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 70년대 연변문학으로 시단 데뷔. 2007년 8월 26일 11회 연변 지용제 정지용 문학상 수상, KBS성립 45주년과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망향시 우수상 두 차례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료녕성 작가협회 회원, 심양조선족문학회 부회장 역임. 심양 시조문학회 부회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집 '달밤의 기타소리' '징검다리' '자야의 골목길' '팔공산 단풍잎(한국 학술정보(주)에서 출판)' '다구지길의 란' '료녕성조선족 시선집(리문호편찬)'가 있음.                         
   이문호: 70년대 연변문학으로 시단 데뷔. 2007년 8월 26일 11회 연변 지용제 정지용 문학상 수상, KBS성립 45주년과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망향시 우수상 두 차례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료녕성 작가협회 회원, 심양조선족문학회 부회장 역임. 심양 시조문학회 부회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집 '달밤의 기타소리' '징검다리' '자야의 골목길' '팔공산 단풍잎(한국 학술정보(주)에서 출판)' '다구지길의 란' '료녕성조선족 시선집(리문호편찬)'가 있음.                         

생(生), 즉 사는 것은 본질적으로 괴로움이다, 행복도 괴로운 것이요 시름도 괴로운 것이다. 그것은 행복도 절대적 행복은 없고 상대적이고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한가 함도 괴로움이요 바쁨도 괴로움이다. 그 누구나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 날수 없다, 오로지 잊는 것이 괴로움에 대한 해탈이다,

이 해탈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의욕으로 분투할 때 성취감으로 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괴로운 현재에서 의식을 다른 곳 이로 전이하는 것이다.

명상은 후자에 속한다. 명상이란 영적 활동이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동경(憧憬)속으로 자기를 인입(引入)시켜 미적 향수를 얻는 것이다.

새로 출간된 이문호 시인의 시집 표지  '잔디바에 누워' 
새로 출간된 이문호 시인의 시집 표지  '잔디밭에 누워' 

명상 시를 쓰면서 몇 가지 방면을 생각해 보았다

1, 명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의식의 확장이다

2, 명상은 나를 끌고 편안하고 아늑한 안식처로 가는 여행이다

3, 명상은 나를 나의 잠재의식의 감방에서 해방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4, 명상은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최적의 정서이다.

5, 명상은 내 몸에 돌고 있는 잡것을 정화는 필터이다

6, 명상은 현재의식을 떠나 새로운 심경의 세계를 찾는 추구이다

7, 명상은 형상 사유를 통해 에너지를 생성하여 몸과 심리 치유에 전달한다

8, 명상의 원동력은 의념(意念)이다. 시에서 나타나는 나비, 낙타, 사슴, 여신,시신, 그대, 님, 뮤즈 등등은 아름다운 의념의 상징물들이다. 이런 의념은 내 잠재의식에서 분출한 현상들이다. 즉 시인 심리의 집단 무의식이나 개인 무의식이 빚어낸 우상들이다. 지구란 자연이 30억년에 창조한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교하고 가장 지성적인 동물은 사람이다 우리의 집단, 혹은 개인 무의식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형으로부터 확장되어 여성 숭배 사상이 깊이 존재해있다. 남성 시인들이 여성을 미화하는가 하면 여성 시인들도 여성, 즉 자기를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미화하려 한다. 앞으로 시인 심리학을 쓴다면 이런 원형과 무의식에 대해 깊이 사고할 필요를 느낀다 나의 이 명상 시집의 많은 시는 아름다운 자연과 여신이 혼연일체가 되어 등장한다.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겹영은 시의 정취를 더해주는 것이다 또한 시인의 안일한 안식처가 되는 것이다. 수 천년 이어 온 남존여비의 관념이 해체되면서, 또한 남성 우월주의가 타파되면서 시대에 따라 남성에 대한 원형도 <꽃 미남>란 여성화로 변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시인 심리학을 연구할 때 자연계의 암과 수와 결합하여 다루어야 할 문제다.

9, 명상 속에 성오(惺悟), 돈오(頓悟)가 있다면 무한한 쾌감이 생긴다

10, 나의 명상은 여백에 자유로운 심경이 날수 있는 수묵 산수화를 바탕으로 한다

방대한 시론은 나의 갈림길 이였다. 시론을 모르고 시를 쓸 때가 가장 자유로웠다. 나는 그 많은 고민을 거쳐 이제는 원심으로 돌아가 시심의 자유를 추구한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편안한대로 시를 쓴다.  즉 의식의 흐름대로 시를 쓴다. 시가 반드시 깨달음이 있어야. 오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서와 감성이 있으면 그만이다. 시는 내가 나를 쓰는 것이다. 시가 얼마나 큰 공명을 일으키는가도 기대하지 말자. 누가 심심풀이로 눈 흘겨 보면 감지덕지 만족하자.

시인은 과시욕, 허영심, 명예욕이 가장 큰 심리 장애로 된다. 시를 좀 쓴다고 아무데나 머리를 쳐들고 거드름 피우는 것은 어찌 보면 가련한 족속들이다. 시가 몰락하는 지금에 와서 …

시를 쓰는 것을 낚시질 하는 것처럼 생각하자. 시가 얼마나 굉장한 파장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극히 심한 우울증이 될 것이다. 시를 보는 것을 껌을 씹는 것처럼 생각하자. 심신을 편하게 건드려 주면 그만이다.

오 십 년을 시 써 오며 시가 하나의 세상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 했지만 아니다. 그것은 큰 실망으로 될 것이다. 시를 써놓고 첫 번째 독자는 나다. 나의 어떤 시는 나를 먼저 감동시키고 오래 오래 자주 읽게 된다. 그 때마다 내가 나를 새로 인식하고 발견된다..그러니 나는 내 시속에 있는 것이다. 시가 억지로 꾸며 졌다면 나도 본연이 아니라 억지로 꾸며진 사람이 된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집 한 권을 또 낸다. 일생의 추구가 무수한 정력을 쏟아 부은 시인이 되기 위한 것 이에 …비록 가 닫지 못하는 뮤즈에 대한 짝 사랑인지는 몰라도 … 시집을 내고 나니 부족한 졸 시라고 개탄된다. 잘 썼건 못 썼건 감성의 기록들이다. 시인 마다 자기의 정신 세계가 따로 있으니깐…

                2022. 9. 25  서울에서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