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인 한정호 제사
                                                  묵인 한정호 제사

《국자가의 전설》을 말하다

                                         리명학 청도대학 교수

 

한편의 좋은 글(인물전)이란 저자의 진지한 감정과 진실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글이란 독자들에게 보이는 ‘나’의 진실한 고백을 이야기 형식으로 엮어 공감을 불러내야 한다. 즉 읽는 사람이 글속에서 공명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 좋은 글은 독자들이 읽는 도중에 주인공과 흔히 함께 울기도 웃기도 한다. 

 

    남용해의 글 《국자가의 전설》은 저자의 어머니 황정자의 일생을 진실한 화폭으로 그린 한편의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어머니의 전 생애를 연속 드라마처럼 엮어서 독자들한테 선물한 진실하고 감동적인 인물전기라고 할 수 있다. 총적으로 이 글의 특점을 아래와 같은 몇 가지에서 살펴 볼 수 있겠다. 

 

    첫째, 《국자가의 전설》은 저자의 어머니 황정자를 주요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폭 넓은 역사배경 하에서 중국 조선족의 해방 전의 이민역사와 해방 후의 근현대생활이 진실하게 잘 반영되었다. 말하자면 1927년으로부터 시작하여 2020년이라는 장장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역사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지하다싶이 중국 조선족은 월경민족으로 조선과 중국을 나들면서 일제치하를 거쳐 해방을 맞아 겨우 목숨을 연명해 온 비극적인 근대사를 갖고 있는 민족이다. 백의민족인 조선족은 째지게 가난한 삶을 영위해오면서 궁지에 몰려 살길을 찾아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만주 땅’에서 갖은 풍상고초를 겪었으며 부단히 새 삶을 개척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주민이다. 이 글에서 주인공의 아버지 황화순이 자기 가족을 이끌고 조선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 왕청 지역에 있는 팔과수, 녕안 일 때에 있는 하마허재를 전전하면서 새 터를 일구고 보다 좋은 삶을 찾아 송눈평원으로 가서 갖은 고생 끝에 일군 논밭을 나중에 토비들에게 빼앗기고 구사일생으로 다시 지금의 연길 국자가로 귀환하는 스토리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다. 바로 우리 조선족들이 해방 전에 일제 개척단의 회유와 강압에 못 이겨 강제로 집단부락에 밀려들어 벼농사하면서 겨우 밥 먹고 살아 온 근대역사가 진실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이 글에는 만주(동북 3성 지역)라는 폭넓은 공간이 활동무대로 펼쳐진다. 만주지역인 송눈평원, 할빈과 심양, 장춘, 연길, 왕청 등 여러 지역들이 나온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모두 조선족이 살아 온 역사가 재현되므로 독자들의 추억과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때는 정말 그렇게 살아왔댔구나!”하고 읽는 사람들에게 지난 역사를 새롭게 각인시킨다. 이 글에는 중국 조선족의 ‘아리랑’ 비극이 사실주의적으로 서사되어 전형적 환경이 잘 그려져 있으므로 글의 무게를 더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보다싶이 황화순은 조선족 이민 1세대로서 그는 초기 이민 시기에 야심 가득히 삶에 대한 무한한 기대를 안고 북만에서 안간힘을 쓰면서 부지런히 창업을 해나간다. 그 와중에 도박에 잘못 발을 들여놓는 이야기도 서술된다. 그는 도박꾼들의 얼림수에 걸려들어 그 동안 축적한 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송눈평원으로 향한다. 앞날이 밝을지 어두울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수완이 좋고 부지런한 근성을 겸비한 억센 사나이로서 과감히 도전하여 재차 삶을 일궈 세운다. 