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 회장

권순기

 

 권순기 权顺基

중한경제발전협회 집행 회장을 시작으로 중한간의 민간 외교에 앞장섰던 권순기 회장은 수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특히 한국 대기업들의 중국진출에 큰 가교역할을 해오면서 굵직굵직한 합작 스토리들을 만들어냈다. 그 기초 위에서 중일한경제발전협회로 영역을 넓혀왔고 오늘은 아시아주를 무대로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로 확대하여 회장 신분으로 불철주야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여념이 없다. 중한 수교 30주년을 맞으며 협회에서 기념집을 출간하자는 결정이 내려진 데는 권 회장의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중한 수교 30년간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은 해마다 늘어났으며 교역액 역시 줄곧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한국인들이 중국에 자본투자를 시작할 때는 중소기업이 위주였고 투자규모도 많지 않았다. 권 회장은 한국 기업인들이 짧은 시간에 중국의 투자환경과 투자정책을 이해할 수 있었고 중국에서 빠르게 정착할 수 있은 데는조선족이라는 ‘교량’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그 당시 한국인들은 관광 겸 시장고찰 등 다양한 목적으로 중국을 다녀갔지요. 관광단이나 한국 산업고찰단에는 늘 중국 조선족 통역이 동행했으며 조선족들은 언어적 우세와 혈연적 관계로 자기 일처럼 간주하고 최선을 다했지요.”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 권 회장은 기억을 더듬으며 중한간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대한민국 동백장 수상

1993년 중한경제발전협회를 발족하여 30년간 중한 경제협력과 민간교류를 위해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권 회장은 2021년 2월 대한민국훈장인 동백장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는 조선족으로서 대한민국의 정부상을 받은 첫 사람이기도 하다. 권 회장은 중한경제발전협회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순조롭게 펼쳐나갈 수 있도록 현지 인문과 법률 자문을 제공하면서 현장에서 부딪친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해주고 지방 정부와의 소통을 원활히 하도록 적극 도움을 주었으며 중국 투자전반 과정에 관여하면서 협력에 성공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해준 공이 인정되어 동백장을 수상하였다.

“협회와 더불어 본인은 중한 수교 30년간의 양국 관계 발전에 직접 동참하고 노력한 산 증인으로서 각 분야의 협력 특히 경제무역 영역에서 이룩한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서 많은 조선족들의 가교역할이 있었기에 한중간의 경제 문화교류가 활성화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지요, 내가 받은 동백장 훈장은 사실 조선족들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 회장은 지난 3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다음 30년에 더욱 큰 협력의 성공사례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조선족 기업인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과 기여 못지않게 더욱 넓고 규모가 큰 협력을 이뤄 낼 수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나름대로 중국 현지에서 주류사회와의 인맥을 탄탄하게 맺고 있기에 중한간의 경제협력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199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인들의 중국 나들이가 시작되면서 미지의 중국 땅에서 쉽게 정착할수 있는 조선족이라는 자원과 만나게 되었다.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동일한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조선족이 있었기에 어디를 가도 두렵지 않았고 어디에서도 발을 붙일 수 있었다.

일본은 중국과 수교한 시간이 20년이나 앞섰지만 중국 현지에 동질성을 확보한 인맥이 적었기에 한국보다 어렵게 중국 시장을 개척해왔다.

▲ 2021년 2월 주중 한국대사관 장하성 대사로부터 한국국민훈장 동백장을 전달받는 권순기 회장(좌)
▲ 2021년 2월 주중 한국대사관 장하성 대사로부터 한국국민훈장 동백장을 전달받는 권순기 회장(좌)

물론 모든 게 순탄했던 것도 아니다. 한국어가 서툴러 오해를 산 적도 있고 한국의 직원으로 일하다보니 무시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조선족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에 의지하게 되었고 투자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호의가 생겼고 조선족들은 한국인들을 친척처럼 가깝게 느끼게되면서 정을 쌓아갔다. 조선족들도 날이 갈수록 성숙해지고 나름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겪었다. 통역, 여행사 가이드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를 배우면서 점차 더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중국의 경제정책과 문화풍습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중국알기’에 손발이 되고 입이 되어준 조선족들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에 믿음직한 조력자가 되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 중한경제협력 30년의 역사에 조선족들의 기여가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해결사’

