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한동포문인협회 迪卡诗 분과 [제19호]

 

실향

견딜 수 없이 마려워 풀어버린 곳 
낯선 햇살 한 줌 빌어 틔워보는 싹 

감자꽃 하얗게 피어오르면 
떠돌던 발길 머무를 수 있을까 

- 김순자-

 


 

<시작노트>

김순자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김순자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도시 담벼락 밑에서 비닐주머니에 담긴 채로 싹이 튼 감자를 보는 순간, 가슴 속 깊이에서 뭔가 울컥 치밀었다. 고향을 멀리 떠나 타향살이의 쓴맛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어찌 알랴. 이역만리 타향에서 뿌리 내리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 발버둥쳤던가? 어렸을 적 엄마가 늘 부르시던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고향을 떠나와서/ 고향을 떠나와서/ 오늘 밤은 이곳에서 밤을 새우고/ 내일은 어느 곳에서 꿈을 꾼단 말인가” 주머니 속 감자들이 하루 빨리 왕성한 생명력으로 꿋꿋이 자리잡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엄마의 옛노래를 따라 불렀다.

 


 

<평설>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자루에 담긴 감자가 도시의 철책 아래에서 싹이 텄다. 여기에 시인은 “견딜 수 없이 마려워 풀어버린 곳”이라고 언술을 달았다. 식욕, 배설 등과 같은 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서 매슬로의 “욕구5단계설”에서 가장 저차원적인 “생존의 욕구”에 속한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저 곳에서 풀어버렸을까? 한 세기 전 쪽지게를 지고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온 우리의 선조들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보다도 도시로 갓 진출한 이방인들이 연상된다.

감자는 시골생활을 연상하게 하는 적중한 영상물이다. 김동인의 소설 <감자>,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 모두 농경사회를 반영하고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페르디난트 퇴니에스(1855-1936, 독일의 사회학자)는 인간 사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지연이나 혈연, 우정으로 깊이 연결된 자연 발생적인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가 이익이나 기능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게젤샤프트(이익사회)로 점차 옮겨간다고 주장하였다. 더불어 퇴니에스는 이 과정에서 인간관계 자체는 소원해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 부모세대의 대부분 사람들은 태어난 장소에서 이동하지 않고 윗세대의 직업(대부분 농업)을 이어받았고, 태어날 때부터 소속된 지연과 혈연으로 맺어진 커뮤니티에서 이탈하는 일 없이 그곳에서 일생을 보냈다. 하지만 고도의 경제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세대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게마인샤프트를 떠나 출국을 하거나 도시에 진출하여 타지의 점포나 도시의 기업이라는 커뮤니티에 속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은 붕괴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촌락 공동체”도 점차 무너져 가고 있다.

기업에서는 각양각색의 기업문화로 보다 합리적인 게젤샤프트를 구성해보려고 하지만 종신고용, 연공서열, 노동조합 등 기업제도로 인해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위에 논술이 잘 이해 될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물질생활은 과거 시골생활 때보다 훨씬 풍요로워 졌지만 마음은 헛헛하고 인정은 박해지고 귀속감이 느껴지는 조직은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인은 농경사회의 “촌락 공동체”에서 이탈하면서 “실향민”이 된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퇴니에스의 예언이 실증된 셈이다.

미국에서는 머지 않아 “완전한 게젤샤프트”가 등장하리라 예상한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일까? 그 열쇠는 취향이 같은 사람들 즉 취연으로 모여 이루는 “소셜미디어”라고 한다. 너무 낙천적이고 순진한 생각이라고도 일방에서는 말하지만 소셜미디어가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어 본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이 현재 소속되어 있는 문학그룹들도 게젤샤프트의 원초적 형태가 아닐까?

기억 속에 고향처럼 “감자꽃이 피어오르면” 평화롭게 “머무를 수 있”을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디카시 <실향>은 엉뚱한 곳에 얼굴을 내민 감자싹 영상으로 현대인의 복합적인 심리와 불확실한 미래를 반영한 무게감 있는 디카시로 읽혔다.

- 이준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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