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김정권 시인의 장편서사시 '랑랑 영탄곡'을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극, 소설, 시, 가사 등 여러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김정권 시인은 이번에 장편서사시를 내놓아 작가의 문학역량을 남김없이 과시했다. 많은 애독 바란다. (편집자 주)

중국 연변 왕청현 출생, 연길시문예창작실 주임 2007년 연길시문화관 창작원, 현재 국가1급 극작가.
주요작품 중단편소설 <괴로운 선택>등 20여 편장막극 <사랑과 야망> 3부소품 <첫날이불> 등 100여 편소품 <첫날이불> '조선족고급중학교과서'에 실림김정권소품집 <첫날이불> 출판장편동화 <다 함께 차차차> 소년아동 연재(2012), 출판,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연속방송극으로 각색국가급 4차 성급 20여차 주급 30여차길림성장백산문예상 1차진달래문예상 3차2014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수필상)2015년 연변문학 문학상(시 부문)

서시

 

아쟁이 운다 온 몸으로 운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속살 투명한 수의마저 벗어버리고
아예 생활을 베고 누운 녀인이 운다

그토록 낮아진 가슴에 
얼마나 많은 한이 담겼기에 
그렇게 뽑아내고 긁어내도
좀처럼 비워지지 않는 곡고(哭库)에선
설음과 슬픔이 타래쳐 나오는가

세속의 활채여, 
녀인의 가슴을 허비지 마라!
장난의 손끝이여, 
녀인의 옆구리를 집어뜯지 마라!
아직 죽은 몸뚱이 아닌 가냘픈 생명이 
하얗게 꽃단장한 상여속에 누워서 
저 하늘의 흰구름 타고서
꾸역구역 천당으로 밀려간다

아, 말해 다오 눈물 젖은 강이여!
아, 말해 다오 丧이 많은 땅이여!

두만강은 말한다

 

제 1 악장

월강곡

               1
나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지 마오 
노래보다는 
가난한 아버지의 한숨이 더 많아 
바람에 떨어지는 버들잎에도 
수심이 잔뜩 무거운데 
그 무거운 수심보다
가벼운 노래를 만들지 마오 


               2
당신들 할아버지의 아버지들 쪽지게는 
배고픈 허기와 무거운 수심을 잔뜩 담아 
허이 허이 내 등뼈를 딛고 건너갔소


               3
쪽지게다리 아래로 가벼운 쪽박이 마치
올가미에 매여죽은 시체같이 
데룽데룽 걸려있었소 
그 아래로 발목이 허옇게 드러난 발밑에는
오소리가죽같은 미투리가 
저주로운 땅을 자박자박 밟았소
그 뒤로는 때국물이 흐르는 치마자락이
피끼없는 종아리를 허름이 깜싸안았소
등허리에는 돌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애가
미이라처럼 납짝 붙어있었소
다른 한손에는 무릎팍이 환히 들어난
아이의 손목이 마른 겨릅대처럼 잡혀있었소


               4
아쟁은 운다 아프게 운다
우뢰가 터진다
광음에 강기슭의 말다리같은 
솔가지가 짝- 하고 부러진다
폭풍우가 거세진다
두만강 푸른물이 사품친다
번개가 서리찬 하늘을 쥐여찢는다


              5
자지러진 총성이 두만강상공에 울린다
팍! – 팍! -
월강하는 사람들 하나 둘 쓰러진다
부녀자와 아이들 울음소리 
하늘 땅을 진감한다
총에 맞아 쓰러진 아이머리가 
강물에 떠내려간다
엄마는 떠내려가는 그 아이를 붙잡겠다고 
악마의 목구멍같은 소용돌이에 
서슴없이 팔을 뻗쳐 몸을 던진다
그러는 아낙을 향해 피 터지는 목소리 
“여보, 안돼!” 


