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아닌 나의  친구 이야기를 전하고저 한다. 이 글은 나의 친구와 함께 일하는 간병인들이 전해준  이야기와 그에 대한 동료들의 칭찬을  기록했을 뿐이다.
 
나에게는 사람들로부터 멋진 여사라 불리는 수준 높고 깊이 있는  친구가 있다. 60이 넘은 나이지만 얼굴에  저승꽃이라 불리는 반점도 없는 고운 피부에, 이쁜 얼굴은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어보이는 동안이다. 그녀는 얼굴도 곱지만  목소리도 예쁜데다 온화하고 상냥한 말씨에 진짜 매력이 넘치는 친구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맑은 음성으로 친절이 몸에 배여있는 아주 좋은 의미지 느낌을 보여주는 친구다. 늘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예의바른 반듯한 모습이  바로 그녀의 매력이다...

 
비가 내린후의 아침에 청량감 넘치는 서울의 한 구립 요양병원의 창밖은 떠오르는 태양이 찬란하다. 누구보다 일찍 부지런하게 아침을 여는 그녀는 새벽 5시면 알람없이 잠에서 깬다. 
 
4명의 환자에 4명의 간병인이 함께 머무르는 4인실이라 밤새 몇번 깨였어도 때론 불면의 밤을 보냈어도 이 시간때만 되면 몸이 알아서 깨여준다. 간호사 경력 30년에 간병 경력 10년이 그녀의 몸에 심어준 알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는 연변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정년 퇴직한 후 한국에서 간병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잠자리 정리하고 버릇처럼 "어머니" 이마에 가볍게 손얹어 체크해 본다. 이불을 이쁘게 여며드린후 세면도구와 화장품을 들고 살금살금 병실내  화장실을 지나 공용 화장실로 향했다. 
 
늘 빈틈없이 정결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는 화장대도 없이 공용화장실에서 세안하고 간단한 메이크업으로 단장하고 돌아왔다. 다인실이라 다른 사람들이 주무시는데 방해 주지 않으려고  발끝 걸음으로 조용히 돌아와 "어머니"손을 살며시 잡았다. "저 옥상에 운동 가요." 하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녀의 손길을 느낀 "어머니" 는 옅은 미소를 띄며 "얼른 다녀와 "하고는 계속 주무신다. 
 
휴대폰을 챙겨 옥상으로 올라가 이른 새벽 의 기분 좋은 공기를 누리며 유튜브 채널을 맞춰놓고 아침체조를 시작하면 한 명 두 명  동료 간병인들이 모여와 합류한다. 계절의 변화 자연의 변화도 느끼지 못한채 날마다 똑같은 간병일상으로 지친 간병인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아침운동 시간을 가졌다. 몸을 챙길 수 없는 바쁜 일상에 코로나로 의한 장기간 피로의 누적으로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모두 예민해지고 서로 언성을 높이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되었다. 
 
"있잖아, 
우리 지친다고 짜증만 내지말고,
힘들다고 한숨도  짓지말자.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치열하게 일하며
공존하는 동지들인데 서로 이해하고 같이 잘 지내자."
 

이렇게 동료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달래주며 율동에 맞추어 신나게 체조하고 서로 고민을 나누면서 아침을 연다. 어려움을 이겨냈던 이야기며 고향과 가족에 향한 향수와 그리움, 속마음들도 터놓으니 동지애가 두둑해지고 쓸쓸해진 마음도 치유되고 병원분위기가 화기로 넘친다.
 
아침에 일어나서 뭘 할지 오늘은 어떻게 지낼지 상상할 필요가 없고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할 필요도 없는 그녀의 아침이다. 간병 경험이 많은 그녀는 웬만한 병원규칙과 치료과정을 다 꿰고 있었다. 어머니가 깨어나면 일사 문란하게 하루 일정을 로봇처럼 척척 진행한다. 
 
