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호 시인이 제 24회 문학의강 시부문 신인상을 받았을 때의 기념 사진.
권명호 시인 :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등 수상.
위는, 권명호 시인이 제 24회 문학의강 시부문 신인상을 받았을 때의 사진이다. 

황혼의 노을이 바야흐로 붉게 탄다. 타향 만리 동서남북에 흩어져 노년의 황금 시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꿉친구 동창생 그룹이 생겨서 정말 감개무량하다.  또 다시 그 옛날 철 없던 동년시절로 돌아가 잊어진 그 이름, 그리운 그 얼굴, 정다운 그 목소리들을 찾아 살아온 발자취를 뒤돌아 보며 잊지 못 할 추억의 환상 속에 즐거운 만남과 기쁨의 여유를 즐감하며 회포를 풀수 있어 너무나 좋다. 

동년의 어린시절 우리는 은혜로운 선생님과 부모님의 사랑 속에 배움의 희망을 꽃 피웠고,  마음껏 뛰놀며 잊지 못 할 재미있는 소꼽놀이 추억으로 가득 채워왔다. 

화창한 그 어느날, 쌍태 머리 처녀가 사쁜이 교실로 들어와서 칠판에 큰 글자 “김복순”라 쓰고 사범학교를 갓 나온 단임선생님이라고 하셨다.

항상  웃음 어린 부드러운 얼굴로 시간마다 한 글자 또 한 글자, 구구단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오늘도 사랑으로 은사의 미덕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우리반은 리금란 중대였다. 리금란은 물에 빠진 할머니를 구하고 희생된 영웅소녀다. 오후 공부가 끝나면 교실 청소하고 앞산 언덕에 가서 토끼풀을 뜯어서 학교 운동장 동쪽 리금란 비석 옆에 토끼우리에 먹이를 주고 청소도 하였다, 

시끓벅적하던 학교 일과가 끝나 책가방 메러 교실로 오갈 때 쥐 죽은 듯 조용한 복도를 걸으면  옛날 나무 널판으로 만든 복도는 삐그덕 찌그덕하던 그 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어린시절 고무신 신고 몽당치마에 무릅과 엉덩이를 색 다른 천으로 어설푸게 기운 검정바지를 입었지만 항상 기쁜 마음으로 공부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땅치 치고 기시 뛰며 딸로,다마치기로 화기애애하게 동년을 보냈다,

추운 겨울날 교문 앞에서 언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시고 교내 스케이트 경색때 명원이 스케이트 끈를 꽁꽁 매주었으며 여름날 비 맞은 얼굴을 닦아주시던 우리 선생님 참말로 고마웠다. 

가끔 점심밥을 못 챙겨온 애들에게 벤또밥(도시락)을 나누어 주고 교실을 나가시던 쌍태머리 선생님의 그 사랑은 나의 어린 가슴에 새겨진 은사였다. 

돌고 도는 세상 20년 류통사업 끝에 전문학교 교사로 21년을 근무하면서 선생님의 뜻을 본 받아 교직에 충성하고 생활이 어려운 제자들에게 학비,식비,차비를 주었고 졸업후 일자리도 찾아주며 교사의 책임을 다하였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던  여름날  나는 바지 가랭이를 걷어 올리고 고무신을 벗어 들고 집으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이늠아 비오는 날 신은 왜 안 신고 맨발로 쏘다니나?"고 꾸중하자 나는 "고무신이 물총이 돼 못 신어요"라고 변명했다. 기실은 밑창이 구멍난 고무신이 물을 만나면 물총이 되어 훍물을 바지가랭이로 쏴 올려 사타구니가 엉망진창이 돼 버리면 아마 까마귀가 만나도 '아저씨 고생이 막심함니더" 할 거다.

가을이면 겨울 나무하러 병풍산에 갔다. 
새끼오리로 허리를 찔끈 매고 뒷 허리에 낫을 꼽고 벤또밥을 턱 들고 나서니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당당하게 신이났다.

가야하 외나무다리 건너 가파른 병풍산 꼭대기로 올라가면 숨이 차고 힘이 빠져 배가 허전하니 나무는 뒷전이고 밥부터 먹는다.

묵은 싸리나무를 휘여잡고 낫으로 당기니 끄떡도 안 한다, 어쩌면 "꼬마야 너 이놈 어린놈이 어디라고 덤벼?저기 햇싸리를 베어라."하는 것 같다.

고생끝에 싸리나무를   베여 단을 묶어 등에 지고 시내물에 큰 돌로 이어진 돌다리를 퐁퐁 뛰어 건너서 콩당콩당 뛰는가슴을 겨우 다잡고 겁나게 노여진 가야하 외나무다리를 간신히 건넜는데 갑자기 "와 "하고 울음소리에 돌아 보니 키 작은 꼬맹이 영길이가 나무단을 메고 물에 빠져 허우적 거렸다. 다행히 물이 얕아서 셋이 안간힘을 다해 구해서 돌아와 학교마당 한켠에 나무를 쌓아 놓고 나니 목이 타고 온몸이 나룬하여 쓰러질 것만 같았다, 

추운 겨울날 빨갛게 달아오른 난로위에다 벤또밥을 뜨끈뜨끈하게 덥혀서 맛있게 먹었는데 난로 가까이 앉는 친구들은 더워죽을 맛이고 난로 멀리 앉는 애들은 추울때도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문화혁명이 터져 우리는 홍위병이 되어 혁명을 했고 쏘련 큰 형님의 위협에 앞산에 반공굴을 팠다,

금정골에서 큰 나무를 찍어서 끈으로 묶어 어깨에 메고 끌고 왔는데, 반공굴 받침대로 사용했다,

졸업하여 공장으르 농촌으로 부대로 학교로 갔는데 수많은 청춘들은 농촌에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며 대학교 문앞에도 가보지 못 하고 인생의 황금시절과 청춘을 광활한 대지에 바쳤다,

80년대 개혁 개방의 큰흐름 속에서 한창 사업에서 중임을 떠메고 잘나갈 때 구조조정과 회사부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백수가 되었다,

지난 세웥 50년대 초반에 태여난 우리 세대는 60년대초 3년재해, 흉년, 10년 문화 혁명이란 그 거칠은 인생길 구비구비마다  불쌍하고 가여운 인간의 눈물과 피땀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우리 동창들중에 성,주급공무원, 교수, 회계사, 공정사 등등 많은 인재들이 맡은바 사업에서 좋은 업적을 이루어 참말로 감동이다.

이제 정년퇴직하여 즐거운 노년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잘 살 일만 남았으니 나의 바램은 모든 일은 순리에 따라 마음껏 사랑하고 성의껏 베풀며 있을 때 잘하고 오늘의 향수는 꼭 오늘 누렸으면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동년의 순수한 마음 건강한 몸으로 서로 손 잡고 하늘 끝까지 동창생 그룹을 끈끈한 우정과 따뜻한 마음의 쉼터로 만들면서 동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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