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붕괴를 연구한 미국여성 크리스틴 R. 고드시다.

이 책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나쁘고 우리가 사회주의에서 몇몇 발상을 착용한다면 여성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사회주의는 우리를 경제적 독립, 더 나은 노동조건, 더 나은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이끌 것이고 그렇다. 더 나은 섹스로도 이끌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20세기 동유럽 국가사회주의의 역사를 주의 깊게 평가하고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

논지의 요점을 함축한다면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가 여성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따라서 인간의 가장 기본 욕구 중 하나인 섹스도 더 낫게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유재산 폐지와 여성해방

자본주의는 여성을 아이 낳고 가사를 책임지는 ‘도구’로 취급해왔으며 자본주의는 사실상 여성의 무급가사노동으로 시작되었고 유지되어 왔다. 자본주의에서 여성해방을 기대하는 것은 산에 가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여성해방은 역시 사회주의의 몫이었다. 사회주의는 평등을 지향한다. 여성도 남성과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 이념이었다.

인류역사를 돌아보면 원시공동체사회에서는 동물세계처럼 성관계는 여성이 주도하고 남성은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 시기에는 성폭행도 강간도 없었다. 모계사회에서 여성이 살짝 우위를 점하고 있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권사회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남성과 여성은 대체로 평등했다.

남성이 여성 위에 군림하게 된 계기는 사유재산의 출현이었다. 사유재산을 창출하고 지켜내려면 남성의 힘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남성이 여성을 속박하고 지배하기 시작했다.

엥겔스는 그의 저서『가족, 사유 재산 및 국가의 기원』에서 “지주가 사유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하자 남성계급은 자신의 부를 적출(본처의 자식)의 계승자에게 넘겨주길 원했다. 이로 인해 일부일처제가 창안되고 아내에게는 정절이 강요되었다.” 엥겔스는 이러한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이 이전의 여성이 가졌던 자율성을 빼앗았다고 보았다.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성은 가정에서도 주도권을 가졌다. 여성은 노예 상태로 격하되고 몰락하였으며 남성의 성노예, 아이를 생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사유재산이 남녀 불평등을 불러왔다면 사회주의가 사유재산을 폐지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 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가만히 앉아서 해방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여성해방에 대한 사회주의 이념들은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의 충동을 부채질했다. 차르 니콜라이 2세를 실각시킨 3월 혁명은 세계 여성의 날에 시작되었고 여성 파업 참가자들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후 임시정부가 러시아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하던 몇 달 동안 이 여성들은 완전한 참정권을 요구했다. 1917년 7월에 그들은 투표권과 공직에 입후보할 권리를 얻었다. 이것이 인류가 부계사회에 진입한 이래 첫 여성해방의 스타트를 끊은 사례였다. 이어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여성해방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하였고 중국은 모택동 주석의 “여성은 하늘의 절반을 떠인다.”는 말로 여성해방이 급격히 실시되었다.

프랑스계 러시아인 혁명가 이네사 아르망은 “공산주의 없이 여성해방을 생각할 수 없다면 공산주의도 여성해방 없이 생각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고 여성해방은 거의 모든 국가사회주의국가 정부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쳤다.

사회주의국가의 여성해방은 의무교육과 보육지원으로 보장

사회주의국가를 국가사회주의국가와 민주사회주의국가로 나눈다. 국가사회주의국가는 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와 아세아 사회주의국가들을 지칭하고 북유럽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국가를 민주사회주의국가라고 지칭한다.

소련은 국가사회주의국가 중 맏형이다. 맏형인 소련은 여성해방을 본격적으로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우선 여성을 물건으로 팔고 사던 상품거래를 소멸하고 18세 이상 모든 여성을 노동인구로 전환시켰고 따라서 여성은 독립적인 소득이 있는 경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여성을 노동인구로 전환시키려면 교육이 필요했다. 특히 근대화 산업혁명에서 여성이 노동인구로 되려면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집안에서만 맴돌던 여성에게는 교육이 필요 없었다. 자기 이름자조차도 쓸 줄 모르던 여성을 교육시키는 것은 큰 혁명이었다.

