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응모글

삶의 무게

글 / 배영춘

 

“이 밤중에 누가 전화를....” 현장 일에 녹초가 되어 달콤한 잠에 빠진 나는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친구 전화번호다. 받을까 말까 잠깐의 고민 끝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임마 전화했음 말을 해야지. 새벽부터 노망 났나?” “방금전에 영일이(가명)가 세상을 떠났다.”“뭐 뭐라고? 영일이가 죽었다고?!”순식간에 안면 근육이 일그러지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건강한 친구인데, 몇 시간 전까지 통화하며 잘 자고 내일 만나자는 약속까지 한터였다. “심근경색인 것 같은데 지금 구로대학병원에 와 있다. 걔네 집에서 12시까지 술 마시고 같이 잤는데 화장실에 갔다가 넘어져서....”울먹이던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알았어. 금방 갈게” 나는 더 이상 물어볼 새도 없이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2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자타공인 ‘나 혼자 산다’를 무난하게 실현해가던 중이다. 유난히 술을 좋아했던 친구는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술 약속을 잡는다. 흔히 남자들은 쌓인 술병의 숫자와 우정의 깊이를 비례한다고 말한다. 좋은 술자리는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편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막걸리 잔 수가 늘어갈수록 판은 커져 여기저기 친구들이 모여든다. 그렇다고 술만 좋아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친구는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해서 옳고 그름을 조언해주는 친구다. 

 

 

  젊었을 때 한국에 와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아내의 병원비에 다 까먹고 지금은 월세방살이지만 누구나 아무 때나 연락하면 만나주곤 하던 친구였다. 언제부터였을까? 부부 동반으로 만나거나 여행을 가면 친구는 지갑 속의 가족사진을 보이면서 자기도 아내하고 같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행 좋아하는 아내하고 제주도는 물론 국내 여행도 제대로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 많이 돌아다니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줬을 텐데... 제일 마음 아픈 건 아내가 죽기 며칠 전에 중국에 돌아가 딸애랑 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형편에 어떻게 중국 가나 했더니 그럼 지금 사는 집에라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날 밤, 친구 아내는 그렇게 친구의 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50대, 60대가 겪는 감정의 변화 중 하나가 덜컥 홀로 남겨진다는 두려움이라고 한다. 그러나 친구에게서는 전혀 느껴지지 못했다. 건강한 생존을 위해 든든한 몸만들기와 운동, 인간 관계망의 활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친구는 술을 마시면서 요즘 자기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고마움을 느끼고 더 할 수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한 생각이 난다. 변화무쌍한 현실 생활 속에 신뢰의 관계를 깨지 않고 지금까지 왔고 미래도 기꺼이 함께 해줄  선하고 착한 의리의 친구들이라서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

 

  아내가 옆에서 챙겨줬더라면 이렇게 급급히 가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 소중하지 않은 삶은 하나도 없다. 영유아기를 거쳐 청, 중, 노년기까지 하루하루가 희로애락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찍어 가는 중이다. 누구나 드라마의 엔딩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모두가 내 맘대로 되면 좋으련만 다 제 갈 길 있고 제 복은 타고 났다고 했으니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태어날 때는 축복으로 왔으나 돌아갈 때는 혼자였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곁에만 있었더라도 이처럼 외롭게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쭉 훑어보았다. 친구들과 좋았던 그 순간들을, 언젠가는 나도 기억을 잃어버리겠지만 그 잃어버릴 때를 최대한 늦추어보기 위해 찰나들을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조각들을 모아둔다. 사진 속에 활짝 웃고 있는 ㅇㅇ친구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순간은 사진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과거의 한순간을 기억해내서 이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한편에 묻어둔다. 해변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 하나를 골라서 영정사진으로 만들었다. 코로나로 조문객도 많지 않았고 식단도 단출하게 차려졌다. 중국에 사는 딸에게도 연락했으나 코로나로 하늘 길이 막혀 어쩔 수 없는 기막힌 노릇이다. 

 

  입관식은 말 그대로 망자를 관에 넣는 작업이다. 정말 중요한 과정이다. 입관식이 끝나면 더는 망자의 얼굴을 볼 수 없기에 평생을 기억하게 될, 가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슬픔에 잠긴다. 입관을 지켜보면서 우리 친구들은 누군가 통곡하고 누군가 닭똥 같은 눈물을 떨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슬프다. 관속에 반듯이 누운 얼굴이 평화롭다. 아내의 옆으로 간다고 생각해서인지 지금껏 보아온 중 가장 편안한 얼굴이다. 곧 친구는 떠나간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 시간 여행길에 친구는 사랑하는 아내가 맞이해 줄 거라 믿는다. 

