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마르케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Márquez] 콜롬비아 소설가/ 출생-사망: 1927년 ~ 2014년/ 라틴 아메리카의 창세기(創世記)로 일컬어지는 대하소설 《100년의 고독(1967)》으로 1982년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Márquez] 콜롬비아 소설가/ 출생-사망: 1927년 ~ 2014년/ 라틴 아메리카의 창세기(創世記)로 일컬어지는 대하소설 《100년의 고독(1967)》으로 1982년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단편소설

푸른 개의 눈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그때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가 처음으로 나를 쳐다봤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내가 램프 뒤로 돌아섰을 때에도 계속해서 등 뒤에서 미끄러지는 그녀의 시선을 어깨 위로 느꼈다. 그러자 문득 나는 그녀를 처음으로 쳐다보는 것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의자의 뒷다리 하나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의자를 돌리기 전에 매큼하고 독한 연기를 빨아 마셨다.

그런 후, 매일 밤처럼 난 그녀가 거기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램프 옆에 멈춰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서로를 바라보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난 자리에 앉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의자 뒷다리 하나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서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긴 손 하나를 램프 위에 얹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항상 같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내가

「아, 푸른 개의 눈」

하고 말하자 그녀는 램프 위의 손을 치우지 않은 채

「그래요. 이제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군요. <푸른 개의 눈> 난 온통 그 말을 써 놓았지요.」

하고 말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램프 곁을 벗어났다.

그녀가 화장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정교한 빛이 한군데로 모아지고 거기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둥그런 체경을 통해 눈에 들어왔다. 활활 타오르는 잿빛의 눈으로 그녀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장미빛 자개가 박힌 작은 상자를 여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코에 화장 분을 바른 다음 작은 상자를 닫고 일어나 다시 램프 쪽으로 걸어왔다.

「누가 이 방의 꿈을 꾸다가 내 물건들을 흩으러 놓을까 봐 겁이 나요.」

그녀는 불꽃 위로 가늘게 떨리는 긴 손을 펼쳤다. 체경 앞에 앉기 전에 불을 쬐던 그 손이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춥지 않아요?」

「가끔.」

「지금은 추위를 느껴야 돼요.」

그때 나는 왜 내가 혼자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던가를 생각해 냈다. 나의 고독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어 준 것은 바로 그 추위였다. 나는 또 말했다.

「지금 추위를 느껴. 그런데 이상해. 밤은 고요하거든. 어쩌면 침대시트가 내 몸에서 벗겨져 나간 지도 몰라.」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체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의자 위에서 몸을 돌렸다. 나는 보지 않고도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녀가 다시 체경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내 등을 보고 있었다. 내 등이 체경 깊숙한 곳까지 비춰질 시간은 충분했다. 그녀의 시선도 내 등이 있는 데까지 파고들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내 등을 보고 시선을 돌렸을 여유까지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손은 다시 입술을 만지고 있었다. 그녀가 거울 앞에서 손질을 하던 그 진홍빛 입술에 다시 손을 댈 때까지 나는 내 앞에 있는 반반한 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눈먼 거울 같아서 거기 앉아 있는-내 등 뒤에 앉아 있는-나는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 벽 대신 거울이 놓여 있는 것처럼 그녀를 빨리 상상해보며 말했다.

「너를 보고 있어.」

눈먼 벽에서 나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눈을 치켜 뜨고 벽을 향해 얼굴을 돌린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그녀도 나처럼 거울 안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나도 그녀가 다시 눈을 내려깔고 자신의 조끼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나는 다시 말했다.

「내가 너를 보고 있대도.」

그녀는 다시 자켓에서 시선을 떼어 위로 치켜 올리면서

「그건 불가능해요.」

하고 말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는 시선을 다시 자켓에 떨어뜨린 채 말했다.

