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향경 성신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늦여름의 선선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갑자기 추위가 찾아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에는 가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는데 추워지니 벌써 봄을 기대하는 간사한 마음이 든다. 

사실 봄을 고대하는 마음은 매우 보편적이고 역사도 오래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시나 노래를 생각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이를테면, 홍난파가 작곡한 <고향의 봄>이나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작품들이다. 오늘날 젊은 친구들에게는 무엇보다 BTS의 <봄날>이 즉각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때의 봄은 공통으로 이상향의 대상으로 현재의 어려운 상황과는 다른 긍정적인 것이고 시간 적으로는 현재가 아닌 과거 혹은 미래의 것이다. 비슷한 가요로는 그룹 캔이 부른 <내생의 봄날은>(2001년)도 있다. 이 가요 역시 짧았던 사랑의 순간을 봄에 비유하면서 지나간 인생의 봄날에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한다. 

봄의 진달래
봄의 진달래

이와 같은 가요에서 봄을 노래하는 경우는 시간의 순서로 파악된다. 시간 적으로 볼 때 한반도 북쪽 지역은 북위 30도 북쪽에 위치하였음으로 비슷한 시기에 봄을 맞이한다. 그 증거로는 농경사회의 흔적인 음력에서 파생된 24절기 개념의 통용이다. 춘분이나 경칩과 같은 시기가 오면 본격적인 봄에 따른 전통이나 농경준비가 따른다. 하지만 이주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봄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고 공간의 문제이다. 그 공간은 ‘나의 살던 고향(고향의 봄)’이고 ‘봄이 온 들(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지만 시적 주체인 ‘내’가 결코 갈 수 없는 땅이다. 

이 같은 공간의 맥락을 잘 보여주는 노래는 고 최시렬 작곡, 원호원 작사의 <타향의 봄>이다. 중국과 러시아 지역의 동포들이 ‘고향의 봄’을 그리는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1994년 3월, 원호원의 <타향의 봄> 가사를 보고 작곡하여 이튿날부터 전자풍금으로 <타향의 봄>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러보았는데 당시 러시아의 우수리스크(울라디보스토크 근처 도시) 시장은 이 노래로 들썽하였다고 최시열은 언급한다. 그는 곧 녹음테프로 제작하여 판매하였는데 녹음테프는 러시아의 교포는 물론 북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동포들이 사갔다고 하였다. 2년 후인 1996년 9월 30일, <타향의 봄> 노래를 고 김성삼 가수가 연변인민방송국 <매주일가>에서 방송되자 노래 요청편지가 음악편집부로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날아왔다고 한다. 이는 중국 동포들이 <타향의 봄>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고 가수 故 김성삼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타향의 봄> 관련 내용은 중국국제방송 홈페이지 참고)  

유튜브에 <타향의 봄> 노래를 그룹 캔의 보컬이었던 배기성씨가 기타로 연주하는 영상이 있다. 와일드하고 힘있는 배기성 씨의 목소리로 부른 <타향의 봄>은 창법이나 음악적으로 현재의 감수성과 잘 어울리지만 이 노래가 러시아 장마당에서 울려퍼지고, 연변인민방송국 채널에서 흘러나오던 90년대 중반의 감수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느낌이다. 

<타향의 봄> 노래 가사를 보자.  

봄이 왔다고 제비들도 고향에 갔으련만
고향으로 가고파도 갈 수 없는 이 사연을
그 누가 알아주랴 안타까운 이 내 심정을
구름넘어 나는 새야 이 내 마음 전해다오

새 봄이 오면 돌아간다고 안해와 약속했건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이 내 마음 괴로워라
그 누가 들어주랴 타향의 슬픈 노래를
산을 넘어 들을 지나 정든님께 전해다오

타향 동포의 감정을 담은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노래는 조용하고 정적으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슬프거나 고독한 감정은 밖으로 표출하기보다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90년대 이국땅 동포들의 처지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라 하면 한중 국경을 오가는 것이 냉전 체제 이후 처음으로 자유로워졌을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높은 가격의 비행기 티켓 가격과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많은 사연’으로 한번 이동하는 것이 오늘날 여행처럼 쉽게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 김성삼 가수의 중성적인 이미지와 정적이고 조용히 부르는 모습이 이 노래의 감수성을 더 잘 드러낸다.

이상화 시인이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바라던 ‘삼천리강산’의 들에는 봄이 곱게 찾아오고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앞에서도 마음껏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봄은 이젠 매년 만끽할 수 있다. 중국동포 가수 제비할머니가 부른 <제비가 돌아왔다네>에는 “푸른 하늘 헤치면서 봄 편지 전하려고, 고향의 진달래가 보고 싶어 돌아왔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주한 새로운 고향에도 마찬가지로 봄은 약속대로 찾아온다. 조상이 떠났던 고향에도, 나서 자란 고향에도 봄은 왔지만 이국 땅의 동포들은 그 봄을 향유할 여유도 마음도 없었던 것이 90년대의 현실이었다. 

그 시절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 시국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주변 국가들과 일일 생활권이었다. 따라서 이 노래의 절절함이 한동안 잊혀지다시피 하였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의 끝자락에 여전히 생각난다. 새로운 봄날에는 어디에 머무르든 모두가 만끽할 수 있는 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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