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야 돌아라(외 9수)/ 김현순

 

1.
어둠 묶어두는 생각의 기슭에서 
대나무는 빈 가슴에 빛살 다져넣기 시작하였다
녹슨 메아리의 고민이 새벽언덕에 아미 숙이게 하였다
아방궁 옛 전설, 씨앗 싹틔우는 때 묻은 기억으로
각질의 틈서리에서 태양 밀어 올리고 있다 

2.
피리 부는 시간, 구멍 난 소망 기워 올린 
하루의 연장선에 향기 그려 넣는다 
이슬이 댓잎에 머물다 간다 
여자의 가난한 손가락이 거쿨진 손아귀에 쥐어져있다
심장은 뛰쳐나와 울타리를 맴돈다 강시처럼…

3.
그리움, 언제나 마음 밖에서 보초를 선다
기침 깇는 나그네의 발걸음 수상쩍다
구중궁궐 용상에 내려앉은 먼지들 향연인 듯
억겁 역사(歷史) 적어내리는 붓대가 떨리고 있다 
공간의 지간막, 이별 딛고 달빛에 머물다 간다 

4.
랑도도, 해도도, 첨밀밀…
浪滔滔, 海濤濤, 甜蜜蜜…

5.
아수라의 팔에 감긴 안개가 거울에 아픔 비춰 보인다
벗어놓고 떠나간 발꿈치가 슬픔의 둔덕에 얹히어있다 
꽃은 피어도 아무도 이름을 모른다
개동벌레 같은 별빛들이 빈 가슴에 다시 노래가 된다 
 


메모리 중생대


검색어가 증권뉴스를 뛰어넘어 참외밭을 달린다
자석 달린 날개의 깃털에 먼지들의 집합이
할레혜성의 꼬리에 고장 난 궤도를 가로 지른다 
광년의 속도가 찰나의 단면 엎지르며 솟아오른다고
엘리자베스 부푼 빵이 식탁 비우는 동안에 
망각 수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 한다 그게 섭리라 한다

좋아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모니터가 입맛 다실 때 
마우스의 시간은 마법 걸린 사랑을 취하게 한다
송홧가루 날리는 언덕에 숙녀의 가슴은 부풀어있다
약조의 하루가 아킬레스건을 눈물짓게 한다
낙엽 지는 가을 한 장 번져 넘기며 기다림이
고독의 나룻배에 햇살 실어 나른다 아픔은 오발이다 

마담의 흐뭇한 미소에서 그는 캐릭터의 향기를 근 떠버리고  
바람을 눕힌다 바람이 일어난다 바람이 다시 무지개를
접었다 편다 부챗살에서 모래알처럼 흐느낌 슴새 나오고 
역마의 갈기털같이 실비가 보드라운 들을 덮는다 
이제는 모두가 떠나가야 할 시간… 지구가 돌아 눕는다
그리움이 놀빛에 숨어있다면 놀빛은 또 구름에 숨어 지낸다

비밀이 네티즌손가락에 물들어있다 글로벌세상이라 한다 

 

속성 카테고리


어깨 벗겨져 내린 
시간 밖으로,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며
바람은 손바닥에 
향기 듬뿍 쥐어주었다 
등 돌린 눈길이 유리창 너머의 집념 냉각시키는 동력이었다 

의자의 높이가 
고독의 깊이에 온도를 검측해가는 
슴슴한 오후 한나절이었다
네모난 창틀에 하늘 담겨있고 비둘기는 울음도 젖어있었다

결국 슬픔은
비 내리는 겨울 사막 걸어가야 했고
깃 타 번지는 냄새가 안개 되어
시간 밖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픔은 또 바라보아야 했다

팔굽이 그리움 틀어먹는다 
숨 막히는 메아리도 압축되어있다
그 틈서리에서 빛이 보리알처럼 끼어있는 희망을 싹트게 한다

자줏빛 공간이다 
평행우주의 문 열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잊은 듯 없은 듯, 줄 끊어진 향기가 부서지며 날아 내린다 
한겨울에도 새벽비는 
차가움 망각하면서 어둠 안고 속살 거린다 

 

고뿔


고삐라도 있으면 
끌고 갔을 터인데, 라고 하며 
아침이 감기약 한 알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
마른기침 깇는 기다림 
그 이름 고독이라 부르기엔 낙루(落淚) 
얼어 터지는 순간도 
눈꽃의 고백 잊지는 않을 것이다 

쉬어버린 바람이 
갈림길에 머뭇거린다
예고 없이 찾아온 휘파람같이
노래 펼쳐 발치에 깔아주는 목떨림이라면
나트륨 미소마다 바다의 몸부림에 섞이어있을 것이다