다음 국가사회주의국가들은 전부 보육지원에 힘을 쏟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직장들이 운영하는 탁아소에 맡길 수 있었고 유치원에 보내고 엄마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출산휴가는 당연히 유급으로 보장되어 아이 낳는 부담이 없었다. 이에 비해 자본주의국가들에서는 의무교육도 잘 안 되고 직장들에서 탁아소나 유치원 같은 보육지원도 잘 되지 않아 여성은 친정에 맡기거나 시댁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노동인구로 활동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고용주들은 자금을 아끼려고 보육지원을 하지 않았고 정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아이를 낳는 엄마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막연하고 불안한 사회에서 부득이하게 집안에 갇혀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육과 보육지원이 잘된 소련에서는 여성들의 사회 기여가 활발했다.

소련의 비약적인 발전에 배가 아팠던 미국은 소련이 우주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까 봐 두려워 1958년「국가 방위 교육법」을 통과시켰다. 여성이 의존적인 아내로서 집에 머무르길 바라는 문화적 요구는 계속되었지만「국가 방위 교육법」은 재능 있는 여자아이들에게 과학과 수학을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1961년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행정명령10980호」에 서명하여 최초의 대통령 직속 여성지위위원회를 설립했다. 1963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가 되어 미국의 모든 남성 우주 비행사의 비행시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구궤도를 돌면서 보내자 미국인들은 한층 더 충격을 받았다. 이후 올림픽에서 소련과 동유럽이 우위를 점하자 미국은 이데올로기의 적으로부터 금메달을 낚아채기 위해 더 많은 여성 선수를 발굴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타이틀 나인(교육평등법)」의 통과를 서둘렀다.

미국 정부는 ‘소련 경제에서 여성’이라는 제목의 중요한 연구를 지원했다. 연구 책임자는 여성을 공식적인 노동인구에 통합시키는 소련 정책들을 조사하여 미국 입법부의 본보기로 삼기 위해 1955년 1962년, 1965년에 소련을 방문했다.

미국의 여성은 아직도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닌 남편에게 종속된 ‘물건’

미국정부가 아무리 여러모로 연구를 진행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지원한다 해도 자본주의 삶의 패턴을 바꿀 수는 없었다.

미국의 삶의 방식은 남성 생계 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를 의미했다.

고드시와 리사는 친한 친구이다. 세월이 흘러 이 둘은 결혼하여 아이를 둔 엄마이지만 고드시는 대학교수가 되었고 리사는 전업주부이다.

어느 주말 고드시가 리사의 집에 찾아갔고 저녁에 영화 관람을 함께 하기로 했다.

리사의 집은 2층으로 된 양식인데 비교적 아담했다. 헤어드라이기를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고드시는 리사의 집 2층에 있었다. 리사에게 헤어드라이기를 빌릴 수 있을 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자 리사와 남편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빌 창피할 거야.”

“안 돼. 넌 이번 달치 돈을 다 썼어. 카드는 명세서가 나온 뒤에 다시 줄 게.”

“그렇지만 난 집에 필요한 거랑 애들 옷을 샀어.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어.”

“넌 항상 너 자신을 위해 뭘 사면서 그게 딸들 거라고 말하잖아.”

“하지만 그건 딸들 게 맞아. 애들은 계속 커.”

“넌 옷이 충분히 많아.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내가 저녁 먹고 영화보기에 충분한 돈을 줬잖아.”“빌 제발.”

리사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지만 남편은 아내의 청을 들어줄 기미가 아니었다.

리사가 남편에게 더 많은 돈을 달라고 발을 구른 것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것 같아서였다.

고드시와 리사가 저녁 먹었는데 20불 계산서가 나왔다. 리사는 현금을 내민다. 주인의 행세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드시는 신용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하면서 현금을 리사에게 밀었다. 리사는 고드시의 손에 쥐어 있는 신용카드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빌은 나한테 현금만 줘.”

리사는 고드시가 밀어준 20불을 머뭇거리다가 ‘고마워’라고 말하고 지폐를 그러모아 지갑에 넣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오늘 밤에 그와 섹스해주고 내일 갚을 게.”

