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률 삼강포럼 중국측 대표
장경률 삼강포럼 중국측 대표

“한중수교후 지난 30년간 지구촌의 변화다단한 심각한 대기후속에서도 한중간의 공동한 노력으로 혁혁한 성취를 이룩하였다. 향후 30년간에는 이를 토대로 인류발전의 중심지가 동아세아로 이전된 역사적환경에 힘입어 더욱 휘황한 흭기적 발전을 이룩할 것이다.”

지난 9월 21일 중국 연변일보 논설위원, 한중삼강포럼 공동대표, 재한중국동포문인협회 상임고문 장경률선생은 한국 KBS 한민족방송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 출연한 특별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이날 인터뷰는 장경률대표가 지난 30년 동안 몸담고 기자로 활약했던 연변일보, 자치주와 동갑내기로서의 장경률대표가 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70주년 의미와 변화와 발전”,  “한중수교 30년의 회고와 전망” 등 3개부문으로 나뉘어 이소연(前 KBS 아나운서), 박해상(방송인) MC  가 진행하였다. 

이 프로는 홈페이지 : http://program.kbs.co.kr/scr/radio/face/pc/index.html에서 시청할수 있는바 방송일시는  2022년 10월 29일 (토), 오전 7:00-8:00, 12:00-13:00, 19:00-20:00 (1일 3회 방송)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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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상(방송인):  대표님께서는 연변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을 하셨죠?

장경률: 본인의 경력을 간단히 소개하면요, 1977년 중국에서 문화혁명후 대학입시가 회복되어 첫 패로 연변대학 정치학부에 입학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었다. 4년간의 대학공부를 마치고 1982년 1월 졸업, 얼마후부터 연변일보에 전근해 30년간 기자로 사업을 했다. 선후로 용정주재 기자, 정치부 기자, 주임, 편집판공실 주임, 논설부 주임, 문화부 주임을 역임했으며 ‘연변일보’ 고급기자, 논설위원, 신문연구소 소장, 신문학술지 ‘신문연구’ 주관으로 있었다. 중국조선어학회 이사, 중국조선어규범화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현재는 연변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중한 삼강포럼 중국측 대표를 맡고 있으며 재한동포문인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간 저서로 신문작품집과 칼럼문집 등을 출판했다.

이소연(前 KBS 아나운서): 연변일보는 어떤 신문인가요?

중국에서 거의 모든 관방신문은 중국공산당 당보이다. 연변일보도 마찬가지로서 중공연변주위의 기관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 기관지이다. 1948년 4월 1일 창간되였는데 당시 전신은 동북조선인민보,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연변인민방송국과 함께 제일 먼저 창간된 우리 민족의 언론단체이다. 1956년 부총편 1명이 골간신문일군 20여명과 함께  흑룡강성 목단강지역에 파견되어 목단강일보(조선문)을 창간하였는데 지금의 흑룡강신문(조선문)의 전신이다. 1965년에 역시 료녕성 소재지 심양에 부총편 1명이 골간신문일군 20여명과 함께 파견되여 지금의 료녕조선문보를 창간하였다. 1985년에는 중국 길림성내 장춘, 길림지역의 30여만 조선족들을 상대하여 길림신문(조선문)을 창간하였는바 당시 10여명이 파견되였는데 본인도 참여하였다. 2개월간의 특파기자로서 주요임무는 주재기자인선 물색, 길림신문의 창간과 홍보, 신문발행 이 3대 과업이였다.

지금 중국내에는 “연변일보”를 비릇하여 4대신문이 있는데 중국기자협회 리사단위로서 “연변일보”가 그 대표이다. 이처럼 중국에서 “연변일보”는 명실상부한 중국조선족의 “큰 형님신문”으로 공인받고있다.

박해상: 중국에서 기자로 있으면서 주로 해온 일은?

장경률 : 1982년말 중국조선족의 최대 일간지 연변일보에 입사하여 만 30년간 언론인으로 근무하고 정년퇴직하였다. 직업언론인으로서 자기직업에 충실하는 동시에 중국조선족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항상 민족적 우월감과 자호감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발굴하고 고양하면서 민족정체성 확보하는데 일심하였다.