알약의 효능…
다가서는 내일 앞에 눈뜨고 있다
무서리 내리는 가을도 
봄날의 그 언약 기억해 두듯이
햇살 한모금과 사랑 한 숟갈, 처방전에 적어 넣는다 

좌표 쌓아올리기… 라고 발음해보시라
과연 고삐라도 있으면 
끌고 갈 것인가
마법의 시간, 사막 길들여 가는데 
부엉새 우는 밤, 허옇게 이마가 먼저 밝는다

 

최면의 계곡


어둠이 
부서질 때 
불꽃 튕기는 소리를
별빛이라 부른다는 착각의 나이는 
빨깍거리는 백 원 짜리 한 장의 두께로 
거리를 까무러치게 할 것이다
하늘이 왜서 하늘이며 땅은 왜서 흙이어야 
하는가를, 걱정케 하는 
시간의 옷섶에 
이슬 매달린 이유는 바람을 흔들어준다

여자의 성씨는 석가~!
석가 여래라는 석가(釋迦)가 아니라 
돌 석가(石家)였다 
돌처럼 딴딴한 처녀의 마음은
총각을 미치게 한다
태양은 왜 태양이어야 하는지 그것부터가 문제었다
해바라기 고개 숙인 근거가
노란 웃음에 
침묵으로 녹아있다는 증거…
그것은 알코올의 농도 진맥할 뿐이었다

그러나 옷 벗는 아픔은
섬돌에 구멍 뚫는 낙숫물이기를 바랐고
칠흑(漆黑) 넘치는 소리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묘미를 더욱 신명나게 하였다

강당에서 걸어나오는 늙은 목사의
남루한 설교처럼, 겨울비 내리는 
그날은 페치카를 기념하는 따슨 날이기도 하였다

 

일월영측(日月盈昃)


ㅌ렁ㅋ 하나가 눈 내리는 언덕을 미끄러 내려갈 때 골목길 어귀에서 풍겨오는 고구마 굽는 냄새가 겨울의 코구멍 긁어대었다. 헐벗은 나뭇가지에 창백한 기억들 내려앉아 새처럼 재잘대는 오후 한나절이었다. 으깨진 하늘에서 슬픔 쏟아져 내리고…

광장 옆 낡은 모텔 그 입구를 바라보며 가장 두려웠던 시간은 검푸른 바다 밑 암류 썩어가는 냄새에 전율 느꼈다. 마라아나해협의 거친 숨소리가 지척이었다. 남자는 구겨진 페니스 꽉 움켜쥐고 계단 밟는 소리에 귀 기울이었다.

후미진 계곡에 흘러내리는 감탕물소리 알람으로, 서재를 뒤적거리는 몽툭한 손가락 마디에 좀비가 파닥파닥, 개똥벌레 춤추던 그 여름밤의 정취가 남루한 기다림에 저승꽃향기 지펴 올린다. 모닥불 같은 연민조차 수인사 보내야 했던 자존의 벽이다. 오염된 지구를 클론해가는 연장은 어둠에 놀랐던 것이다.

관목 우거진 숲을 지나면 허벅지 드러낸 백사장의 침몰, 사랑한 게 죄가 되는 아픔의 순간들이 파도의 분말로 구토를 멈추지 아니 할 때, 갈매기 울음소리는 몸져눕는 바다의 신음 용케도 닮아가고…

거리에 거리에 아가씨들이 웃으며 지나간다. 담비털 목도리, 유표히 목살아래 깊숙이 내리 뻗은 촉수를 더듬거리고 있을 법한 유머거 신호등 껌벅임에 윙크 보낸다. 번뜩, 또 번뜩, 고구마 굽는 냄새가 싸구려 불러대는 오후이건만 카메라는 빵집 아줌마 불깃한 얼굴에 초점 맞춘다.

쌍년~! 그래 어디 칵 잘 살아봐라… 날 버리고 가는 이는 십리도 못가서 발탈이 난다. 씨이~!
공연히 돌멩이 걷어차는 발끝이 아려난다. 구멍난 발가락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소리가 피같은 세월을 씨벌이고 있다.

