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루이지 피란델로(이탈리아)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생몰: 1867년 6월 28일 ~ 1936년 12월 10일/이탈리아의 소설가, 극작가, 시인으로 시칠리아 출신이다. 로마대학교에서 고전문학 교수와 논쟁을 벌인 후 독일의 본대학교로 편입해 아그리젠토 방언에 관한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염세적인 스타일의 시집 《불만》(1889)으로 시작해 일곱 편의 장편소설과 264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1898년 희곡 로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고, 1910년부터 본격적인 극작가로 두각을 드러낸다. 대표작으로는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거죠》, 《작가를 찾는 6명의 등장인물》, 《엔리코4세》 등이 있다.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1904)로 193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생몰: 1867년 6월 28일 ~ 1936년 12월 10일/이탈리아의 소설가, 극작가, 시인으로 시칠리아 출신이다. 로마대학교에서 고전문학 교수와 논쟁을 벌인 후 독일의 본대학교로 편입해 아그리젠토 방언에 관한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염세적인 스타일의 시집 《불만》(1889)으로 시작해 일곱 편의 장편소설과 264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1898년 희곡 로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고, 1910년부터 본격적인 극작가로 두각을 드러낸다. 대표작으로는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거죠》, 《작가를 찾는 6명의 등장인물》, 《엔리코4세》 등이 있다.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1904)로 193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전 쟁(戰 爭)

루이지 피란델로[이탈리아]

 

야간 특급열차로 로마를 떠난 승객들은 철도망을 슬모나까지 연결시켜 주는 소형의 구식 열차로 바꿔 타기 위해 새벽녘까지 파브리아노라는 조그마한 역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새벽녘에 이르러 통풍도 안되고 담배연기 자욱한 이등객실 칸으로 깊은 수심에 잠긴 뚱뚱한 여자 한 사람이 밀려 올라왔다. 이미 다섯 사람이 밤을 지새운 이 열차 속에 새로 들어온 여인의 모습은 마치 되는대로 꾸린 짐짝 같아 보였다. 그녀의 뒤로 그녀의 남편이 신음 소리를 내고 숨을 헐떡이면서 따라 올라왔다. 그의 체구는 조그맣고 야위었으며 얼굴은 창백하고, 작지만 빛나는 두 눈에는 근심과 불안의 그림자가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자리를 잡고 난 뒤 그는 아내에게 자리를 마련해 준 승객에게 예의를 갖추어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런 뒤 아내 쪽으로 몸을 돌려 코트 깃을 내려주며 조용히 물어보았다.

“괜찮소, 여보?”

아내는 대답 대신 코트 깃을 눈 높이까지 끌어올려 얼굴을 감추려고 하였다.

“몹쓸놈의 세상!”

남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승객들에게 가련한 자기의 아내가 얼마나 불행하게 되었는지를 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그녀로부터 그들 부부가 평생을 바쳐 애지중지해 온 스무살 난 외아들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그들은 슬모나의 집까지 내팽겨 둔 채, 로마로 공부하러 떠난 아들을 따라 로마에까지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소 6개월 내에는 전방으로 배치되지 않는다는 보장 하에 군에 자원 입대하겠다는 아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3일 내로 떠나게 되었으니 가서 아들을 전송해 달라는 전보를 받았던 것이다.

커다란 코트를 몸에 걸친 여인은 몸을 비틀고 비비 꼬면서 이따금 성난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녀는 승객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괴로운 처지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자 남편의 설명은 아무런 동정심도 불러일으킬 수 없으리라고 믿어버렸다.

승객들 중에 관심을 갖고 남편의 말을 듣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당신 아들이 이제야 전선으로 떠난다니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겁니다. 내 아들은 전쟁이 나던 날 전선에 투입되었답니다. 벌써 2번씩이나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왔다가 다시 전선으로 보내졌답니다.”

“내 경우는 또 어떻구요. 내 두 아들과 조카 세 놈이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중이랍니다.”또 다른 승객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걸요.”

남편이 기운을 내서 말했다.

“그것이 어떤 차이가 있단 말입니까? 아들이 하나라면 버릇이 없어질 정도로 애지중지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소? 부모의 애정이란 빵처럼 여러 개로 쪼개어 골고루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란 자식이 하나든 열이든 아무 차별 없이 모두에게 자기의 모든 사랑을 베푸는 법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두 아들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고 해서 그 아이들 각자에 대해 반반씩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아들을 지닌 아버지보다 두 배로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맞습니다...” 당황한 남편은 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물론 선생께 이러한 불행이 닥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만일 아들이 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아들이 싸움터에서 죽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아들이 살아 남는다면 아직도 그를 위로해 줄 아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야 그렇지요”라고 상대방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물론 아버지를 위로해 줄 아들이 하나 남는 셈이지요. 하지만 그 아버지는 남은 아들을 위해서 삶을 포기할 수는 없지요.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라면야 그 아들이 죽으면 같이 죽어 근심과 고통을 잊을 수 있지요. 어느 경우가 더 비참하겠습니까? 내 처지가 선생의 처지보다 더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요”

다른 승객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는 몸집이 뚱뚱했고 얼굴빛은 붉었으며지극히 창백한 잿빛 눈에 핏발이 서려 있었다.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튀어나온 두 눈에서는 병으로 쇠약해진 몸이 가눌 길 없는 내면적인 격한 감정을 분출시키고 있는 듯이 보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요.”그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앞니가 2개나 빠진 입을 감추려고 손을 들어 입가에 댔다. “도대체 우리가 우리들 좋으라고 애들을 낳습니까?”

