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오감도 / 역전불가
2. 오감도/ 신식구식 
3. 오감도/ 오랑캐 女人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

오감도 烏瞰圖 1/ 역전불가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다. 

 
영감은 마당 가운데 널어둔 콩을 자루에 쓸어 담고는 

헛간으로 옮기는데 낑낑거린다. 

저만치 부엌에서 지켜보던 할망이 혀를 찬다. 

“마, 비키보소!” 

할망은 낑낑거리는 영감을 엉덩이로 툭 쳐낸다. 

그 바람에 영감은 마당에 고꾸라지고 영감이 채 일어나기도 전에 

콩자루를 가볍게 들어 헛간으로 옮겨놓는다. 

할망 엉덩이에 밀려난 영감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지만 별 수 없다. 

요즘 와서 모든 면에서 그렇듯 할망에게 뒤진다. 

감나무에 앉아 있는 까마귀가 딱하다는 듯 바라본다. 

그러나 까마귀처럼 까먹었던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여보, 우리 오줌 멀리 가기 내기하자!” 

할망은 같잖다는 듯 영감의 제의에 응했다. 

둘은 마당에 줄을 긋고 나란히 섰다. 

아니, 선 것은 영감이고 할망은 앉아 자세였다. 

“요잇-땅!” 

아니나 다를까 영감의 오줌줄기가 할망보다 멀리 날아간다. 

영감은 흐뭇해한다. 할망이 옆을 슬쩍 본다. 

“손대면 반칙, 잡은 것 놓고!” 

손을 놓자 영감의 오줌줄기는 발등 위로 톡톡 떨어진다. 

“아, 이것마저...” 

 
감나무 까마귀도 그걸 보고 ‘까욱’ 한다. 
 

*오감도 烏瞰圖 /조감도에 까마귀 烏를 바꾸어 패러디한 이상의 詩 제목에서 따옴 


오감도 烏瞰圖 2 / 신식구식 

 

어둑어둑 작은 산골에 평화 같은 어둠이 내려온다. 

사리울타리의 미루나무 키가 한층 커 보인다. 

비틀비틀 나귀 타고 장에 갔다 돌아오는 영감은 한 잔 걸쳤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길-” 

노래가락 대신에 신식 가요로 흥얼거린다. 

미루나무 위 까마귀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영감은 장터 상놈들에게 아직도 나귀나 타고 다닌다고 면박을 받았다. 지난 장에는 갓 쓰고 다닌다며 빈정대던 중절모 신식들과 다투었다. 생각하면 장터 상놈들이 신식이니 뭐니 하며 나대는 꼬라지가 영 꼴불견이지만 그래도 신식 기술들은 편리한 것이 많았다. 그날도 영감은 신식 노래를 배웠으나 한 소절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 귀가길 내내 그것만 반복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었다. 어둠 탓인지 미루나무 까마귀는 보이지 않는다. 

영감은 잠자리 들다가 문득 엉뚱한 제안을 한다. 

“오늘 장에 가서 신식을 배웠네.” 

신식은 서서 한다며 의기양양 마누라를 머리맡 시렁 밑으로 끌었다. 

시렁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달려 약간은 불편했다. 

둘은 시렁 밑에서 엉성한 포즈를 취하다가 그만 메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필 그 메주가 잠자던 큰놈 머리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던 큰놈이 한 마디 걸친다.  

“에이 씨-. 그냥 구식으로 하지...” 

 
*오감도 烏瞰圖 /조감도에 까마귀 烏를 바꾸어 패러디한 이상의 詩 제목에서 따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2 / 오랑캐 女人 


 
중국 북한 국경 부근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시켰다. 

시간이 수십 년 전에 멈춰버린 것 같은, 물건도 사람도 

모든 것이 낡고 헤진 식당, 창 너머 풍경마저 오래된 풍경이다. 

“남조선 신사분이시네” 

식당아줌마는 부끄러워하면서 인사를 건넌다. 

“그렇습니다. 부산에서 왔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도 부산에 사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망의 눈빛이 참 순진하달 수밖에 없다. 

그러고는 돌아서면서 다른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역시 남쪽 남자분들은 기품이 있고 멋이 있어.“ 

그러고는 자기네들끼리 내 쪽을 흘깃흘깃 보면서 뭔가 부러운 듯 이야기한다. 

“저는 이렇게 옛날 같은 풍경이 좋습니다.” 

내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아주머니는 물주전자를 가지고와 

물 잔에 물을 따라준다. 

그녀의 순진한 얼굴이 빨갛게 물이 든다. 

“참 미인이신데요.”  

라는 내 말에 그녀가 던진 농담 한 마디 

“남남북녀...” 

얼굴 붉히며 가버린 아줌마 뒷모습 보면서  

이용악의 ‘오랑캐꽃’이란 시가 떠올랐다.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 보렴,  

 오랑캐꽃... 



*오감도 烏瞰圖 /조감도에 까마귀 烏를 바꾸어 패러디한 이상의 詩 제목에서 따옴 

 

 

<박명호 소설가 약력>

1955년 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출생

화목초등학교 44회 졸업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장편소설/가롯의 창세기 등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뻐꾸기 뿔 등

산문집/ 촌놈과 상놈, 만주 일기 등

크리스천신문 신인문예상, 부산 MBC 신인문예상

부산작가상, 부산 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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