고향이 한국 경기도 양평인 권 회장의 아버지는 1939년 일본의 강제징집을 피해 중국으로 피신해왔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을 준비하던 중 1950년 ‘6.25전쟁’이 터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버렸다. 그 뒤로 약 40년간 가족의 소식을 모르고 살다가 1980년대 말에 들어와서야 중한 양국 관계가 조금씩 풀리게 되었다.

이산가족을 찾는 한국의 라디오 방송에 수차례나 사연을 보냈지만 종무소식이었다. 서로 간 서신왕래가 가능하게 되자 그의 아버지는 기억을 더듬어 고향의 주소로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를 삼촌이 받게 되면서 드디어 가족을 찾게 되었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은 가족사이다.

한국방문의 길이 열리자 권 회장은 아버지의 고향을 해마다 방문할 수 있었고 한국의 친척들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며 가끔 한국 매체들의 인터뷰를 받을 때마다 “나는 중국인이지만 내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곤 했다.
권 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1976년 군부대에 입대하여 헤이룽장성 하얼빈(黑龙江省 哈尔滨)에서 군복무를 끝마치고 무단쟝(牧丹江)공안국에 배치 받았다. 1985년 지린시(吉林市)로 전근하여 기계공장의 당위서기, 국영호텔의 당위서기 및 총경리(总经理, 사장) 등 직책을 맡았으며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1990년에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 민족경제발전총공사 부총경리로 그를 스카우트하면서 그는 베이징에 정착하게 되었다.

때는 중한 수교와 더불어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민간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시기였다. 중한 양국은 경제협력의 새시대가 곧 열리게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권 회장은 1993년 외교부 지도하에 새로 설립된 중한경제발전협회에서 1996년 상무부회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에 중화무역촉진회 회장 등 유지인사들의 자문을 받아 민간차원에서 역할 할 수 있는 베이징상립대투자고문유한공사를 설립하면서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이 협회는 중한 수교에 의해 맺어진 결실입니다. 중국의 발전과 더불어 한국 기업의 동반성장을 이끌어내려는 취지에서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민간단체이지만 중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사업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초창기 한국인들의 투자는 맹목성이 적지 않았는데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과 광활한 시장만 보고 원가계산도 주먹구구로 시작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의 법률 법규, 문화적 차이, 관습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다보니 얼마 안 가서 실패를 보게 되는일이 종종 있었다.

“쌍방이 갈라설 때면 많은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경제적인 피해가 막대했지요.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고 강 건너 불 보듯 할수 없었습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결사’로 나서게 된 셈이다. 지금까지 컨설팅을 해준 한국 기업은 100개가 넘으며 현재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한국 기업은 30여 개나 된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진출 성사, LG디스플레이가 중국 광저우(广州)에 투자한 110억 달러짜리 중대 프로젝트 중개, LS그룹의 쟝수성 우시(江苏省 无锡)에 공장 설립 추진, 한국무역보험회사와 관련된 한국기업의 중국 수출 과정에 빚어진 갈등 해결, SK그룹의 산시성(山西省) 지방기업과 협력 결렬 문제 처리, 현대 조선소의 칭다오(青岛) 유치 주선, 대우 시멘트의 산둥성(山东省) 철거 문제 마무리, 한국 병원의 중국 현지 법인과 합작 관계 주선, 양국 대학 간 교류 정상화 실현 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해냄으로써 진정한 ‘해결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지난 30년간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컨설팅사업을 해오면서 매번 한국 기업의 난제가 해결되었을 때나 투자 후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는 것이었다.