「당신이 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죠.」

나는 의자를 돌렸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내가 체경 앞에 서자 그녀는 또 다시 램프 옆에 섰다. 그녀는 불꽃 위로 손을 쫙 펴고 있었다. 마치 암탉이 두 날개를 펼치고 서있듯이. 그녀의 손가락 때문에 그녀의 얼굴이 그늘졌다. 그녀는 그 모습 그대로 램프에 몸을 태우면서 말했다.

「난 다시 추워질 것 같아. 꽁꽁 얼어붙은 도시가 될 거야.」

그녀는 다시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구릿빛에서 붉은 빛으로 변하더니 피부가 돌연 쓸쓸한 빛을 띠었다.

「얼어붙지 않으려면 지금 뭔가 대처를 해야지.」

하고 내가 말했다. 그녀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위 조끼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나는 벽 쪽으로 몸을 돌리겠어.」

「아녜요, 등을 돌리고 있더라도 어쨌든 당신은 어떻게 옷을 벗는지 보게 될 걸요.」

하면서 그녀는 완전히 알몸으로 되었다. 구릿빛 긴 몸에 불꽃을 입었다.

「항상 이런 네가 보고 싶었어. 흡사 너를 몽둥이로 쳐서 만든 것처럼 속에 구멍이 숭숭 뚫린 뱃가죽을 가진 그런 모습으로 너를 보고 싶었어.」

그녀의 알몸 앞에서 나는 내 말이 문득 음탕해지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꼼짝하지 않은 채 그대로 램프 주위에서 몸을 녹이며 말했다.

「난 가끔 내가 금속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곤 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꽃 위 손의 위치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내가 말했다.

「때때로 다른 꿈에서 난 믿어 왔지. 너는 어느 박물관 구석에 놓여 있는 동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마도 그래서 네가 추위를 느끼나 봐.」

「가끔 심장 위에서 잠이 들 때면 육체는 하나의 구멍이 되어버리고 피부는 마치 껍질같다고 느껴요. 그래서 피가 내부로부터 나를 두드릴 때면 누군가가 배에서 관절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침대에서 나 자신의 청동목소리를 느껴요. 그것은 마치 당신 말과 같은 그런 것이에요. 금속판을 입혔다는.」

그녀는 램프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네 말을 듣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언젠가 우리가 만난다면 내 갈비뼈에 귀를 대어봐요. 내가 왼쪽 위에서 잠이 들 때면 나에게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거예요. 언젠가 당신이 그렇게 하기를 난 늘 바랬어요.」

그녀가 말을 하는 동안 깊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몇 년 동안 그렇게 숨쉬는 일 빼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의 삶은 「푸른 개의 눈」이라는 암호를 통해 현실에서 나를 만나보는 일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만났다는 듯이 길거리에서까지 큰 소리로 떠들고 다녔다.

「내가 바로 밤마다 당신의 꿈에 나타나는 여인이에요. 나는 늘 이렇게 말하죠. <푸른 개의 눈>이 당보이에게 주문을 하기 전에 「푸른 개의 눈」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보이들은 공손히 인사나 할 뿐 꿈에도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냅킨에다 「푸른 개의 눈」이라고 쓴 뒤에 니스 칠한 식탁에 나이프로 선을 그어댔다. 그녀는 호텔이나 정거장, 모든 공공 건물의 흐릿한 거울에까지 손가락으로 썼다. 「푸른 개의 눈」이라고.

한번은 그녀가 약국엘 갔었는데, 꿈을 꾼 후 자기 방에서 하룻밤 맡았던 것과 똑같은 냄새를 느꼈다. 그녀는 깨끗하게 새로 닦아놓은 약국의 바닥을 바라보며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종업원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푸른 개의 눈」이라고. 종업원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사실, 아가씨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는데요.」

하고 말했다. 그녀는 또 말했다.

