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에도 난 책에서 안마수강생모집광고를 보고 여기저기 여러 곳 찾아다녔다.

그때까지도 비자가 정상인지라 나한텐 경찰이 무서운 존재가 아니였다. 경찰의 앞을 휘파람 불며 팔자걸음으로 지나기도 하고 때론  가슴내밀고 타향의 봄도 흥얼흥얼…처음 보는 경찰복장이 멋있고 총이랑 허리에 가득 찬 물건들이 희귀하여 일부러 서서 구경도 하고 지나가는걸 고개를 탈면서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자 끊기는 날부터 이 몸은 고양이앞의 쥐신세로 되여 길다닐 땐 곁사람 눈치보기에 여념없었고 멀리서 경찰복만 피끗 보여도 식은땀을 손에 쥐였다. 길수리하는 사람들도 때론 검문하는 경찰로 착각하고 꿈틀 놀란적도 여러 번 있었다 (후에 강제송환당해 상해에 도착한 뒤에도 자전거 탄 중국경찰을 길에서 만나도 가슴이 철렁한적 있다).  설이는 일년쯤 지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했다. 하지만 난 일년도 못가고 잡혀왔으니 그동안 그냥 무서울수밖에.!

나중에 나는 면바로 연변사람이 모집하는 안마수강생학습반 광고를 보게 되였다. 외국땅이라 연변이란 두글자만 봐도 눈이 번쩍 띄였고 되게 반가웠다. 별다른 고려 없이 그 곳에서 배우기로 하였다. 학비는 한달에 8만엔이고 그 곳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것이였다. 집하고 가까운거리인지라 그냥 집에서 전차 타고 통근했다.

2005년 10월 21일부터 난 안마 배우러 다녔다. 그 곳 역시 정체원이였지만 농촌이여서 손님도 적고 집도 크니 학습반을 하는것 같았다. 집이 크고 배우는 학생도 몇명 있었다. 이미 몇년동안 학생을 양성했단다. 내가 배울 때에는 훈춘에서 온 40대조선족아주머니,교하에서 왔다는 26살 조선족남자,요꼬야마라 부르는 20대 일본인 남자가 있었다.

요꼬야마를 내가 처음에 자꾸 요꼬하마라고 불러서 곁에서 웃던 일이 기억난다. 후에 안마 배우는동안 난 요꼬야마와 파리잡이하듯이 손마선질 해가면서 일어단어를 좀 배우기도 했다. 훈춘아주머니는 아카스리일(때밀이) 4년에 관절염과 후두염에 걸려서 맛사지 배워서 일자리 바꾸려고 찾아왔단다. 때밀이 할 때 보통 매달 평균40만엔 넘어 벌었고 잘 버는 달에는 50만엔까지 벌었단다. 교하 남자는 나보다 둬달 먼저 왔는데 가방공장에서 두달 일하고 너무 힘들어서 맛사지 배우러 왔단다...

맛사지 배우기 시작한 날부터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일본사람들은 지압을 좋아한다면서 될수록 팔굽은 적게 쓰고 손가락을 많이 써야 하기에 엄지손가락힘을 많이 올리라 하였다.사흘째되는 날에는 손가락이 너무 부어서 숟가락 들기조차 불편했다. 그래도 아픔을 참고 날마다 선생님한테서 동작을 배우고는 학생들끼리 서로서로 해주면서 손에 익혀나갔다.

처음에는 안마련습하기보다 련습용으로 침대에 누워서 무료안마받는것이 좋기만 하더니 그것도 자주 받으니 나중에는 진절이 났다. 누워서 공짜로 안마받는것이 되려 대방을 위해 배려해주는것이 되였다. 팅팅 부어오르던 손가락이 십여일 지나서부터 부었던것도 내리고 아픔도 적어졌다. 맛사지 배우는 동안 드물게나마   오는 손님을 선생이 그토록 열심히 맛사지해주는걸 보고 난 재간도 중요하겠지만 손님에 대한 정성이 더 필요한것이란걸 느꼈다.  몇년 하던 사람도 성의없이 대충하면 열심히 하는 초보보다 못하다. 지금 중국에서 보건안마랑 발안마랑 받아보면 완전히 알린다. 비록 일본하고 가격차는 많지만 전혀 성의없이 대충대충 시계만 쳐다보면서 끝내면 받는 감각이 완전히 하늘땅 차이다.

안마하면서 자주 쓰는 용어도 배웠다. (우쯔부세니낫데 구다사이---도꼬가 쯔가레데쓰까) 등등 . 비록초중때 삼년 일어공부 했지만 그것은 너무 까막득하여 전혀 도움이 안됐다. 저녁이면 설이한테서 일어공부를 한다. 설이가 전날에 배워준걸 이튼날에 물어볼 때면 까먹고 기억이 안나 꿀먹은 벙어리처럼 대답 못하고 얼굴만 지지벌개서 눈알만 펀들펀들할 때가 많았다.

마사지  배우러 다니는 동안 설이는아르바이트하면서도 때론 시간을 짜내여  내 마중왔다. 저녁때 가 되면 설이가  나타기를 고대하는 내 귀는 벌쭉해지고 동공은 퀭하니 창밖을 헤맸고 목은 기린이모가지가 되곤 했다. 그렇게 쭈욱 시간이 흘러  내가 마사지학습 시작한지 열흘쯤 되였다. 이때 먼저 왓던 세사람은 하나둘 일자리 찾아서 떠나갔고 나도 한댓새 더 배우다가  선생의 소개로 우에노에서 10분거리 되는 곳에 있는 어느 한 정체원에 면접보러 가게 되였다.

길림신문/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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