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도리스 레싱(영국)

 

도리스 레싱 (Doris Lessing | Doris May Lessing) 영국 女流 소설가/출생-사망; 1919년 10월 22일, 이란 - 2013년 11월 17일/ 데뷔; 1950년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 /수상;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 《황금노트북 The Golden Notebook》(1962)으로 20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서로 서로

 

도리스 레싱 (영국)

 

"당신 오빠가 다시 찾아오겠지?"

 

"아마도 그럴지 몰라요."

 

넥타이를 매만지고 깃을 세우며, 면도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려고 턱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동안, 사내는 계속해서 싸늘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는 핑계거리도 없다. 그런데도 넥타이 매듭에 손을 댄 채온몸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자기 왼쪽 뺨 너머로 거울에 비친 아내의 몸을 바라다 보았다.

 

오른쪽 팔꿈치에 무게의 중심을 둔 아내는 침대에서 멋진 자세로 누운 채 희디흰 두 팔로 손톱을 매만지는 동작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내는 손을 아래로 내리고 물었다.

"아마도 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뾰족한 다섯 개의 손톱 끝을 살펴보려고 한 손을 들기만 했다. 호리호리하고, 눈동자가 검은 18세 여자였다. 누운 그 자세, 손톱을 살피는 태도, 가늘고 길고 횐 다리들을 내보이는 분홍색 줄이 간 잠옷 등 잡지 표지에 나오는 그런 모습이 남편의 고뇌 만큼이나 심각한 자기 고뇌를 감추려는 시도였다. 남편도 그랬지만, 여자도 숨결이 매우 거칠었던 것이다.

 

사내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아내의 눈동자에 비치는 고독한 열기, 팔 위쪽 살에 드러난 탄탄한 근육은 자기가 빨리 떠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사내에게는 그 아내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아내를 훔쳐보는 시선도 절박했다.

 

저 여자에게는 뭔가 건전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 그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수긍했다. 그리고 경계심을 잔뜩 품은 마음으로 자기 비참함의 원인을 정확하게 집어내려고 애쓰다가 한마디 더 보탰다. '그래, 깨끗하지 않고 더러운 거야.' 그러나 그 새로운 비판에 스스로 놀랐다. 아내가 살결과 머리카락과 손톱을 병적으로 잘 관리하고 목욕탕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습관이 있다고 기억해 냈다. '그래, 더러워.' 혐오감이 솟구쳤다.

 

그 말에 힘을 얻어서 천천히 몸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싸늘한 거울을 통하지 않고 정면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단단하고 곧은 몸에다가 머리카락은 빗질이 잘 되었고, 얼굴도 깨끗한 청년이었다. 한 달 전에 결혼할 때는 나란히 선 아내보다 키가 약간 작기는 했어도 아내의 변덕스러운 젊음을 지배한 자기 자신의 사내다움에 대해서 자신감이 넘쳤다.

 

이제 사내는 호소하기도 하고 공격적이기도 한 (어느 쪽인지는 자기도 모르지만) 시선을 노골적으로 강하게 쏟아부었는데, 경고를 주려는 의도에서 그랬다. 동시에 지독한 불쾌감을 억눌렀다. 아내가 자기 쪽으로 두 팔을 들기만하면 금세 사라질 불쾌감인 줄도 잘 알면서 말이다. "아마도라니 무슨 말이야?"

 

한참이나 대꾸를 하지 않다가 아내는 야윈 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나른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 그뿐이에요."

 

두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이 오고 가는 것이 5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자주 그런 대화가 있던 다른 날 아침부터 시작한 것이다. 재앙이 떨어지려는 판이었다. 그러나 젊은 남편은 시간이 늦었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 몸짓은 '내가 직장에서 일하러 가 있는 동안 넌 여기 누워 있겠지.'라고 허풍을 떨기는 하지만 자신은 없는 그런 말을 의미했다. 이윽고 사내가 몸을 돌려서 문으로 다가가다가걸음 속도를 늦추더니 아주 멈추어 버렸다.

