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한동포문인협회 설립 10주년에 붙여 

전은주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

전은주 약력: 1986년 도문 량수 출생, 연변대학교 문학석사, 연세대학교 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시간 강사,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전은주 약력: 1986년 도문 량수 출생, 연변대학교 문학석사, 연세대학교 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시간 강사,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2022년 8월 19일은 재한동포문인협회 설립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마침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런 겹경사를 맞아 조선족이 겪은 역사적 의미 또는 그들의 여정을 간략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재한조선족문인협회의 설립 이전과 그 이후의 변화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족의 공식 한국 이주는 1984년 ‘친척방문’에서 시작된다. 이는 한국 정부가 독립유공자 후손 등에 대한 귀환대책의 일환으로 조선족을 ‘동포’라는 관점에서 추진한 정책 때문이다. 당시 초청된 조선족들은 대체로 조화로운 상황에서 한국으로 입국한다. 국가 정책도 혈연주의에 입각해 조선족을 받아들였고, 초청한 한국인들도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혈육’인 조선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한국 귀환을 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호적 상황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혈연 상봉의 기쁨은 잠깐일 뿐이었다. 조선족은 한국과의 현격한 경제적 격차와 눈부신 모국의 경제 발전에 귀환 목적이 달라진다. 그들은 발전한 한국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 위장결혼, 밀입국, 여권 위조 등 불법수단도 마다지 않는다. 이런 변화에 한국 정부도 태도를 바꾸어 ‘여행증명서’ 발급을 중지시켜, 1990년대의 재한조선족 대부분은 불법체류자가 되고 만다. 

물론 표면적인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조선족의 의식 밑바닥에는 ‘상상속의 고향’에 대한 강한 그리움, 선조들로부터 받은 민족적 자긍심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귀환 이후 확인한 것은 ‘낯선 고향’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정체성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 책임을 한국사회의 부당한 정책과 한국인들의 차별과 냉대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분노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불법체류자의 신세가 된 조선족은 언제 잡혀 추방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브로커한테 준 거금의 빚을 갚기 위한 처절한 절박감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기피하는 3D 노동 현장에서의 고된 막노동, 악덕 고용주의 임금 체불과 노동시간의 연장, 위장결혼으로 인한 가정의 파탄, 두고 온 혈육에 대한 그리움과 밤마다 몰려오는 고독과도 지독한 사투를 벌인다. 이처럼 가혹한 환경이 그들을 덮쳤지만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가리봉동 쪽방에서 이를 악물고 견디며, 하루 15시간씩 로봇처럼 공장에서 돌아치며, 선반에 손목이 잘리면서도 그들의 애절한 마음을 시로 적기도 하며, 각자 처절하게 자신만의 방식대로 ‘한국살이’를 이겨낸다. 

그런 그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 오늘날 70만 명이나 되는 ‘재한동포사회’를 구성한다. 어쩌면 그건 목숨을 걸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가 낯선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여 자신들의 고향을 만들었던 그들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재한조선족의 법적 지위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바뀌기 시작한다. 한국정부는 불법체류자였던 조선족이 자진신고를 하면 합법적인 신분을 주는 등의 완화정책을 실시한다. 이어 2005년, 2006년에는 동포귀국지원프로그램이, 2007년에는 방문취업제가 시행되면서 조선족의 한국 거주가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특히 2008년 한국정부가 고학력 조선족들에게 F-4 재외동포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조선족 전문가, 기술자, 기업인들과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재한조선족 사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그들의 생활방식도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족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나아가서 동포 노래자랑, 미술 전시회, 축구 모임, 봉사활동 모임, 글마당 모임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이 무르익으면서 한중수교 20주년이 되던 2012년에 재한동포문인협회(대표: 이동렬 소설가)가 설립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문인협회의 동인지 『동포문학』 1호가 출간된다. 10주년을 맞는 올해 제 13호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재한동포문인협회의 설립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임무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재한동포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전환시킨다.
한중수교 초기 재한동포들이 표면적으로 추구하던 것이 물질적인 가치였다면, 수교 20년이 흐르고, 그들의 법적 지위가 정상화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욕망 뒤에 숨어 있던 정신적인 가치를 점점 구체화 시키기 시작한다. 그들이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 한민족 동일성 회복의 실패, 동포가 아닌 중국인 노동자로서의 대우 등 여러 정신적인 상처들이 그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삶의 가치를 성찰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국에서 진정 찾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철저히 반성하고, 처절하게 성찰한다. 그리하여 문인협회의 설립은 그들의 그러한 자아반성과 성찰이라는 구슬을 꿰어 삶의 가치를 변혁시킨다,

둘째, 문학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며 소통의 의미를 자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 이래로 문학의 치유 효과는 자명한 일이다. 물론 육체활동이나 오락을 통한 치유도 가능하지만, 문학은 병든 정신이 지닌 문제의 본질을 찾아 치유해준다. 그런 점에서 재한동포사회의 여러 단체들 중에서도 ‘문입협회’의 임무는 무척 소중하다. 특히 협회에서 발간한 『동포문학』은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겪은 나그네의 서러움, 노동자의 고달픔, 이산의 그리움, 소수자로서의 소외감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희망,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의미, 그리고 그러한 고난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기성찰을 하게 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삶에 주체로 우뚝 서는 인식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 나아간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개인의 정신적 치유에서 출발해서 동포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분명한 전망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혜를 찾게 해준다.

이는 다시 다음과 같은 3가지 방향성을 지닌다.
첫째, 자신과의 소통과 화합이다. 그들은 문학을 통해 자기서사를 발견하고, 자신의 트라우마와 화해하기 시작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며, 자기혁신으로 승화된다.

둘째, 조선족들 간의 소통과 화합이다. 문학은 한 개인, 또는 문학인들만의 것이 아니듯이, 이들의 창작활동은 언제나 조선족 사회 전체의 존립과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희망과도 직결되어 있다.

셋째, 한국사회와의 소통과 화합이다. 자기성찰을 통해 주체의 의미를 각성하게 되면 한국인들과 문학을 통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인문학적 화합의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셋째, 재한조선족 사회에 정신적 의의를 제시한다. 
예측하건대 앞으로 재한조선족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재한동포문인협회는 재한조선족 사회의 정신적인 등불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협회는 단순히 작가들이 작품활동만을 하는 모임이 아니라, 재한조선족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문학을 통해 찾고, 문학적 성찰을 통해 그 지향점을 많은 조선족 구성원들에게 제시하여 그들을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재한동포문인협회가 지난 10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이자 새로운 시작을 여는 밝은 등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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