                6
또 다른 총알이 임산부의 부풀은 배에 박힌다
삽시간에 시체들은 보이지 않고 
무정한 괴나리 봇짐들만 둥둥 떠내려간다


                7
그때, 
흘러가는 구름도 울었소
달님도 울었소 
북두칠성도 울었소
부엉이도 울었소 
나도 울었소


                8
그래도 기어히 노래를 만들겠다면 
차라리 슬프게 만들어주오

나를 두고 노래를 부르지 마오
노래 보다는 
헐벗은 어머니의 눈물이 더 많아 
바람에 스치우는 언 달빛에도 
은비녀 가득 차가운데
그 시린 차가움보다 
흥겨운 노래를 부르지 마오


                 9
어머니의 저고리고름은 항시 젖었소
어머니의 눈시울은 마냥 붉었소
어머니 목소리는 노상 쉬였소
어머니 가슴은 거멓게 썩었소


                10
물레도 울었소 
호롱불도 울었소
반디불도 울었소
귀뚜라미도 울었소
               
차마 내새끼 배 곯는 꼴 
보지 못해 울었소
설음에 젖어 울었소
배고픔에 지쳐 울었소 


               12
어디 고개 들어 저 앞산을 좀 보오 
피마른 어린 발목들이 
누더기이불 한채를 덮고 
차가운 팔을 벤채 
죽은 듯히 잠을 자오
                
돛이 떨어진 달이 
두만강에 풍덩 빠져 
파랗게 부서진 쪼각배의 
야윈 노를 잡고 허우적거리오
               
겨울이 언달빛을 불러와 
배고픈 한숨이 허리를 조일 때 
별같이 서러운 눈망울들이 
엄마의 피속 깊히 얼어붙었소
… …


              13
할아버지가 벗어놓은 쪽지게
그 옆에 우물이 있었소
한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었소

그 나무에 걸어놓은 할머니의 흰수건
그 가지끝에 
아픈 력사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소
하얗게 기발이 휘날리였소


                14
그래도 기어히 노래를 부르겠다면 
차라리 목메게 불러주오
저 쑥국새처럼 말이오


                15

새야, 울어다오
이슬 젖은 미투리가 쑥밭을 밟을 때
너의 울음은 하늘에 
사무치는 고달픔이였다
한숨 실은 숟가락이 쑥국에 젖어들 때
너의 울음은 창천에 
호소하는 배고픔이였다
              
그렇게 한백년을 울어 울어쌓은 
눈물탑꼭대기에
넋이 배인 하얀 숨결이 기발처럼 걸려있다
얼이 서린 혼불이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다

새야, 목이 아프더라도 그냥 울어다오
네가 울음을 그치면 
말라가는 저 탑이 허물어져 
높은산 꼭대기에 걸려있는
혼백마저 사라질가 두렵다
새야, 쑥국새야…


                  16
보라! 
저 하얀 나비를,
나비는 이렇게 말하오

어머니의 초경을 실어
동해로 갔다
어머니의 달거리를 뿌려
동녘에 갔다

초경은 굽이쳐 서사를 펼치고 
달거리는 사품쳐 력사를 만들었다
마침내는 하얗게 태줄을 늘이였다

진붉은 아침노을은 
어머니의 초경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떠오르는 태양은 
어머니의 달거리로 수식을 했다

오늘도 엄마의 분신이 길게 누워
저 하늘아래에 진달래 불을 지핀다


                17
아직 두만강에 젖어있는 허연 두루마기
해빛에 눈이 시인 날이면
젖은 령혼은 하얀 보자기로
누나의 파란 울음 감싸안는다

아직 두만강에 비껴있는 하얀 저고리
달빛에 가슴 시린 날이면
차가운 혼백은 하얀 배래기로
진달래의 빨간 울음 보듬어안는다

아직 남아있는 숨결은
두만강 하늘가에 떠있는 구름꽃 상여,
그리고 망자의 마지막 유물인 것을,
그 유물을 차마 보내지 못하는 까닭은 
아직도 눈물 젖은 두만강이기에…