 

"자, 그렇다면 난 저녁 때에나 돌아 오겠어."

 

여자가 나른하게 말했다. "편한 대로 하세요."

 

침대에 반듯이 누워서 여자가 코앞에서 두 손을 흔드는데, 매니큐어를 말리려고 하는 몸짓이었지만, 사실은 매니큐어를 칠한 지 사흘이나되었다.

 

사내가 큰 소리로 한마디 했다. "프레다! 농담이 아냐. 난 절대로 그냥은....."

 

 

당당한 태도이면서도 덫에 걸린 꼴이었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존심을 세우고 남자의 체면을 유지하기를 원했는데, 그것을 누구에게 과시하려는 것인가? 남편을 향해서 슬그머니 띄워 보내는 여자의 미소. (아침에 눈을 뜬 이래 모든 동작에 대해서는 스스로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그 미소만은 여자 자신도 잘 이해하지못했다. 심사숙고한 끝에 슬그머니 짓는 그 경멸의 미소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정말 여자는 깨달을 수가 있었을까?

 

왜냐하면 그 미소에는 도전이 포함되었고, 무의식적인 승리를 외치는 것이어서, 남편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프레, 프레, 프레, 프레다..." 라고 중얼거리다가 포기해 버리고는 방에서나갔기 때문이다. 남편은 갑자기 방에서 나가고 말았다. 사내가 느낀 그 공포의 거센 힘에 비교하면 아주 조용히 찾아온 결과였다.

 

남편이 아래로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와 문닫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여자는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가늘고 길고 흰 다리, 열 개의 작은 분홍색 발톱이 침대 저쪽 끝에 닿은 그 두 다리를 들어서 내려섰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는 남편이 잘 빗어올린 머리를 흔들면서 인도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기는 런던의 교외였는데, 남편은 출세길이 트인 회사원이라서 시내중심부로 가야만 했다. 다른 주민들도 대개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남편과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남편이 모퉁이를 돌기 전에 걱정스러운 얼굴을 이쪽으로 돌렸다. 여자는 미소도 띄우지 않은 채 오만하게 손을 흔들었다. 악몽의 여운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 사내가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래서 여자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창가에서 물러섰고, 남편이 뒤늦게 열심히 손을 흔들고 미소하는 꼴을 보지 않았다.

 

 

 

새 옷장의 긴 거울 앞에 얼굴을 찌푸린 채 여자가 섰다. 키가 너무 커서 구부정한 편인 데다가, 잠옷이 짧아서 한층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잠옷을 머리 위로 당겨서 벗어 버렸다. 풍만한 유방과 통통한 허리의 옆모습에 한층 자신감을 느꼈다. 그러고는 목까지 올라오는 흰 네글리제를 걸쳤다. 네글리제가 몸에서 흘러내렸다. 고개를 들어 자세를 취해 보았다. 그러자 모델처럼 한결 멋지게 보였다. 윤기나는 짧고 검은 머리카락을 빗질했다. 이윽고 불안에 가득 찬 두 눈을 들여다 본 뒤에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앞문이 살며시 열리고 또 살며시 닫히는 소리를 듣는 순간 여자가 긴장했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도 귀를 기울이고 살펴보고 있었다. 거의 독립 가옥과 비슷한 방 두 개짜리 아파트였다. 여주인은 아래쪽 1층에 살고 있었는데, 젊은 남편은 그 여주인에게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아내의 움직임에 관해서 아침마다 이무렇지도 않은 듯이 질문하고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것저것 쉽게 얻어듣고는 했다.

 

그러나 발걸음 소리는 곧장 여자에게 다가오고,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렸다. 여자가 눈을 들어 쳐다보았다. 키가 매우 크고 홀쭉하면서 눈동자가검은 젊은이가 들어서자 여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청년이 자기 누이의 침대 맡에 걸터앉고는 야윈 손을 자기 야윈 손으로 잡고 키스했다. 그리고 그 손을 사랑스럽게 물어뜯었다. 그러고는 여자의 입술에 키스했다.

