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 ★★

그림자 제리 

김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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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는 쫑돌이가 태여날 때 함께 태여난 아이랍니다. 어디를 가든 쫑돌이와 한시도 떨어져본적이 없는 딱친구랍니다. 그런데 제리는 빛만 없으면 무서워 쫑돌이의 몸속에 제꺽 숨어버리지요. 그걸 내놓고는 제리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엊그제 쫑돌이가 마을밖 애꾸눈할아버지의 참외밭에 기여들어 참외를 훔칠 때에도 용감하게 함께 하였답니다. 물론 애꾸눈할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뒤쫓는 바람에 참외밭의 참외들을 마구 짓밟으며 이리 저리 들뛰다가 겨우 빠져나왔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또 아까는 마을 회관 하얀 벽에 마구 락서하다가 경비원아저씨에게 뒤덜미를 잡혔지만 그때에도 그냥 쫑돌이와 함께 하였답니다.

“쫑돌, 이 자식아! 넌 대체 어쩌자구 이 애비속을 이리도 태운냐, 엉?”

회관앞광장에서 쫑돌이아빠는 화가 나서 쫑돌이의 귀뺨을 찰싹 호되게 후려쳤습니다. 때마침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어버려 당금 큰 비가 올 것 같았습니다. 겁에 질려 쫑돌이의 몸속에 숨어버린 제리는 쫑돌이아빠의 호통소리에 와들와들 몸을 떨고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누운 제리는 이런 생각이 갈마들었습니다.

“아, 정다운 친구 쫑돌아, 넌 왜 맨날 개구쟁이딱지 붙이고 사니. 네가 그러니 나도 함께 욕보잖아.”

제리는 어떻게 하면 쫑돌이의 이미지를 바꿔놓을가 벌써 며칠째로 고민하고있었습니다. 문득 어문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용기의 기적》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래, 난 너무 겁이 많지. 쫑돌이가 잠든 사이에 한번 용기를 내여 이야기속의 주인공처럼 좋은 일 찾아 해보는게 어떨가…”

이렇게 생각한 제리는 드디여 큰맘 먹고 쫑돌이의 몸속에서 나와보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발을 살며시 밖으로 내밀어봤습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제리는 좀 더 대담해져 손을 내밀어봤습니다. 의연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헤, 이리 해도 되는걸 그랬구나!”

제리는 내심 즐거움을 금치 못하며 쫑돌이의 몸속에서 살며시 빠져나왔습니다. 쥐위는 캄캄하여 빛이라곤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리의 눈엔 모든게 또렷이 보였습니다.

“좋은 일 하려면 특수공능이 있어야 쉬울텐데, 어쩐다?…”

제리는 주변을 두루 살펴보다가 문득 책상우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어둠의 마법학교》라는 동화책에 가 눈길이 멎었습니다.

제리는 동화책뚜껑을 살며시 열었습니다. 자오록한 안개가 걷히면서 네온등과 등지털불빛이 엇바뀌면서 번쩍번쩍 신비를 내뿜고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엔 놓이 솟은 마법학교 건물이 바라보였고 건물 맨위층 베란다에는 흰수염이 꼬불꼬불한 애매매교장선생이 마술막대기를 배우에 올려놓은채 드렁드렁 코를 골고있었습니다. 손에 걸써 드리운 브란디소주병에아구리에선 향기로운 술방울이 또옥 또옥 상기도 떨어지고있었습니다…

제리는 발볌발볌 애매매교장선생한테 다가가 마술막대기를 살랑 집어든 다음 스르르 동화책을 빠져나왔습니다.

“헤, 이것만 있으면사…”

제리는 쫑돌이의 방을 빠져나와 마을회관에 이르렀습니다. 회관벽에는 낮에 쫑돌이가 둑실한 까만색 탄소필로 마구 락서해놓은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제리는 품속에서 마술막대기를 꺼낸다음 회관벽에 대고 나직이 말했습니다.

“벽아, 벽아, 원래대로 되어라!”

