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 김영일
석촌 김영일

5월 끝자락 산기슭이나 밭 언덕 혹은 도랑 가에 흔하게 피는 꽃이 찔레꽃이다. 찔레꽃은 어떤 꽃보다 해맑은 햇볕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늘이나 음침한 곳에서는 만날 수 없다. 숲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양지바른 돌무더기는 찔레꽃이 즐겨하는 자람 터다. 작은 덤불을 이루고 긴 줄기를 뻗어 무리를 지어 울퉁불퉁한 돌무더기를 포근히 감싼다. 또한 개울가의 무넘이도 살기 좋은 곳이다. 찔레꽃은 다섯 장의 하얀 꽃잎을 활짝 펼치고, 가운데에 노란 꽃술을 소복이 담아 피워내는 꽃이다. 흰색의 찔레꽃은 하얀색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아주 잘 맞는 토종꽃으로. 질박하면서 은은한 자태는 소박하다 못해 눈물겹다.

꽃송이 하나하나는 작지만 여러 송이가 한데 모여 꽃송아리를 만들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많은 꽃송이의 장미Many-flowered Rose’, '아기 장미Baby Rose', ‘아기 들장미Baby Brier’라고 부른다. 다른 이름으로는 야장미野薔薇라고 하며 우리 말로 들장미. 노래 합창곡 들장미와 만화 영화 들장미 소녀 캔디는 많은 사람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동양의 찔레꽃 이야기는 중국의 시경詩經 용풍편鄘風編담장의 찔레꽃(牆有茨)’이란 시가 있다. 일본의 만엽집萬葉集에도 찔레꽃 노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찔레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詩歌는 찾을 수 없다. 서양의 들장미는 우리의 찔레꽃처럼 하얀 꽃이 아니라 붉은 꽃이 많아 우리가 느끼는 정서와는 다르다. 한 송아리 찔레꽃의 향기는 한 묶음의 장미보다 진하다.

옛사람들에게 찔레꽃은 슬픔과 아픔을 동시에 주는 꽃이기도 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은 모내기가 한창인 계절로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흔히 가뭄이 잘 들었다. 이때의 가뭄을 찔레꽃가뭄이라고 했다. 보릿고개의 찔레꽃은 배고픔과 고통을 예견하는 꽃이었다. 찔레 꽃잎은 따서 입에 넣으면 잠시나마 허기를 때워주기도 했다. 찔레 순을 껍질을 벗겨 먹으면 약간 달콤한 맛까지 있었다.

찔레꽃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오면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니가 그립다. 아린 듯, 포근히 다가오는 모습과 그윽한 향기는 어머니의 한 많은 삶이 묻어온다. 하얀 찔레꽃잎이 바람에 날릴 때면, 어머니가 흰 치마와 저고리 곱게 입으시고, 천상에서 나들이를 오시는 듯해 가슴이 먹먹하다.

찔레꽃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충렬왕 때의 일이다. 설화에 의하면 어느 마을에 찔레라는 처녀가 남동생과 단둘이 살았다고 한다. 찔레는 공녀貢女로 원나라에 팔려 갔다. 찔레는 고향에 두고 온 동생이 걱정되어 맛있는 밥을 먹고 좋은 옷을 입어도 날로 야위어 갔다. 이를 가엽게 여긴 주인은 찔레에게 동생을 데려오라며 고려에 보내주었다. 찔레는 기쁜 마음으로 고향에 달려갔지만, 동생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도 찾을 길은 막막했다. 찔레는 방방곡곡 동생을 찾으러 다니다가 결국 지쳐 죽고 말았다. 찔레의 무덤가에 하얀 꽃 하나가 피었다. 꽃은 바람만 불면 찔레! 찔레!’라며 울부짖으며 꽃잎을 떨쳤다고 한다. 그 꽃이 찔레꽃이다. 가을이 되면 영실營實이라고 하는 팥알 크기의 빨간 열매는 찔레가 남동생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이 익은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시인이 찔레꽃에 대한 시를 썼다. 시들은 노래로 작곡되어 밤낮으로 불리운다. 그중에서 석촌石村 김영일金英一(1914~1984) 쓴 찔레꽃이 단연 최고다. 김영일의 찔레꽃은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상황을 노래한 망향시로 김교성(1901~1960)4분의 2박자 트로트로 작곡하여 가수 백난아(1927~1992)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했다.

