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한(곽미란) 소설가

일요일이다. 하은이네 모녀 셋은 봄나들이를 가고, 감자탕집 사장은 캠핑준비로 바쁘다. 가게를 내놓은 옆집 오빠(치킨가게 사장)는 인수할 사람이 나지지 않자 가게를 리모델링 할 생각으로 우리 가게 인테리어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묻더니 오늘은 또 월세로 내놓은 집이 나가서 월세 받아먹고 살 수 있다며 기뻐한다. 서연이 어머니는 서연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활기차게 페달을 밟으며 지나간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서연이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인사하고 서연이는 손을 흔든다. 가게 통유리창을 통한 바깥세상 풍경이다.

매일 아침 영업준비를 마치고 나면 나는 네이버에서 한국의 코로나 신규확진자를 확인한다. 60만명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40만명, 30만명에서 이제는 20만명대를 웃돌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다. 모멘트에 보면 중국식방역이 더 근심스럽다. 땅에 떨어진 청경채 하나를 두고 사치를 논하고 포동에서 포서를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광주에 갔다가 광주에서 다시 홍교 공항에 도착하면 된다는 우스개도 나돌고 있다. 이런 시국에 장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실은 매일이 고비다. 코로나 확진자가 6만명을 넘었을 때부터 우리 가게의 매상도 반 토막이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많으면 다들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배달이 왜 더 줄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불안한 거지,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쉽게 주머니 안 털려고 해.

옆집 오빠가 경험담을 말해주었다.

2월은 음력설 연휴 뒤라서 장사가 안 된다고, 3월은 개학이라 돈을 많이 써서 부모들 주머니가 가벼워졌다고, 오랜 장사경험이 있는 이웃들이 한 두 마디씩 했지만 긴가민가 싶었고 위로가 되지 않았다. 5년째 된다는 맞은편 편의도시락집도 퇴근시간이 들쑥날쑥인 걸 보니 곧 문을 닫을 것 같고 치킨가게는 이미 가게를 내놓은 상태다. 우리 가게 맞은편의 두 형제가 운영하는 핸드드립 커피숍도 장사가 안 된다며 내가 커피를 사러 갈 때마다 걱정을 했고 저녁이면 내가 가끔 에너지음료를 사러 가는 마트의 여자사장은 늘 졸고 있다가 결제를 하고 나면 꼭 묻는다.

-그 집은 코로나지원금 받았어요? 우리는 못 받는대. 카드결제가 너무 많아서 안된다네.

-우리도 지원금 못 받아요, 해당이 안된다네요.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걱정해주었다.

매번 두 캔을 사다가 하루는 세 캔을 샀더니,

-오늘은 열 받아서 세 캔 마시는 겨?

했다.

옆집 순댓국밥집도 아홉시가 마감인데 늘 일찍 문을 닫는 걸 보아 오늘 내일 하는 것 같다. 어느집이 장사가 잘 되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느 집이 더 오래 버티냐가 관건이었다.

가장 미스터리한 가게는 앞집 감자탕집 사장이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감자탕집 사장은 여자친구와 한창 열애중이다. 매일 저녁 여자친구가 올 시간이면 가게 밖에 마중을 나와있다가 여자친구가 오면 허리를 감싸 안거나 손을 잡고 2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간다.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여자친구는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동생은 아마도 둘의 결혼날짜가 가까워진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과연 여자친구의 어머니 즉 감자탕 사장의 예비장모 되는 사람도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감자탕 사장은 시도 때도 없이 밖에 나와서 차에 앉아 (그 집은 가게의 절반을 차고로 쓰고 있다) 담배를 피고 믹스커피를 마셨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형제 커피숍이나 우리와는 달리 여유가 몸에 배어있었다.

-아마도 감자탕집 사장은 지금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위기라고는 전혀 못 느끼는 사람 같았다.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는 일말의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태평스러울 수가 있지? 건물준가?

그는 나와 동생과 제부에겐 미스터리한 대상이다. (감자탕집 사장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편폭을 들여 다룰 생각이다.)

우리 가게의 첫 위기는 작년 겨울 첫눈과 함께 찾아왔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오후에 내리기 시작한 첫눈은 눈송이가 커서 제법 첫눈다웠다. 손을 내밀어 받아보니 큼직한 6각형모양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듯, 첫눈이 오면 늘 설렌다. 상서로운 눈은 풍년의 징조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풍성한 첫눈은 복을 가져다 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첫눈이 내린 이튿날, 거리는 은빛으로 반짝이고 공기는 한결 청신했다. 출근 가는 발걸음이 즐거웠다. 일요일은 보통 주문이 늦게 시작되는 편인데, 이날은 하루가 일찍 시작되었다. 11시, 영업을 개시하자마자 "배달의 민족" 주문이 연속 들어왔다.

와우! 나와 동생의 입에선 저도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바랐던 일인가! 가게를 오픈하고부터 홀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줘서 흥성거리기는 했으나 배달주문량이 따라가지 않아 매출은 한계가 있었다. 잘 되는 가게들에 늘 울려 퍼지는 '배달의 민족 주문!"소리가 그토록 귀 맛 좋을 수 없었는데 드디어 오늘 우리 가게도 맛집으로 알려진 건가?

바구니를 잡고 채소를 집어서 담는데 신이 났다. 조리를 하는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세개를 후딱 만들어내고 배달업체에 배차(派车)를 신청했는데 컴퓨터 화면에 '영업중지'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오늘 배달이 엄청 많을 텐데.

