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동인지 '문학인' 가을호에 게재

고송숙 약력: 연변작가협회 회원, 안성문인협회 회원,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소설 '백송이의 노란 장미꽃',수필 '푸른 달래',시 '13월의 사랑'등 50여편 발표.수필 '봄과 가을'연변TV공모 금상,수기'시어머님의 유산'연변일보 평강컵 공모 1등상, 2017년 청암문학으로 한국문단 등단.
고송숙 약력: 연변작가협회 회원, 안성문인협회 회원,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소설 '백송이의 노란 장미꽃',수필 '푸른 달래',시 '13월의 사랑'등 50여편 발표.수필 '봄과 가을'연변TV공모 금상, 수기'시어머님의 유산 '연변일보 평강컵 공모 1등상, 2017년 청암문학으로 한국문단 등단.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한 철학관 창문에 써져 있는 글귀를 보고 발길을 멈추었다. 창문 하나를 사이 두고 왼쪽에는 ‘삶 살아가는 걸까? 살아지는 걸까?’ 오른쪽에는 ‘쉼 갈 때를 알고 멈출 때를 알아야’라고 써져 있었다. 그 글귀를 보면서 한참 멍을 때리고 서있었다. 삶과 쉼이란 이처럼 창문과 벽 하나의 차이라니, 그동안 삶만을 붙잡고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이 글을 보는 순간 뭔가 깨달음을 가졌다.

어떤 쉼표를 찍을 것 인가고 고민하던 중 배낭여행을 준비했다. 시작은 오래전에 했지만 코로나로 멈추었던 섬 투어에 다시 한 번 도전하여 서해에 있는 소청도로 가보기로 했다.

홀로 하는 배낭여행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나의 마음은 한껏 부풀었다. 소청도로 가는 쾌속정에서 잠간 얼굴을 익힌 분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소청도로 가나요? 민박집은 예약하셨나요? 돌아오는 배 티켓은요?" 나는 예약도 없이 발 가는 대로 떠났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소청도에 도착한 배는 나만  달랑 남겨놓고 백령도로 유유히 떠나갔다. 행여나 여행하는 일행을 만나 동행하려 던 생각은 빗나가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  슬슬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깊어가는 섬에서 인터넷이 끊겨 먹통이 된 핸드폰을 들고 우왕좌왕 할 때 마을 입구에서 한 중년여성을 만났다. 구세주를 본 듯이 반갑게 뛰어가 민박집을 물었더니 이곳저곳에 연락해주셨다. 몇 번의 통화에 자리가 없다는 답장만 들려왔고 마침내 민박집은 아니지만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여성분은 자기의 차로 나를 데려다 주기까지 하셨다.

하늘의 선녀가 낯선 섬나라에 내려와 나에게 도움을 주신 건 고마운 마음에 연신 인사를 했다. 숙박을 제공한 방주인은 중국 흑룡강에서 시집온 인상 좋고 쾌활한 분이셨다. 계절노동자로 소청도에 일하려 왔다가 한 남성에게 끌려 결혼까지 했다는 말을 귀속 말로 나에게 해주었다. 섬에서 찍은 사계절 사진, 미역 작업할 때의 사진, 홍합 캐기 작업하는 사진들을 일일이 보여주며 그녀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큐멘터리 ‘쓰고 남는 소청도’프로에 출연해 천사라고 소개되자 방송을 본 중국에 계시는 친척들과 이웃들이 많은 축하 전화를 해왔다고 한다. 숙박을 해결해주셔서 고맙다는 나의 인사에 작은 도움은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하셨다. 이튿날 낚시로 금방 잡은 노래미 구이와 홍합 미역국, 갖가지 맛있는 반찬들은 주인의 마음처럼 넉넉하였다.

번잡한 도시의 일상을 떠난 섬 마을에서 여행객은 다음날에도 나 혼자 뿐이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자연이 불러주는 연주를 들으며 고요한 섬 길을 걷노라니 쉼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해풍을 맞으며 자란 길옆의 씀바귀며 이름 모를 과일도 정다웠고  무더기로 자란 달래도 반갑고 빨갛게 익은 산딸기의 맛도 별맛이었다. 밝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싱그러운 풀 냄새에 취해 하늘, 바다, 구름 모든 것이 여느 때 보다도 정답게 느껴졌고 로또에 당첨되면 이런 기분 일가 하는 환상에 잠겼다. 사방 풍경을 눈으로 마음으로 마음껏 담으며 카메라셔터를 연신 눌렀다.

문득 바다 저켠에 두고 온 일상이 떠올랐다. 아등바등 앞만 보고 달려온 길, 삶에 쫓겨 쉼 없이 살아온 지난날이 생각났다. 그런 삶이 오늘 여기서 쉼과 만났으니 그 설레 임과 고적함은 즐김의 대상이 되었다. 일상의 소음 하나 없이 오직 자연으로만 둘러있는 쉼의 공간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얀 백지와 만나 삶에 충전하는 시간, 이런 저런 역할에서 벗어나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한껏 채우니 마치 백만 부자로 된 것 같았다. 싱그러운 바람이 지친 몸을 다독여주었고 일상의 찌든 마음을 씻어버렸으며 파도의 철썩 임이 기운을 북돋아 준다.

삶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쉼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섬 여행에서 느꼈던 감성들은 분명 섬에서만 받는 특별한 느낌만이 아닐 것이다. 빈손에 무엇이든 잡기 위해, 텅 빈 주머니에 꽉 담기 위해 달려온 그런 삶에 지쳤을 때 전국 팔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쉼표를 찍는 것은 더 멀리 달리기 위함이다. 쉼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고역이다. 쉼은 우리의 삶을 더욱 살찌게 하며 빛나게 한다. 쉬어가는 삶, 여유 있는 삶, 넉넉한 삶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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