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고 시짓기
—현실초탈의 가상세계


편집자의 말: 
시문학에서의 현실은 실재의 현실세계가 아닌, 가상의 현실이라는 이치만큼은 각이한 시론저서들에서도 익숙히 인지되어온 상식들이다. 하기에 예술로서의 시문학은 동일한 실재현실로부터 각이한 가상현실을 나름대로 펼쳐갈수가 있는 특점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또 시인의 개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인 각자의 영혼경지와 미학경지, 지식구조, 인생경력이 각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조선족시몽동인회에서는 얼마전 부분적 복합상징시동인들과 더불어 동일한 한 폭의 그림(인물화)을 놓고 시 짓기를 하였다. 각자 실제현실로부터 그를 초탈한 가상현실을, 부동한 장면흐름의 화폭조합으로 변형이미지화 하여 펼쳐보이기로 하였는데, 저마다 개성만점이어서 효과가 좋았다. 

본호에는 복합상징시동인들의 <그림 보고 시짓기> 작품들을 다듬어 올려보도록 한다. 
시문학 발전에 일정한 참고적 가치가 있을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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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탄의 미로/ 김현순 


밤은 깊었다
제곱미터 사색 앞에서 
기다림은 
바람의 구멍에서 기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모리스 댄스는
에메랄드 기억 그리워하며
고독의 제단에 
아픔, 각인해두기로 했다

망설일까, 망각일까, 윤회의 드라마… 
필름의 넋두리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결코… 
그림자는 팻말 아니라는 
진실이
길목을 우두커니 지켜 서게 하였다

고요 보듬는 곳 
먼 곳에, 어둠 응시하는 눈길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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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밤은 깊어가고/ 강려


달빛, 
돌아서는 창
어둠이 커튼(窗帘) 닫으며 
고독 몰아쉬는데 
휠체어, 적막의 옷 걸치고 있다 

방에 기댄선 
그림자, 안경 벗어 닦을 때
펜 감아쥔 눈빛, 노트 위 짚어가고

‘장애는 불편하다, 허나 불행한 
것은 아니다’ 라는 
헬렌 켈러의 글귀가

미소 한 장 번지며 
시간의 양초에, 여명(黎明) 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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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납매(腊梅)/ 김소연


휘청이는 
촛불은 용암 응고시키고 
삐져나온 머리칼 
귓바퀴 가리우고 있다 

펜이 
안경 벗어 쥘 때마다
시계추 되어 
재촉하는 응시의 눈망울
섬섬옥수 떨림을 각인해둔다 

사랑…
빠져나가는 나래 짓 
파닥거릴 때
슬픔에 빗장 지르고
고독은 사색 단근질 해간다 

자전 
그리고 공전... 
태양은 내일도 꽃물 든 입술 벌려
지구를 키스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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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횡단면의 길이/ 조혜선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어둠만은 
아니었을 시간…
고민 다듬어 충동 가라앉히는 
구겨진 마음 
그리움 털어 환하게 웃는다 

창(窗) 꿰질러 쏟아지는 
신념의 빛줄기, 
볼펜 끝에 글귀 영글여간다

너, 나의 빛~! 
전율 하며 멈춰선 곳이 
아픔 문드러진 촛대들 고향이겠지

그래, 말할거야 오늘…
침묵의 심장 작열하는 소리
바람은 안경너머 포도숲 
거기에서 춤추며 손짓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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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채광(采光) 에피소드/ 리순희 


여명, 그것은
칠흑 부서지는 모지름이다
응고 된 핏빛, 양초로 녹아내려
금언 깔아주는 자리

파도 감은 머릿발은 단검 보듬어 가며
어둠에 미소 펴 바른다

서재에서 달려 나오는 
천군만마의 호용…
세월 거르는, 진주의 반짝임이다

사념 벗겨져 내리고 
우주의 동음, 놀빛에 별 되어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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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삼동에 내린 비/ 윤옥자


날개 환생엔 
키스의 죽음이었다

움켜 쥐운 고비사막 
부서지는 함성이 내를 건넌다 

바다는 울 너머에 있다 
허겁의 하늘
골목 귀퉁이에 장명등 눈이 
홀아비 그림자로 밤 지샌 거리를 쓴다

생각의 이마에 
인내의 점선…
눈물이 고통에 길 물어 갈때

문 열리고…
주인 없는 들녘에 놀다간 자리 
열려있는 계절 속 
잎새의 흐느낌으로 깃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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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방관자/ 정두민


어둠의 찜질에 태질 하던
밤은 지나갔다

6시 수직선 타고 내려온 빛들이
편지 속 리별의 슬픔, 반성, 
만남의 요청을 랑독하느라 분주하다

딱! 멈춘 자세
달빛 토막 냈던 그리움 앞에서
망설이는 자아최면술
꺼진 초불 토라진대로 끄떡끄떡 졸고있다

축 늘어진 민낯이 뿜어 냈던
한숨의 무게들
사랑의 서프라이즈에
멀미 속 체취들 소용돌이 친다

탁상 두드리는 간헐적 메아리
쉼표가 받쳐 든 것은 무엇일가

긴가 민가, 갸우뚱…
그녀 매니큐어의 손톱 끝에서
똑똑… 핏빛 인내가 흘러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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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리움/ 권순복

 

가로등 불빛이 
커튼 들어 올렸지만
초불의 흐느낌, 꺼진지 오랜 뒤였다  

연민의 두 호수가
가슴 깊이 뿌리 내릴 때까지 
24K 목걸이는 
향기로운 체취로, 사념 켜들고 있었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안개꽃 굳어진 표정 흔들어 깨웠다

어둠의 정수리에서 
흘러내린 깃털의 검은 피가
펜 끝에서 떨어져 눈물꽃 피울 때

소녀는 언덕너머 
봄이 태동하는 소리를 분명 들었다
창밖 겨울은 흘러간 역사에 두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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