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예동근 교수가 9년 전에 썼지만 아직도 작자의 창작 열기가 느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지성인들의 안목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예동근 부경대 교수,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장
예동근 부경대 교수,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장

요즘 장안의 종이값을 올린 베스트셀러 소설은 조정래의  『정글만리』이다. 좀 과대평가하면, 박근혜대통령의 중국방문보다 더 효과적으로, 더 넓게 중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증진 시킨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서안, 베이징, 상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을 머리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인문차이나가이드북이기에 외교부와 문화관광부는 조정래 작가한테 ‘민간외교가’란 큰 명분을 주어야 할 것 같다. 

『정글만리』에도 인용되었지만, 차이나 중국은 ‘차이가 나는 중국’인 것처럼 지역, 민족, 언어, 빈부, 삶의 질, 교육, 공기, 대우, 인프라…등 수천 개면에서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로 차이가 크다가 볼 수 있다.

조정래 작가가 다룬 서안, 베이징, 상하이는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대표하는 ‘도시의 왕’이며, 작품속의 인물들은 포스코, 종합상사 상사원들은 굴지의 글로벌기업에 취직한 최고의 엘리트들이고, 기업들의 경쟁, 개인의 생존환경 역시 정글사회인 것이다. 베이징, 상하이 천만이 넘는 대도시의 사람들은 ‘런타이둬(사람이 많다)’를 입에 담고 살며, 번쩍번쩍 빛나는 고층건물과 호화로운 호텔인테리, 권력자들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삶은 일상으로 보여주는 측면도 오늘날의 중국의 현주소로 소개하는 것도 수긍되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모두 ‘샹첸칸(미래를 보고 살다)’은 ‘돈’으로 변화되면서 ‘돈을 바라고 산다’는 의미로 변화되면서 원초적인 자본주의 정글로 빠져 들어가는 현실을 리얼리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도시 삶속에서 인간의 심장은 강철처럼 굳어지고, 머리는 컴퓨터처럼 프로그램화된 ‘정글정석’이 무엇인지를 ‘꽌씨’, ‘당원’ 등 중국화된 암호로 사회내부의 연결망과 그 행위를 잘 설명하기도 하였다.

조금 우려스러운 것은 이 책이 너무 영향력이 커짐으로서 ‘중국이해의 정석’으로 굳혀지면 ‘반쪽 중국’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중국의 중용철학은 항상 ‘좌’와 ‘우’의 균형을 요구하며, 도시가 있으면 농촌이 있고, 그늘이 있으면 빛을 받는 것도 있는 것이다. 

조정래작가가 서안, 베이징, 상하이 중심으로 만리기행을 했다는 저는 이번 방학에 중국의 곡창인 흑룡강성과 길림성의 농촌을 돌면서 천리기행을 하였다. 조정래 작가가 본 것이 ‘정글만리’라면 저가 본 것은 ‘유정천리’이다.

흑룡강성의 농촌은 광활하며, 마을은 텅텅 비어 있기에 ‘런타이둬(사람이 많다)’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런타이소어(사람이 적다)’가 문제이다. 베이징의 거리에 차고 넘치는 것이 외국인지만, 농촌마을에서 10년을 넘어도 외국인 한사람 볼 수 없으며, 상하이는 고급호텔에 하루에 수십개의 결혼예식이 있지만, 농촌마을에 1년이 넘도록 결혼예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나처럼 한국에서 교수직업을 가진 ‘외국에 사는 내국인’을 보았을 때, 농촌을 지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반가운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농촌의 이장은 감동되어 점심부터 술상을 준비하였고, 중국의 50도 넘는 고량주를 한국 소주술잔의 3배가 되는 컵에 철철 넘치도록 가득 채웠다. 연이어 석 잔을 권하였다. 베이징, 서울, 부산에서 15년 넘게 생활하면서 강철처럼 굳어진 나의 심장은 중국 농촌의 용광로에서 사르르 녹았다.

점심에 뻗어져서 저녁에 눈을 뜨니 나의 심장은 말랑말랑하여졌고, 별들이 깜박깜박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깨끗한 저녁 밤공기를 힘껏 빨아보면서 가슴 속 깊이 쌓인 베이징의 검은 매연을 토하는 것을 상상하니, 내 영혼의 찌꺼기들도 함께 날려보내듯 한결 시원하였다.

여기서 머리로 계산할 필요가 없고, 그냥 감정이 가는대로 술을 마시면 되고, 저녁에 수박을 먹어면서 말랑말랑하게 탄력있는 심장에서 튕기는 소리로 대화하면 된다. 여기는 인간정글이 아니라, 천연의 힐링 캠프장이다. 나의 유정천리가 마무리되면서 다가오는 추석에 제군들에게 농촌으로, 고향으로 한번 달려가면서 심장이 튕겨나오도록 자연과 인간과 대화를 실컷 하여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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