급히 배달업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눈이 많이 내려서 길이 매끄러워 오늘은 배달원들이 휴식하기로 했단다.

-작년에도 눈이 많이 내린 날에 배달하다가 라이더 세 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위험해서 배달 못합니다.

나와 동생은 꿈속에서 금방 깨어난 듯 아직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 헤맨다. 배달이 안되면 우리는 주문을 어떻게 받지?

-괜찮아, 내가 차로 배달가면 되지.

제부가 나섰다. 핸드폰에 배송지를 입력하고 포장되어있는 음식을 들고 나갔다.

-그래, 괜찮아, 우리는 자체로 배달하면 되지.

주문은 여전히 폭주했고 나와 동생은 빠른 속도로 음식을 만들어서 포장을 했다. 조리된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흐뭇했다.

그런데, 그런데, 금방 돌아올 것 같던 제부가 오지를 않는다.

-5분 거린데, 왜 아직도 안 오지?

미리 조리해놓은 음식이 식지는 않을까, 퍼지지는 않을까, 우리는 주문전표에 붙은 주소를 확인하며 걱정을 했다.

드디어 제부가 들어왔다. 차가 너무 밀리고, 처음 배달을 하다 보니 아파트단지에 들어가서 집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고 한다. 자가용으로 배달을 하니 신호등 걸리면 꼼짝 못하고 세워야 하고, 주차도 어렵고, 왜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주소지가 비슷한 곳의 음식은 같이 배달할 수 있기에 서너 개를 같이 들려서 보냈지만 배달은 생각보다 훨씬 늦었다.

조리가 완료되어 포장이 된 음식은 테이블에 차곡차곡 쌓이고 배달 나간 제부는 돌아올 줄 모르고……

어느 순간, 가게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고객들이었다.

-50분이 지났는데 음식이 왜 아직도 안 오죠?

-다 식어서 먹을 수나 있겠어요? 면은 다 불어터졌을 테고.

나와 동생은 조리를 멈추고 전화만 받아야 했다. 고객들의 불만과 짜증은 강도가 점점 더 심해서 웬만한 멘탈로는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일요일날 첫끼니인데 아직도 도착 안 하면 어쩌라고요? 배고파 죽어도 상관 없나요?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요? 이씨!

탁 하고 전화 끊는 소리.

-한시간도 넘었는데 아직도 배달 안되면 어떻게 해요? 도착하면 음식 확인하고 먹을 수 없을 정도면 환불요청 할 테니 그리 아세요.

-정신 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배달을 안 하고, 제시간에 배달 못하면 못한다고 미리 전화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가게 안 망하고 싶으면 장사 제대로 해!

-죄송합니다, 눈이 와서 자체배달을 하다 보니 많이 늦어졌네요. 기다릴 수 없다면 주문 취소 해드릴까요?

나와 동생은 전화기를 붙들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눈이 내렸고 길이 매끄럽고 자가용으로 배달하다 보니 신호마다 걸린다는 이유를 고객에게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해봤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것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들이 주문한 음식만 제 시간에 배달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고객이었다. 고객에겐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다.

가게 유리창에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려고 온 딸애와 조카애한테도 음식을 들려서 택시를 태워 배달을 시켰다.

-너무 늦게 배달되었다고 취소하겠대.

이 말을 하는 제부의 얼굴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처져있다. 그의 손에는 고객이 주문한 3만원이 넘는 음식이 들려 있었다. 마라탕과 계란볶음밥.

배달앱을 열기가 두려웠다. 열어만 놓으면 주문이 쇄도했다. 만들어내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배달은 도저히 맞춰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배달주문 3개만 들어오면 배달앱을 껐다. 3개를 만들어서 제부가 배달을 나갔다가 돌아올 시간이 됐다 싶으면 그때 다시 배달앱을 켜고 주문을 받았다.

오후 세시가 넘은 시간, 우리는 배달앱을 30분 정지시켜놓고 브런치를 먹었다. 고객이 취소해서 제부가 배달 갔다가 도로 들고 온 마라탕과 계란볶음밥을 나눠먹었다. 실수 끝에 찾아온 평화의 시간.

저녁에는 점심의 실수를 경험으로 삼아 배달 주문앱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요령 있게 주문을 받았다. 앱만 열어놓으면 주문이 대여섯 개씩 연달아 들어왔다. 하지만 배달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그 많은 물량을 다 쳐낼 수가 없었다.

그날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야 퇴근을 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 되었지만 나와 동생은 다시 한번 야호! 를 부를 수가 있었다. 가게 오픈 후 최고의 매출을 찍었던 것이다.

가게 유리창엔 딸애와 조카가 한 시간 반 동안 공을 들여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힘들지만 벅찬 하루였다.

이튿날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날 대부분의 배달 대행사가 휴업을 선포하는 바람에 배달만 위주로 하는 치킨가게들은 거의 영업을 중지했고, 어떤 고객은 네 시간 만에 받은 떡볶이라며 항의를 표시했다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음력설을 쇠고 3만명을 찍던 코로나가 60만명을 찍고 다시 30만명을 찍는다. 그 동안 코로나 방역은 풀렸다가 강화되었다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가게의 매출은 심하게 널뛰기를 하지만 이젠 하루의 매출에 연연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 장사를 할 것도 아닌데, 몇 번의 위기를 겪고 나서 나와 동생은 오히려 멘탈이 강해졌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앞으로 겪어야 할 위기가 더 많을 거야, 라고. 이러는 걸 보면 우린 이제 서서히 장사에 입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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