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들 가운데서 문학지나 신문지상에 발표된 시중 잘 된 시를 추천해서 '이달의 추천시'로 선정해서 올린다. 많은 관심 바란다.
- 리문호 시인, 변창렬 시인, 이동렬 소설가.

파일을 삭제하다가

                  김춘산

 

컴푸터를 반납하는 날
파일을 정리하였다
손가락 하나에 나의 수십년이
순식간에 지워지고 있었다.

다 지우고 다시
내 가슴의 파일을 열었다.

떡잎 하나 펼치지 못하고 메말라버린
젊은날 꿈들의 낙서를  지우고
종양처럼 늘 아프고 곪아 터지던 
어떤 미움의 딱지도 지웠다

내 가슴속의 나를 
나의 얼굴과 몸짓과 소리를
하나 둘씩 지우다가
삭제불가한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나에게 깊이 들어온 너의 이름과
너에게로 간 나의 이름이였다

타자한 모든 것은 다 지울수 있어도
깊이 심은 것은 지울수 없음을 알았다.

    <연변문학> 2022년 5기

 

세월 

최종원

 

소시적에 찢어진 

나의 바지 깁으려고 

돋보기 거신 할머니

바늘귀 끼려고 

반나절 실을 

밀었다 당겼다 하는데 

 

할머니, 제가 할게요

나는 빠르게

할머니 눈이 되어

바느실 끼어드린다 

 

허허허, 기특하다 

서글픈 웃음 지으며

한땀한땀 정성들여 

바느질하는 할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며칠전에 손자놈의

떨어진 단추 달아주려고

바느실 찾아

씨름하는데 

 

할머니, 제가 낄게요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 

방실방실 웃는 볼우물

포동포동 고사리 같은 두손,

귀염둥이 인젠 몰라보게 컷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아! 

 

하하하, 대견하다

페부로 느끼는  이 심정

이마에 패인 잔주름 

머리에 내린 흰서리

어느덧 인생의 황혼길에서

나도 할머니 되어

세월을 줍고 있구나

나도 할머니처럼

세월을 깁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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