자아~, 위 이야기에서 리사를 영자로 빌을 철수로 바꿔놓기만 하면 한국의 여느 가정집 부부싸움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의 가정집도 리사와 빌의 말다툼처럼 같은 패턴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 같은 자본주의로서 거기서 거기다.

다만 리사가 20불 돈을 자기 지갑에 말아 넣으면서 했던 말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여성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해난다.

1928년에 조지 버드나 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여성에게 자본주의는 돈을 받고 성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는 지속적인 뇌물로 작용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빈곤으로 파괴시키는 전통적인 고결함 외에는 이 뇌물에 대항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국가사회주의국가 해체가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놓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2년 후 소련이 붕괴되었고 동구권 국가사회주의국가들이 잇따라 정치적으로 일당제를 거부하고 서유럽 다당제 의회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경제면에서는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했고, 따라서 공기업은 민영화하여 생산성이 임금을 결정하는 새로운 경쟁적 노동시장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고, 신자유주의경제체제로 편입되었다. 이젠 화장지를 사려고 긴 줄을 서고 청바지를 사기 위해 암시장에 가는 일은 사라졌다. 결핍, 기근, 비밀경찰, 강제노동 수용소에 대한 염려가 없는 소비자 천국이 머지않아 보였다. 그러나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동유럽 사람들은 여전히 밝은 자본주의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 권위주의를 민주주의 및 경제적 변영과 맞바꿨고 굳게 걸어 잠갔던 문호는 서구자본과 국제무역에 개방했다. 물질결핍과 기근은 사라졌고 여성은 더 나은 옷을 입을 수 있고 더 나은 화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유럽 여성들이 치른 대가는 혹독할 정도였다.

직업이 보장되고 경제적인 독립체로 살아오던 동유럽 여성들은 실업과 빈곤을 맞이해야 했다.

실업과 빈곤은 아이가 있는 여성을 괴롭힌다. 고용주는 아이가 없는 여성도 미래에 아이를 가질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차별한다. 세계적으로 여성은 더 높은 비율로 경제적 박탈에 직면해 있다. 보통 여성은 가장 나중에 고용되고 주기적인 침체기에는 가장 먼저 해고당하며 여성이 일자리를 찾을 때 사장은 여성에게 남성보다 적은 보수를 지급한다. 국가에서 교육, 건강보험, 또는 노령연금에 대한 정부 지출을 대폭 줄여야 할 때 엄마, 딸, 여자 자매, 아내는 자신의 에너지를 어린이, 환자, 노인을 돌보는 일로 돌려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 자본주의 가장 초기부터 일터에서 여성의 상대적인 장점은 여성이 더 적은 돈을 받고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었다.

자본주의는 여성의 가정 무급 노동으로 유지되는데 여성의 돌봄 노동이 세금 감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감세는 이미 소득 사다리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남성)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준다. 사람보다 이익과 사유재산을 소중히 여기는 경제체제에서 여성이 특히 불이익을 받는다.

새롭게 등장한 이 자본주의경제에서 남성은 가부장으로서 ‘자연적인’ 역할을 되찾았고 여성은 남편에게 부양을 받는 아내이자 엄마로서 집으로 되돌아가도록 요구받았다. 1989년 이후 동유렵 전역의 민족주의자들은 자본주의적 경쟁이 여성이 악명 높은 이중 부담을 덜어주고 남성이 생계 부양자로서 자신의 남성다운 권위를 되찾게 하여 가족과 사회의 조화를 회복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것은 남성이 다시 한 번 여성에게 재정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례로 유명한 섹슈얼리티 역사가 다그마르 헤르조그는 2006년에 40대 후반의 동독 남성 몇 명과 나눈 대화를 공유했다. 그들이 그녀에게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독 여성은 성적 자신감과 경제적 독립성이 너무 강해서 정말 짜증났다. 돈은 쓸모없었다고 그들은 불평했다. 예를 들면 의사가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약간 더 벌 수 있었던 동독 마르크는 여성을 유혹하거나 여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서독에서는 의사의 월급으로 그럴 수 있었고 또 그랬을 텐데 말이다. 나는 공산주의 시절보다 지금의 통일 독일에서 남자로서 훨씬 더 많은 권력을 가집니다.”