                 18
날으면 상투머리에 질끈 동여진 두건
앉으면 가리마우에 정히 얹혀진 수건
나비야 하얀 나비야,
너 닮은 구름 보면
하늘 가신 아버지가 보이고
너 닮은 꽃을 보면
천국 가신 어머니가 보인다
나비야 날아라 하얀 두건처럼
나비야 앉아라 하얀 수건처럼


                19
집이다 
할아버지 때 집이다
저 집엔 누가 들어 있는가?
식은 질화로에 장죽 털면 
닭이 홰 치고
려명이 빗장 열어 
아침해가 문안 오면 
장백으로부터 달려온 
두만강 물안개가 
퇴마루에 걸터앉아 
다리쉼을 하고 간다


            20
저녁 달이 문풍지에 
귀를 가듬을 때쯤
물레 잣는 소리 빙빙 
별빛을 감아오면
농익은 곰 옛말이 
처마밑에 주렁지고
오래된 기와장 룡마루에는 
하얀 옷깃이
신단수에 걸려있는 
젖은 달빛에 스치운다


               21
넙덕 고무신이 곰삭은 
력사를 집요히 떠안고 
배래기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듬은채
魂手는 배달민족의 
등잔불심지를 잇는다


               22
저 새는 무슨 새인가?
밤이면 밤마다 노래를 부르는 새,

두만강 물새야, 
나에게 노래를 불러다오
슬픈노래를 불러다오
네가 노래를 부르면 슬프게 
그리워지는 우리 누나가 보이기에,

노래 한곡조는 
두만강물 빨래터에 동그랗게 앉아 
물에 비낀 제모습에 빨갛게 볼우물을 파던 
우리 누나의 얼굴이 보이기에,

노래 두곡조는 
짤록한 허리 뒷태에서 춤을 추듯 
갑사댕기 살랑이며 벼짚가마니 짜던 
우리 누나의 뒷모습이 보이기에,

노래 세곡조는 
족도리 무거운 시집 길을 떠나며 
가마속 버선발에 툭툭 떨어지는 
우리 누나의 눈물방울이 보이기에,


제 2 악장

개간곡

                 1


저 대금은 누구를 위해 우는가?

대금은 대( 竹 )와 대를 이어 붙인 것
길게 뻗은것은 어머니의 곧은 가리마
울퉁불퉁 돋은것은 아버지의 굵은 손마디
길게 빼는 소리는 어머니의 한숨이요
짧게 빼는 소리는 아버지의 들숨이라
대금은 곧고 소리는 은은해도
아버지 어머니 인생은 퍽도 굽었다오


                 2
땅은 이야기 한다
당신들 아버지의 두 팔은 팔이 아니였소
괭이였소
당신들 아버지의 두손은 손이 아니였소
갈구리였소
당신들 아버지의 두발은 발이 아니였소
뿌리였소
아버지의 괭이는 처음으로 
이땅에 날을 박았소
아버지의 두손은 처음으로 
이땅의 흙을 움켜쥐였소
아버지의 두발은 처음으로 
이땅에 뿌리를 박았소


                   3
아버지의 적삼은 누렇게 삭았소
아버지의 잠방이는 너덜너덜거렸소 
아버지의 허리는 점점 약해졌소
아버지의 허리끈은 점점 줄어들었소
그래도 차마 괭이는 놓을 수 없었소
풀뿌리는 아버지의 식량이였소
개울물은 아버지의 생명수였소


                 4
하얀 고무신은 아버지가 아끼는 신이였소
고무신은 언제나 비탈진 밭머리에서 
아버지의 발자국을 베고
하늘을 담아 아버지의 발냄새를 섞었소

아침해가 들어와 젖은 이슬에 목욕하는
흑발린 黄豆의 꼭 감은 눈도 틔였소

바람이 불어와 흙이 된 발을 어루만지면
땀 배인 발가락사이로 콩꽃이 피여났소

세월에 바래진 아버지의 멍든 주름을
얼기설기 실어 두만강쪽배로 떠나보냈소


                  5
드디여
이땅에 씨앗을 박았소
씨앗은 생명이였소
그 가혹한 배고픔으로 
초근목피로 주린 창자를 
연명하면서도 씨앗은 머리맡에
소중히 간직되였소
농사군의 소망은 씨앗에 있었소
씨앗은 땀의 대가를 알아주었소