「바로 그런 말을 꿈에서 한 사람을 만나야 해요.」

그러자 종업원이 웃음을 터뜨리며 다른 판매대 쪽으로 가버렸다. 그녀는 깨끗이 닦아놓은 바닥을 계속 바라보며 그 냄새를 느꼈다. 그리고 핸드백을 열고 무릎을 꿇은채 바닥에 글씨를 썼다. 입술에 칠하는 진홍빛 루즈로 대문짝만하게 「푸른 개의 눈」이라고. 종업원이 되돌아와 말했다.

「아가씨, 바닥을 더럽히면 어떻게 해요. 닦아요.」

축축한 헝겊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녀가 오후 내내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닦으며 「푸른 개의 눈」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문에 몰려와 그녀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다 듣고도 나는 계속 구석에 앉아서 의자를 비틀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했다.

「매일 나는 그 문구를 기억해내려고 애썼어. 그 문구를 갖고 너를 만나야 하니까. 지금 같아서는 내일도 그것을 잊지 않으리라고 믿어. 항상 같은 말을 하지만 눈만 뜨면 언제나 잊어버리는 거야. 너를 만날 수 있었던 문구가 어떤 것이었는지.」

「첫날부터 그 말은 당신 혼자서 지어낸 말이에요.」

「너의 잿빛 눈을 보았기 때문에 만들어낸 거야. 그렇지만 그 다음날 아침이 되면 전혀 기억해 낼 수가 없어.」

그녀는 램프 곁에서 주먹을 꼭 쥔 채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적어도 내가 어느 도시에다 써놓았던가 하는 기억이라도 할 수 있다면.」

꼭 다문 그녀의 이빨이 불꽃 위에서 반짝였다. 내가

「지금 너를 만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하고 말했다. 불빛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얼굴을 들었다. 그녀는 램프에 자신을 태우며 활활 타오르는 시선을 들어올렸다. 구석에 계속 앉아 의자를 흔들고있는 나를 그녀가 보았다고 느껴졌다.그녀가 대답했다.

「나에겐 그런 말은 결코 하지 않았어요.」

「지금 너는 그 말을 하고 있고 또 그것은 사실이야.」

램프의 반대편에서 그녀가 담배를 청했다. 꽁초가 내 손가락 사이에서 타 들어가고있었다. 난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어디에다 그것을 써놓았는가를 왜 기억할 수 없는지 모르겠어요.」

「마찬가지로 나도 내일이면 그 말을 기억할 수 없을 거야.」

그녀는 슬프다는 듯이 말했다.

「아녜요. 난 때때로 그것 역시 내가 꿈을 꾸었다는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나는 일어서서 램프를 향해 걸었다. 그녀는 램프 저쪽에 있었다. 나는 담배와 성냥을 손에 쥔 채 걸어가며 램프를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그녀는 입술 사이에 담배를 물고 내가 성냥불을 켜기도 전에 램프 불 가까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구의 어느 도시엔가 벽에 온통 <푸른 개의 눈>이라는 문구가 써 있어야 해. 만일 그 문구가 내일 기억난다면 당신을 찾게 될거야.」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입술이 벌써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담배를 턱 아래로 늘어뜨리고 눈을 반쯤 감은 채 「푸른 개의 눈」을 기억해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담배 연기를 빨아마신 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외쳤다.

「이제 이건 다른 일이에요. 나는 따뜻해지고 있어요.」

희미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마치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쓰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종이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 채 돌리며 태웠다. 종이가 타 들어가고 있는 사이에 난 「가고 있다」라는 글을 겨우 읽어 내렸다. 완전히 타버리자 가벼운 재가 되어작고 오글오글한 것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말했다.

