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안톤 체호프

안톤 체호프 (Anton Chekhov 1860년 1월 29일, 러시아 - 1904년 7월 15일 )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대초원》, 《갈매기》, 《벚꽃 동산》등 많은 희곡과 소설을 남겼다.
안톤 체호프 (Anton Chekhov 1860년 1월 29일, 러시아 - 1904년 7월 15일 )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대초원》, 《갈매기》, 《벚꽃 동산》등 많은 희곡과 소설을 남겼다.

우수 (忧愁)

이 슬픔을 누구에게 호소할까?

황혼이었다. 커다란 눈송이는 불이 켜진 가로등 옆을 너울거리면서 지붕이며, 발등, 어깨 모자위로 떨어져, 얄팍하고 포근한 보료를 이루곤 하였다. 마부(馬夫) 요나 포타포프는 마치 유령처럼 전신이 하얗다. 그는 최대한도로 몸을 굽히고 마부석에 앉아 잠자코 있었다. 설령 그 위에 눈사태가 떨어지더라도 눈을 털어 버릴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말도 온통 하얗고 꼼짝하지 않는다. 그 부동의 자세, 변모된 모습, 말뚝처럼 꼿꼿한 다리로 하여 아이들이 좋아하는 1카페이카 짜리 설탕과자 처럼 보였다. 그 말은 어느 모로 보나, 정녕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쟁기를 벗어나고, 낯익은 평범한 경치에서 떠나, 도깨비처럼 번쩍이는 불 하며, 끊임없이 일어나는 소음,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들어왔으니 그럴 수밖에.

요나와 그의 말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들은 점심 전에 숙소에서 나왔지만, 여태 개시를 못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벌써 석양이 덮이기 시작하였다. 파리하게 보이던 가로등 불빛은 붉은 색으로 반짝이고 거리는 점점 혼잡을 이루었다.

「마부, 브이보르그스카야까지 가세!」

이윽고 별안간 이런 소리가 요나의 귀를 울렸다.

「마부!」

요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에 덮인 속눈썹 속으로 털외투를 걸친 군인의 모습이 비쳐왔다.

「브이브로그스카야까지 가요!」

하고 군인은 다시 말하였다.

「아니, 여봐! 졸고 있어! 브이보르그스커야까지 가자니까 그래.」

요나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말 잔등과 그의 어깨에서 눈더미가 무너져 내렸다…… 군인은 썰매에 올라탔다. 마부는 쯧쯧 혀를 차고는 백조처럼 몸을 빼고 상반신을 일으키며, 반드시 필요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습성에서 회초리를 흔들었다. 말도 길게 목을 뽑고 말뚝처럼 꼿꼿하던 다리를 굽혀 천천히 발길을 옮겨 놓았다……

「이 자식, 어디로 가는 거야!」

앞뒤로 붐비는 군중들 속에서 요나에게 이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가! 좀 더 오른쪽으로!」

「여봐! 말도 몰 줄 몰라! 오른쪽으로 가라잖아?」

군인도 화를 버럭 내며 외쳤다.

사륜마차의 마부가 마구 퍼붓는 욕설이었다. 그러자 길을 건너가려다가 말 콧등에 어깨를 부딪친 행인이 사나운 눈초리로 요나를 쏘아보며, 소매에 묻은 눈을 털어버렸다.

요나는 마부석에서 허둥지둥하면서 팔꿈치를 양쪽에 내밀고 얼빠진 사람처럼 눈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또 어찌하여 이런 곳에 들어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얼빠진 녀석들 같으니!」하고 군인은 투덜거렸다.

「말에 부딪치는 자가 없나, 말밑으로 기어드는 자가 없나, 모두들 같은 족속들이야!」

요나는 손님을 돌아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무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으나, 목구멍에서는 코를 고는 듯한 목소리 밖에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하는 거야?」

하고 군인은 물었다.

요나는 억지로 히죽이 웃어 보이며, 입을 찡그리고 목구멍에 힘을 주어 목쉰 소리로 말하였다.

「나으리…… 저 말이에요, 이번 주일에 제 아들 놈이 죽었거든요.」

「으흠!…… 왜 그렇게 되었소?」

요나는 몸을 손님 쪽으로 돌리며 말하였다.

「그걸 누가 압니까. 아마 열병인가 봐요…… 사흘 동안 병원에 누워 있다가 그만 죽어 버렸어요.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어요?」

「비켜 이 병신 자식아!」 어둠 속에서 이런 욕설이 들려왔다.

「뭘 꾸물거리고 있어, 늙은 놈이 눈은 두었다 뭘 하는 거야!」

「자, 좀 더 빨리 달려!」 하고 손님은 재촉하였다.