                6
아버지는 웃었소
하늘도 웃었소. 
해님도 웃었소
바람도 웃었소
꽃들도 웃었소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였소
아버지에게는 노래가 없었소


                7
아버지는 집을 떠나야만 했소
독립군으로 떠나야 했소
안해와 가족을 떠나야 했소
… …


               8
아버지가 떠난지도 일년이 되여오오
우물옆 버드나무에 까치가 울었소
어머니는 까치를 보며 엉절거리였소

“너희들은 참 좋겠다! 
한집에서 오손도손 사는 너희들이 
참으로 부럽구나. 
나도 너희들처럼 날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날개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하늘을 
훨훨 날아 서방님 곁으로 가련만은…”


                 9
까치야! 
너는 알겠지? 
오늘일까 래일일까 
이제나 저제나 서방님 기다리는 
안타까운 이 내 마음을
너는 모르진 않겠지? 
안다면 나대신 훨훨 날아가서 
우리 서방님께 내마음 전해주렴
그러면은 우리 서방님이 
한걸음에 달려 올텐데…  


                   10
땅!
총소리다
“전투가 벌어지는 모양이구나! 
우리 남편 제발 무사해야겠는데…”


                   11
이튼날 아침이였소  
전장에서 소식이 왔다는 소리에
어머니는 맨발바람으로 문을 나섰소
“백서방댁이겠구만?”
“네. 그렇습니다만…”
“참 이걸 어떻게 말한다?”
“무슨 일이신지?”
“마음을 크게 먹구 내 말을 좀 듣소”
“대체 무슨일이 생겼어요?”
“백서방이 사망됐소”  
그 자리에 망부석으로 굳어지는 녀인,
그래도 용케 참아내며 다시 묻는다
“엉? 지금 뭐라고 하세요?” 
“청산리전투에서 싸우다가 
왜놈들의 총에 맞아 그만 사망했구만,”
                  
아!... ...
하늘이 내려앉았소
땅이 꺼져내리였소


                 12
“이건 백서방이 운명하면서 
집으로 가면 댁에게 꼭 전해주고 
이 고무신이라도 두만강에 띄워 
고향에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길래…”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고무신을 받아안았소


                13 
아,  흑흑흑…   서방님, 
이게 무슨 청천병력이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오? 
아이고!… 서방님, 
너무 하오 너무 하오
이렇게 급히 떠날 거면 
차라리 정일랑 주지나 말거지
서방님 없이 이제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오? 
아니오! 나도 살고 싶지 않소. 
죽고 싶소 서방님 따라 죽고 싶소


                 14 
죽고 싶은데 이 배속의 
아이는 어떻게 하란 말이오?
야속하오! 야속하오! 
나를 두고 먼저 떠난 서방님 정말 야속하오!
하늘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왜? 
무엇때문에 
이처럼 끔직한 화를 나에게 퍼붓는거냐?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어디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거라! 
하늘이 말을 못하면 
두만강아, 
너나 좀 말해 보거라! 
아니다! 아니지 
네가 무슨 죄가 있겠소만, 
내나라, 내서방 뺏아간 건 
네가 이니라 왜놈들이지
이 몹쓸 놈들아! 
내나라를 돌려달라! 
내서방을 돌려달라! …
… …


                15                
아버지의 신을 담은 함을 들고 
두만강가에 나오는 어머니,
이봅소, 
당신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고향, 
원산 앞바다로 이 신을 띄워 보내꾸마.
독립이 되면 고향 가서 살겠다던 
당신이였었는데… 
여보, 저의 비내도 함께 보내꾸마.  
아버지의 고무신과 
어머니의 은비녀,
해빛 한점, 
둥둥 떠가는 은비녀에 떨어져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고한다
어머니 입에서 “혼보내기 아리랑”이
푸념처럼 흘러나온다


