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과(科)라는 한자어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분야를 뜻하는데 많이 쓰인다. 정부기관이나 회사에서 사업상 업무를 분야별로 인사과, 총무과, 재무과, 개발과 등으로 나눈다. 고로 간부 중 과장이 가장 많다. 요즘 한국회사들에 팀이라는 조직체가 성행하고 있는데 1997년 말 IMF 직후 구조조정이 절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조직체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데 그때 생겨난 것이 바로 팀이라는 하나의 조직기구이다. 구조혁신팀, 개발혁신팀 등등이 있었다. 조직기구로서의 팀은 본래 과(科)와 동일한 조직체인데 새로운 출발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 보이려는 목적으로 이렇게 새로운 표현을 도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팀은 우리말이 아니고 영어 ‘TEAM'에서 유래된 외래어다. 영어 ‘TEAM'는 우리말 과보다 사용범위가 훨씬 넓다. 축구팀, 배구팀, 야구팀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런 표현은 한국에서 오래 사용해온 말이 아니다. 축구단, 축구대, 축구부라는 표현이 바로 우리말이다. 

다음 과(科)는 전문성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가령 한 개 예술단에 정규교육을 받은 자가 있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출신 단원이 있는데 정규교육을 받은 자를 중국에서는 ‘과반(科班)’ 출신이라고 지칭한다. 또 과(科)는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A와 B 여성이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서 살이 많이 찌면 둘을 같은 과라고 표현한다. 또 A와 B 남성이 쪼잔해서 집안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면 같은 과라고 말한다.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한 족속에 묶어 과(科)로 표현하는 것은 오래된 역사가 아니고 근래 생겨난 것이다. 

이윽고 같은 성향이나 같은 성격의 소유자를 과(科)로 지칭하는 흐름에 의해 상상도 못하는 하나의 새로운 말이 생겨났다. 개과와 고양이과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조직이나 사회 일에 발 벋고 나서고 남의 일에 적극 나서는 사람을 개과라고 말한다. 아마 개가 사람을 반기고 사람과 치근거리고 정이 넘쳐나고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성향이 있다고 하여 이런 말이 생겨난 것 같다. 반대로 고양이는 사람과 치근거리지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고 주인한테 매우 내정하고 차다. 사람도 과묵하고 자신의 의사를 들어내지 않고 타인을 냉정하게 대하고 사회 일이나 남의 일에 소극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지닌 성향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고양이 성향과 같다고 하여 고양이과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성격을 대체로 외향적이냐, 내성적이냐?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두 말할 것 없이 외향적인 사람은 개과에 속할 것이고 내성적인 사람은 고양이과에 속할 것이다.

개과와 고양이과는 각각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개과는 주변에 늘 사람이 얼씬거린다. 떠들썩하는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고독하지 않다. 또 타인을 배려하고 베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타인의 호감을 쉽게 산다. 사람이 모이는 데는 항상 장소의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자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는 그런 자를 ‘분위기 메이커’라고 부른다. 모든 모임에는 ‘분위기 메이커’가 있어야 재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분위기가 적막해서 시간은 안 가고 지루하다. 심지어 왜 이런 모임을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다음의 모임을 기대하기 어렵다. 

개과는 이런 장점이 있는가 하면 단점도 뚜렷하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실속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개과는 사람을 만나면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살 게. 기다려. 전화할 게.’라는 말을 아주 쉽게 내뱉는다. 약속을 밥 먹든 해놓고는 언제 그런 말을 했던지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상대는 언제 연락이 오려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함흥차사처럼 감감무소식이다. 개과는 흔히 믿음과 신뢰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모든 개과가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지만 말이다. 

고양이과는 말머리가 무겁고 취하는 태도가 신중해서 믿음이 간다. 약속을 쉽게 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한다. 고양이과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쉽게 친하지 않지만 한 번 친하면 깨지지 않고 오래간다. 고양이과는 지내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래서 좋은 사람과 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경우가 많다. 또 고양이과는 취하는 태도가 도도해서 타인의 오해를 쉽게 사는 단점이 있다. 

개과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타인의 일에 호기심이 많고 마치 자신이 관여하지 않으면 일이 안 되는 것처럼 끼어들기 좋아한다. 이런 사람을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또 개과는 마음이 여려 타인의 부탁이면 거절하지 못한다. 성정이 고우면 속마음이 힘들다는 말이 있다. 개과는 늘 이런 마음고생에 시달린다. 이에 비해 고양이과는 마음이 독해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입장이 분명한 태도를 취한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되거나 아니라고 여겨지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단칼에 매듭짓는다. 고양이과는 타인한테 매정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자신의 마음은 편하다. 