누군가는 “자기 민족의 역사를 잊는 것은 배반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중화민족의 대가정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문화수순이 높고 민족의식이 강한 모범민족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우리 조선족이다. 그래서 후대들에게도 역사의식을 심어주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특히 1990년부터 정치교육부  주임사업을 하면서 선후로 4년 간 ‘초불컵 교원글짓기’콩클을 벌리면서 우리 말과 글을 잘 장악하도록 사회 문화 분위기 형성에 주력하였다. 해마다 1차씩 평의를 거쳐 우수한 작품들을 표창하였다.

그중 연길시 13중 교원이 쓴 “중학교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과를 설치해아 한다”원고는 대상을 수상하였는바 그 영향력이 아주 좋았다.

‘민족 언어와 문자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했다. 선후로 중국조선어학회 이사, 중국조선어규범화위원회 위원, 중국조선문 신문잡지 심열위원 등 사회 직무를 역임하면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 후대들에게 그 정신을 이어주는 사업에 줄곧 열성을 다하였다. 이를테면 1991년에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제1회 중국조선족 대학, 중학, 소학별로 1200여 명이 참가한 ‘중국조선어글짓기콩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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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상:  중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삼강포럼’을 설립한 줄 안다. 한중삼강포럼이 어떤 단체인지부터 소개해주세요?

우선 삼강포럼의 “3강”이 어떤 의미인가요?

장경률 : 필자가 한국에 대해 요해를 깊이 있게 할 수 있있은 것은 2012년 정년 퇴직하고 한국 나들이를 하면서부터였다. 특히 2017년 4월 한국의 저명 인사들인 한국이주동포정책개발연구원 원장 곽재석 박사, 한국 동포세계신문 발행인 김용필 편집국장, 그리고 중국 청화대학 정인갑 교수 포함 네 명이 뜻을 모아 함께 중한삼강포럼을 설립했다.

삼강포럼의 출범은 재한동포사회의 다가치포럼,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재한동포문인협회 등과 같은 학술단체와 민간문화단체의 출범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는 재한동포사회가 피해의식에서 해탈되어 피동적인 위치에서 주동적인 위치로 자리바꿈 한 것이며, 중한 친선과 우호 발전을 위해 기여를 하는 시민단체로의 의미있는 부상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재한중국동포사회가 한결 성숙되고 단합고 있는 징표이기도 하다.

삼강포럼은 이런 면에서 자기존재를 잘 과시하고있다.

우선 삼강포럼의 성격부터 구명해 보자.

삼강(三江)포럼은 국제성 민간학술단체로서 중국 조선족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진 시점이 그 성질과 취지를 이렇게 규명하고 있다.

‘삼강’에는 두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첫째, 압록강鴨綠江, 두만강豆滿江과 송화강松花江을 지칭했다. 이 세 강은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과 흑룡강성黑龍江省에서 흐르는 대표적인 하천이기에 중국 조선족의 주요 집거지역을 상징한다.

따라서 삼강포럼은 재한중국동포 및 재한 중국조선족동포에 대한 연구를 주된 과제로 한다는 뜻이다.

둘째, 삼강은 압록강鴨綠江, 대동강大同江과 한강漢을 가리킨다. 이 세 강으로 중국조선족과 조선, 한국을 대표하고자 한다. 즉 삼강포럼은 중국동포와 한국, 조선 문제의 과제도 다루는 범민족적인 포럼이 되겠다는 의미이다.

‘삼강三江포럼’의 향후 역사적 과제에 대하여서는 이렇게 명시하고있다.

삼강포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중국동포사회의 현안분석과 현실에 부합하는 제도 창출에 기여하고자 한다.

둘째, 중국동포의 대내외적인 역할 확대에 기여하고자 한다.

셋째, 중국조선족동포는 한중교류와 한반도의 남북통일에 있어 징검다리 역할자 적임자로 꼽힌다. 그 역할발휘에 기여하고자 한다.

넷째,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적극 끌어들여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의 장을 펼침으로써 중국동포가 지역사회와 한중교류, 남북통일에 기여하는 희망찬 공동체로 발전해 나가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소연: 삼강포럼에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그 동안 거둔 성과도 상당할 것 같아요?