국가사회주의국가 시절 남성 앞에서 당당했던 그녀들의 운명은?

독립적인 인격체였던 동유럽 여성들이 다시 물건으로 전락

헝가리 사회학자 주저 페르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 여성들의 상황과 비교하여 국가사회주의 업적을 되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반적으로 전쟁 이전에 비해 여성들의 개관적인 상황은 아마 모든 곳에서 나아졌을 것이다. 집 밖에서의 여성들의 임금노동은 가족의 안녕에 기여했고 여성들의 교육적인 발전과 집 밖에서의 여성들의 임금노동은 그들의 삶의 경험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소득자라는 여성들의 지위는 이전에 가정 안팎에서 받던 억압을 약화시켰고 그들이 사회적 계급에 덜 복종하게 했다. 이는 또한 여성 빈곤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고 특히 실질적으로 모두가 일하기 시작한 엄마들의 경우에 그랬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연금을 받는 여성 노인들의 경우에도 그랬다.”

국가사회주의시절 섹스에 당당했던 동유럽 여성들은 자본주의사회 여성처럼 또 다시 사고 팔리는 상품으로 전락 되었다. 크로아티아 기자 슬라벤카 드라쿨리치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새롭게 열린 포르노 상점, 포르노 잡지, 핍 쇼, 스트립쇼, 실업 그리고 급증하는 빈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언론에서는 부다페스트를 ‘사랑의 도시, 동유럽의 방콕’이라고 부른다. 루마니아여성은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의 국경에서 단돈 1달러를 벌기 위해 성 판매를 한다.” 오늘 날 러시아의 우편 주문 신부, 우크라이나의 성 노동자, 몰도바의 육아도우미, 폴란드의 가사도우미가 서유럽에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 부도덕한 중중개인이 뉴욕의 가발제작자를 위해 가난한 벨라루스 10대 청소년의 금발머리칼을 채취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여성들이 골드 디거(돈을 목적으로 남자와 교제하는 여성을 양성하는 학원에 다닌다. 프라하는 유럽 포르노 산업의 중추이다. 인신매매범들은 서구에서의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불행한 여자아이들을 찾으러 소피아, 부쿠레슈티, 키시너우의 길을 배회한다.

과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현재와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과거를 공부하라.”

『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의 저자 크리스틴 R. 고드시는 “비록 과거의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약간의 성공도 있었다. 우리는 이 성공을 연구하여 오늘날 세계적 자본주의 최악의 과잉을 제한할 가장 강력한 이론적 실천적 도구 중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구해내야 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잃을 것이 거의 없기에 더 정의롭고 공평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으로부터 얻을 것이 많다.”고 말했다.

알베르트 아인수타인은 1949년의 글「왜 사회주의인가?」에서 “개인을 불구로 만든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최악의 폐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독일 문화연구자 잉그리드 샤프 교수에 따르면 동독 사람들은 여성이 더 이상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여성에게 자율성을 부여했으며 이는 침실에서 남성이 더 관대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서독에서는 설령 여자 친구나 아내가 남성 파트너의 성적 수행에 불만이 있더라도 주어진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여성은 남성의 재정적 지원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파트너가 자신의 욕구에 좀 더 신경을 쓰도록 부드럽게 자극하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동독에서 여성과의 성적인 관계를 원하는 남성은 그 관계에 접근하기 위해 돈에 의지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행동을 개선시킬 동기를 가졌다. 샤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서독 여성들은 이혼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들은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혼하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살아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설령 남편이 맘에 안 들고 갈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도 참고 살아야 했다. 이에 비해 동독 여성들은 이혼은 자유로웠다. 이혼한다 해도 일시적인 감정이 상할 뿐 잃을 것도 없고 이혼 후 경제적인 독립이 충분하기에 이혼을 쿨하게 대할 수 있었다.