 1)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잊을 동무야

2)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셋 동무
천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작년 봄에 모여 앉아 박은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3)
연분홍 봄바람이 날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즐거운 시절아
                        
                  -「찔레꽃」 가사1‧2‧3-

 

제주도 한림 출신 가수 백난아의 절창 첫 취입곡 모음집 1311번째에 싣려 있는 찔레꽃 가사에 문제가 있다고 한국방송윤리위원회에서 이의를 제기해 1절의 동무야 사람아’, 2절의 셋 동무 동창생’, ‘박은 사진 새긴 사진’, 3절의 날아드는 북간도 살아드는 북간도’, ‘즐거운 시절아 그리운 고향아로 원시와 다르게 교체해 현재에 이르렀다.

발표 시기는 일제 말기인 1941년과 1942년으로 두 가지 설이 있다. 19415월 태평레코드에서 취입하고 이듬해부터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노래 찔레꽃은 815 광복과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고향을 떠난 수많은 사람의 향수를 달래는 노래로 유명해졌다. 특히 한국적 정서를 자극하는 가사가 당시의 여러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국민가요가 되었다.

시작 부분 찔레꽃 붉게 피는구절은 식물학적으로 따지면 맞지 않는 표현이다. 찔레꽃은 백옥같이 하얀 꽃이며, 토양조건이나 찔레꽃 개체에 따라 연한 분홍색을 띠는 경우가 드물게 있을 뿐이다. 남쪽나라는 통상적으로 남해안을 말한다. 바닷가 백사장에는 보통 붉은 꽃인 해당화가 핀다. 시를 쓴 작가는 해당화를 찔레꽃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시나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식물 이름이 틀렸는지 맞는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그대로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면 그만이다.

2006116KBS 가요무대 1,000회 특집방송 마지막 노래에 찔레꽃이 선정되었다.  사회자 김동건 전인석에 의하면 가요무대 방송 사상 찔레꽃이 가장 많이 불린 노래로 뽑혔다고 했다. 200742일 백난아의 고향인 제주도에 660규모의 찔레꽃 노래공원과 노래비가 세워졌다. 제주시는 백난아의 찔레꽃 노래비를 한림읍 명월리 명월초등학교에 유적지 표석을 세우는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노래비 주변에 찔레꽃을 심고 찔레꽃 노래가 울려 퍼질 수 있게 백난아가 불렀던 국민애창곡 7곡이 입력된 음향시설(6.6규모 노래감상실)도 함께 설치되어 있다.

한국 아동문학의 1세대를 이끌었던 석촌石村 김영일金英一1914517일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출생하여 1934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동시 반딧불이 입선되고, 아이생활에 동요 방울새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35년 방울새로 아이생활에 등단했으며 그 후 많은 동시와 동요, 동화를 창작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1938년 도쿄의 니혼(日本)대학 예술과를 졸업했다. 유학 당시 아동지 고향집을 발행했다. 졸업 이후 만주를 유랑하며 소설을 습작하다가 귀국하여 1939년부터는 아이구락부에 동화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0년 즈음에 아이생활의 집필 동인과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톨릭소년’, ‘소년’, ‘동아일보’, ‘매일신보’, ‘만선일보등에 작품을 게재했다. 1941년 서울 신촌상업학교에서 근무했다. 1942아이생활’ 12월호에 게재한 애국기 소국민호동시가 있다. 19431월호에 대일본의 소년을 게재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최병화崔秉和 · 연성흠延星欽 등과 함께 아동극단 호동好童을 조직했으며,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부산에서 중학시대라는 학생 잡지를 냈다. 1953년에는 주간지 소년태양’ (태양신문사 발행)을 편집했고, 환도 이후 건아시보健兒時報의 주간을 맡았다.