100여 명의 장관급 고문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는 중국 외교부의 지도아래 설립되었으며 중국민정부에 등록된 국가1급 사단법인기구로서 현재 100여 명의 현직 및 전임 장관급 간부들과 전임 중국 주외대사 등 저명인사들이 자문위원으로 있다. 산하에 100명의 기업인 회장단을 두고 있고 45개 분회로 나뉘어 다각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2만여 개 기업이 단체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협회는 아시아 48개 나라들과 민간차원의 경제교류 활동을 통해 상호 투자협력을 촉진하고 우의를 증진하는 취지하에 국가에서 추진하는 ‘일대일로’ 건설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협회 설립 30년 동안 권 회장은 중한 양국의 경제협력과 발전을 주제로 한 중한 민간원로포럼, 중한기업가협력포럼을 여러 차례 개최하였으며 중한 관계의 발전과 기업협력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였다. 또한 중국민간 기업가와 해당 성, 시 정부 대표단을 인솔하여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투자유치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였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순탄하지만 않았다. 일부 민간기업들의 비도덕적인 처사로 인해 협력이 깨지고 나중에 갈라서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경우 분쟁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정부의 공신력이 추락되고 더 많은 투자와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2000년 초, 한국연합철강회사가 우시시(无锡市)에 수억 위안을 투자하게 되었는데 투자금과 설비들이 도착한 시점에서 당지 민간기업의 부도덕적인 행위로 인해 합작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법정소송 직전까지 이르렀다.

권 회장은 직접 나서서 계약서부터 재검토하고 당지 정부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적절히 해결함으로써 한국연합철강의 피해를 막아주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한국 기업들은 중국 진출에 더욱 신심을 갖게 되었고 중국 정부의 공신력도 향상되었으며 합작과 투자액은 더 많이 늘어났다.

우시시는 한국에 ‘신뢰감이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로 부상하였으며 한국기업과의 신뢰관계가 구축되고 협력관계도 돈독해졌다.

권 회장은 우시시 경제개발구 고문자격으로 시정부 유관 인사들을 인솔하여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외자유치 활동을 벌였고 성과도 크게 나타났다. 현재 우시시에는 3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자리 잡고 있으며 투자액은 200여억 달러에 달해 한국 기업의 대표적인 글로벌 생산기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에서 삼성전자와 함께 ‘쌍두마차’로 불리는 SK하이닉스의 전체 생산량 가운데 절반 이상이 쟝수성 우시(江苏省 无锡)공장에서 생산된다. 다시 말하면 우시공장 생산에서 차질이 생기면

◀2021년 10월,쟝쑤성 얜청에서 개최된 일대일로상인협회 원탁회의 정상회담에서 축사를 하는 권순기 회장
◀2021년 10월,쟝쑤성 얜청에서 개최된 일대일로상인협회 원탁회의 정상회담에서 축사를 하는 권순기 회장

세계 반도체 가격도 출렁이게 된다는 의미이다. 2004년에 이런 중요한 합작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권 회장의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다. 초기투자를 20억 달러로 시작한 SK하이닉스는 현재18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투자를 함으로써 단일기업의 투자액이 가장 크고 기술수준이 가장 높으며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권 회장은 SK하이닉스 외 LG화학, LS전선, 현대모비스 등 대기업이 우시에 투자할 때도 중매자, 참여자, 협조자로 역할을 다양화해 가면서 협력의 성공사례를 키워나갔다.

전 세계 LCD(액정표시장치)시장을 석권해 온 한국이 처음 중국 시장을 개척할 때 일본과 대만 기업들과의 경쟁이 치열하였다. 이런 경쟁사들은 서로 결탁하여 한국 기업을 견제하려고 시도하였기에 차세대 LCD시장의 주도권을 일본과 대만에 뺏길 우려가 있었다. 권 회장은 협회 명의로 국가발전위원회, 주한 중국대사관과 소통하는 한편 한국 정부의 주목을 받았다.

2006년 LG디스플레이는 광저우(广州)에 40억 달러를 투자하여 LCD공장을 건설하였으며 2019년 OLED프로젝트에 7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여 현재 누적 총 투자액은 110억 달러로 늘어났으며 광저우에서 가장 큰 외자기업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IT기술과 중국의 노동력 및 자본을 결합한 새로운 IT기업 협력의 모델로 부상하였다.