               16
“간도벌 묵밭에 무얼 보러 와서
동토에 얼어붙어 발을 못떼나
백두산 마루 울고 넘어 왔듯
고무신만이라도 웃고 넘어가소
두만강 줄기 울고 저어 왔듯
비녀를 노삼아 웃고 저어가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


                17
가야금이 울린다
둥기둥둥 둥기나 둥둥 

우물촌에 경사가 났소
어머니는 아이를 낳았소
남자아이였소
얼마후 앞집에서도 
아이를 낳았소
녀자아이였소
어머니는 아이를 백랑이라 
이름 지었소
앞집에서도 아이를 두랑이라
이름 지었소  

 

제 3 악장
애상곡

                  1
첼로가 울린다 
은은하게 울린다

달이 구름속에 들어가 속옷 벗는 이 밤에 
밤꾀꼬리 울어쌓는 버드나무 아래서
나 너를 안는다 
적색의 저고리를 안는다
녀자야, 
내 가슴에 깊숙히 안겨라
그리고 너는 그저 가만히 있어라
내가 너의 실핏줄을 어루쓸어 줄 것이며
내가 너의 넋을 꺼내서 흔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의 심장은 하나 되여
이밤의 영원한 세레나데를 부르자


                  2
저를 꼭 껴안아주세요
저는 당신의 가슴에 묻혀서
당신의 손길만을 원해요
저의 목에 당신의 팔을 휘감아요
그리고 저의 가슴을 더듬어주세요
그러면 저는 당신의 심장으로부터
전해지는 아름다운 슬픈 음악을
만들어낼거예요
당신의 기쁨으로 
당신의 슬픔으로
우렷이 울어나서 웃고 울거예요


                3
돼지감자눈보다 
조금 더 컷을것 같은 
백랑의 눈이 처음 본 나무는 
버드나무였소


                4
해란강가에 자리잡은 
처마 낮은 방구석에서
한 녀인의 뼈가 늘어나는 
신음에 밀려 
귀가 빠지던 집앞 동구밖에는
백양도 비술도 자작도 없었소

파란 버들잎은 
백랑의 입술에 끼여 어린 아이 
꽹쇠 긁는 소리처럼 
장닭을 놀래키기도 했소

버드나무는 꾀꼬리를 불러서 
노래를 시켰고 알락까치를 청해 
춤을 추게도 했소

백랑이는 그 버드나무 아래서
배부른 달이 하픔 하는 것을 보았고
마을 개들이 궁뎅이 놀이를 
하는것을 보았으며
두랑이 젖가슴이 커가는 것을 보았소


               5
곱사등같은 초가집 앞마당,
이영을 타고 오르던 박이
구새목 사이에서 둥글둥글 

말뚝소 뒤다리 사이에서 
누우런 불중태가 흔들흔들

우물속에서 
두랑의 얼굴이 동글동글,
저고리속에서 
젖가슴이 봉긋봉긋,

버드나무 등뒤에서 훔쳐보는 
백랑의 눈방울이 데굴데굴 

따발(똬리)이 바람에 밀려 간곳에
웬 사내냄새가 드글드글
알고보니 바람이 아니라
따발끈에 줄이 매여졌던 것,
백랑의 못된 짓거리였소


               6
꽃이 피였소 배꽃이 피였소
배라면 배고 사과라면 사과였소
이름하여 사과배라 했소


               7
백랑이는 제집 밭갈이는 팽개치고 
두랑이네 배꽃 수정을 갔드랬소
초봄부터 백랑이는 두랑이를 보고
일손이 딸리면 힘은 얼마든지 있으니 
자기를 마음대로 갖다 쓰라고 했소 


               8
백랑이와 두랑이는 한 배나무가지를 
딛고 올라가 높은 곳 꽃수정을 했소
백랑이는 배꽃같은 두랑의 얼굴만
훔쳐보다 그만 
나무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두랑이를 안고 쿵 하고 떨어졌소 
밑에 깔리운 백랑이는 두 팔 뼈가 
불러지고 입안에 배나무가시가 박혔다고
한바탕 죽는 소리를 쳐댔소


