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예화 약력 : 2007년 중앙민족대학 졸업. 2010년 한국 선문대학교 한국어교육 전공 석사 졸업.  '공항터미널' 등 수필 다수 발표. 현재 중국 녕안시조선족중학교 교사.
안예화 약력 : 2007년 중앙민족대학 졸업. 2010년 한국 선문대학교 한국어교육 전공 석사 졸업. '공항터미널' 등 수필 다수 발표. 현재 중국 녕안시조선족중학교 교사.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하늘이 맑아 높푸르게 보이는 가을, 살갗에 닿는 공기도 신선하니 나들이 가기 한참 좋은 가을, 노랗고 빨간 단풍들이 산과 들을 곱게 물들이는 가을이건만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향에서 둥근 달을 바라보며 홀로 긴긴 밤을 지새울 그 이를 떠올리는 나의 가을은 으스 스하기만 하다.

오늘도 사그락사그락 낙엽을 밟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불과 2년전 까지만 해도 내가 제일 듣기 좋아했 던 소리가 아니였던가! 사랑하 는 그 이와 함께 손 잡고 가로수 아래 단풍길을 거닐 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사그락사그락…

낙엽의 계절에 타향으로 떠나간 그 이는 아내와 딸애를 얼마나 애타게 그러워할까!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마음껏 못하고 울고 싶어도 마음껏 목놓아 울 수 없는 그 이의 처지. 아내와 딸애의 투정을 받아주느라 정작 본인은 언제 한 번 제대로 된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었다. 그 이가 바로 나의 남편이다.

그래서 오늘 작정하고 가을단풍 같은 이 남자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려 한다.

남편과 나는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다. 통통한 얼굴에 다부진 체격, 짧지만 아주 강력한 인상을 주는 눈섭, 무엇보 다도 모든 것을 감싸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한쌍의 눈매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때부터 나의 눈에는 누가 뭐라 해도 무방할 만큼 견고한 사랑의 콩깍지가 단단히 씌워졌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 남자를 내 남자로 만들어야겠다는 목표 말이다.

그 해 가을은 유난히 아름다웠고 캠핑을 가기에 딱 좋았다.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그 이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였다. 다행히 그 이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단풍으로 울긋불긋 단장한 캠핑장에 가서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해 가을은 유난히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아름다운 가을을 그 이와 함께 맞이하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나날들을 가졌다.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가끔은 이런 행복이 혹시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을가 하는 불안했던 나의 마음에 그 이는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의 신사로 되어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그러나 올해 가을은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 이가 없는 빈자리가 이처럼 크게 느껴질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마음 속 덩그러니 남은 추억만 붙잡고 있어서 그런 걸까? 그제서야 추억 하나만으로 슬픔과 외로움을 이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처량하게 가을타령하는 내 마음을 가을편지에 담아 그 이가 있는 곳으로 보내고 싶다. 그 이와 함께 커피 한잔 나눴던 여유마저 그리웁다.

주말에는 어디 어디로 놀러 가고 가을단풍은 어디 가서 보면 더 예 쁘다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제 곧 다가올 주말 스케줄을 계획 하는 동료들을 보니 저으기 부러워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이만 딱 내 옆에 있어준다면 모든 일들이 순리롭게 풀릴 것 같고 그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 같다. 그 이와 함께 있을 땐 모든 것이 신났다. 비 내리는 날도 그 이와 함께라면 비에 흠뻑 젖어도 기분이 좋았고 칼바람이 부는 날에도 그 이와 함께라면 내 몸에는 난류만 흘러들어 늘 따뜻했던 것 같다.

성격이 활달한 나에 비해 그이는 과묵한 성격을 소유한 점잖은 남자였다. 그 이는 늘 말없이 뒤에서 나를 챙겨주었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살뜰히 보살펴주었다. 주위사람들로부터 잉꼬부부라고 불리울 정도로 그 이는 나에게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고 나 또한 그런 그 이를 남편으로서 굳건히 믿고 의지해왔다. 육아 때도 그 이는 일부러 육아휴직까지 내면서 힘든 나하고 힘든 육아를 분담하였다.

그런 그 이가 지금은 우리 가정의 더 큰 행복을 위해 내 옆이 아닌 머나먼 타향에서 홀로 외로이 쓸쓸히 이 가을을 보내고 있다. 딸애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 가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이와 나는 잠시 이별을 택해야 했다.

남편이 옆에 없으면 자유롭고 편해서 좀 좋으냐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정반대이다. 딸애도 아빠를 그리워하지만 나 역시 남편바라기이다. 같이 있을 땐 미처 몰랐었는데 떨어져서 살아보니 그 이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걸 실감했다. 한가족이 함께 야외에서 산책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쓸쓸한 마음을 달랠 길 없다. 그래도 딸애 앞에서는 외로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면서 아빠 몫까지 다해주느라 노력을 기울린 다. 부모로서,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긴 하지만 다른 부모들보 다 배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항상 최선을 다해서 앞만 보고 내달리고 있다.

그리움이 단풍 같이 불타는 이 가을을 앞에 두고 진하디진했던 그의 사랑을 떠올리며 힘을 얻어본다. 필경 단풍이 다 떨어지고 나면 더 매서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혹독한 겨울 끝에는 희망찬 푸른 봄언덕이 손짓하는 것이 아닐가? 오늘도 나는 두다리에 힘을 실으며 락엽을 사뿐히 즈려밟고 출근길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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