또한 1954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단체인 한국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아동문학의 활성화와 후배 양성에 힘써왔다. 특히 625 전쟁 당시 통영 출신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과 함께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를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1960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을 지내고 한국자유문학가협회와 한국문인협회 등의 간부를 거쳐, 1962년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과 문교부 우량아동도서 선전위원장을 했다. 또한 1971년 한국아동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동시집 다람쥐’, ‘봄동산에 오르면’, ‘김영일의 동시선집등과 동요집 김영일 작사 윤이상 작곡 새 음악 1~6’, ‘전시동요집 김영일 작사 박태준 작곡이 있고, 동화집 까치알’, ‘밤톨 삼형제’, ‘미워 미워 미워’, ‘은방울 꽃’, ‘봄동산의 아이들’, ‘꿈을 낚는 아이들’, ‘반딧불 켜는 집’, ‘선녀가 된 꼬리연’, ‘풀잎안경등이 있다. 그의 동시와 동요는 깨끗하고 생생한 감각을 살린 짧은 자유시가 많고, 동화는 허무주의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상으로는 1974년에 노래 동산회 주최 고마우신 선생님 가사패를 받았고, 1976년에는 낙도 교가 지어 보내기 동아일보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1979년에 골목에 피는 꽃으로 제1회 대한민국 아동문학상을 받았으며, 1982년에는 꿈을 낚는 아이들로 제2회 이주홍문학상과 1989년에는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을을 받았다. 1984년 작고하기까지 우리나라 문학단체의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한국아동문학의 거목이었다. 과천 서울대공원 정문 안에 다람쥐문학비와 대구 도동 시비 공원에 나팔불어요시비가 건립돼 있다.

김영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요 찔레꽃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또한 가곡 자장가를 비롯해서 동요 다람쥐, 방울새, 구두 발자국, 나팔불어요 등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주옥같은 노랫말을 만들었다.

문학가 아버지의 뜻을 이은 둘째 아들 김철민을 주축으로 3형제가 아버지 이름을 딴 김영일 아동문학상을 제정하여 올해로 23회째를 맞았다. 1~23회 김영일 아동문학상을 진행해오면서 아버지인 김영일 선생의 저작료와 3형제가 십시일반 마련한 모금으로 효를 실천하여 남다른 어버이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어김없이 수상자를 선정하고 상패와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역대 수상자로는 제1회 동시 수상자는 없었으며 동화 부문에 고 송명호가 동화 학교에 간 병아리로 수상하는 등 해마다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22년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 제23회 김영일 아동문학상 시상식이 514() 오후 2시 서울대한출판문화 강당에서 있었다. 수상자로 동시 부문에 정성수(향촌문학회 회장) 씨와 동화 부문에 박상재(한국 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씨가 선정되었다.

동시 부문 수상자 정성수 시인은 1994년 서울신문으로 문단에 나온 후 한국교육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콧구멍 파는 재미가 당선되어 30년 가까이 동시와 시를 써 온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이다. 수상작 첫꽃’ (도서출판 고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한 동시집으로 총 4부로 100편의 작품들은 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가족 사랑과 순수한 동심과 어린이 우정, 생명 존중 사상이 동시집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동시집 햇밤과 도토리’, ‘아이들이 만든 꽃다발’, ‘할아버지의 발톱’, ‘향기 없는 꽃이 어디 있으랴등과 시집으로는’ ,‘사랑 앞에 무릎 꿇은 당신’, ‘혓바닥 우표’, ‘공든 탑’, ‘덕진 연못 상하권’, ‘마음에 피는 꽃65권이 있다. 수상으로는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황금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공무원문예대전 최우수상, 한국문학예술상, 대한민국사회봉사대상, 한국교육자대상, 전북교육대상,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는 향촌문학회 회장과 전주비전대학교 운영 교수로 있다.

동화 부문 상을 받는 박상재 작가는 전북 장수 출신으로 1979년 서울신문에 동화를 발표한 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로 등단하는 등 40여 년 동안 130권이 넘는 아동문학 관련 서적을 출간한 아동문학가다. 수상작 구둘 느티나무의 비밀’ (가문비어린이)은 주인공 민준이가 구둘느티나무 아래서 발견한 꽃새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임진왜란 무렵 조상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판타지 동화이다. 대표 저서로는 원숭이 마카카’, ‘개미가 된 아이’, ‘한국창작동화의 환상성 연구’, ‘동화창작의 이론과 실제등이 있고, 수상경력으로는 새벗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박경종아동문학상, PEN문학상,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과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 남강교육상,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과 단국대대학원 외래교수를 지냈고, 아동문학사조 발인인 겸 주간으로 있다.