「이런 것이 오히려 낫지. 그러나 이런 너를 보는 것이 때때로는 무서워. 램프 옆에서도 떨면서 말이야.」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가끔씩 누군가가 밖에서 작은 스푼을 떨어뜨려 우리를 깨우곤 했다. 조금씩 우리는 우리의 우정이 아주 간단한 물건이나 사건에 매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만남은 항상 이렇게 끝났다. 새벽의 스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지금 램프 곁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전에도 이런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뒷다리로 의자를 움직이며 문득 내가 어느 잿빛눈을 한 웬 낯선 여자 앞에 서 있던그 먼 꿈을 생각한다. 내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질문을 했던 것은 그 꿈에서였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기억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우린 오래 전부터 보고 있었다고 믿는데.」

「언젠가 당신 꿈을 꾼 것 같아요. 바로 이 방의 꿈을.」

「아!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꿈에서 우리가 만났다는 것이 확실해요.」

나는 담배 두 모금을 빨아마셨다. 내가 갑자기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아직도 램프 앞에 멈춰 선 채였다. 나는 위에서 아래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미 구리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딱딱하고 차가운 금속은 아니었다. 노르스름하고 부드러우며 신축성이 있는 구리였다. 내가 먼저 말했다.

「너를 만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예요.」

「지금은 상관없어. 우리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베개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충분할 거야.」

나는 램프 위로 팔을 뻗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거야.」

내 몸이 그녀의 몸에 닿기 전에 그녀가 말했다.

「아마도, 당신이 램프 뒤쪽으로 몸을 돌리면 우리는 깜짝 놀라서 깨어날 거예요. 이 세상의 어느 부분인지 누가 알겠어요.」

「중요하지 않아.」

「다시 베개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그렇지만 당신은 깨어나기만 하면 잊어버릴 거예요.」

나는 구석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뒤에 남아 있었다. 불꽃 위에서 손을 녹이며.

아직 의자에 닿기 전에 그녀가 내 등 뒤에서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밤중에 깨어나보면 전 침대에서 뒤척거리고 있지 뭐예요. 무릎에서는 베개의 실오라기들이 훨훨 오르고요. 난 동이 틀 때까지 <푸른 개의 눈>이라고 몇번이고 되뇌이는 거예요.」

그때 나의 얼굴은 벽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내가말했다.

「벌써 동이 트고 있어. 시계가 2시를 쳤을 때 난 깨어 있었는데 그때부터 한참이 지났어.」

나는 문쪽으로 다가갔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여전히 똑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문을 열지 말아요. 복도에는 다른 꿈으로 꽉 차 있어요.」

「어떻게 그것을 알지?」

「조금 전에 내가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심장 위에서 잠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되돌아가야 하니까요.」

난 문을 반쯤 열었다. 문을 조금 움직이자 상쾌한 바람이 축축한 초원의 상큼한 풀냄새를 실어왔다. 그녀는 시끄러운 경첩에 이어져 있는 문을 계속 움직이며 뒤로 돌아서서 말했다.

「이곳밖에 복도라고는 없는 것 같아요. 초원의 냄새가 나요.」

「나는 너보다 잘 알아. 그쪽 밖에 초원의 꿈을 꾸고 있는여자가 있기 때문이야.」

그녀는 불꽃 위에서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초원에 집 하나 갖기를 늘 바랐던 여자지요. 한번도 도시를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옛날의 어느 꿈에선가 그 여자를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나 벌써 문을 반쯤 연 채 나는 30분 안으로 아침식사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어쨌든,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곳을 빠져 나가야 되겠어.」

밖에는 바람이 잠시 날개짓을 했다. 그런 후 곧 잠잠해졌다. 그러자 침대에서 뒤척거리는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초원의 바람이 멎었다. 이제 냄새도 더 이상 없었다.

「내일은 너를 알아볼 거야. 벽에 <푸른 개의 눈>이라고 쓰는 여자를 거리에서 보면 난 곧 너인 줄 알 거야.」

하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슬픈 미소-이미 불가능하다는 듯이 체념한 그런 서글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지만 낮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 할 걸요. 당신이야말로 한번 잠에서 깨어나면 지난 밤의 꿈을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남자인 걸요.」

그녀는 두 손을 다시 램프 위에 올려 놓았다. 얼굴은 쓸쓸한 안개에 어두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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