「이래서는 내일까지도 못 가게 생겼소. 좀 더 세차게 몰아 봐!」

마부는 또다시 목을 빼고 상반신을 일으키며 대견스러운 듯이 회초리를 흔들었다. 요나는 여러 번 손님 쪽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잠자코 앉아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 사정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요나는 브이보륵스카야 거리에서 손님을 내려놓자 주막집 옆에 말을 멈추고, 마부석에 도사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펄펄 내리는 눈송이는 다시금 요나와 말을 하얗게 덮어 버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이윽고 요란스럽게 덧신을 쿵쾅거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세 사람의 젊은이가 한길을 자나갔다. 두 사람은 키가 후리후리하고, 한 사람은 난쟁이 꼽추였다.

「마부, 경찰교(橋)까지 가!」

꼽추가 쇳소리 같은 목청을 뽑았다.

「세 사람 몫으로 20카페이카면 되지?」

요나는 고삐를 잡아당기며 쯧쯧 혀를 찼다. 20카페이카는 너무 싸구려였지만, 그는 값을 따질 처지가 못 되었다.…… 1루블이건 5카페이카건 지금 그로서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다만 손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청년들은 떠들썩하며 썰매 옆으로 다가왔다. 세 사람은 썰매에 올라탔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앉고 한 사람은 서야 하므로 누가 설 것인가에 대하여 세사람이 한참 옥신각신하던 끝에, 가장 키가 작은 꼽추가 서게 되었다.

「자 어서 가!」

꼽추는 자리를 잡고 서자, 요나의 뒤통수에 입김을 불어대며 쇳소리로 외쳤다.

「내려쳐요! 그런데 영감 그 벙거지 참 멋있소! 페테르부르그를 다 훑어도 그런 벙거지는 없을 거요……」

히히…… 히히…… 하고 요나는 웃어보였다.

「그래도 네게는 둘도 없는 모자라오……」

「어쨌든 빨리 달리기나 해요! 쭉 이렇게 늑장을 부릴 참에요? 목덜미가 근질근질하나보군!」

「아, 머리가 깨어지는 것 같군……」

키다리 중의 한 사나이가 말하였다.

「어제 두크마소프의 집에서 바시카와 둘이 코냐크를 네 병이나 들이켰거든.」

「거짓말 말아, 누가 곧이들을 줄 알아?」

또 한 사람이의 키다리가 볼멘 소리로 말하였다.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뭐 거짓말이라구? 벼락 맞을 소리 말어.」

「차라리 이가 기침을 한다고 하지 그래.」

히……히, 히, 히.... 하고 요나는 웃었다.

「재미있는 분들이셔!」

「아니 이봐!」

하고 꼽추가 투덜대었다.

「이 늙은 고리라야. 말을 달리는 거야? 이것도 썰매야? 회초리를 내려쳐! 이 영감쟁이야! 좀 더 빨리 뛰어 봐!」

요나의 등 뒤에서 꼽추가 몸을 비비 꼬며 떨리는 음성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기에게 퍼붓는 이런 욕설은 듣든지, 손님들의 몰골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차츰 가슴 속에서 고독감이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꼽추는 부질없이 떠드는 욕설에 목이 잠겨 쿨룩쿨룩 기침을 하였다. 두 사람의 키다리는 마제쥬다 페트로보나라는 여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었다.

요나는 가끔 그들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말이 뜸한 틈을 타서 다시 뒤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이번 주일에 말씀이에요…… 제 아들놈이 죽었어요!」

「인간은 모두 죽게 마련이야……」

꼽추는 기침을 하고 나서 입술을 문질러대며 헐떡이는 소리로 말하였다.

「어서 달려요, 자 달려! 이렇게 늑장을 부린다면 난 견딜 수 없어, 도대체 언제까지 갈 심산이야!」

「영감 좀 더 기운을 내요. 말의 목덜미를 후려갈겨요!」

「아니 이 영감쟁이가 사람의 말을 듣나 먹나? 모가지라도 비틀어야 알겠어…… 점잔을 빼고 잠자코 있으니까, 이거 걷는 것보다 나을 것 없군 그래……영감,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남의 말을 아주 깔아뭉갤 작정이야?」

요나는 자기의 뒤통수를 정말 때릴지도 모를 기세인데도 그들의 욕지거리가 오히려 재미있게 들렸다.

히, 히, 히…… 그는 웃어 보이며 말하였다.

「재미있는 분들이셔…… 제발 건강들 하슈!」

「여봐! 임자에게도 마누라가 있나?」

하고 키다리 중의 한 사람이 물었다.

