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보르헤스(아르헨티나)

호르헤 보르헤스[(Jorge Borges), 1899.8.24 ~ 1986.6.14.]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로서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단편들로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주요저서: (1935) (1944)  (1949) 등 다수.
호르헤 보르헤스[(Jorge Borges), 1899.8.24 ~ 1986.6.14.]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로서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단편들로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주요저서: (1935) (1944) (1949) 등 다수.

단편소설

엠마 순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1922년 1월 14일, <타르부흐 & 로웬탈> 방직공장에서 돌아온 엠마 순스는 현관 안쪽에 떨어져 있는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그 편지에는 브라질 소인이 찍혀 있었고, 편지를 읽어가는 도중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 외국 봉투와 우표는 그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이어 낯선 필적은 그녀로 하여금 이상스러운 불안 속으로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9,10줄의 글들은 멋대로 끄적거려 놓아 거의 편지지 전체를 메우려 들고 있었다. 엠마는 마이에르 씨가 실수로 다량의 베로날(수면제)을 잘못 먹었고, 바헤의 병원에서 그 달 3일에 죽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편지에는 리우 그란데의 폐인인가 파인인가 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묵었던 하숙집 동료의 사인이 들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서명한 편지가 망자의 딸에게 보내질 거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엠마는 종이를 떨어뜨렸다. 그녀가 받은 느낌은 속이 뒤틀리고, 무릎의 힘이 풀리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어버리는 죄책감, 비현실감, 한기,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어서 그날이 지나 다음날이 되어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곧 아버지의 죽음이 세상에서 일어난 유일무이한 사건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바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종이를 집어들었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녀는 마치 최종적인 사건의 결말들을 이미 알고나 있다는 듯 조심스럽게 그 편지를 서랍 속에 숨겼다. 아마, 그녀는 이미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어렴풋이나마 지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아마 이미 그것들을 헤아려보기 시작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말하자면 그녀는 이미 앞으로 자신이 되게 될 그런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깊어가는 밤의 어둠 속에서 엠마는 그 날의 마지막 시간까지, 행복했던 그 옛날에는 엠마누엘 순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마누엘 마이에르의 자살을 애도하며 흐느꼈다. 그녀는 괄레과이 근처에 있는 작은 농장에서 보냈던 여름 휴가를 기억했고, 어머니를 기억했고(기억하려고 했고), 나중에 경매에 넘겨졌던 라누스에 있던 작은 집을 기억했고, 마름모꼴의 노란 창유리를 기억했고, 영장과 치욕을 기억했고, <경리 직원의 공금 횡령>에 관한 신문기사와 함께 기사화된 익명의 중상모략 편지들을 기억했고, 마지막 날 아버지가 도둑은 로웬탈이라고 맹세를 했던 그 순간을 기억했다. (그녀는 결코 그 순간을 잊지 않았다.)

로웬탈, 전에는 공장 매니저였고, 지금은 공장 소유주들 중의 하나인 아론 로웬탈. 1916년 이래 그녀는 이 비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 누구에게도, 가장 친한 친구인 엘사 우르스테인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 그 저열한, 믿기 힘든 사실을 회피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아마 그녀는 그 비밀을 자신과 부재한 아버지 사이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끈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몰랐다. 로웬탈은 엠마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엠마 순스는 이 사소한 비밀 하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용트림을 하며 솟구쳐 오르는 힘의 분출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그 날 밤 그녀는 잠을 자지 않았다. 첫번째 빛이 창문의 사각형을 뚜렷이 드러냈을 때 그녀의 계획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그날이 다른 여느 날과 마찬가지가 되도록 안간힘을 썼다. 공장에서는 파업의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엠마는 언제나처럼 그 어떤 폭력에도 반대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저녁 6시, 일이 끝나자 그녀는 엘사와 함께 체육관과 수영장이 있는 여성 클럽으로 갔다. 그녀들은 등록을 했다. 그녀는 되풀이해서 자신의 이름과 성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해야 했고, 신체검사를 하는 사람들이 건네는 저속한 농담에도 대꾸를 해주어야 했다. 그녀는 엘사, 크론푸스 자매들 중의 막내와 일요일 오후에 무슨 영화를 볼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엘사와 크론푸스 가의 막내는 자신들의 남자 친구들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러나 아무도 엠마에게서 그런 것에 관련한 어떤 말이 나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4월이 되면 그녀는 19살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전히 그녀에게 거의 정신병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타피오카 스프와 야채를 준비했고, 일찍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해서 힘들었고, 그러나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그 날의 이브, 15일 금요일 밤이 지나갔다.