한국 역대 대통령 중 노무현과 문재인을 말하자면 노무현은 성격이 활달하고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무슨 일이든 방관하지 않고 그때그때 타인과 소통하고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고로 노무현은 개과라고 말해도 전혀 어폐가 없다. 노무현은 개과 중 으뜸의 개과이기 때문에 대통령까지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너무 여려서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너무 아쉽다. 전두환은 한 달 소비가 수백 만 원인데도 29만원밖에 없다고 말하고 나서도 10년 더 살았고 천수를 다 누렸다. 정치를 하려면 마음이 뻔뻔하고 속마음이 검고 독해야 하는데 노무현은 마음이 독하지 못하고 뻔뻔하지 못하고 속마음이 검지 못해 결국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재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하들이 죽기 내기로 일 년 넘게 싸워도 방관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타인을 답답하게 만드는 내성적인 스타일이어서 고양이과에 속한다. 

정치인 중에 명절이면 잠잠하고 조용히, 기껏해야 신세 진 사람을 방문하는데 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집에 음식을 가득 차려 놓고 사람을 불러들여 먹이고 떠들썩하게 지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필자가 듣기로는 정대철 전 국회의원이 이런 부류에 속하는 정치인이다. 정대철 전 의원은 오랫동안 장기협회 총재를 지냈는데 사비로 회원들을 밥 사는 경우가 있었다. 나도 한 번 얻어먹은 적이 있다. 선출직에 당선되려고 유권자들에게 베푸는 사례는 흔하게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을 바라지 않고 사비로 회원들에게 밥 사는 일은 매우 드물 것이다. 정대철 총재는 웃음도 매우 걸걸하고 소탕하다. 호남형(豪男型)이다. 웃음을 소탕하게 웃는 사람들은 대체로 외향적인 성격으로서 개과에 속한다. 

흔히들 성격은 타고 나기 때문에 개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쉽게 바뀌지 않다는 말이 이런 맥락에서 생겨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20대 중반에 이르러 성격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나는 어릴 적에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를 잘했고 말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고 성격도 활달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말이 너무 많아 별명이 ‘말쌔단지’였다. 19세부터 동네 결혼식 저녁 오락 ‘주석(요즘 한국말로는 사회자, 영어로는 MC)’을 도맡았다.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총각이 10세나 차이 나는 신랑에게 ‘삼문삼답’을 들이댔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었다. 아마 말을 잘했던 것이 MC로 나선 이유였던 것 같다. 그때 그 시절 나를 평가하자면 아마 개과 중에 으뜸가는 개과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개과로 살다가 대학시험을 7년이나, 한국말로 하자면 7수를 거치는 과정에 성격이 변해 차츰 고양이과로 바뀌었다. 해마다 낙방을 거듭하니 사람을 볼 면목이 없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기피했고 가끔 사람을 만나도 말이 자연스레 적어지고 또 사람을 만나면 과거에는 반갑게 인사했는데 차츰 인사하기조차 귀찮아졌다. 따라서 남의 일에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연변일중 교사 때부터 현재까지 모든 장소에서 할 말만 하고 웬만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업에 필요하고 적당한 선에서 사람을 만나고 가까이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지난 40년 동안 나에게 하나의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사람을 만나면 덥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상대가 먼저 인사해 와야 맞인사 하고 웬만해서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에 나의 태도가 거만해 보인다. 
내가 봐도 나의 성격은 고양이과다. 

나의 성격은 본래 피 끓는 청춘 때는 개과였다가 후에는 고양이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는데 나의 경우를 두고 생겨난 말 같아서 아주 실감한다. 나의 부모는 두 분 말이 적다. 아버지는 말이 적다 못해 하루 동안 말 세 마디 넘지 않았다. 엄마도 과묵해서 딱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다. 두 분 모두 반가운 일이 생겨도 반가워하는지 마는지 곁 사람이 감지를 못할 지경으로 냉랭하다. 두 분은 전형적인 고양이과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성격을 닮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개과에서 고양이과로 변한 것을 보면 진짜 부모의 DNA가 나의 몸속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의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를 보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없는 것 같다.

당신은 개과, 고양이과? 한 번쯤 스스로 짚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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