「저 말예요? 히, 히, 히…… 재미있는 분들이셔! 암, 있구 말구요. 무덤 속에 말예요. 히히히…… 축축한 그 땅속에 말예요! 그리고 아들놈도 죽었어요. 저는 살구요. 이상도 하지요. 염라대왕이 길을 잘못 들었어요……. 제한테 온다는 게 그만 아들놈한테 갔으니 말예요……」

이어서 요나는 자기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이야기하려고 되돌아보았지만, 이때 꼽추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겨우 목적지에 닿았다고 하였다. 요나는 20카페이카를 받아 쥐고 나서도, 어두운 한길로 멀리 사라져가는 주정뱅이들의 뒤를 한참 동안 전송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그의 주변에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한때 잠잠했던 우수(憂愁)가 다시 그를 휩쓸어 들볶기 시작하였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그의 눈초리는, 수 천 명으로 헤아리는 이 많은 군중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이 없을까 하고 오가는 군중 뒤를 부지런히 쫓고 있었다. 그러나 군중 들은 그와 그의 우수에 대하여는 아랑곳 없다는 듯이 부지런히 스쳐가기만 하였다.…… 한편 그의 우수는 한없이 부풀어만 갔다. 만일 그의 가슴을 쪼개어 그 안에 들어 있는 우수를 모조리 몰아낸다면, 온 세상에 넘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우수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대낮에 불빛을 밝히고 볼 수 없는 그런 하잘 것 없는 껍질 속에는 곧잘 처박힐 수도 있는 것이다.

요나는 가마니를 손에 든 머슴에게 말을 걸어 보고 싶었다.

「여보게 지금 몇 시나 됐지?」

하고 그는 사나이에게 물었다.

「아홉 시가 지났소.…… 뭣 하러 이런데 서 있는 거요? 어서 가 봐요!」

요나는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등을 구부리고 온몸을 우수에 내맡겼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는 5분도 못되어, 상반신을 곧게 세우고 마치 심한 통증이라도 느끼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야지>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숙소로!> 그러자 말도 주인의 심정을 짐작하는 것처럼, 재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 반쯤 지나 그는 크고 초라한 난로 가에 앉아 있었다. 난로 가에서도, 마루와 벤치 위에서도 사람들이 코를 골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공기가 탁하였다.……요나는 잠자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몸을 긁적거리며 숙소로 너무 빨리 돌아온 것을 후회하였다.

「보리 값도 못 벌었소.」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러니 이렇게 마음이 우울할 밖에. 벌이가 좋은 사람들은 배고픈 줄 모르고 말에게도 먹을 것을 넉넉히 주니 마음이 편한 것은 정한 이치야……」

한구석에서 젊은 마부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졸린 듯이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물통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물 마시고 싶어?」

하고 요나는 물었다.

「그래.」

「그럼 실컷 마셔…… 그런데 말이야 이 사람아, 내 아들 녀석이 죽었어…… 알아들었나? 이번 주일에 병원에서 말이지…… 세상이란 참!」

요나는 자기 말이 젊은이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알고 싶었지만 허사였다. 젊은이는 머리에서부터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벌써 잠들고 있었던 것이다. 영감은 한숨을 몰아쉬고 몸을 긁적거렸다.…… 젊은이가 물을 마시고 싶었던 것처럼 그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들이 죽은 지 한 주일이나 되지만, 그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아들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다. 남에게 들려주려면 요령 있게 상세히 이야기해야 한다.…… 병에 걸린 원인, 고통을 당한 상태, 죽기 전에 한 말, 죽을 때의 모습 등등을 이야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장례식의 광경이며, 죽은 아들의 옷을 찾으러 병원에 갔을 때의 일까지 이야기해야 한다.

시골에는 딸 아니시야가 있었다. 그 딸에 대하여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그가 해야 할 이야기는 얼마나 엄청난 분량인가?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저마다 감동하여 한숨을 쉬며 가슴 아프게 생각할 것이다. 상대편이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여자라면 그녀가 아무리 바보라도, 한 두 마디에 벌써 상대편에서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말이라도 가서 살펴볼까?>하고 요나는 생각하였다.

<잠은 언제라도 잘 수 있다.…… 그리고 얼마든지 잘 수 있다……>

그는 옷을 주워 입고 마구간으로 갔다. 귤이며, 마른 풀이며, 날씨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혼자 있을 때는 아들 생각을 할 수 없다.…… 말동무가 되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몰라도, 혼자서 이들의 생각을 하고, 그 모습을 눈앞에 그려본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먹고 있어?」

요나는 반짝거리는 말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 먹어…… 귀리 값을 못 벌면 마른 풀이라도 뜯어야지…… 그래…… 마차를 끌자니 내가 늙을 밖에…… 아들놈이 끌어야 할 텐데…… 그 녀석은 참으로 훌륭한 마부였어…… 그 녀석만 살아 있다면……」

요나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 쿠지마 요느이치는 이 세상에 없어. 먼 곳으로 떠나갔어…… 보람도 없이 살다가 죽고 말았어…… 말아, 가령 네게 새끼 말이 있고, 넌 그 엄마라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그 새끼 말이 어딘가 먼 곳으로 가 버렸어. 그래도 너는 슬프지 않겠니?」

말은 먹이를 씹으면서,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주인의 손에 입김을 불기도 하였다……

요나는 흥분한 어조로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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