조선족기업 성장의 플랫폼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조선족들은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면서 점차 동북삼성을 떠나 산해관(山海关) 이남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교육수준이 보편적으로 높고 문화 수준이 상대적으로 앞자리를 차지하는 조선족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에 쉽게 뿌리내릴 수 있었고 나름대로 윤택한생활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조선족들은 중국 전역의 대도시로 진출해 정착하고 기업을 꾸리면서 상권을 형성하고 그 지역의 동포단체를 만들어 조선족 집단의 화합과 성장을 견인해가고 있다. 권 회장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창업한 조선족 기업은 2만 개로 추산된다고 한다. 베이징에서만 조선족 기업은 연매출액 10억 위안(한화 약 1,700억 원)이 넘는 큰 기업들과 식당, 가게를 운영하는 적은 규모의 중소기업까지 포함해 도합 3,000개는 넘을 것이라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주류사회와 견줄 수 있는 중견 기업들이 하나둘씩 출현하기 시작했고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른바 초기 자본축적 단계를 넘어 서서 더 높은 수준, 더 큰 규모의 회사를 만들어가고있다.

조선족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을 통해 선진 기술과 경영관리를 배웠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창업의 종자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성장한 조선족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에 더 큰 도움을 줄수 있게 되었고 일부는 한국 기업에 납품하는 협력회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현재까지는 조선족 기업인들이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에 여러모로 가교역할을 하면서 한국 기업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단순히 제품 생산이나 가공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하였다.

권 회장은 목전 조선족 기업 중 상장한 기업은 몇 개뿐이라며 전반적으로 볼 때 규모나 실력은 아직 미약하다면서 아쉬움을 내비쳤다. 조선족 기업가들이 세계경제발전 조류 속에서 금후 기업의 전략적 도약을 실현하려면 서로간의 단합을 강화하고 정보와 경험을 교류하면서 동반성장하는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권 회장은 조선족 기업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투자를 보면 노동밀집형 위주로부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면서 일반 가공기업들은 중국에서 철수하는 반면 첨단과학기술 관련기업은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권 회장은 현재 적지 않은 조선족 기업들이 시장의 변화에 따라 한국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상태를 개변하고 독립적으로 기업을 운영해나가는 비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조선족 기업들은 한국, 일본 등 세계 최첨단기술회사와 손잡아야 합니다. 협회는 조선족 기업가들을 더 큰 무대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권 회장은 조선족 기업인들에게 더 큰 무대를 제공해주기 위하여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 산하에 조선족기업발전위원회와 국제무역발전 위원회를 두고 현재의 플랫폼에 조선족 기업들이 탑승하여 자원을 공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다.
현재 일본과 한국은 최첨단기술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중국을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기술 분야의 기업들과 손잡으려면 보다 신뢰성 있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비로소 사업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최첨단기술 기업들의 지분을 확보한다든가 기술을 인입해 들여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관계를 설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조선족 기업가들은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라는 이 플랫폼을 잘 활용하고 있는 바 회장단에 7, 8명의 조선족 기업가들이 포진해있고 적지 않은 조선족 기업들이 회원기업으로 가입되어 있다.

“조선족 기업인들이 협회 산하의 국제 유명 기업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하고 배우면서 시야도 넓히고 목표도 높이 설정하여 실속 있는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도모할 것입니다. 글로벌 한상네트워크라는 좋은 경제자원을 국내 조선족 기업과 접목시키고 주류사회에로의 진입을 가속화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권 회장의 구상은 이제 단순한 기업들의 생존이 아닌 글로벌화, 현대화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전략적 높이에서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거대한 플랫폼을 제공해주고 있다.

