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한동포문인협회 迪卡诗 분과 [제23호]

 

불법체류

불법인 줄 알면서도 
부화를 위해 
둥지를 틀었다

아찔한 디아스포라의 삶

-김경애-

 


 

<시작노트>

김경애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김경애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어느 날 주차장 기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새와 둥지”를 닮은 마른 솔잎을 발견했다. 백 번도 넘게 각도를 조절하여 촬영을 시도했다. 주차장 기둥에는 “외부차량 주차금지”와 “적발시 견인조치함”이란 경고 문구가 있었는데 촬영 도중 “새와 둥지”를 다시 눈여겨보는 순간 불법체류가 연상되었다.

사진을 다 찍고 작은 칼과 핀셋을 찾아들고 다시 주차장에 가보니 “새와 둥지”가 보이지 않았다. 경고 문구 위에 여러 갈래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결국 견인조치 당한 걸까? 아니면 아찔한 처지에 처한 “새와 둥지”를 발견한 나같은 사람이 또 있어 안전한 곳으로 “이사”시켜준 것일까?

 


 

<평설>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시의 매력은 울림에 있다. 유수의 우수한 디카시들을 볼 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작품도 있고, 음미의 묘미가 다분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스케일이 커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작품도 있다.

<불법체류>는 스케일이 방대한 작품이다. 영상 속 짙은 빨강 노랑 바탕색과 외부차량 주차금지 경고 문구 “적발시 견인조치함”이란 글귀가 퍼그나 자극적으로 안겨온다. 그 위에 새 둥지와 새 비슷한 피사체가 놓여 있다. 이런 영상에 시인은 “불법체류”란 제목으로 “불법인 줄 알면서도/ 부화를 위해/ 둥지를 틀었다/ 아찔한 디아스포라의 삶”이라고 언술을 붙였다. 전율이 일 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작품이다. 디카시가 자칫하면 영상과 언술이 평형을 이루지 못해 유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시인은 영상과 언술의 치밀한 조화를 이뤄내었다. 디카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이미지와 언술을 다루는 재치가 돋보인다.

지난 세기, 서울 88올림픽 이후 조선족들이 “코리안드림”의 꿈을 안고 한국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조선족 사회는 수많은 가슴 아픈 실화들을 낳았다. 한국행을 택한 조선족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출국 과정에 사기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난 세기 90년대 후기 모 조선글 신문에 났던 사진 한 장이다. 조선족들의 시위 장면을 찍은 기사 자료였다. 사진에 사기를 고발하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한 플래카드에 적혀 있던 “죽어도 한국에 간다”라는 문구가 현재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선족들은 상무 고찰, 밀입국, “가짜 결혼” 등 명목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행을 강행했고 입국한 뒤 이런저런 원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체류자가 되었다…그때가 어떤 세월이었던지 구태여 더 말하고 싶지 않다.

2022년 현재, 세월이 퍼그나 흘러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정책과 고용 제도가 보완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법무부 최근 자료에 근거하면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현재도 4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조선족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불법체류>는 디아스포라의 삶의 한 편단을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의 20년에 가까운 한국생활 경력, 예지를 동반한 통찰력, 갈고닦은 시적 재질이 녹아든 작품으로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질 들뢰즈는 “노마드에게는 역사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 논단은 정주민의 시각에서 유목민을 바라본 편견이다.

조선족들은 어제에 이어 오늘, 오늘에 이어 내일도 역사보다 더 진실한 시적 언어로 자신들의 삶을 기록해 나갈 것이다.

- 이준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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