토요일, 조바심이 그녀를 깨웠다. 초조감이 아닌 조바심,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는 야릇한 안도감. 이제 더 이상 그녀는 계획을 세우거나, 상상 같은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몇 시간만 지나면 사건들은 간명한 자신들의 결과에 도달할 것이었다. 그녀는 <라 쁘렌사>에 그 날 말뫼에서 온 노르드스트하르난 호가 제3부두를 떠날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녀는 로웬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그에게 다른 여공들 모르게 파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는 은근한 암시를 주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면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한 떨림은 밀고자의 음성으로서 아주 적합한 것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주목할 만한 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엠마는 12시까지 일을 했고, 그런 다음 엘사, 그리고 뻬뜨라 크론푸스와 일요일 외출의 스케줄을 확정지었다. 그녀는 점심을 먹은 후 드러누워 눈을 감은 채 이미 구상해 놓은 계획을 점검해보았다. 마지막 단계는 처음 단계보다 덜 두려울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에게 승리와 정의를 탐미할 수 있도록 해주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그녀가 벌떡 일어나 옷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옷장의 서랍을 열었다. 밀톤 실스의 초상화 밑에 그녀가 어젯밤 숨겨두었던 파인의 편지가 있었다. 그 누구도 그것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읽기 시작했고, 그런 다음 그것을 조각조각 찢어버렸다.

그 날 밤에 일어났던 일들을 현실과 결부시켜 보는 것은 힘들 뿐더러, 아마 부당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지옥 같은 성상, 공포를 완화시켜 주지만 또한 아마 공포를 더욱 가중시켜 줄지도 모르는 그런 어떤 성상은 비현실적이었다. 그것을 실행했던 사람에게조차 거의 믿기지 않는 그런 행동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믿어지게 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엠마 순스의 기억이 재생시키기를 거부하고, 그리고 재생시켜 보려고 하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버리는 그 짤막한 혼돈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단 말인가? 엠마는 알마르고에 있는 리니에르스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녀가 그날 오후 항구에 갔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마 그녀는 그 악명 높은 빠세오 데 훌리오 거리에서 거울들 속에 비추어져 수없이 증식되고, 불빛들 때문에 훤히 드러나고, 욕망에 굶주린 눈들에 의해 발가벗겨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처음에 그녀는 남의 눈에 띄지 않은 채 무심한 건물들의 현관을 따라 방황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보다 합당하리라...... 그녀는 두세 군데의 술집에 들어갔고, 그곳의 다른 여자들이 매일 하는 일과와 그녀들의 기술을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노르드스트하르난 호의 선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 중의 하나는 매우 젊었는데, 그녀는 그가 혹 자신에게 어떤 감정 같은 것을 느끼도록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을 택했다. 아마 그녀 자신보다 키가 작은 것 같고, 난폭해 보이는 그 사람을 택한 것은 공포의 순수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었다. 그 남자는 그녀를 어떤 문쪽으로, 그런 다음 어두침침한 현관으로, 그 다음에는 다시 비좁은 층계로, 그리고 다시 한 작은 방으로 (거기에는 그녀가 살았던 라누스의 집에 있었던 것들과 똑같은 마름모꼴 장식창들이 있었다) , 그런 다음 다시 복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뒤에서 쿵, 닫힌 방문으로 데려갔다. 그 고난스러운 사건들은 시간의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조금 전의 과거는 미래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고, 이 사건들을 구성하고 있는 시간의 부분들은 지속적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 밖의 시간 속에서, 서로 무관하고 참혹한 감각들의 당혹스러운 혼돈 속에서, 엠마는 단 한 차례라도 이러한 희생을 감수하도록 만든 그 죽은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 그녀는 한번쯤은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한번쯤은 자신의 절망적인 음모가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는 게 나의 믿음이다. 그녀는 이 남자가 자신에게 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일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가녀린 놀라움 속에서 그것을 생각했고, 즉시 현기증 속으로 도피해 들어갔다. 스웨덴 사람인지, 핀란드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그 남자는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다. 그는 마치 그에게 있어 엠마가 그러하듯 엠마에게 있어 하나의 도구였다. 그러나 그가 정의가 구현되도록 그녀에게 봉사하고 있는 반명, 그녀는 쾌락이 성사되도록 그에게 봉사하고 있었다.