하지만 벽은 그냥 락서투성이 그대로일뿐이였습니다.

“왜 안되지?…”

제리는 마술막대기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머털도사와 또매》 라는 동화책에서 본 장면이 떠올라 동화속 주인공처럼 마술막대기로 벽을 가리키며 주문을 외웠습니다.

“수리 수리 마수리…마하수리…야~압!”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막대기끝에서 불꽃이 마구 튕겨나가더니 회관벽이 잠간새에 하얗고 말쑥한 원래의 벽대로 되였습니다. 제리는 너무도 좋아 그 자리에서 퐁퐁 뛰였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웬 놈이냐… 서랏~!”

회관경비실문이 벌컥 열리며 낮에 보았던 경비원아저씨가 달려나왔습니다. 감시카메라를 통하여 웬 아이의 그림자가 회관벽앞에서 어뜰거리는것을 보았던것입니다.

경비원아저씨는 제리의 막대끝에서 불꽃이 튕겨나오는것도 회관벽이 새롭게 변모한것도 놀랍게 바라보고는 그 자리에 그만 석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경비원아저씨는 뛰여가는 뒤모습이 분명 쫑돌이의 뒤모습이 틀림없다는 기억만은 잊지 않고있었습니다.

제리는 허겁지겁 한참 달리다가 더 쫓아오는 사람이 없음을 인식하고는 할딱거리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던 제리는 자기가 어느새 마을밖 애꾸눈할아버지의 참외밭머리에 이르렀음을 놀랍게 발견하였습니다. 참외밭은 며칠전 쫑돌이가 짓밟아놓은 그대로 지저분한게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차라리 잘됐지 뭐야.”

제리는 또 다시 품속에서 마술막대기를 꺼내여 참외밭에 대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리 수리 마수리…마하수리…야~압!”

순간 참외밭도 며칠전 원래의 모습대로 푸르싱싱 기운이 차넘쳤습니다. 탐스럽고 향기로운 참외가 달빛에 제모습을 자랑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였습니다.

“웬 놈이냐… 서랏~!”

눈을 비비며 밖으로 오줌 누러 나오던 애꾸눈 할아버지가 참외밭머리에 웬 아이의 그림자가 막대기를 들고 어정대는 것을 보고 꽥 소리를 질렀던것입니다.

그러던 할아버지는 그림자의 막대기끝에서 불꽃이 튕겨나오며 처참하게 짓밟혔던 참외밭이 원래대로 복원된 것을 보고는 역시 석상처럼 그 자리에 떡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애꾸눈할아버지는 뛰여가는 뒤모습이 분명 쫑돌이의 뒤모습이 틀림없다는 기억만은 잊지 않고있었습니다.

제리는 다시 허겁지겁 달려서 쫑돌이의 집에 당도한다음 살며시 방안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책상우에 비스듬히 세워져있는 동화책이 불에 단것처럼 화끈화끈, 벌겋게 얼굴 붉히고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제리는 동화책 뚜껑을 살며시 열고 사르르 동화책안으로 기여들어갔습니다. 어둠의 마법학교에선 불을 대낮처럼 켜놓고 일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애매매교장선생이 마법학교 건물 맨꼭대기 베란다에 서서 손발을 마구 내저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있었습니다.

“누가 감히… 누가 감히… 내 막대기를…엉?…!”

제리는 속이 덜컹 했습니다.

“큰일 났구나…!”

애매매교장선생이 깨여나기전 가만히 가져다놓는다는게 그만 잘못되였던것입니다. 초저녁 술을 마인 애매매교장선생이 갈증을 이기지 못해 밤중에 일어나지만 않았더라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마법학교에서는 막대기를 훔친 장본인을 잡아서 삼십륙층 지옥의 꺼질줄 모르는 렬화에 태워 재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마법학교 학생경찰들을 총동원하고있는 중이였습니다.