일제 집단부락에서 일제와 지방 비적들의 시달림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두만강과 가까운 연변 땅으로 귀환해 온다. 이 과정에 ‘소녀 가장’으로 된 황정자도 삶의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고난을 헤쳐가면서 어린 나이에 일찍 인생의 처절함을 경험한다. 가난은 사람을 괴롭히지만 또한 인간을 강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한 가족의 이주역사는 실은 과거 무수한 이민 조선민족들이 겪었던 비극적 근대사로서 중국 경내로 들어 온 선조들의 실제적 풍경과 모습이다. 지난 역사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과거로서 미래를 조명하는 등대이다. 한 민족이 자기의 역사를 모르면 자기의 현실도 똑똑히 바라볼 수 없으며 찬란한 미래를 개척할 수도 없게 만든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역사는 과거의 현재이며 미래의 나침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 일가의 지난 역사를 서술하고 묘사한 이 글은 우리 민족의 이민역사와 현재를 사실주의적로 재현한 한 폭의 스케치로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사색하게 만드는 의미 짙은 책이다. 한마디로 이 글은 중국조선족의 근대역사와 현대적 삶을 폭넓게 조명한 장편인물전기로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 이 글은 주인공인 어머니의 형상을 개성이 뚜렷하게 잘 묘사하였다. 주인공 황정자는 해방 전과 해방 후를 과도하고 또 새 시대를 살아오면서 성공한 중국 조선족 어머니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형상은 흔히 모성애에 많이 집중하여 묘사되지만 황정자 형상은 모성애는 물론 끈질긴 노력과 뛰어난 지혜와 남을 잘 돕는 의리, 그리고 ‘통이 큰’ 성격 등이 잘 부각되었다. 일개 여자로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따라 만주벌을 전전하면서 갖은 고생과 시련을 겪어왔는바, 해방을 맞아서는 바느질로 많은 재부를 축적하여 성공적으로 남씨 가문을 일떠 세운 ‘코신부대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란 흔히 사랑의 화신으로 모성애가 가장 잘 드러나는 존재다. 그러나 황정자는 모성애와 함께 강인하고 끈질기면서도 지혜롭고 진취심이 강한 “창업”가의 기질을 소유한 북쪽 태생 여성의 특질이 잘 반영되어 있다. 북쪽 여인들이 강인한 성격과 뛰어난 지혜, 즉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과 분투, 지혜롭고 창의성이 강한 특징이 주인공 황정자의 몸에 일반화되어 있다. 조선족 여성은 과거 다른 민족 여성과는 달리 온순하고 상냥하며 깨끗하고 인내를 감내하면서 순종하는 이미지로 흔히 묘사되어 왔다. 아마 조선시대의 유교적 영향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에서 황정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송눈평원을 누비면서 ‘소녀가장’노릇도 해왔던 경력을 지니고 있어 그 누구보다 고생 앞에서 머리를 수그린 적 없이 항상 미래를 지향하면서 잘 살아보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동북이 우선 해방을 맞게 되는데 그는 길동군구 후근부의 피복공장에 들어가 복장공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당과 조직을 따라 열심히 재간을 키워가면서 선진사업자로 표창장까지 받는다. 그 뒤에는 남편이 출장하여 집에 없는 때 스스로 도문에서 연길로 이사하기로 작정하고 어린 아들들을 이끌고 연길 역에 도착한다. 그 이사 이유는 단 한가지 즉 대학이 있는 연길에서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였다. 소학교 공부도 못한 황정자는 아마 아버지 황화순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많이 닮은 꼴이다. 