홀로 남게 되었을 때 그녀는 즉시 눈을 뜨지 않았다. 작은 침실용 테이블에는 그 남자가 남기고 간 돈이 놓여 있었다. 엠마는 일어나 앉았고, 편지를 찢어버렸을 때처럼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돈을 찢어버리는 것은 빵을 버리는 것처럼 불경한 일이다. 엠마는 그렇게 해놓고서는 곧 후회를 했다. 자존심에 따른 행동, 그리고 그 날에 있어서만은...... 그녀가 느끼고 있었던 공포는 육체의 비애, 그리고 혐오감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슬픔과 구토감이 그녀를 사슬처럼 얽어맸다. 그러나 엠마는 천천히 일어났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이미 햇빛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석양의 마지막 빛조차 희미하게 잦아들고 있었다. 엠마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리의 모퉁이에서 그녀는 서쪽으로 가는 라끄로세 전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맨 앞좌석을 택했다. 아마 그녀는 거리를 따라가는 전차의 맥빠진 움직임 속에서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이 세상의 사물들을 오염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마음의 위안을 느꼈을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눈에 들어왔다가 금세 사라지는 집들의 수가 적은 어두컴컴한 교외를 지나갔다. 그녀는 와르네스의 한 보도에서 내렸다. 그녀가 느끼는 피로는 역설적으로 그녀에게 도리어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벌이고 있는 모험의 조목조목에 대해서는 정신을 집중하는 대신, 그것의 내막과 목적에 대해서는 무심하도록 만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론 로웬탈은 모든 사람에게 진중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몇 안 되는 가까운 친지들에게는 구두쇠였다. 그는 공장 건물의 꼭대기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그는 그곳이 시의 벌거숭이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도둑을 두려워했다. 공장의 마당에는 거대한 몸집의 개 한 마리가 있었고, 모든 사람은 그의 책상 서랍에 권총 한 자루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작년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 때문에 아주 슬프게 울었지만 - 가우스라는 성을 가진 그의 부인은 그에게 상당한 금액의 지참금을 가져왔었다. - 그의 진정한 열정은 돈이었다. 그는 스스로조차 몰래 얼굴을 붉힐 정도로 자신이 돈을 버는 일보다 돈을 저축하는 일에 더 광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느님과의 어떤 비밀 계약, 즉 기도를 하고 경건한 태도를 지킴으로써 선행을 하지 않아도 되는 면책 특권을 받았다고 믿고 있었다. 대머리에 뚱뚱한 체구, 상중임을 알리는 검은 리본을 착용하고, 금빛 구렛나루 수염에 잿빛 안경을 쓴 그는 창가에 서서 여공 순스의 밀고 내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철문을 밀고 들어와 (그는 그녀를 위해 그것을 약간 열어놓았었다), 음울한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쇠줄에 묶여 있는 개가 짖어대자 그녀가 약간 곡선을 그리며 길을 트는 것을 보았다. 마치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엠마의 입술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로웬탈이 죽기 직전에 들은 그 말들의 끊임없는 반복이었다.

일은 엠마가 예견했던 것처럼 그렇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그 전날 새벽부터 그녀는 수없이 꿈꾸었다. 단단히 총을 겨누고, 그 비열한 놈에게 그 비열한 범죄를 고백하도록 만들고, 신의 정의가 인간의 정의를 이길 수 있도록 해줄 그 대담한 책략이 실현되는 꿈(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정의의 실현 도구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녀는 인간의 법에 의해 처벌받기를 원치 않았다) 그런 다음 그의 가슴 중앙 부분을 때리는 한 발의 총알이면 로웬탈의 운명을 봉인해 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아론 로웬탈 앞에 서자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보단느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분노에 대한 형벌을 내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 동안 겪은 그 세세한 치욕감 때문에 그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그녀는 뜸을 들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겁에 질린 듯한 자세로 앉아 그녀는 로웬탈에게 이렇게 밤늦게 찾아온 결례에 대한 용서를 구했고, 비밀을 지켜달라고(밀고자의 특권으로) 간청했고, 몇 사람의 이름을 댔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들먹였고, 그리고 마치 공포에 눌린 듯 문득 말문을 닫았다. 그녀는 목이 타니까 물 한 컵을 가져다 달라는 빌미로 로웬탈로 하여금 자리를 뜨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녀의 호들갑이 가진 깊은 내막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로웬탈은 자상한 마음씨로 부엌으로 가 물을 가지고 왔다. 그때는 이미 엠마가 책상 서랍에서 그 무거운 권총을 꺼내든 뒤였다. 그녀는 두 번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거대한 몸뚱아리가, 마치 총성과 연기가 부숴뜨려 놓아버린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물컵이 깨졌고, 경악과 분노에 섞인 그의 얼굴이 그녀를 노려 보았고, 그의 입은 스페인어와 이디쉬어로 그녀에게 저주의 욕설을 퍼부었다. 흉칙한 욕설들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엠마는 다시 한번 총을 발사해야 했다. 마당에 묶여 있는 개가 짖어대기 시작했고, 피가 그의 추잡한 입술로부터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 그의 구레나룻과 옷을 적셨다. 엠마는 준비해 두었던 고발문을 외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복수를 했고, 그 누구도 나를 처벌할 수 없을 거야.....) 그러나 로웬탈은 이미 죽어 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그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이 했던 말의 뜻을 이해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급박하게 의식의 귓전에 달겨드는 개 짖는 소리가 그녀로 하여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소파를 흐트러 놓고, 시체 웃옷의 단추를 풀어제꼈고, 튕겨나간 코안경을 서류 캐비닛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전화기를 들고 이미 수없이 되풀이해 되뇌어 보았던 그것을 이러 저러한 말들로 다시 반복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요......로웬탈씨가 파업 때문에 상의할 일이 있다고 저를 오라고 해서......그가 나를 겁탈했고, 그래서 내가 그를 죽였어요......>

사실 이 이야기는 믿기 힘든 것이었지만 본질적으로 진실이었기에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엠마 순수의 그 떨리는 어조는 진실이었고, 그녀의 수치감은 진실이었고, 그녀의 증오는 진실이었다. 그녀가 겪었던 분노 또한 진실이었다. 단지 주변 정황과 시간, 그리고 한 두어 사람의 이름들만 거짓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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