연이를 처음 본 건 작년 겨울이었다. 롱패딩을 입은 남자아이 둘이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통유리창으로 된 우리 가게 안을 들여다본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면서 90도로 고개를 숙여 경례를 한다.

-어머, 너무 귀여워.

동생이 얼른 출입문을 열고 애들의 손에 사탕을 쥐어준다. 두 아이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한 애는 곱슬곱슬한 파마머리고 다른 한 애는 짧게 깎은 머리 모양이었다. 패딩이 하도 길어서 땅에 닿을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오후 세시경이면 두 아이는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갔고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늘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곱슬머리 아이가 가게 안으로 훌쩍 들어왔다.

-마라탕 먹으려고요.

-홀에서요?

-네.

창밖을 보니 아이의 엄마인듯한 여자가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다. 바로 며칠 전에 와서 초등학교 1학년생이 먹을 거라며 마라탕과 꿔보로우를 주문해갔던 손님이다. 음식이 조리되는 동안 홀에서 기다려도 괜찮다고 했지만 여자는 기어이 밖에서 기다렸고 나는 포장할 때 음료수 외에 사탕도 몇 알 넣어드렸다. 말수가 적은 손님이었다. 그 손님이 이 아이의 엄마였단 말인가?

마라탕 소짜 기본구성에 들어가는 채소들을 집으며 아이한테 뭘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청경채랑 알배기는 별로고 고구마떡이랑 비엔나소시지, 햄과 팽이버섯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걸 듬뿍 넣어주었다. 자기 주장이 뚜렷한 아이였다. 마라탕을 끓이는 동안에 홀로 테이블 앞에 앉아 기다리는 애에게 사탕을 몇 개 줬더니 사탕포장지에 인쇄된 글을 보면서 묻는다.

-이거 일본사탕이에요?

-아니요, 중국사탕이에요.

-중국말 할 줄 알아요?

-그럼요. 你叫什么名字?你今年几岁?

-와, 중국말 진짜 잘하신다.

아이가 과장되게 입을 벌린다. 턱이 천정을 향한다.

한참 후에 아이의 어머니가 오시더니 볶음밥과 꿔보로우를 추가 주문했다. 나는 빙홍차를 서비스로 드렸고 마라탕을 먹으면서 아이는 맛있다는 말을 연신 했다. 그러더니 의자에서 내려와 내게 온다.

-몇살이에요?

-나?

-네

-맞춰봐요.

-스무살

-와, 스무살? 이거 어쩌지? 오늘 전부 공짜로 드려야 할 거 같은데.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내가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딸이 고등학교 3학년인데, 스무살이라니?

아이는 믿기지가 않는지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따님이 초등학교 1학년 맞죠? 지난번에 포장주문 해가셨던……

내가 아이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네, 쌍둥이에요.

-저랑 오빠가 쌍둥이에요.

쌍둥이였구나. 남자아이로만 알았던 이 아이의 이름은 서연이고 오빠의 이름은 승우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딸애가 여덟살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땐 참 귀여웠는데, 이젠 훌쩍 자라서 키가 나보다 더 크다.

-한창 이쁠 나이에요.

-말 안 듣는 나이죠.

아이의 어머니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라탕집 가운데서 여기가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제가요, 매운 걸 좀 먹는데 오늘은 그냥 맵찔이맛으로 할게요. 엄마, 우리 담에는 1.5단계? 2단계 엎자. 신라면 맛 정도라면 흐르는 물처럼 마실 수 있잖아.

재잘재잘, 서연이는 수다쟁이다. 까르르 수시로 웃음이 터진다.

-이 마라탕가게는 백점 만점에 만점, 십점 만점에 만점.

서연이의 평가가 귀엽고 감격적이다.

서연이 어머니가 콜라 두 개와 팽이버섯을 추가했다. 팽이버섯은 따로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끓여서 드렸다.

마라탕을 다 먹은 서연이는 쇼케이스 앞에서 서성거리더니 다음에 오면 비엔나소시지와 햄, 메추리알 한 알 그리고 팽이버섯을 먹겠다고 했다. 다음엔 셀프마라탕으로 추천해야지.