제리는 오싹 소름을 끼치면서 품속에서 마술막대기를 꺼내여 마법학교대문옆에 있는 수신함통에 쏘옥 밀어넣고는 부랴부랴 동화책속을 빠져나왔습니다. 뒤미처 부릉부릉 하는 오토바이 탄 마법학교 학생경찰들이 동화책 뚜껑을 열고 륙속 뒤따라 나왔습니다.

진짜 큰일났습니다.

제리는 이불 덮고 누워 자는 쫑돌이의 몸속으로 눈 깜작할새에 황급히 쑥 들어가버렸습니다. 마법학교 학생경찰들은 방안을 한참이나 돌더니 다시 동화책안으로 부릉거리며 들어가버리는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제리는 언제 어떻게 붙잡혀 들어갈지 모르니 다시는 쫑돌이의 몸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을 굳게 내렸습니다.

이튿날, 업간체조시간이였습니다.

체조하기전 교장선생님은 쫑돌이를 체조대에 올라서라고 하였습니다.

체조대에는 참외밭 애꾸눈할아버지와 마을회관 경비원아저씨가 서계셨습니다.

“이크, 인젠 죽었구나…!”

쫑돌이는 전체 학생들앞에서 자신이 비판받는 비참한 장면이 곧바로 펼쳐지리나는 생각에 전율하고있었스빈다. 당금 도망치고싶었지만 네모난 담장이 높이 둘러싸인 학교운동장이라 조롱에 갇힌 새신세가 되었습니다.

쫑돌이는 두 어깨를 축 내리드리우고 머리를 푹 떨군채 비칠대며 체조대우에 올라섰습니다. 애꾸눈할아버지와 경비원아저씨는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쫑돌, 네가 이런 애일줄 정말 몰랐어…”

뒤미처 교장선생님의 웅글진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쫑돌학생, 머리 번쩍 드세요.”

쫑돌이는 눈물범벅이 되어 겁기 질린 눈길로 머리를 쳐들었습니다.

그런데 애꾸눈할아버지와 경비원아저씨는 환하게 웃어주며 쫑돌이의 가슴에 커다란 붉은 꽃 한송이를 달아주는것이였습니다.

“아니, 이건…?!”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쫑돌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시는것이였습니다.

“쫑돌아, 부끄러워 말아. 지난날 개구쟁이딱지는 어제밤 너의 행동으로 하여 철저히 없어졌어. 그리고 넌 말이야. 그런 특수공능 언제부터 생겨났어?”

더구나 벙벙해진 쫑돌이는 주춤 뒤로 물러섰습니다.

“무슨 말씀… 이신지…”

쫑돌이의 곁에 바싹 다가선 제리는 그러는 쫑돌이가 우습기 그지없었습니다. 하마터면“크하하…” 하고 소리까지 낼번 하였습니다.

하학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쫑돌이는 의혹을 풀길 없어 마을회관을 지나 마을밖 참외밭까지 가보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정경에 쫑돌이도 그만 입을 딱 벌렸습니다.

“웬 일이지? 제리야, 넌 혹시 아는게 없어?”

제리는 그냥 시물시물 웃기만 했습니다.

“너 몽유현상이란 말 못들었어? 어제밤 넌 몽유했잖아. 난생 처음으로 말야...”

얼떠름해진 쫑돌이의 입에서 몽유라는 단어가 떨리며 날아내려 가슴에 단 붉은 꽃송이에 나비처럼 내려앉았습니다.

아무튼 쫑돌이는 전교 사생들의 발수갈채속에서 개구쟁이 딱지대신 붉은 꽃을 달게 된 것이 좋았습니다. 멀리서 싱글벙글 마중나오는 아빠의 모습도 보입이다.

쫑돌이의 얼굴엔 어느새 의미심장한 밝은 햇살이 남실남실 웃고있었습니다.

제리는 그런 쫑돌이의 등을 부드럽게 만져주며 집으로 가고있었습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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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로필:
중국 조선족 시몽동인회 회장.
<시몽>문학잡지 사장, 발행인.
시집, 동시집, 동화집, 설화집 등 출간 십여권.
<시몽문학>잡지 사장, 발행인.
시론집: <복합상징시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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