 

깊고 검은 두 쌍의 눈이 서로 정면으로 쳐다보는 동안, 둘의 입술이 한참이나 포개진 상태를 유지했다. 이윽고 여자가 눈을 감고 청년의 아랫입술을 이빨로 무는가 하면 혓바닥을 저쪽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미 청년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평소에 남편에게는 짜증스럽게 질문하는여자가 청년에게는 상냥하게 물었다.

 

"오늘 아침에는 왜 그렇게 서두르지요?"

 

"엑시터 가에 가서 할 일이 있거든."

 

전기 기술자인 청년은 사무실이나 책상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는 몸이었다. 발가벗은 뒤 침대로 기어 들어가서는 누이동생에게 속삭였다.

 

"올리브 오일!"

 

사랑의 애칭으로 불러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여자가 긴 육체를 청년의 몸에 바싹 붙였다. 청년과 달리 남편은 그 애칭으로 자기를 불러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자가 사랑의 애칭을 속삭였다." 뽀빠이!" 라고.

 

 

 

다시금 두 쌍의 눈이 거의 닿을 듯이 서로 쳐다보았다. 누이동생과 마찬가지로 움푹 패인 남자의 두 눈은 윤곽이 뚜렷했다. 얇고 늘어지기 시작하고 푸르퉁퉁하게 보이는 살이 눈동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반면, 여자의 눈동자는 희디횐 살결이 섬세하게 둘러쌌다. 남자는 자기의 보기 흉한 눈을 완전하게 닮은 여자의 눈에 키스했다. 여자가 힘을 주어 끌어안을 때, 남자가 말했다.

 

"자, 자, 올리브, 오일, 너무 서두르지 마, 재미를 망쳐 버리겠어."

 

"천만에. 그럴 리가 없어요."

 

"잠깐 기다려."

 

"알았어요... ."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두 육체가 오랫동안 꼼짝도 않고 누워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자그마한 손등에다 대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남자의 물건을 삽입하려고 했다. 남자는 두 손으로 여자의 궁둥이를 쥔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여자가 삽입에 성공했다. 둘이 결합한 것이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한마디 했다.

 

"이젠 좀 기다려.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둘은 눈을 감은 채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남편하고 이거 했어?"

 

"그럼요."

 

여자의 이마 위에서 남자가 이를 드러냈다.

 

"그래? 그러면 넌 남편을 만족시켰겠지,"

 

"뭣 때문에 그 사람을 만족시켜줘요?"

 

"넌 돼지니까."

 

"그렇다면 좋아요. 앨리스는 이걸 어떻게 하죠?"

 

"아, 그 여자? 흥, 비명을 내지르면서 '그만 해요! 그만!' 하고 애원했지."

 

"그럼 누가 돼지죠?"

 

여자가 원형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자의 궁둥이를 여전히 잡고 있는 남자는 물건을 계속 삽입한 상태로 있으면서 부드럽게 속삭였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다시금 둘이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밝고 작은 침실 바깥에는 런던 교외의햇살이 찬란했다. 새로 단 초록색 커튼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와서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새 물건인 가구를 휩쓸었다. 그 동안 희고 긴 두 육체가, 입술을 맞닿은 채, 눈을 감은 채, 깊고 부드러운 숨결 속에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숨결이 한층 거칠어졌다. 남자의 손톱이 엉덩이 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윽고 입술을 떼고는 물었다.

 

"그러면 찰리는 이걸 어떻게 하지?"

 

눈을 감은 채 남자의 목덜미를 혀로 핥아대면서 여자가 중얼거렸다.

 

"그 사람도 날 비명 지르게 만들어요."

 

이번에는 여자가 남자의 허리를 꽉 잡고 말했다.

 

"안 돼요. 안 돼. 안 된다구요. 재미를 망칠 셈이에요?"

 

 

 

둘이 동작을 멈추었다. 침묵이 길었다. 고요한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이윽고 펄럭이는 커튼이 여자를 흥분시켰다. 여자의 발이 긴장했다. 여자는 자기 발을 남자의 다리에 대고 묘하게 아래 위로 비볐다. 남자가 화가 나서 한마디 던졌다.