               9
두랑의 두팔도 백랑이가 꽉 안은통에
도무지 손은 쓸수가 없었소
그래서 입을 쓰는 수밖에 없었소
헌데 참, 
두랑의 입안에서 나온건 
가시가 아닌 꽃살이였소
꽃잎이였소


               10
부러진 나무에는 전날 절반가량 
톱으로 켜놓은 흔적을 아는 놈은 
눈치 빠른 참새들뿐이였소  

두랑이는 아침안개 모락모락 
피여나는 이른 6월, 
꿩이 제 자웅을 찾을 때
백랑이를 찾아왔었소


                11
허리 펴면 작고 말랑한 가슴이 
살랑살랑 잎사귀에 스치우는 
사과배잎사이에서  둘은 만났소

백랑이는 보습을 박아 밭을 후치였소

이슬 머금고 사과배는 미친듯이 자랐고
두랑은 끝내 처녀를 내던지고야 말았소

 

                 12
백랑이는 어깨가 으쓱해났소
그러면서 큰소리를 뻥뻥 쳐댔소

이제 사과배가 잎으로 
부른 배를 가리거든
배집 딸 두랑이도 
부픈 배를 살짝
감춘 줄 알라며 으시댔소 


                 13
사과배가 주렁주렁 영글어 
우두둑 하고 가지가 부러질 때
백랑도 사과배가지처럼 
두랑의 앞에서 고분고분 휘여졌소

광주리에는 두랑의 볼을 닮은
사과배가 몽실하게 차고 넘쳤소  


                14
눈이 소복소복 오는 어느 날
백랑과 두랑은 동방화촉을 밝혔소
먹을 건 별로 없어도 깨소금만 쏟아졌소
남편 잃고 아들 하나만 믿고 살던
어머니는 잔치날 덩실덩실 춤을 췄소


                15
하지만 겨울해는 짧았소
짧은 건 겨울해만이 아니였소
백랑과 두랑의 신혼도 짧았소


                16
백랑은 군대에 나가게 되였소
두랑은 가슴이 허전해지였소
어머니의 한숨이 또다시 길어졌소
그러나 어머니는 강했소
“큰 일을 위해 떠나는 사람앞에
눈물을 보이지 마라!”
두랑은 소리내여 울지도 못했소


                17
두랑은 며칠 밤을 패면서
붉은 천에 사랑의 마음을 적었소
코바늘로 한땀한땀 수를 놓았소

총알아, 총알아,
제발 제발 오지 마라
기어이 오겠으면 
눈을랑 감고 와서
우리 님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 가거라

파편아, 파편아,
제발 제발 오지 마라 
기어히 오겠으면
눈을랑 감고와서 
우리 님 그림자 한끝이나 
맞히고 가거라


               18
그것은 두랑의 간절한 기도였소
그것은 백랑의 부적이였소
그것은 백랑의 수호신이였소


               19
백랑은 떠나갔소
어머니의 시커먼 가슴과
두랑의 빠알간 사랑만을 
가지고 떠나갔소…


               20
홀어머니를 모시고 두랑은
이제나 저제나 남편 오기만
기다리고 기다렸소


               21
사과배꽃이 두번 피고 지였소
그 꽃밭속을 남편이 오고 있었소
얼굴에 웃음꽃 피우며 오고 있었소
두랑이는 어머니 앞서 마중나가 
얼싸 안겼소


                22
하지만 백랑은 아주 온 게 아니였소
잠깐만의 휴가였소
리별의 그림자는 또다시 그들의 
밀월을 덮어버렸소
남편은 해방전장에 나간다 했소


                 23
“기어이 가야 돼요?”
“조직의 수요이니 무조건 가야 하오.”