권 회장은 중한 양국의 향후 30년의 경제 합작과 발전에 대해 이렇게 전망하였다.
“우리 속담에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지요. 중한 두 나라는 이사해서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웃인 만큼 서로 친목을 다져야 합니다. 아세아는 경제협력에서 상호 보완성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긴밀한 협력은 쌍방에 모두 이득이 되는 일이며 또한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중한 양국은 이웃관계를 잘 처리하고 상호간 양해와 존중, 포용과 지지를 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중한 양국은 모두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 나라이며 양국 경제는 상호 보완성을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에 공동 번영과 발전의 새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해 국제무대를 향한 쌍방의 자원을 잘 활용해야 한다. 보다 실리적인 합작과 협력을 통해 양국 관계의 전면적인 발전을 촉진함으로써 양국 인민들이 그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중한, 중조 관계를 잘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공동발전을 실현하는 지름길이 될 것인 바 조선족 기업인들의 역할이 어느 시기보다 중요해졌다고 권 회장은 강조했다.

글 서정옥
글 조글로에서

 

 

권순기 权顺基
1959년 길림성 길림시 서란현(吉林省 舒兰县) 출생
조선족
중앙당학교 경제관리학과 졸업
북경상립대투자고문유한공사 동사장

사회직 
길림시 기계공장의 당위서기, 국영호텔의 당위서기 및 총경리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민족경제발전총공사 부총경리 등 역임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 회장 겸 당지부서기
전국조선족정부기관고위층경제포럼 주석
중한기업연의회 회장, 중일기업연의회 회장
장삼각일체화 터아후융합창신연맹 고문
중국민영기업유권위원회 상무부주석
중국국제중재위원회 조정위원
연변대학교, 산동재경대학교 명예교수
수도경무대학교, 한국동양대학교, 한국아주대학교 겸직교수
길림성 옌벤조선족자치주 경제고문
산동성 허저시인민정부, 산동성 위해공업단지
하북성진황도경제기술개발구, 길림경제기술개발구
천진경제기술개발구 등 정부 고급고문
한국LG주식회사, (주)한국LS전선, (주)한국LG화학, (주)한국LG Display
(주)한국동국제강, (주)한국LG에너지솔류션 등 대기업 고급고문
강소성 무석시고신기술개발구, 하북성 당산시정부, 한국인천광역시
한국울산광역시, 한국제주특별자치도 등 도시 자문위원

영예
202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동백장 수상

 

글/ 서정옥, 취재파일 


서정옥
서정옥

【서정옥 프로필】
1963년 흑룡강성목릉시(黑龙江省 穆陵市) 출생
조선족
중앙민족대학 소수민족언어문학 학부 학사, 석사
<민족단결> 잡지사 조선문편집부 기자, 편집, 편심
중국조선어규범위원회 전문가 위원

며칠 전 집정리를 하다가 1990년대 초, 중한 통역으로 선발되어 일하던 시기 한국 손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스카프가 눈에 띄었다. 농악 상모돌리기와 훈민정음 패턴의 실크 스카프다. 20대 젊은 나이 때 즐겨 입던 흰 원피스에 포인트 컬러가 되어주던 이 스카프를 나는 30년이 넘게 장농서랍에 소장하고 있다. 스카프를 선물한 손님은 훈민정음을 외우는 나를 무척 대견해 하시면서 고향이 어딘가, 한국에 다녀왔는가, 생활에 어려움이 없는가 하며 무한한 친절을 베풀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취재글에 쓴 바와 같이 그때 한국인들은 미지의 땅인 중국에서 자기들과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전통문화를 상당부분 간직하고 있는 조선족에 강한 호의를 갖고 있었으며 우리는 한국인들을 친척처럼 가깝게 느껴 정을 주고받으면서 손님들의 자그마한 부탁이라도 있으면 노트를 꺼내 메모해서 해결해주느라 열심히 뛰어다녔다. 혹시 중국에 투자할 의향이 있으니 어느 분야에 대해 좀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전화번호부를 뒤지면서 마땅한 파트너를 찾아주기 위해 애썼다.

중한 수교 30년간 나 자신도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한사람임을 새삼스럽게 상기하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진한 감동을 느끼면서 이번 취재에 임했다.

새로운 30년은 우리들에게 더욱 뜻 깊은 나날들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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