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한동포문인협회 迪卡诗 분과 [제27호]

 

피차(彼此)의 논리

저 여린 것들이 나를 받쳐주고 있지만
나는 늘
내가 저들을 덮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춘산-

 


 

<시작노트> 

김춘산 시인: 흑룡강성 탕원현 출생, 다년간 방송PD로 근무함. 현재 자유기고인.
김춘산 시인: 흑룡강성 탕원현 출생, 다년간 방송PD로 근무함. 현재 자유기고인.

명함장을 내밀만 한 벼슬 한번 해보지 못한 나는 늘 자신은 남을 받들어 주기만 하는 잔디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부터는 난 자신이 남을 덮어주는 낙엽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늦가을 세상을 나온 여린 잔디를 보면서, 생을 마감하고 낙하하는 낙엽을 보면서 내가 잔디였을 때 낙엽을 받쳐주었던 기억을 찾아보고, 내가 낙엽이었을 때 누가 나를 받쳐준 잔디였던가를 생각해 본다.
오늘도 공원 산책길에 가을 잔디와 낙엽을 만나 한참을 머뭇거린다.

 


 

<평설>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순자•왕제(荀子•王制)>>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 임금이 이로써 위험을 헤아려 본다면 위기를 헤아릴 수 없겠는가?" 당태종 이세민은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디카시 <피차의 논리>를 보는 순간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水則載舟 水則覆舟)”는 말이 연상되었다. 어찌 임금과 백성의 관계뿐이랴. 조직 대 조직, 조직 대 개인, 개인 대 개인 등 모든 피차의 관계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호혜의 관계가 이뤄지고 윈윈하면서 쌍방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낙엽 한 장이 잔디밭에 내려앉은 평범한 풍경을 범주가 넓은 “피차의 논리”와 연결시켜 작품화시킨 것은 시인의 도발적인 상상력과 예리한 통찰력의 집중적 표현이라고 보아진다. 다년간의 연마를 통해 갖춰진 중견 시인의 시적 안목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역지사지는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존중과 배려로 표현되며 거대한 시너지효과를 창출하기도 한다.

1981년, 한국이 서울 올림픽 유치를 성공시키는데 결정적 작용을 한 것은 정주영위원장의 기발한 작전 덕분이었다고 한다. 정주영은 독일 바덴바덴에 파견된 현대 직원들을 모두 동원해 IOC 위원들의 신상파악을 하고 그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경쟁 유치국들의 활동상황까지 치밀하게 분석한 후 해외 파견 직원들의 부인들이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손수 만든 꽃바구니를 IOC 위원들이 묵는 호텔방에 넣어줬다. “기뻐하는 아내를 보면 남편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믿고 진행한 작전이 IOC 위원 부부들에게 비싼 손목시계를 선물한 강력한 일본을 결국 52 대 27로 제치고 88서울 올림픽 유치 성공을 이뤄냈다.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비싼 선물이 아니라 정성을 담은 작은 선물이었다. 한국인의 따뜻한 정서가 IOC 위원들에게 읽히웠으리라. 사실 당시 한국 정부에서는 바덴바덴으로 떠나는 정주영에게 20표만 얻어도 기적이라며 창피만 당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88서울 올림픽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어떤 거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세인이 아는 일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갖춰야 할 능력 중에서 IQ(지능지수)와 EQ(감성지수)에 대해 많이 거론됐다면 요즘 중요시되는 능력은 NQ(공존지수)와 SQ(사회성지수)이다. 협업이 늘어나는 현대사회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타인과 잘 어울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랑말랑한 감성을 선호하는 세월이다. 문화 자신감이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게 한다. 대통령도 시를 읊는다…

빠른 생활 절주 속에서도 종종 주변 풍경과 사물에 눈길을 주면서 솟구치는 시적 감흥으로 마음을 촉촉이 적시면서 망중한을 즐겨봄은 어떨까?

_이준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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