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3세의 귀환 이주 삶과 미래

 서울국제학원 문민 원장, 경북대 인문사회연구소 박신규 연구원이 저술한 문민 원장의 구술생애사 책자를 소개했다.  
 서울국제학원 문민 원장, 경북대 인문사회연구소 박신규 연구원이 저술한 문민 원장의 구술생애사 책자를 소개했다.  

2014년부터 재한 중국동포 자녀들을 위한 교육의 길을 걸어온 서울국제학원 문인 원장(52세)의 구술생애사가 대학연구소에서 서른 세 번째 총서로 발간되었다.

경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인문사회연구소는 2011년부터 일본, 중국,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 등에 거주하는 재외한인들의 삶을 기록한 재외한인 구술생애 총서를 발간해 왔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으로 귀환한 중국 조선족 3세 중심으로 생애구술사 작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 31일에는 제33집 『재한중국동포 교육자 문민의 생애사-조선족 3세의 귀환이주 삶과 미래(도서출판 책과 세계)』를 발간했다.

연구소는 서문에서 “중국 조선족의 이주 흐름 속에서 한국으로 귀환하여 재한중국동포 사회의 리더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대상자를 물색하였고 그 와중에 서울국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문민 원장을 소개 받았다”고 밝히고 “문민 원장은 1971년생으로서 흑룡강성 칠대하시 출신으로 오상 사범학교를 나와 홍선 조선족 소학교, 진황도의 소학교를 거쳐 새싹유치원을 운영하다 결혼하여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외대 입학, 서울대 대학원 입학, 노사발전재단 입사,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연구원, 다양한 NGO활동, 중국 조선족의 중도입국생활을 위한 어울림 교실 교장 역임, 서울국제학원 운영 등 중국과 국내에서 다양한 이력과 경험을 소지한 중국 조선족 출신 엘리트 여성이다”라고 소개했다.

문민 생애사 총서는 총 189페이지 단행본으로 크게 7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일본 강점기 시절 조부모님 세대가 경북 김천에서 흑룡강성으로 집단이주 한 배경을 시작으로 제2장 조선족 학교 입학과 사범학교 진학, 제3장 중국에서 교육자로서의 생활, 제4장 한국으로 결혼이주와 대학생활, 제5장 한국에서 사회인으로 생활, 제6장 조선족 대표 교육활동가로 자리매김, 그리고 마지막 제7장에는 문민 원장의 교육자로서 기고 글을 게재했다.

귀한 조선족 3세의 구술생애사를 기록한 박신규 연구원은 “한국사회에 조선족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보조역할자, 외국인노동자라는 인식이 많다. 조선족 3세가 지식인도 있고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리더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문민 원장의 경우 한국사회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교육자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과 여성으로서 리더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문민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구술생애사 책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너무 거창하다. 생애사 하니까, 이제 내 나이 50대 초반인데…. 중국에서 철없던 시절 25년, 철 들어서 한국생활 25년, 이 책을 보면 배움의 길이었다. 책 제목에 ‘교육자’라 했는데, 교육생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이제 부터 진정한 교육자로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 책 1장은 김천에서 흑룡강성으로 할아버지 세대의 집단이주 내용이다. 좀 소개해준다면?

"할아버지 세대에 중국으로 왔는데, 아버지는 김천에서 태어나셨다. 듣기로는 1939년 할아버지 형제 집안 전체가 두만강 건너 연변에 정착하려 이주했는데 텃세가 심해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자 해서 올라간 곳이 만주벌판, 지금의 흑룡강성이었다."

-진황도는 원래 조선족이 살지 않는 곳으로 아는데 창녕조선족소학교가 어떻게 설립되었나?

"1992년 진황도에 창녕조선족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사립학교인 셈이다. 이 학교를 설립한 분은 그 당시 창녕그룹 석상린 이사장님이였는데, 이 분 역시 할아버지가 경상남도 창녕에서 흑룡강성으로 이주해 간 조선족 2세였다. 회사이름을 할아버지 고향 이름을 따서 짓고 크게 성공하였다. 창녕그룹에 취직한 조선족이 많아지면서 자녀교육을 위한 창녕학교를 설립했던 것이다. 진황도에 있던 친오빠가 조선족학교가 설립되니 이곳에 와서 교사로 활동하면 어떻냐 해서, 지원했더니 합격해 초기때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 1995년 25세 때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올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처음에 한국에 올 때는 중국에서 교사로 활동했으니 환대를 받고 한국에서도 교사로 활동할 수 있을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교사로 활동할 수 있을까 길을 찾다가 사범대학을 다시 들어가 공부하게 되었다. 남편은 이왕 공부할 거면 법대에 들어가 사법고시를 보라고까지 했다. 그래서 법학과도 지원해 합격을 했지만 교육의 길을 가기 위해 사범대학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교사의 길을 가기 위해 10년 더 공부를 하게 된 것같다."

- 중국동포 자녀들을 교육해왔는데, 학부모들은 자녀의 진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학원은 소위 중도입국자녀들이 많다. 아쉬운 것은 한국에서 모델이 아직 많지 않다. 학부모들은 한국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되는지 잘 모른다. 학교에 아이를 맡기다시피 한다. 성공모델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데 나의 할 역할이 아닌가 생각하고 또 10년 후면 한국에서 교육 받은 아이들이 크고 그러면 많이 나아질거라 생각한다."

-이번 총서 책 제목 ‘재한중국동포 교육자 문민’ 의미가 크다 본다. 앞으로 계획은?

"이 책 제목을 보고 생각났는데, 지금 교육자라면 교육가는 될 수 없을까? 뭐가 교육가일까? 그동안 나를 위한 교육자였다면 더 많은 교육자와 동행해야겠다. 그것이 교육가일 것이다. 다음 책을 낸다면 책제목을…. 우리 학원을 졸업하고 사범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 하고 같이 작업을 해 나아가야한다. 더 많은 교육자를 양성하는 교육가가 되자. 이런 생각을…," 

[EKW동포세계=김용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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