그 다음날 오후, 배달된 중국식품을 정리하고 박스 버리러 나갔다 오는데 쌍둥이가 킥보드를 타고 지나갔다. 먼저 오빠가 날 보더니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고 뒤이어 서연이가 어제 마라탕 진짜 맛있었어요, 하고 마라탕 이야기를 꺼낸다.

-나중에 또 먹으러 와.

참으로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아이였다.

한동안 서연이는 우리 가게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서연이의 모습을 가끔 볼 수는 있었다. 서연이 어머니가 승우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서연이는 자전거 뒤에 서서 어머니의 목을 안고 선 상태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분주히 달렸다. 서연이 어머니도 쌍둥이도 씩씩한 모습이어서 안심이 되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에 십만 명을 훌쩍 넘겨서 홀에서 식사를 원하는 손님은 당분간 안 받기로 했던 때였다. 서연이가 돈 만원을 들고 들어왔다.

-마라탕 먹으러 왔어요.

-그래?

차마 서연이를 내쫓을 수 없었다. 서연이 어머니는 벌써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요즘은 홀 손님은 안 받기로 했지만 서연이한텐 특별대우 해줘야지.

-전 고객이 아니잖아요, 이모

하, 요 귀요미를 어떡하면 좋아?

마라탕이 나오자 서연이는 행복한 웃음을 활짝 짓는다.

-여기는 나의 맛집!

-소고기 추가하니까 완전 맛있는데요.

처음에는 1단계도 좀 매운지 건더기만 골라먹던 서연이가 이제는 국물도 제법 잘 마신다. 오라지 않아 1.5단계, 2단계도 접수할 기세다. 마라탕도 먹어야지 수다도 떨어야지, 입은 쉴 새가 없다.

-딱 보면 여긴 중국집인지 알 수가 있어요.

-뭘 보고 알 수 있는 거니?

-조기 고양이 (창턱에 세워놓은 招财猫를 가리킨다) 보면 알죠.

-이젠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분간할 수 있니?

-네. 언니가 키가 좀 더 크고 동생은 코에 반점이 있어요.

그 말에 나와 동생은 박장대소를 했다. 동생은 얼마 전에 꿔보로우를 튀기다가 기름이 튀어 콧등에 콩알만한 붉은 점이 생겼던 것이다.

-우리가 몇살로 보여?

-스무살.

나와 동생은 다시 웃는다. 서연이 눈에는 아직도 우리가 이십대로 보인다. 서연이와 함께 수다를 떨다 보면 피곤도 잠시 잊는다.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된다. 그날 서연이는 우리 가게에서 네댓시간을 놀았다. 어머니가 데리러 왔지만 더 놀겠다고 해서 결국은 저녁 아홉시가 넘어 아버지가 데리러 와서야 집에 갔다.

대선이 끝난 이튿날, 서연이는 또 우리 가게에 나타났다. 어머니한테서 돈 만원을 받은 서연이는 배시시 웃으며 곧장 카운터에 있는 나에게로 와서 돈을 내밀었다.

-알죠?

-알쥐. 콜라 하나, 소고기 100그램, 그리고 나머지는 서연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주면 되지?

-네

일회용 앞치마를 입혀주고 뒷목부분에서 3센티정도 졸라서 맨다. 서연이는 이번에는 창문가 테이블에 앉았다.

마라탕을 먹으며 내게 묻는다.

-이모는 투표했어요?

-아니, 이모는 선거권이 없어.

-왜요? 중국에서 와서요?

-응

-그런데 누가 투표 못하게 해요?

-그게 아니라 이모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재외동포거든.

서연이는 아직 모를 것이다. 재외동포가 무엇인지, 조선족으로 불리는 내가 자기랑 동족이며 뿌리가 같다는 걸, 우리의 선조들이 왜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에 갔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왜 한국에 있는지. 요즘 한국사람들의 반중정서가 얼마나 심한지.