 

"아까 왜 재미를 망쳤어?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말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중에 오는 쾌락이 정말 더 멋지다구요."

 

여자가 몸을 틀고 안쪽의 근육을 긴장시켜서 성교의 동작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전하듯이 남자에게 싱긋이 웃어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여자의 몸짓을 막으려는 듯 장난삼아 여자의 목을 감은 두 손에 힘을 주면서, 동시에 여자의 몸 안으로 자신의 성기를 밀어 넣었다 뺏다 하는 동작을 열심히 반복했다. 여자가 경쟁적으로 희롱하면서도 애달아 하는 몸짓을 하는 데 따라 남자도 마찬가지 열의로 응했다.

 

둘이 얼마나 오랫동안 멋지게 성교를 계속할 수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둘은 서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물어뜯고, 가느다란 뼈 사이로 파고들다가, 이윽고, 폭발 직전에 둘이 동시에 몸을 서로 뺏다. 그리고 따로따로 늘어진 채 온몸을 떨었다.

 

 

 

남자가 한없이 애정 어린 손길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말했다.

 

"우린 방금 절정에 이르렀어."

 

"그래요, 프레드. 지금부터는 조심해야 돼요."

 

둘이 다시금 껴안았다.

 

만족감에 젖은 여자가 남자의 목덜미를 입술로 핥으면서 말했다.

 

"이제는 완벽하게 될 거예요."

 

두 육체가 팽팽한 긴장으로 떨리면서 함께 누워 있었는데, 가끔 자기도 모르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조금씩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거칠던 숨결이 고르게 되었다. 숨을 함께 쉬는 것이었다. 둘은 하나가 되었다. 서로 상대방 안에 완전히 녹아 버린것이다. 조용해졌다. 잠이 든 것이다.

 

오랜 시간이,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을까... .

 

평소와 달리 고요한 거리 저 아래로 자동차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젊은이가 눈을 뜨고는 누이동생의 부드러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프레다."

 

"아아."

 

"그래, 난 가야겠어.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됐어."

 

"조금만 더."

 

"안 돼. 다시 발기가 될지도 모르거든. 그러면 우린 모든 걸 망치고 말아."

 

살그머니 두 육체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 동작은, 두 손으로 서로 상대방의 엉덩이를 잡고 천천히 부드럽게 몸을 떨어지게 하는 그 동작은 오히려 서로 결합하려는 동작과도 같았다. 몸이 떨어지자, 둘은 누운 채 미소를 서로 띄워 보내면서손가락 끝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작은 고양이처럼 서로 눈두덩을 핥아 주었다.

 

"하면 할수록 더 멋지게 되는 군."

 

"그래요."

 

"이번에는 네가 어디까지 갔지?"

 

"알잖아요."

 

"그래."

 

"어디까지 갔어요?"

 

"알잖아. 네가 간 데까지 갔어."

 

"그래요. 말해 봐요."

 

"그럴 수가 없어."

 

"알아요. 말해 봐요,"

 

"너와 함께였어."

 

"그래요."

 

"그럼, 우린 한 몸이 된 거지?"

 

"그래요."

 

"그래."

 

다시금 침묵. 남자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오후에는 어디서 일하죠?"

 

"말했잖아. 엑시터 가의 제과점이야."

 

"그 다음에는?"

 

"앨리스를 데리고 영화관에 가지."

 

여자가 입술을 꼭 깨물고는 남자의 어깨를 손톱으로 꽉 쥐었다.

 

"이거 봐. 난 하여간 앨리스와 그냥 성교할 뿐이야. 앨리스가 오르가슴에 오르게 만드는 것 뿐이라구. 그걸 앨리스는 제일 좋아하거든."

