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낙엽이 진 쓸쓸한 계절인 11월 초순인데도 중국 저장(浙江)성의 산과 거리는 녹음이 푸르다. 환경을 강조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당서기를 지냈던 곳이라 그런지 다른 성에 비해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거리도 깨끗한 곳이라는 인상이 든다. 내년에 항저우(杭州)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으리라.

중국인들에게 항저우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오죽하면 '쑤저우(蘇州)에서 태어나 항저우(杭州)에서 사는 것'이 중국인들이 로망이 되었을까.

중국에서 강남(江南)은 양쯔강(揚子江) 이남의 장쑤(江蘇)ㆍ안후이(安徽)ㆍ저장(浙江) 등 3개 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은 날씨가 사계절 온화하고 땅이 비옥해 물산이 풍부한 데다 산과 들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중국의 옛 시인과 묵객(墨客)들은 강남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고 글로 남겼다. 문화를 사랑했던 청나라 황제 건륭(乾隆)이 여섯 차례나 강남을 찾은 것도 강남이 주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풍광이 좋고 물산이 풍부하면 인심이 좋은 법이다. 그래서 강남은 미식(美食)의 고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강남 사람들의 성격 역시 온화하고 부드럽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여성적인 품성이 느껴질 때가 많다.

저장성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는 항저우다. 또 항저우는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중국 도시 중 하나다. 항저우는 물의 도시다. 산과 호수, 탑과 다리가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곳이기에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항저우를 '지상천국(地上天國)'으로 불렀다. 필자는 지난 3일 밤 저장성 정부의 초대를 받아 유람선을 타고 첸탕강(錢塘江) 야경을 구경했다. 강 주변에 늘어선 건물들이 스크린으로 변하면서 연출되는 다채로운 레이저쇼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상하이 와이탄(外灘)의 야경과는 다른 또다른 멋이 있었다. 내년 9월에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경기장의 모습은 거대한 연꽃이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저장성 항저우는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자동차와 IT기업들도 많은 곳이다. 지난 4일 방문한 다후아(Dahua)테크놀로지는 영상 보안 솔루션 분야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지난해 아프리카의 매출 증가율이 80%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의 첨단산업이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가 항저우에서 묵었던 곳은 저장성 정부가 운영하는 산장식 호텔로 시후(西湖)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잘 어우러진 곳이다. 4일 오후 저장성 정부가 주최한 베이징대 국제방문학자 초청 세미나에서 대표로 마무리 인사를 한 뒤 잠시 호텔 정원에 마련된 차 시음회에 들렀다. 항저우가 중국 녹차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용정차(龍井茶)의 생산지라서 그런지 차 맛이 깊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호텔 인근에서 녹차밭을 갖고 있는 생산자는 자신의 녹차밭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왔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차 맛을 음미하니 과연 저우언라이가 들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일에는 자싱(嘉興)시 난후(南湖)에 있는 홍촨(紅船) 혁명유적지에 들렀다. 중국 공산당이 당국의 추적을 피해 1921년 제 1차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한 곳이다. 지난달 열린 제 20차 전국대표대회를 생각하면 중국 공산당에게 이곳은 혁명의 모태인 셈이다. 옌안(延安)이 중국 공산당의 혁명 역사에서 청년기를 상징한다면 이곳은 출생지인 것이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도 크다.

자싱시 난후 메이완제(梅灣街) 76호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의 피난처가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홍촨 혁명유적지와 김구 선생 피난처를 보면 한중 관계는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자싱시 관계자들은 한중 관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코로나19로 교류가 어려운 탓이겠지만 자싱시 외사판공실의 신원핑(沈文平) 주임은 강릉시와 자싱시가 자매도시라며 필자에게 한중 지방정부 교류에 대한 지원을 각별히 당부했다.

지난 3일 방문한 후저우(湖州)시 안지(安吉)현 우춘(余村)마을은 생태관광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이던 지난 2005년에 폐광지역인 이곳을 생태마을로 탈바꿈시켜 이제는 전 중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생태관광마을이 되었다. 지도자의 힘과 리더십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5일 오전 저장성 정부의 안내로 내년 9월 개최되는 제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으로 사용될 올림픽경기장을 방문했다. 중국인이 사랑하는 연꽃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는 데 중국의 전통적 정서와 현대적인 건축기술이 결합한 걸작이었다. 좌석수가 8만석이라고 하니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내년 9월 이곳에서 갈등과 분열을 용광로 처럼 녹여내는 아시아인의 스포츠 대축제가 화려하게 개막될 것을 상상하니 아시아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함께 온 아프리카 국가 출신 학자들은 부럽다는 말을 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이어서 시후(西湖)를 방문해 유람선을 탔다. 1간 남짓 걸리는 시후의 뱃놀이는 코로나19의 시름 조차 잊게 만들었다. 도시 한 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고 이를 시민들이 자유롭게 즐긴다는 것은 현대 도시의 성장과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특히 시후의 수질을 잘 관리하고 주변 경관을 보존하려는 항저우시 당국의 노력이 돋보였다. 중국은 이제 환경 분야에서도 선진화의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4박5일의 짧은 기간인데다 코로나19 방역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천국 같은 도시를 방문한 것은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살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곳 저장성을 찾아 위로받고 용기를 얻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년 9월에는 한국 청년들이 항저우의 아시안게임 경기장에서 한국 선수들을 힘껏 응원하고 밤에는 첸탕강 야경을 보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바란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ㆍ베이징대 방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