자식보다 더 자식같은 그녀 앞에서 친자식들도 한발 뒤로 물러선다. 처음에 그들도 늙으신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신 후 졸지에 '불효자'가 된 느낌이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예의바르고 환자를 배려하는 바른 자세를 보고 이런 간병인이면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너무나 열심히 일하는 그녀의 모습에 부모를 남의 손에 맡기는 죄책감을 내려 놓게되었다. 그녀는 늘 친절했고 어머니의 일상에 대해 보호자에게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부드럽고 온순한 성격인 그녀는 환자를 내심으로부터 공손하게 대하고 자상하게 보살펴 드린다. 자식이 부모에 향한 효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분명 그녀의 살뜰한 보살핌에도 효심이 지극히 들어있다. 
 
간병은 돈으로 치환할 수 없는 정성이고 관심이고 배려이다. 그녀는 친절한 음성으로 환자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적극적인 자세로 "어머니"의 취향을 존중해 주고 "어머니" 의견에 귀 기울여 주고 늘 "어머니"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성격이 괴벽하리만큼  쎈 "어머니"는 다른 환자나 간병인들과 우호적으로 지내지 못한다. 간병일을 하다 보면 환자를  씻겨주고 옷 갈아입혀주고 먹여주는 일을 능숙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감정의 교감도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보고 "어머니"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짐작해 보면서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심으로 대하다보니 그녀의 마음이  "어머니"에게 전해지면서 소통이 잘 되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웃음과 진심이 묻어있는 손길로 따뜻함을 주어 끝내 꾀짜  어머니의 신임을 얻어냈다.
 
"굉장히 친절하시네요!"
"제가 보살피는 환자는 제 어머니처럼 모셔야죠!”
 
"어머니"와의 대화를 듣고 주변 환자들이 그녀에게 엄지척을 보이며 하는 말이다. 간병인의 공감 반응은 환자가 느끼고 있는 힘들고 외로운 감정을 줄여줄 수 있으며, 만족과 행복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 "어머니"는 그녀의 상냥한 미소에서 위로를 받으며 존경받는 자부심으로 그녀를 좋아하신다. 
 

코로가 대유행되던 2월에 그녀가 소속된 요양병원에도 코로나가 확산되었다. 코로나가 터진 악조건에서도 계획한 삶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에너지로 충만되어 있었건만, 어느날 그녀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어머니"가 코로나에 감염되였다. "어머니"는 급히 전담병실에 이송되어 격리되었고 그녀는 병원에서 나가야 했다. 뒤정리까지 다 해놓고  임시로 입을 옷가지와 최소한의 생필품을 간단히 챙겨넣은  캐리어를 끌고 어두어진 밤이 되였음에도 병원을 나서야만 했다. 방역은 지나칠 정도로 냉철했고 병원측은 잔혹하리 만치 냉정했다.
 
병원에서 내몰린 그녀는 캐리어 하나로 무작정  서울의 밤거리에  나서긴 했는데 갈데가 없었다. 간병일을 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도 온 몸으로 받아내고 항상 긍정적으로 사고하려 애썼던 그녀였지만 그 순간만은 마음이 부서지는듯 했다. 갈곳없는 그녀는 한숨속에서 넋을 잃고 하늘을 쳐다 봤다. 답은 하늘에도 없었다. 전에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담배 한대 길게 빨아 하얀 연기에 시름을 담아 하염없이 내뿜던 남편 생각을 하며 그녀는 연기없는 긴~ 한숨을 허공에 내뿜었다. 한숨은 제자리로 돌아와 그녀에게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고층건물 창문에서 내뿜는 형롱한 불빛을 바라보며 아직 잠들지 않은 서울의 밤거리를 방황하는 그녀에게 타향살이 설음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하늘을 찌를듯한 화려한 고층 아빠트를 보고 있노라니 저 중에 내집 한칸 없다는게 서글펐고 마음이 아팠다. 2월의  싸늘한 냉기와  함께몰려오는 막막함과 외로움이 슬픔으로 되여 뼈속까지 스며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의 마음은 별하나 없이 나쁜 공기로 흐리기만한 서울의 밤 하늘처럼 답답하고 막막하였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지혜롭게 잘 대처해가는 그녀의 영활한 머리가 답을 못내주고 있다.
 