「찔레꽃에 대하여」

묻지 않아도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피는 꽃이 찔레꽃이다. 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아무나 범접할 수 있는 꽃이 아니다. 찔레꽃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끄는 꽃이지만 함부로 다가가면 다칠 수가 있다. 그래서 감히 꽃을 꺾고 싶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 가시가 뾰족한 이유다.

찔레꽃은 향기가 짙다.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는 아련함으로 몰아넣고, 잔잔한 추억 속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찔레꽃은 가난을 떠 오르게 하고 가난하던 시절을 질근질근 씹게 한다.

올해에도 찔레꽃은 피었다. 찔레꽃을 바라보면 찔레순 껍질을 벗겨 먹던 시절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달착지근하고 텁텁한 찔레순은 허기를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찔레순은 찔레꽃이 피기 전에 서둘러 꺾어 먹어야 했다. 습관적으로 입에 가져가야 그나마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다. 찔레꽃 흐드러지던 가난한 날들의 추억이다. 찔레꽃이 져도 찾아오는 햇살은 여전히 눈에 부셨다. 찔레꽃은 한 번에 피는 것이 아니다. 피었다 지고 또 피어나, 세 번을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세 번을 피고 질 때까지 모내기를 끝내면 그 해는 풍년이 들어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실바람 부는 오월의 언덕배기는 찔레꽃 향이 뒤덮는다. 어머니는 흰 수건을 쓰고 오랫동안 텃밭에 있었다. 밭 한쪽에는 대파가 하늘을 찌르고, 보라꽃을 피울 도라지가 자라고, 몇 고랑의 감자도 익어가고 있었다. 옆 밭에는 풋고추가 홍고추가 되면 어머니의 밭은 어머니처럼 정갈하다. 시절은 알고 있다는 듯이 앞산에서는 뻐꾸기가 속절없이 울어댔다. 뻐꾸기 울음소리를 먹고 자란 뽕나무 가지에는 검 붉은 오디가 슬픔처럼 익어갔다. 그럼 어머니는 노을이 물드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지는 찔레꽃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리움이었다. 동시에 찔레꽃 향기였다. 봄날이 간다고 말하는 대신 찔레꽃이 지는구나!’ 말씀하신 분이 어머니였다.

찔레꽃은 우리나라 여기저기서 한마음으로 핀다. 하나의 배달 민족으로 피는 것이다. 오일장을 행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흰옷 입고 나서는 풍경이다. 어느 산기슭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핀 찔레꽃 무더기는 태극기를 든 독립투사다. 삼천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이다. 하얗게 핀 무더기 무더기는 뜨겁다 못해 간절하다.

찔레의 새순은 바라볼수록 지난 날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줄기 껍질을 벗겨 혀끝에 대면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들큼함이 새롭다. 옛 찔레순은 둘도 없는 간식이었지만, 오늘의 한 입은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는 쓰디쓴 추억일 뿐이다. 그 시절 그 맛을 느끼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 서글퍼진다.

오월의 바람이 분다. 길가의 풀들은 싱그럽고 들꽃들은 하나같이 핀다. 관심을 두지 않아도 풀들은 저희끼리 위해주며 제 몫만큼 살아간다. 주어진 생에 온 힘을 다하는 삶의 한 수를 보여준다. 살아가는 동안, 이래서 불만 저래서 불평을 한다.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 한 사람을 밟고 가고, 더 가지고 싶어 안달한다. 욕심은 화를 낳고 화가 모이면 결국은 끝장난다고 찔레꽃이 바람에 머리를 젓는다.

젊은 날 날밤을 새우며 새하얀 편지지에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담았다. 보고 싶은 마음을 쓰고 또 쓰다가 찢어버린 편지가 몇 장이었던가를 아는 것은 찔레꽃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 냄새가 나고 그리움의 향기가 나는 찔레꽃들이 봄꽃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찔레꽃이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면 찔레꽃과 거리를 두지 말고 찔레꽃 한 송이를 가슴에 품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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