 

 

  소리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없이 마르지도 젖지도 않아 흔들리다 사라진다고 어느 소설가가 말했다. 죽음의 소리도 그러할까, 귀청에서는 친구의 환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손에 들려진 상여는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퇴로가 없는 50대 초반, 중년의 슬픔과 외로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가장(家長)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어깨에 짊어지고 현장 일을 하면서 떳떳하게 살아왔다. 매미 소리마저 정적에 숨 죽이는 삼복더위에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뙤약 볕 아래 망치를 휘두른다. 

 

  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서럽지 않았냐고? 행복이란 단어를 잊지는 않았냐고?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켠 친구는 아내가 그립고 딸이 보고 싶단다. 딸이 아홉 살적에 처가에 맡겨놓고 한국에 나와서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정말로 사랑하는 딸인데, 아빠로서 사랑 표현이 부족해 지금도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이었다. 남들 못지 않게 돈을 보내주고 딸아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춘기인 딸아이가 돈보다도 가족이 그립고 부모 사랑이 그립다는 것이었다. 딸아이는 지금도 아빠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원망하고 있단다. 친구는 내면의 슬픔을 감추고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도 사랑하는 딸아이가 오해하지 않도록 노력중이였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드러내지 않는 상처가 무서운 법이다. 어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고통이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친구도 분명 자신이 몸이 좋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이라는 심리적인 억압 때문에 남들 앞에서 든든하게, 강철 로봇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타내지 않았을 뿐일것이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준비 안 된 건강한 사람의 부고를 받았을 때 다가오는 충격의 여파는 진하게 오래간다. 잘 가시게 친구, 고통 없는 저세상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그동안 못다 한 사랑 쭈욱 이어 가시게나.  

 

 

 

 

 

 

 

 

저자 배영춘

 

<2022년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후원과 협찬 리스트

 

후원 단체 리스트

  1. 사단법인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2. 사단법인 일본조선족경영자협회

 

협찬 기업 리스트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 전심혁 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 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 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크레스: 리룡식 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 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 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 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 사장
10. 삼구일품김치: 리성 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 사장
12. 주식회사JCBC: 엄문철 사장
13.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 사장
14.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 사장
15.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 사장
16.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 사장
17.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 사장
18.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 주식회사: 최장록 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 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 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 소장

개인 협찬 리스트

1. 최우림 박사: 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부회장
2. 장경호 회장: 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 리숙 사장: 주식회사미사끼(実咲) 사장
4. 리대원 회장: 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 박춘익 사장: 주식회사BTU 사장
6. 구세국 회장: 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7. 박진우 본부장: 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국가2급정비사
8. 최운학 회장: 일본훈춘동향회 회장
9. 김광림 교수: 일본니가타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교 박사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 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

【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영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지난 응모글 보기  

응모1 아침바람 찬바람에 (최금화)
응모2 저녁노을 (태명숙)
응모3 천평 (리홍화)

응모4 호주에서 힐링하는 여자(리의정)
응모5 매화꽃 편지 (최상운)
응모6 엄마의 마음(현애옥)

응모7 새벽에 온 문자 (황은실)
응모8 뉴질랜드에서의 그때 (남철우)
응모9 내 친구들에게 (조려화)

응모10 지금 나는 아이와 함께 성장중(황해금)
응모11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며 (박경옥)
응모12 가족사진 변천사 (허순옥)

응모13 담배 한 곽 (금룡)
응모14 열정이 이끄는 나의 삶 (박향화)
응모15 한국에서의 직장생활 (리해월)

응모16 위대하지 못한 유산 (장범철)
응모17 20대의 끝자락 (김홍련)
응모18 산은 언제나 거기에서...(량춘옥)
 
응모19 형님과의 대화 (방홍국)
응모20 숟가락에 비친 사랑의 미소 (김춘녀)
응모21 희비로 반죽된 어머님의 80 성상 (방금숙)

응모22 나는 조선어문 교원이다 (김경희)
응모23 우리 아리랑을 위하여 (리광식)
응모24 벚꽃 엔딩 (정춘미)

응모25 나와 천사들 (허순애)
응모26 딸아이와 우리글 공부 (허해란)
응모27 "울 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줄도 모릅니다" (오기활)

응모28 아부이야 -아버지에게 드리는 글 (최화숙)
응모29 우린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뿐이고
 (림연춘)

응모28 아부이야 -아버지에게 드리는 글 (최화숙)
응모29 우린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뿐이고
 (림연춘)
응모30 솔퍄도는 바닷바람에 놀고  -련봉산기행문(강선화)

응모31 <개구리>들의 사색 (김화)
응모32 남편의 좌충우돌 창업기
 (김복설)
응모33 자유로운 나날을 꿈 꾸며(박수영)

응모34 간병인의 수기 (김은실)
응모35  약속시간 
(강희선)
응모36 (단편소설) 택시 (김무송)

응모37 딸애의 빛나는 청춘(정진)
응모38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조옥순)

(계속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