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빛 밟는 발자국 (외 4수) 

□ 류송미

 


두고 알기엔 아까운 시각들이
노트의 갈피 속에서 고개 내밀고
바람의 내음새 맡는다

자부심 높이와 깊이에는
햇살이 사막의 호흡도 덧칠해가고
나트륨 변신술엔 꽃이란 명사도
검푸른 언사(言辭)로 
파도의 날개 펴들고 있다

꺼으꺼으… 
갈매기 깃 편 이랑위에 거품은
고독 흔들어 깨우는 
천년 기다림, 그리고…
눈 뜬 우주의 뒤안길엔
어둠의 각혈(咯血)도
새벽 신음, 이슬로 빚어간다

아픔 명멸하는 공간에
계단 밟는 조락의 잎새들…
볼 붉히는 소리가 들 덮어버린다

 

맞선보기


키는 작지 않았다
소개팅은 짧았지만 너무나도
긴 시간 필요했다고
넉두리가 딸라의 향기 씹고 있었다

없는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고 견뎠다
금전이 왔다 갔다 하는 거래소에서
물과 불의 키스에도 
기름은 떠있었다

아무튼, 기분 좋은 날…
어둠 앓는 우주의
아린 가슴이 필요했고
해저 깊은 곳에는, 가오리 날개의
언약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
미팅,무마해주고 있었다

러브라고 하지…
러브 유~ 라고 발음할 때
그 뒤에는 이별이란 대명사가
점잖게 보초서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둘이는 마주보고 웃었지

창밖에선 축복 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데…

 

분만(分娩)


그때었다
후유증엔 밤도 어둠 들고
바장이는 습관 연마해야 했다
터 갈라진 혓바닥에 
사금파리 반짝이고
소라의 귀에 바닷소리는
고사목(枯死木) 미래를 걱정하였다

서리꽃 녹을 때까지
들녘엔 별꽃 피고
빛은 탄생, 검사 맞혀야 했다 

가난 굽던 그 시절엔
아아, 지팽이도 여윈 겨드랑이
지탱해주어 고마웠다
그날이 바로 아들내미 낳는 날이었다

 

볕의 하루


남은 음식에는
단칸방 셋집의 
칭찬도 함께 따라나섰다
문 열고 넘나드는 바람의 딸꾹질엔
갓난애 기저귀 지청구도
시어미 잔소리로 녹슨 가난 닦아주었다

추울 때 
이불 덮어주라는 잔걱정
비닐하우스로
앞마당 채전 지켜주건만
뒷짐 진 남편의 기침소리는
밤 새워 지켜보는 별들, 놀라게 했다

어야, 듸야~
아기의 장한 덧…
아침햇살 미소 지을 때
손놀림 부지런한 햇각시의 안색이
회식의 날 
손꼽아 기다렸다


이런 날 많았으면 좋겠다는 
유머 한마디가
명절 분위기를 어쭈~ 살찌워주었다

 

암야(暗夜)


블랙박스의 확인이
찻물 따라 올린다
클럽에서 춤추고 소리 지른
내음새가 자는 척 한다
샤워 하러 들어간
남편의 지갑에서 구겨진 메시지가
시공터널 전설로 꽃을 피운다

벌컥벌컥… 
둘이서 나워 마시는
정감의 주스가 바다 되어
위장(胃腸)안에서 출렁거린다
여자는 구토를 느꼈다
뜨락에 모록이 쌓인 봄 햇살 달아날가봐
기침소리도 삼켜버리고
남자의 미소 앞에서 모르쇠를 댔다

아프고 쓰린 나날이 
장미꽃 가시로 시려드는 겨울 찔러 
함박눈 소리없이
지구를 덮어주고 있다
얼어터진 눈물이 
찢겨져 꽃이 되었다는 사실을
적막의 입덧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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