서연이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한다. 나는 얼른 화장실 키와 휴지를 챙겼다. 서연이처럼 어린 고객한테는 두 가지 서비스가 추가된다. 화장실 갈 때 에스코트 하는 것과 말상대가 되어주는 것.

화장실에 다녀온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또 화장실에 가겠단다. 서연이 손을 꼭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달칵 채우더니 한참 있다가 서연이가 말한다.

-이모, 휴지 좀 더 갖다 주실래요?

보아하니 큰 걸 보는 모양이었다. 옆집 오빠가 화장실에 왔다가 내가 문 앞에 서있자 묻는다.

-안에 누가 있어?

-네, 어린아이가 있어요.

볼일을 마친 서연이의 손을 잡고 나오다가 다시 옆집 오빠와 마주쳤다.

-누구네 집 애기야?

-우리 고객네……

-우리 엄마 아기에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연이가 대답한다. 나와 옆집 오빠는 동시에 웃는다.

단골고객 한 분이 들어오셨다.

-여덟살짜리 아이도 꿔보로우 먹을 수 있나요?

-그럼요, 잘라서 드시면 돼요.

서연이가 또 나선다.

-먹을 수 있어요, 저도 먹는데요.

-너 몇살이니?

-여덟살요. 꿔보로우 완전 맛있어요. 겉바속촉

-너 어느 학교 다녀?

-요기 OO 초등학교요.

단골고객은 꿔보로우를 포장해서 가시면서 서연이에게 농담을 던진다.

-꿔보로우 맛 없으면 너 찾는다. OO초등학교 1학년!

서연이는 그 말에 조금도 꿀리지 않고 응수한다.

-취향, 취향이라고 했잖아요.

요즘 서연이는 더 빈번하게 우리 가게에 온다. 서연이가 먼저 와서 마라탕을 시키고 우리랑 놀며 마라탕을 먹고 있으면 서연이 어머니가 승우를 데리고 오신다. 서연이 어머니는 승우에게는 콜라를, 자신은 꿔보로우와 차파이 음료수를 주문하신다.

서연이는 오빠 승우한테 이것저것 가르쳐준다. 이건 무슨 용도로 쓰는 거고 저건 무슨 용도로 쓰는 거고, 이건 맘대로 다치면 안되고 하는 식이다. 그럴 때 보면 서연이는 엄연히 주인이고 승우는 손님이다. 쌍둥이에게 우리 가게는 놀이터고 신기한 것 투성이다. 서연이 어머니가 열심히 꿔보로우를 드시는 동안 서연이는 가게 밖 유리창 앞에서 볕쪼임을 하며 우리랑 셀카타임을 갖는다.

-승우도 이리 와.

우리가 부르자 승우가 수줍게 머리를 들이민다.

-잠시만요

서연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창문턱에 놓여있는 석고상 고양이를 밖으로 향하게 돌려놓는다. 찰칵, 다시 셀카를 찍는다. 유리창 안으로 서연이 어머니의 모습도 사진에 담긴다.

서연이 어머니는 식사를 마치고 낡은 자전거 앞뒤에 쌍둥이를 태운다. 승우가 앞에 걸터앉고 서연이는 자전거 뒷좌석에 선다. 서연이 어머니는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태권도 학원 아니면 미술학원에 가는 것이리라. 그들의 모습은 이내 골목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해맑은 아이들인가! 순수하고 밝고 편견을 모르는 아이들. 우리는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드라마를 논한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너무나 닮았다. 아니, 애초에 우리는 한민족이고 같은 정서의 소유자였다.

나는 희망한다, 서연이가 어느 날엔가는 마라탕 3단계를 먹기를.

나는 희망한다, 성인이 된 서연이가 친구들이 중국동포를 욕할 때 아니라고,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내가 아는 중국동포는 우리와 똑 같은 말을 구사하고, 너무도 친절했다고 말해주기를, 삶의 환경이 달랐을 뿐 우리는 동족이었다고.

나는 희망한다, 서연이의 추억 속에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던 마라탕가게가 있길, 친절했던 중국 조선족이모도 흐릿하게나마 기억하길.

그래, 희망이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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