 

 

 

일어나 앉아서 남자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짙은 하늘색 스웨터 차림의 키가 크고 멀쩡한 젊은이로 곧 변했다. 거기서 거주하기라도 하듯 남자는 젊은 남편의 빗으로 머리를 빗었다. 여자는 발가벗은 몸으로 누운 채 남자를줄곧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가 몸을 돌려 미소했다. 남편처럼 애정과 주인 의식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여자의 얼굴에 뭔가 상실감과 절망이 깃들어 있어서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자 곁에서 몸을 굽히고 찡그리고는 이를 드러내 놓았다. 그리고 여자의 검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여자의 숨구멍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여자가 숨을 거칠게 쉬다가 기침을 했다. 남자가 손가락을 뺐다.

 

"프레드, 이건 무슨 뜻이에요?"

 

"찰리와 섹스할 때 오르가슴에 오르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무슨 소리야? 그런 척하면 그만이지."

 

"그렇지만 왜요? 내가 오르가슴을 원한다고 여기는 이유가 뭐죠? 프레드!"

 

부푼 살결이 둘러싸인 두 쌍의 눈동자가 불안하고 고독한 시선을서로 상대방에게 흘려 보냈다.

 

"네 속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모성애가 약간 내비치는 미소를 띄우면서 여자가 불쑥 내뱉았다.

 

"바보같이!"

 

신음이 뒤섞인 숨결을 내뿜으면서 남자가 여자의 젖가슴에 머리를묻었다. 그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벽을 바라보는 여자가 눈을 깜박거리자 눈물이 밀려나왔다.

 

"찰리는 오늘 밤 저녁 먹으러 안 와요. 화가 났거든요."

 

"그래?"

 

"당신에 관해서 늘 지껄이지요. 당신이 찾아올 거냐고 오늘도 캐물었어요."

 

"왜? 의심하고 있나?"

 

남자가 부드러운 젖가슴에서 고개를 들고는 아주 불쾌한 표정으로쳐다보았다.

 

"왜? 네가 바보 같은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천만에... 그렇지만 프레드... 그렇지만 당신이 나와 섹스한 뒤로 난 달라졌는지도... ."

 

"이런 빌어먹을!"

 

절망에 사로잡힌 남자가 펄쩍 뛰어 일어섰다. 탈출, 분노, 증오, 도피의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 동작을 하나씩 검토해 보면서 말이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나더러 오르가슴에 이르게 해달라는 거야? 좋아. 원하는 게 그거라면, 식은죽 먹기지. 하나도 어렵지 않아. 그럼 좋아. 누우라구. 내가 섹스해 주지. 오르가슴에 올라서 비명을 내지를 때까지그 짓을 해 주겠어. 원하는 것이 그거라면... ."

 

 

 

옷을 막 벗을 기세였다. 그러나 여자는 재빨리 침대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소중한 것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우선은 주름 장식이 달린 잠옷으로 몸을 가렸다. 거의 키가 같은 남자 곁으로 다가서서 옆구리를 짚은 그 팔을 잡아 내렸다.

 

"프레드, 프레드, 사랑하는 프레드, 망치지 말아요. 일을 망치지 말아요. 지금은... ."

 

"지금은 뭐가 어때서?"

 

이글거리는 남자의 시선을 용감하게 받아 치고는 차분한 어조로말했다.

 

"하여간, 프레드, 뭘 원하는 거예요? 찰리는 바보가 아니잖아요? 난 그런 여자가 아니라... 찰리는 나와 섹스하죠. 하여간 내 남편이잖아요? 그리고... 당신과 앨리스는 마찬가지로 섹스를 하죠. 그게 정상적이잖아요? 당신과 내게 오르가슴의 상대인 찰리와 앨리스가 없었다면, 우린 우리 방식으로 섹스를 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 점을 생각해 보았나요?"

 

"그 점을 내가 생각해 보았다? 흥!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어쨌든 정상적인 것 아니겠어요?"

 

"정상적이라... ."

 

여자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공포에 질린 채 응시하면서 남자는그 말이 빈말이기를 바랐다.

 

"정상적인 거라구? 그래? 정상적이란 말을 그런 식으로 한다면... ."