결론은 하나. 서독 여성은 남성의 부속물이었던데 비해 동독 여성들은 독립적인 인간체로서 남성과 평등한 위치에 있었다. 1950년대 초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성과학자는 여성의 쾌락에 초점을 맞추었고 ‘좋은 섹스’는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으로 동등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사회주의국가 시절 동독의 젊은이들, 여성과 남성 모두가 자신의 성생활에 상당히 만족했고 젊은 여성의 2/3가 ‘거의 항상’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말했으며 나아가 18%는 매우 ‘자주’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연구자인 프리드리히는 침실에서 이 같은 수준의 개인적 만족이 성취된 것은 사회주의적 삶, 즉 “사회적 안정감, 평등한 교육, 직업의 의무, 사회적 삶에 참여하고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와 가능성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여성이 노동인구가 되면 남성들이 가사를 도와야 한다. 남성이 공정하게 가사에 기여할 때 커플은 장차 더 빈번하게 만족스런 섹스를 즐기게 된다는 것이 연구가들의 주장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서독에서는 많은 상업적 오락거리를 이용할 수 있었던 데 비해 동독에서는 할 일이 적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마 섹스를 할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동독 정권은 사회주의경제와 여행제한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단조로움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성생활을 즐기도록 장려했다고 주장한다. 옛날 농경사회에서 밤이면 할 이 없어 그 짓거리만 하다 보니 아이를 많이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국가사회주의국가들에서 여성들이 마치 천국에서 보냈던 것처럼 논의해 왔으나 그 시절 여성들이 모든 면에서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우린 여자처럼 보이지도 않아요. 데오드란트도 향수도, 가끔은 비누나 치약조차 없어요. 질 좋은 속옷도 팬티스타킹도 멋진 란제리도 없어요. 가장 나쁜 점은 생리대도 없다는 거예요.”

동유럽 여성들은 그들에게 열려 있던 아주 많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지만 확실히 서구의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소비재는 부족했다.

지구촌에서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북유럽 국가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장단점들을 살펴보았다. 총적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은 국가사회주의국가 시절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체로 행복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절대다수는 'NO'라고 크게 외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서 여성들이 가장 이상적인 삶을 보내고 있는 국가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는 국가 자산을 매각하고 사회안전망을 해체했던 반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소유 산업과 진보적인 세금 부과로 자금을 조달해 공공 지출을 넉넉하게 유지했다. 북유럽의 민주사회주의사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인도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비록 북유럽 사회도 완벽하지 않고 모사하기 쉽지도 않지만 그들은 단일민족이며 이민자달에게 점점 더 적대적이다. 그들은 서구의 정치적 자유를 동구의 사회보장과 결합하는 방법을 찾았다.

북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행복한 곳일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다른 그 어느 곳보다 더 많은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누리는 안식처이다. 쉬운 여자를 사냥하는 남자들에게 덴마크는 진정한 불모지이다. 덴마크 여성은 재정적 안정을 위해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덜 평등한 국가의 여성은 성적인 관계가 사회적 계층 이동을 위한 방안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 스스로 돈을 벌고 국가가 여성들의 독립을 지원하는 사회에서 산다면 백마 탄 왕자는 매력을 잃는다. 루시의 책『덴마크에서 섹스하지 말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국가에서 공직, 기업 이사회, 공기업의 여성할당제를 의무화하고 있고 그것이 적절하게 시행되면 요직에 있는 여성의 수를 늘리는데 놀랍도록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여러 연구가 입증하고 있다. 1991년 이후로 90개국 이상이 국회에서 여성을 위한 일종의 할당제를 시행했고, 권력적 여성 비율이 급증했으며 , 정계에 뜻을 둔 다음 세대의 여자아이들을 위한 모델이 창출되었다. 2017년에 의회에서 여성이 30% 이상인 46개국 중 40개국이 일종의 할당제를 시행했다.

이 여성 할당제는 2003년에 노르웨이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이사회 임원을 다양화 하지 않는 회사는 해산에 직면했다. 대기업에서는 이사회 의석의 총 40%가 여성에게 돌아가야 했다. 노르웨이가 이 제도를 시행한 후 다른 유럽 국가들도 기업에 할당제를 부과하기 시작하였다.

오는 5월 10일이면 여당이 될 한국 보수당과 대통령이 될 당선인은 여가부를 폐지한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내각 구성에 여성할당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양성평등이 후퇴하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통령 인수위에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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