햇살의 난투극~! 여름에도 눈 내릴 때가 있듯이 겨울에도 비 내리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역상은 적도의 멀미를 치켜들었다. 높이 들린 심장입구에서 꽃잎 같은 향기가 회한으로 쏟아져 내린다. 작년 봄에 찾아왔던 각설이 타령처럼 해묵은 이껌새로 비릿한 세월이 흘러내린다

ㅌ렁ㅋ, 가슴 열어젖힌 공간으로 타락한 도심하늘 빨려 들어가는 것 본적이 있다. 마술 앓는 고뇌의 둔덕을 여자는 빠져나갔고, 구겨진 걸레 같은 언약은 구름같이 바람같이 다시 관목 우거진 숲에 그림자로 깔려있다. 사랑 딛고 가는 별빛의 흔적, 사막의 방울소리에 깃들어 있다. 타임머신 눈썹엔 아킬레스건의 정확한 주소가 비뚤비뚤 적히어있다.

 

초저녁


꽈리 같은 볼~
그때 그는 이렇게 형용하였다
하고 싶은걸 어떡해… 
라고 말하면, 어둠은 불 켜들었을 것이다
복도가 환했다, 시멘트바닥을 
하이힐 목소리는 완전무결하게 
잠식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비는 내리고, 시간의 뙤창에 
개똥벌레 목소리는 빛 되어 
별인체 하였다
파리의 에펠철탑 같은 메아리가 임자라고 한다 

그림자는 입안에 바람을 잔뜩 불구어
깃 펴고 내린다 
개구리 목 놓아 우는 적막강산을 그는 걸어가고 있다
꽈리 같은 볼~
그는 두 번째로 이렇게 말을 꺼내려다가
조심스레 움츠러든다 
히프 찢어지는 소리가 단전호흡에
강행 멈춘다

히드라(Hydra) 촉수 더듬는 기다림
섹시한 노랫말이 숙녀의 봉우리에 해와 달 얹어
꽈리볼 익어 번지게 한다
개구리 우는 무논에 
여름밤 산란하는 스캔들 TV에 뜬다

 

K교수의 레이(lei)


잡풀은 
이름 없이 살다 죽어갔지만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바람 부는 날
함자 새긴 비석이 뿌리 뽑히는 걸 보고
무상(無常)은 눈비 되어 내렸다

명색이 
교수였던 K씨는
속빈 대나무에서 기묘한 음악 흘러나오듯 
밤마다 껍데기 벗어
닦고 또 닦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허겁의 세월 앞에 소망운 나래 접는 법 잊었다

태초의 아침 수놓는 연장선에서
시간의 여과를 감지하는 시술…

사색 동강난 언어의 시점에서
이슬은 외로움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K교수의 기막힌 속사정 
대학교 사책에 삔침으로 꽂히어있다

띠리링~ 
길건너 안마방 아가씨의 간질임이
K교수의 부끄런 역사에 옷을 벗긴다 
대학강당에 k씨의 목소리는 
매음녀(賣淫女)의 허리띠로 꿈을 조인다

 

가을이면 단풍같이


가래 끓는 오후의 모퉁이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산봉의 머뭇거림이
탱자꽃 기억 받쳐 들고 웃는다
사색의 빗줄기 내리꼰지던 그적에도 
떨며, 창 딲는 손길 떠올려본다

그러나 억새의 갈라터진 부름으로 
바람은 하루를 기다려주었고 
필리 필릴리리… 타임머신 바람벽에 
내일의 숙명, 고독으로 각색해둔다

종소리가 추녀 끝에 드리워져
어제의 사랑 춤추게 한다면
안개꽃 피는 아침을 입 맞추던 기다림
이별의 전주곡에 아픔 새겨 넣을 것이다 

공전의 나들목에서 
먼지들 집합이 우주를 갈고 닦는다
블랙홀 심장 뛰는 소리가 
꺼져가는 지구를 안아 눕힌다 
첫사랑 그 입술, 내 작은 가슴 놀라게 한다

 

무화과


그럴 줄 알았기에
입 다문 소망은 
변변치 못한 사투리로 응고되어가고 
사랑한 게 죄 되는 가을 둔덕에
눈물은 뚤렁… 
또 뚤렁, 아픔 길들여간다
떡잎의 간이역, 바람 머무는 곳에 나무는 있다

뿌리가 길어 올리는 난센스, 
거기에도 모질음은 입 다문 소망 드리워
허겁 잘랑거리고
피타고라스의 구고정리가 
아픔의 좌표를 겨냥해둔다 
사탄의 전신은 배암이라는 설에 근거는 있다
구멍 난 기다림은 바닷길 걸어간다

죽지에 축 늘어진 
사막의 신음에 어둠은 빛살 수놓기 시작 한다
다시 만나는 그날
구겨진 노을 펴들고 
별들의 와지성 이슬로 닦아갈수 있을까
그리움의 하늘에 바람 흐르는 소리

잘려나간 손톱눈에
잘못 끼인 때의 함성으로 오늘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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