"어떡하나, 어디로 가야 할까? 진짜 노숙해야하나?" 
 
깜깜했다.
 
타인의 안전을 위해 격리에 들어가야만 한다. 모텔이나 고시원도 민페가 될까 갈수 없다. 그건 생각 자체가 사치다. 가고싶지만  가서는 안된다. 밀접 접촉자라 사람이 밀집한 곳은 갈수 없으니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이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 그렇게 현재의 순간을 버티는 동안 묘한 불편함과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밤은 점점 깊어 간다. 
 
분주히 오가는 차량의 네온등 불빛이 그녀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거리에서 방황하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미안한 마음을 움직여 위생학교 동창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마침  그 친구가 휴가차 집에서 쉬다가 금방 병원에 복귀하여 전세방이 비여있다고 두말없이 자기집으로 가라고 주소 찍어준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구세주가 되여준 친구의 마음에 참았던 설음이 몰려 울컥했다. 밤이 깊어가도록 헤매다가 절망에 빠질뻔한 일이 한방에 정리되였다.
 
가슴시린 이 사연을 나는 퍽 후에야 알게 되였다. 너무도 담담하게 해주는 그녀의 말이 오히려 더 아프게 들려왔다. 얼마나 참담했을까? 동창에게 탕감할수 없는 채무가 쌓여간다고, 미안하고 고맙다 한다. 친구간에 그럴수 있으니 너무 마음쓰지 말라는 나의 말은 아무런 위로가 안될것 같다. 
 
2주격리 기간이 지나서 그녀는 급하게 병원에 복귀했다. 코로나가 완치되고 전담병동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후유증으로 중퇴에 빠져 있었고 몸에는 TV뒤 엉킨 전기선 같은 의료용 선들이 얼기설기 연결되여 있었다.숨이차서 헐떡이는 "어머니"는 산소 마스크를 하고 정신이 몽롱해 있으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 눈물을 줄줄 흘리신다. 그 모습을 보는 그녀도 가슴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안타까움으로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 
 
잠시 숨돌릴 시간도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열이나는 어머니를 물수건으로 닦아준다, 얼음 팩 해준다, 산소 흡인을 하면서도 숨이차 헐떡이는 증상을  체위로 조절해 보았다. 어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발견하고 보호자에게  전원도 제안했지만 어머니의 고집으로 전원은 무산됐다. 병원 전체에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병원의 시스템이 혼란에 빠져 x-레이실도 폐쇄된 상황이라 진료에도 차질이 있었다. 그녀는 간호사로 일했던 오랜 경력에서 오는 촉이 발동했다. 어머니가 단순 폐렴이 아니라 폐부종 즉 폐에 물이찬 것 같다고 주치의에게 체위의 변화에 따라 상태가 달라지는 등 이유를 말씀드렸다. 폐부종이 확진되고  치료방안이 바뀌면서 "어머니"의 상태가 현저하게 좋아졌다.  그녀는 석션도 간호사를 부르지 않고 직접하였고 환자가 불편해할 때마다 바로바로 처리를 해주고 상태를 세밀하게 파악해서 달라진 점이 있으면 바로 간호사에게 말해 대처도 빨랐다. 돌발 상황에도 굉장히 침착하게 대응하였다. 

 
병원의 부실한 식사 때문에 린넨실 전자렌지에서 직접 반찬을 만들어 삼시세끼 챙겨드렸다. 일심전력을 쏟으니 "어머니"는 서서히 화색이 돌면서 산소 없이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얼기설기 엉켰던 의료용 줄들이 하나 둘 줄어들었다. 정성보다 더한 약은 없다는 간단한 말이 진리처럼 다가온다.
 