다른 승객들은 침통하게 그를 응시했다. 전쟁 첫날부터 아들을 전선에 보냈다는 승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우리 품안의 자식들이 아니지요. 나라에 바쳐진 아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만두시오.”

몸집이 뚱뚱한 승객이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가 자식을 낳을 때 언제 나라 생각을 했단 말입니까? 아들들이 태어나는 것은... 그러니까, 그 녀석들이 태어나야 했기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태어나선 우리들의 생명까지 함께 누린다는 말이오. 내 말은 진실입니다. 우리가 그 녀석들에게 구속되는 것이지 아이들이 우리에게 구속된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그리고 녀석들이 자라 스무 살이 되면 우리가 스무 살이었을 때와 똑같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스무 살이었을 때 우리에게도 부모가 있었지요. 그러나 부모 말고도 다른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자들, 담배, 환상, 새로운 넥타이 등등... 물론 나라도 생각했지요. 우리가 20세 때 나라가 불렀다면 부모가 반대했더라도 기꺼이 그 부름에 따랐을 것입니다. 이제 이 나이가 되다 보니까 물론 나라에 대한 사랑이야 아직도 크지만 그것보다도 아들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더란 말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그럴 수만 있다면 아들 대신 전선에서 싸우겠다고 기꺼이 나서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고개만을 끄덕일 뿐.

뚱뚱한 승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스무 살 난 우리 아들들의 감정을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 스무 살 난 아들들이, 물론 올바르게 큰 아들의 이야기지만,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는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단 말입니까?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결국 그 녀석들은 더 이상 힘이 없어 집이나 지킬 늙은이로 우리를 보게 될 터이니까요. 나라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나라를 지켜야 할 필요성이 있는 한 마치 배 굶어 죽지 않으려고 우리 모두 빵을 먹듯이 누군가 나라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아들들이 스무 살이 되면 전선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눈물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더라도 그들은 몸을 불사르며 행복하게 죽어가기 때문이지요. 물론 나는 제대로 큰 아이들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젊어서 행복하게 죽을 수 있어 인생의 추한 면이나 권태, 사악한 면이나 환멸의 쓰라림을 겪지 않아도 된다면 그들에게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러니 모두 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모두 나처럼 웃어야만 합니다. 아니면 나처럼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아들은 죽기 전에 내게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그 녀석이 바라던 대로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일생을 행복하게 마치고 있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나는 상장喪章도 달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여주려는 듯 가벼운 황갈색 코트를 흔들어보였다. 빠진 앞니를 감춘 그의 납빛 입술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고 두 눈은 물기가 어린 채 움직일 줄 몰랐으며, 이내 그는 흐느낌이라 해도 좋을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정말 그렇게 되었군요... 정말 그래요...”모두들 그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코트로 몸을 감싼 채 구석에 쳐박혀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여인은 지난 3개월 동안 남편이나 그녀의 친구들이 건네 준 말 속에서 그녀의 깊은 슬픔을 달래줄 수 있었던 것이 없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애정을 단념하고 아들을 죽음으로는 아니더라도 생명이 위험한 곳으로 보내야 하는 쓰라린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말 속에서도 그녀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 볼수록 자신의 슬픔을 같이 느껴 줄 사람이 없다는 데에 이르자 그녀는 더욱 더 비탄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승객으로부터 들은 말 속에는 그녀를 깜짝 놀라서 정신을 잃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틀린 생각을 갖고 있어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과 이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울거나 좌절하지 않는 다른 아버지나 어머니와 같이 스스로 의연해지지 못했던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고 깨달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구석으로부터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 뚱뚱한 남자가 승객에게 들려주는 국왕과 나라를 위해 후회없이 행복하게 죽어 간 그의 아들의 영웅적인 죽음을 주의깊게 그리고 자세히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싶었다. 전혀 그러한 세계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냉철하게 전할 수 있는 용감한 아버지에게 승객들이 찬사를 보내는 것을 보고 흡족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리고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댁의 아드님도 정말 죽었단 말입니까?”

모두 그녀를 응시하였다. 뚱뚱한 노인도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면서 크고 앞으로 툭 튀어나온, 그리고 심하게 물기가 어린 밝은 잿빛의 눈을 그녀의 얼굴 깊숙한 곳에 고정시켰다. 얼마 동안 그 노인은 애써 뭐라고 대답해주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어리석고 엉뚱한 질문으로 그의 아들이 정말로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이 찌푸러드는가 싶더니 무섭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파묻고, 모든 사람들이 놀라는 가운데 처절하고 가슴을 찢는 듯한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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