도문의 집을 팔아 연길 신화서점부근에 단독 집을 한 채를 마련한 후 황정자는 나머지 돈으로 재봉틀 한 대를 마련한다. 어려서부터 익혀 온 바늘질 솜씨와 부대에서 복장기술을 익혔기에 복장점을 차리려고 작심한 것이다. 밤에 낮을 이어 열심히 노력한 끝에 복장업에 비전이 생겨 소문난 복장점을 경영해나갔는데 동네방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이 명성을 높여간다. 처음에는 국자가의 작은 집에서 구멍가게로부터 나중에는 거기서 더 학장해가면서 큰 복장점을 경영하는 사장님으로 성장한다. 그 와중에 개혁개방의 봄 물결을 타고 한국행 출국문도 열리게 되는데 황정자는 이를 좋은 학습기회로 활용하여 한복코팅기술을 연길에 제일 처음으로 유입하여 크게 사업을 벌인다. 남편과 자식들의 수발을 들라 복장점을 확대할라 할 일이 태산 같이 쌓여 있는 환경에서도 끄떡없이 끈질긴 의력과 지혜를 발휘하여 가족을 영위해나간다. 황정자는 다 하지 못한 바느질을 밤도와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몇 번이나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중지)까지 꿰매어 피를 흘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솜뭉치가 피로 낭자하게 물들었는데 이때 그의 마음에는 아픔을 극복하고 손님과의 약속대로 옷 수선을 마무리하려는 일념 뿐이었다. 이렇듯 황정자는 일단 결정한 일이면 주저 없이 끝을 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황정자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아줌마들이 따라다녔다. 인품도 좋고 대인관계도 대범하여 남을 잘 돕는 그의 착한 성품 때문인 것 같다. 이 아줌마들이 후에는 ‘코신부대’로 성장하여 ‘문화대혁명’의 격류 속에서 활약한다. 황정자는 당연히 이 ‘코신부대’ 코 기러기로서 총성이 요란한 연길거리를 누비면서 남편과 아들을 구하려고 생명의 위협도 마다하고 ‘범의 굴’에까지 드나든다. 그 와중에 일개 여성의 몸으로 보수진영의 편지를 수도 북경에 수송하는 임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당 중앙에 ‘문화대혁명’중의 연길의 실제 상황을 반영하는 임무를 훌륭히 완성하고 돌아 온다. 부녀가 절반 하늘을 떠 인 셈이다. 이렇듯 황정자는 나약하고 온순하며 유교적 ‘본분’을 지키는 전통적인 조선족 여성의 성격에서 탈피하여 진취적이며 용감하고 창의적인 현대여성으로 성장한다. 물론 시대의 변화가 한 여성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은 면도 있었겠지만 가난하고 처참했던 지난날의 운명이 항상 황정자로 하여금 과거의 삶을 개변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하도록 재촉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해방 맞은 뒤에도 도문에서 연길로 이사 오고 작은 가게를 마련하여 나중에는 점차 큰 복장점도 차리게 된 것이다. 무에서 유에로의 도약이 아닐 수 없다. 길동군구 산하 후근부에서 복장기술을 익힌 후로는 줄곧 그 기술을 더 발전시켜 줄곧 사업을 확대해가면서 한 뜸 한 뜸 바느질로 모은 풋돈으로 국자가에 울안이 넓은 단독주택과 복장점까지 장만하게 된다. 만년에는 아들 네 명을 모두 대학까지 입학시키고 손주 손녀들까지 즐비한 행복한 대가족을 보란 듯이 거느리게 된다. 뿐더러 그는 지어는 친척이 아닌 이웃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아낌없이 베풀고 진심으로 도와 나섰다. 그는 남편과 자식의 사랑을 섬약한 여성의 한 몸으로 충실히 실천한 착한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또한 미래를 개척할 줄 아는 강의한 의지력과 지혜를 겸비한 현명한 여성이기도 하다. 즉 그는 개척정신이 강한 조선족 여성의 전형적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황정자라는 이 인물 형상에는 조선족 여성들이 공통으로 내재한 특질, 즉 인자하고 착하며 선량한 가정주부의 성격 뿐만 아니라 미래를 개척해 나 갈 줄 아는 강인한 의지력과 결단력 및 지혜로써 창업을 이끌어 성공으로 이끈 현대 여성의 개성적 특징이 잘 반영되었다. 