지난 5년간 삼강포럼은 해마다 10여 차의 학술세미나와 각종 포럼, 정책시사간담회, 북경동계올림픽 지지성원 등 한중친선행사를 진행하였다. 특히 2019년 7월 서울의 국회의원회관에서 ‘중미무역전쟁’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는 150여 명이 참여하였는바 한국사회와 중국 정가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곽재석 상임대표가 주도하는 삼강포럼의 시사계간지 ‘이주와 통합’ 잡지도 년간 4기씩 어김없이 발간하고있다. 이 잡지는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실과 각 책임비서실 국회 분야별위원회, 그리고 정부 총리실, 통일부, 문화관광부 등 도합 80여 개 기관과 해당 부문 배송되고 있는바  그 역할이 괄목할만하다. 동시에 2019년에 국제시사정치도서 ‘중미무역전쟁’을 발간한데 이어. 올해는 한중수교30주년은 맞이하여 ‘한중수교30년 기념총서’ 3권을 펼쳐내기에 진력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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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상:     올해가 한국과 중국이 수교가 된 지가 30주년이 되는 핸데요.

대표님 개인적으로도 한중 수교 30주년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장경률: 지난 8월 24일  한중수교 3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한중 양국은 여러가지 의미있는 기념활동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한중간의 우호 발전을 바라는 민간 단체들에서 여러 가지 세미나와 시상식, 공연 등을 갖고 한중관계 미래 30년을 내다보며 더욱 돈독한 우정을 쌓아가기를 바랐다.

특히 한중 정상은 양국 수교 30주년인 24일 축하 메시지를 교환하며 새 분기점에 선 한중관계를 지속해서 강화해 나가자는 의지를 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면 만남에 대한 기대를 전했고 시 주석은 대면 만남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윤 대통령과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한중 외교당국은 오후 7시(한국시간·베이징 시간 오후 6시) 서울과 베이징에서 동시에 수교 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마도 중국 조선족의 일원이라는 특수성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할까. 본인은 일평생 한반도(일명 조선반도)와는 숙명적으로 엉켜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직업기자로 신문사업에 종사하면서도 해마다 조선으로 3-4차, 한국에로 최저로 2차 이상 방문하면서 기자 편집진들을 이끌고 고국방문, 경제고찰, 관광 등을 통하여 문화교류를 진행하여 왔다.

1988년에는 조선의 국경절 행사를 맞아 조선에 대한 1개월 남짓한 방문 고찰을 진행했다. 이 기간 조선의 금강산, 묘향산 등 금수강산은 관광하면서 고국의 산천경개의 아름다움에 현혹되기도 했다. 또한 처음으로 판문점을 방문하면서 분단된 고국의 아픔을 피부에 닿게 감수하였다.

1995년 7월에는 중한수교 얼마 후 한국정부 공보처의 초청을 받고 재외동포언론인 고국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와서 1개월간 견학하는 행운을 갖기도 했다.

당시  인기프로 KBS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 출연하여 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 기간에 3.8선 판문점 남측에서 창문을 마주하고 북측인민군장병과 웃음과 손사래로 감정을 주고받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이소연 : 한국과 중국은 수교후30년 동안 교류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와 발전을 이뤘는데요.

한중수교 30주년의 공과 과를 평가한다면요?

장경률 : 한중수교는 한국과 중국의 주류 민심의 반영이고 사회 발전의 필연적인 추세라고 본다. 지난 30년간을 돌아본다면 양국 간에 비록 적지 않은 저애와 이런 저런 걸림돌이 있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공동한 목표를 위하여 한결같이 역사적 순간을 잘 포착하고 드팀없이 앞날을 개척하면서 흭기적인 한 흭을 기록하는 역사적 업적을 이룩하였다. 지난 30년간의 실천과 성과가 이를 사실로 증명한다.