두랑은 더는 가지 말란 말은
차마 입에서 꺼낼수 없었소
말릴수도 없었소
                 
그래서 글로 썼소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소


                 24
봄이 오는데 왜 떠나려 하십니까? 
그대여,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 녹아 
봄이 오는 저기를 좀 보세요
꽃이 피는 봄날의 빠알간 언덕우에서 
호랑나비 하늘하늘 춤을 추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고 서두루십니까? 


                25
그대여, 
차가움에 시리던 눈을 크게 뜨고 
저기를 좀 보세요
아지랑이 아물대는 반공중에서 
노고지리 쌍쌍이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오는 저 고운 입에서 
깨소금 똑똑똑 떨어지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26
그대여, 
강남 갔던 제비들도 어김없이 돌아와 
처마 밑에 집을 짓고 가슴 따습게 
별들의 합창을 들으며 
꿀맛 같은 사랑을 나누는데 
당신은 왜 떠나신다는 겁니까?
기어이 가시겠다면 
차라리 파아란 여름에 떠나세요


                27
여름이 오는데 왜 떠나려 하십니까?

그대여, 
청제비의 지저귐에 간지럽던 귀를 활짝 열고 
저기 저 새들의 노래소리릴 좀 들어 보세요
록의 홍상 잎새들 속삭이는 언덕에서 
짝을 찾은 산비둘기 구구구 노래하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28
그대여, 
가슴을 활짝 펴고 저기 저 라일락의 
향기를 맡아 보세요
새색시의 향분 같은 안개꽃이 
사뿐히 내려앉으면 부지런한 방울새가
짤랑짤랑 아침해살을 물어다 
자리를 만들어주고 
파아란 꽃바람이 노을이불을 풀어내리여 
살폿이 덮어주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 하십니까?


                  29
그대여, 
두 팔을 쫘악 벌려 저기 저 남촌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안아보세요
그리고 바지가랭이를 걷우고 
별의 눈물같은 참이슬에 
시원히 발목을 적시며 
저 보리밭길을 걸어보세요
개구리들 정답게 사랑노래를 부르면서 
하늘 향해 팔베개를 하고 오순도순 
정감을 나누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고 하십니까? 


                 30
그대여, 
창을 열고 저 소리를 들어 보세요
우리가 심은 옥수수가 단비를 맞으며 
쭉쭉 마디 뻗는 소리에 처마 밑에서 
낮잠 자던 멍멍이가 컹컹 짖어대고 
그 옆에서 지켜보던 해바라기가 
수줍게 웃고 있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31
그대여, 
보세요
하늘에서는 청풍명월 휘영청 달 밝은 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서 서로 만나고 
숲에선 봉황이 서로 목마른 입을 맞추고 
연못가엔 원앙이 쌍쌍이 
갈대밭 속에 드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기어이 가시겠다면 
차라리 노오란 가을에 떠나세요
… …


                32
편지라지만 건너줄 수 없는 편지,
부칠 수도 없는 편지였소
두랑이는 그 편지를 정히 접어
저고리속에 깊이 깊이 간직할 뿐이였소


               33
어머니도 이젠 약해졌소
어머니는 괜한 물레만 잣았소
그러시는 어머니를 보는 아들은
가슴이 쓰려났소


              34
비잉- 삐익 삑삑삑 물레소리
한밤의 등잔불빛을 갉아 먹었소

비잉- 삐익 삑삑삑 물레소리
어머니의 가슴뼈를 갉아 먹었소

실이실이 달이달달 꼬이는 실은
두리둘둘 감겼다가 풀리기도 잘하는데
울어머니의 가슴속 실타래는 
얼기설기 한시름 얼키기만 하고
줄이줄이 풀리지를 아니 하오

밤새도 물레와 같이 울었소

아!-
앞남산에 홀로우는 겨울새야, 
한갓되이 너마저 피터지게 
울어쌓면 어찌 하노?
새벽 오면 울엄마 한가슴 다 물러진다


                35
백랑은 다시 떠났소  
두랑은 벌써 훌쩍거리였소
어머니는 아들이 멀리 멀리
사라질 때까지 눈물로 바래였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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