 

    셋째, 이 글의 구성은 방대하고 이야기 서술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합리하게 잘 짜여졌다. 이 글은 장장 20여 만자에 달하는 긴 편폭으로 해방 전으로부터 해방 후와 ‘문화대혁명’과 새 시대, 즉 개혁개방 이후의 부동한 시대가 공간적 배경으로 펼쳐진다. 전 편의 글은 모두 9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은 해방 전의 이민역사와 더불어 황정자 가족의 행보가 서술되고 제2장은 해방직후의 남 씨 일가의 연길에서의 정착과정이 소개되었다. 제3장에서는 황정자와 남영철의 로맨스가 펼쳐져 이 글의 흥미를 더 해준다. 조선반도의 남쪽에서 온 남영철과 북쪽에서 월경한 황정자가 길동군구에서 열린 표창대회에서 선진일꾼으로 되어 상장을 받는 무대에서 그들의 첫 사랑이 싹트기 시작된다. 장인어른의 반대도 무릅쓰고 황정자를 아내로 맞이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이 글의 하일라이트와 같은 장면이다. 일제 치하로부터 자동차 정비기술을 터득한 남영철은 해방 후에도 트럭 한대까지 장만하고 보라는 듯이 개인자동차 정비소도 차렸던 키가 훤칠한 멋쟁이 사나이다. 그리고 후에는 동북해방군 후근부분에서 일제가 버리고 간 땅크와 자동차를 정비하여 전방에 공급하는 기술공으로 이름을 날렸는바, 황정자와 같이 선진일꾼으로 선발된 당원간부로서 그들의 애정은 사업과 노동에 대한 열애로 인해 싹 튼다. 제4~8장은 전문 황정자의 창업이야기를 묘사하였는데, 그 속에는 ‘문화대혁명’시기에 활약한 ‘코신부대’ 대장 이야기, 개혁개방의 봄 물결을 타고 한국행을 기회로 한복코팅으로 제2차 창업을 이루어 낸 이야기, 외삼촌과 이복동생과 서울에 남겨 두고 온 남편의 자녀까지 도운 이야기, 임종을 앞 두고 남 씨 가문에 남긴 유물 이야기 등으로 다종다양한 스토리가 엮어진다. 이렇듯 이 글의 구성은 시대배경이 폭넓고 역사적 맥락이 뚜렷하며 이야기가 시기별로 펼쳐지면서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잘 짜였다.

 

    총적으로 글로 쓰인 이야기는 그 자체가 한 인생의 삶에 대한 재현이다. 설사 일개 보통 가족이 겪어 온 일지라도 거기에는 그 가족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과 민족의 운명적 궤적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삶은 표면적으로는 일하고 먹고 사는 일인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하고 타인과 사회에 얼마나 공헌하는가 하는 문제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실현하는 현장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황정자 및 남 씨 가문의 이야기를 통하여 어떻게 과거를 돌이키고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직시할 것인가 하는 인생의 숙제를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이 글은 저자 남용해가 어머니의 임종 전부터 구상하고 설계한 인물전기로서, 전 편의 글에는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효성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누가 자기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만 저자 남용해는 사진작가 특유의 통찰력과 감수력으로 어머니를 비롯한 전 세대들의 이민역사와 창업스토리를 구수한 필치로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와 새 시대를 주름잡은 어머니의 창업이야기를 방대하고도 흥미진지하게 묘사하고 서술하는 글쓰기를 통하여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출하였다. 이러한 글쓰기 작업이 어찌 간단한 작업일 수 있으랴! 글이란 애정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자가 글 쓰는 과정에 내내 어머니와 함께 웃고 울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하겠다.

 

이명학(李明学,1961∼), 연길 태생. 중국 청도대학 교수. 연변대학 학사, 석사, 한국 부산대학 문학박사 학위 취득. 일본 동경외국어대학 연구생 수료. 한국문학과 중한비교문학 연구에 정진. 주요 저서로《중한 모더니즘 소설 비교연구》,《중국 당대문예사조와 문학전개》외 국가번역프로젝트로《중국문학속의 세계적 요소》외 학술논문 50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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