치료는 의사가 하고 재활은 재활치료사가 하였고 돌봄은 그녀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살핌으로 끝나지 않고 재활치료도 해드렸다. 어머니가 재활에 게으름을 피우시면 영원히 걷지 못할수도 있다면서 악착같이 재활을 도왔다. 어머니를 부축하고 운동중에 휘청하고 넘어질번하는 어머니를 몸 으로 막느라 벽에 부딪혀 어깨에 타박상을  입기도 하였다. 통증을 참으면서도 자신의 순발력에 스스로 놀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였다. "어머니"의 간병에는 그녀의 인생이 녹아 있다. "어머니"는 호전되여 다시 일어섰으며 지금은 워커를 밀고 걸을 수 있다.
 
나를 놀라게 하는 건 이 뿐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인터넷에 능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허나 그녀는  인터넷에도  능하다. 그녀는 자기의 블로그를 개설하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촬영도 하여 올리는 상당한 센스를 갖춘 매력을 가졌다. 병원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병원 홍보에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의 블로그에서 병원소개를 보고 찾아 온 환자가 있어서 그 소문을 병원장님까지 알게 되였고 전체 직원회의에서 표창까지 받았다.
 
또한 젊은 세대들이 당황할 정도로 새롭고 신기한 것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 우리는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녀는 휴대폰 능수로 많은 소식을 공유하고 150명이나 되는 간병인들의 휴대폰 해결사 역할도 하고  있다. 간병인은 직업 특성상 "어르신" 호칭이 어색하지 않는 연령 때가 많다. 휴대폰을 겨우 통화나 하는 도구로 쓰다보니 폰 사용에 서툴러서  채팅이나 촬영이나 서류입력 전달같은 어려움은 늘 그녀가 대신  해준다. "병원의 전체 간병인들의 핸드폰을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음에 밝은 등불을 켜고 사는 고마운 친구"라고 한 동료간병인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힘든 상황을  보듬어준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이다.
 
주변에 글 쓰기에 상당한 재능이 있는 한 동료간병인이 있다. 그 동료가 힘들고 어려운 간병일상과 열악한 조건 때문에 필을 놓아버리는 아쉬움을  안타깝게 여기고 사심없는 지지와 협조로 다시 필을 들게 하였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갈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핸드폰으로 모든 것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독서하고 투고해야하는 어려운 일을 적극적으로 조언해주었고  협조해 주었다."  그 동료는 좋은 글을 써서 여러 매체에 발표하고 있으며  한 매체에서는 우수상까지 받았다.
 
나도 간병일을 하고 있지만 그녀처럼 일하는 간병인은 본적이 없다. 간병을 하다보면 세상을 살면서 이 일을 내가 꼭 해야하나 하고 꾀가  날 때도 있고 두려울 때도 있고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한결같고 꼼수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원칙을 따르면서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열과 성을 다 하고 있다.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본다는 이미는 희생과 헌신을 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아주 평범한 일터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잔잔하지만 남들보다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자를 칭찬하고 존중하고 편안함을 주는 그 모습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참 대단한 멋진 간병인이다.
 
힘들지 않냐고 걱정해주는 친구들이 있지만 아직은 즐기는 마음으로 간소한 생활, 소소한 즐거움, 여유롭지 못한 일상을 소화하면서도 즐겁게 보낸다. 이것이 그녀의 진가다. 그녀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누구보다 간병 경험을 많이 쌓은 진짜 프로 간병인이다. 1인 다역을 거뜬히 소화해 내며  간병을 통해 돈만 버는것이 아니라 돈도 벌고 인생을 제대로 즐길줄도 아는 그녀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며 크루즈타고 세계여행도 꿈꾸어 왔다.듣기만 해도 설레는 계획이 아닌가.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에 간병일이 힘들지만 그녀는 즐거웠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최고 위치에 오른 삶은 아니지만 돈에 대한 걱정이 없는 노후를  보내고 주위에 넉넉하게 베풀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그녀는 최고의 멋쟁이다.
 
여성답게 예의범절이 깍듯한 그녀는 이팔청춘의 미인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타입이다. 오늘도 그녀와 함께하는 150명의 간병인들은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22년9월25일
 

김선숙 약력: 연변출생. 연변위생학교 졸업. 간호사 퇴직. 현재 간병인. 수필 다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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