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자씨의 사진작품들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는 감동을 받았다. 소를 소재로 하였기 때문이다. 하기야 로신도 소를 노래했고 춘원 이광수도 소의 덕성을 노래했다. 조선족 작가의 경우 소를 노래한 오태호의 수필 <소의 코와 꼬랑이의 해방>도 백미거니와 조룡남의 시 <황소>도 압권이다. 물론 몇 해 전에 우리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본 <워낭소리>라는 다큐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소를 소재로 하였으되 김향자씨의 사진작품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특별한 울림을 선물한다.

사진은 주인공과 배경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 물론 김향자의 사진작품들의 “주인공”은 소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 나오는 소들은 연변의 소요, 가난한 농부의 소다. 씨름판에서 우승한 상씨름군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멋진 둥글소도 아니요. 소싸움에 나서서 사납게 뿔을 휘두르는 소도 아니다. 또한 따뜻한 우사에서 한가롭게 여물을 씹는 소도 아니다. 김향자의 작품에 나오는 소는 얼룩소가 많고 대체로 힘겹게 밭갈이를 하는, 잔등이 칼등같이 여윈 암소가 많다. 또한 눈꽃이 날리는데 어미소와 송아지가 나란히 서서 하염없이 동구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많다. 참으로 우리 연변사람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일제의 침탈을 이기지 못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 이 거친 벌판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땅을 일구어 벼농사를 지었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소를 보면 저 장백밀림에서 풍찬로숙하면서 총칼을 들고 일제와 용감하게 싸웠던 유격대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더욱이 이 리산의 시대에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우리 부모자식과 형제자매들을 기다리는 고향사람들의 슬픈 눈길을 떠올리게 된다. 

김향자씨 작품의 배경은 대체로 눈덮힌 들판이 아니면 높지도 낮지도 앉은 연변의 산등성이다. 하지만 사과배꽃 새하얗게 피는 산등성이와 그 기슭에 서있는 소들, 그 흰색과 노란색의 어우러짐, 그리고 우사간을 드나들면서 소들을 자식들처럼 대하는 농부의 유순한 눈빛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위안과 희망을 준다. 이제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사로운 새봄이 오면 겨우내 우둘우둘 떨던 우리 집 암소도 새끼를 낳고 저 푸른 들녘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으리라, 그런 위안과 희망을 준다.   

김향자씨는 5-6년 전 룡정윤동주문학연구회 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중년의 아줌마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행사장을 뛰여다니면서 찰칵칼칵 사진을 찍는 모습이 놀라웠다. 어느 신문사나 방송사의 기자는 아닌 것 같은데 단체사진을 찍을 때는 위태롭게도 높은 책상 우에 올라갔다. 그야말로 전쟁판의 종군기자를 뺨 치게 용감하고 날렵했다. 특히 행사가 끝나면 반드시 사진을 뽑아서 그 주인공들에게 보내주군 했다. 한번은 여러 행사에서 찍은 나의 사진들을 골라 알뜰하게 CD에 담아 선물하기에 큰 감동을 받은 적 있다. 김향자, 그 이름 그대로 인간적 향기가 넘치는 사진작가라 하겠다. 

나는 춘원 이광수를 인간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명수필 <우덕송(牛德颂)>만은 좋아한다. <우덕송>에 나오는 글귀로 이 글을 마무리하면 어떨까? 

“세상을 위하여 일하기에 등이 벗어지고 기운이 지칠 때에 마침내 푸줏간으로 끌려 들어가 피를 쏟고 목숨을 버려 사랑하던 자에게 내 살과 피를 먹이는 것은 더욱 성인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 그의 머리에 쇠메가 떨어질 때, 또 그의 목에 백정의 마지막 칼이 푹 들어갈 때, 그가 ‘으앙’하고 큰 소리를 지르거니와, 사람들아! 이것이 무슨 뜻인 줄을 아는가. ‘아아, 다 이루었다! ’ 하는 것이다.”

소를 소재로 한 김향자씨의 사진작품을 보면 자연스럽게 춘원 이광수의 <우덕송>을 떠올리게 되고 나의 부형같고 자식같은 소, 그 유순한 눈빛과 억척스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나 한 사람만의 느낌일가? 

-2022년 2월 26일, 와룡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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