지난해 9월 중국의 왕의 외교부장은 한국 방문시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피력했다. “한중수교가 30년을 맞았다”, “공자(孔子)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을 했다”, “삼십이립”은 “서른 살이 돼 흔들리지 않는 뜻을 세운다”로 한중간 우호가 한층 더 성숙해져 향후에도 어떤 풍파가 일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왕의 부장의 말은 ‘성숙한 한중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를 강조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씀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코로나사태가 가장 준엄한 시기에 한국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한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였다. 그는 한국과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같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뜻을 가진 ‘훠빤(伙伴)’, 즉 동반자(partnership)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해 이제는 많은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고 하였다. 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도 시진핑주석의 말에 동조하면서 “동북아의 공동번영과 발전에서 우리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이다”고 화답하였다.

특히 지난 8월 24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윤석렬 한국 대통령은 축전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시진핑주석은 중국과 한국은 뗄수 없는 친근한 이웃으로서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이를 토대로 향후 고차원의 성숙된 전략적동반자가 되자고 희망하였다. 윤석렬 한국 대통령도 축전에서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자 ‘한중 문화교류의 해’라며 양국이 다방면에서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활성화 하면서 미래 지향적이면서도 성숙한 전략적협력동반자 관계를 지속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역시 지난 수교 30년 동안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서로 긴밀히 협력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경우엔 의견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오래전 중국의 한 학자가 한중 관계를 가리켜 ‘네 가지가 가깝다’는 ‘사근론(四近論)’을 내놓기도 했다. “역사가 가깝고 문화가 가까우며 지리도 가깝고 감정도 가깝다(歷史近 文化近 地利近 感情近)”는 것이다.

사실상 돌이켜 보면 현실은 꼭 그렇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 일이 항상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

중국 북송(北宋)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도 “인간사엔 슬픔과 기쁨, 만남과 이별이 있고 달에도 어둡고 밝은 곳, 차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 예로부터 인생이란 완전하기 어렵구나”(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라고 읊었다. 한중 관계 역시 완전할 수는 없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공동한 몫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보람찬 역사가 되는 것이다.

박해상: 한중관계의 발전에 존재하는 문제점은? 그 해결 방법은?

장경률 : 이런 점에서 향후 중국과 한국은 수교 30주년간 이룩한 성취에 토대하여 가일층 심화된 중한협력 관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공동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당면에는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한중 양국간 경제협력에 대해 중국은 한국의 제1교역국으로 양국간 긴밀한 경제협력을 강화하여 양국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양국 관계가 비(非)양자 관계로 인한 국제 환경적 이유로 양국간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는 화제들도 있다. 이런 것들도 양국 관계 발전 과정에서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차원으로 보나 결국 양국은 협력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한중 협력에서 민심상통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며 현실 상황의 영향으로 인해 이 부분이 동요되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가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문화 귀속에 대한 논쟁 관련해서는 문화는 독점하는 것이 아닌 흐르고 공유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 속의 ‘개인 소유론’은 매우 무의미하다고 본다. 그리고 한중간의 문화교류를 발전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두 나라의 역사문화적 공통점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 모두가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체화되어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공동의 문화를 만들고 발전시킬 것인지, 여기서 우리는 어떤 협력을 할 수 있는 지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중시해야 할 문제이다.

어느 정도의 마찰과 갈등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이므로 선입견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과 한국은 모두 국력이 강성한 나라이다. 때로는 양국 국민들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자극할 수도 있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본다면 건설적인 협력관계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전 세계는 전례없는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심각한 정치•사회적 지각변동은 불가피적이다. 이제는 한두 나라가 지구촌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 새로운 냉전은 헛된 망상,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되며 반복될 수도 없다. 다원화시대 다자주의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고 방향이다. 지구촌의 중심이 아시아로의 이전, 동북아가 그 중심에 위치하는 것은 역사발전의 필연적 추세이다. 이는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중국과 한국은 선린우호관계를 시대적 흐름에 알맞게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하면서 공동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할 것이라 믿어 마지 않는다.

이소연 : 장대표님계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은 어떤 것들인가요?

지난 100년의 세계 문화산업을 돌아보면 서구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점차 문화의 흐름이 아시아로, 동양으로 넘어오고 있다. 동서양 문화의 균형 현상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지구촌의 문화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아시아 문화는 어떻게 자신만의 위치와 역할을 찾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향후, 삼강포럼과 재한동포문인협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중한친선을 가일층 승화 발전시키고 우리 문화사업이 글로벌 문화산업의 세찬 흐름에 동조해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본인의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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