 

눈물이 남자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랑의 보호본능이 폭포처럼 솟구쳐 여자가그 눈물을 키스로 닦아 주었다.

 

"그렇다면, 왜 나더러 찰리와 결혼하라고 했어요? 난 원하지 않았는데도, 당신이 꼭 나더러 해야만 한다고 했지요."

 

"그 결혼이 우리 관계를 망치진 않을 거라고 보았거든."

 

"물론 망친 건 아니잖아요, 프레드? 우리 같은 경우는 절대로 없어요. 어떻게 있을 수가 있어요? 앨리스와 관계하는 당신이 잘 알잖아요, 프레드?"

 

이제는 여자가 남자의 수긍을 간절히 원했다. 둘이 마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눈을 감았다. 두 뺨을 마주 대고는 사랑스러운 손을 마주 잡은 채 흐느꼈다. 자신들의 관계가 배우자들 때문에 쑥덕공론의 대상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언제요?"

 

"방금 '망치지 말아요. 지금은... ' 이라고 했잖아."

 

"난 겁이 났어요."

 

"왜?"

 

"임신하면 어떡해요? 그야 언젠가는 임신해야겠죠. 당연한 일이니까. 찰리도 아이들을 원하니까요. 그렇지만 찰리가 날 떠나겠다고 가정해 보세요. 오늘도 그랬지만, 이혼할 생각을 품고 있죠. 하여간 찰리는 뭔가 낌새를 채는 것같고... 논리는 소용없어요. 내가 아무리 얼버무리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찰리는 느끼는 거예요... 프레드, 알겠어요?"

 

"뭘 느낀다는 거야?"

 

"금지하는 법이 없잖아요?"

 

"뭐를 금지해?"

 

"내 말은... 남매가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 아무도 참견하려고 하지 않는다... ."

 

남자가 긴장한 채 여자에게서 멀어졌다.

 

"미쳤군."

 

"내가 왜 미쳐요? 프레드! 무슨 이유로 미쳐요, 내가?"

 

"넌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아. 그것뿐이야."

 

"그럼, 앞으로 어떡하죠?"

 

남자가 대꾸하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댄 채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여자의 두 눈과 젖은 눈썹을 목덜미로 느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관계를 계속하는 것뿐이야. 산통이 깨지지 않도록 넌 조심해야 돼."

 

"그렇다면 난 찰리에게 잘 해줘야겠군요. 안 그러면 날 버릴 테니까. 그래도 찰리를 탓할 수 없어요."

 

여자가 말없이 흐느꼈다. 남자가 말없이 여자를 부등켜 안았다.

 

"너무나 힘들어요. 프레드, 난 당신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언제나 만족한 척해야만 하는 거니까요."

 

 

 

둘이 말없이 서 있었다. 눈물을 거두고 손을 마주잡았다. 이윽고 점차 격정이 사랑과 연민 속에서진정되었다. 육체의 굶주림은 결실이 맺기 직전에 사랑으로 오랫동안 억제되어, 둘이 흔적도 재도 없이 모조리 불타버리고 한 줄기 불꽃 속에서 하나로 결합되었는데, 그와 똑같은 식으로 둘의 격정은 오랜 침묵 속에서 서서히 진정되었다.

 

드디어 키스했다. 남매간의 부드럽고 뜨거운 키스였다.

 

"프레드, 늦겠어요. 일자리에서 쫓겨나겠어요."

 

"딴 일을 얼마든지 또 구할 수 있어."

 

"난 언제든지 다른 남편을 얻을 수 있어요."

 

"올리브 오일... 그 하얀 네글리제를 입으니까 정말 멋지게 보여."

 

"그래요. 난 발가벗는 게 어울리는 타입은 아녜요. 옷을 입어야죠."

 

"그건 그래. 난 가야겠어."

 

"내일도 오는 거죠?"

 

"그럼, 열 시는 어때?"

 

"좋아요."

 

"찰리를 행복하게 해 줘라. 알았지?"

 

"당신 걱정이나 해요. 사랑하는 프레드, 당신 걱정이나 하라구요... 당신 걱정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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