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자 문학평론가

채국범의 <미아의 화실>(《연변문학》2022년 10호)은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화실, 아름다운 그림들, 아름다운 외형을 가진 모델과 화가들, 예술적인 분위기가 농후한 아름다움속에 은은한 살기殺氣와 슬픔이 스며있다.

그러면 왜 이 소설에는 이같이 특별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가? 그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 미아가 미美를 창조하는 화가인 동시에 일반 소설에서 보기 힘든 반사회적 성격 장애인 소시오패스적 기질을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작가 채국범은 주인공 미아의 미美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소유욕, 그런 소유욕으로 인해 생기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가 일으키는 파훼破毁에 대해서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채국범 작가
채국범 작가

1. 아름다운 것의 상실로 인해 생기는 집착과 소유욕

이브가 사탄이 주는 사과를 받은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그 사과를 가지고 싶다는‘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원죄의 기저에는 욕망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때로부터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갖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주인공 미아의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 역시 아름다운 것에 대한 소유욕으로 하여 생긴 것이다.

그러면 미아는 왜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그 소유욕의 형성 원인은 무엇인가?.

미아는 유아기를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보냈다. “연해도시로 돈벌이를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아를 시골의 할머니집에 보냈는데 그녀가 학교에 입학할 쯤에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바람에 미아는 인격형성 초기인 유아기와 아동기에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 손녀가 안타까워서 할머니는 ‘비밀화원’을 만들어주었다. “미아는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싶을 때마다,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외로울 때마다 그 비밀환원을 찾아가 알록달록한 꽃과 나비들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름다운 화원은 부모의 결핍을 채워주었고 부모의 부재로 인해 생긴 ‘애착 외상’도 치유해주었다. 미아에게 있어서 ‘화원’은 아버지 어머니의 대신이었다. 그렇게 미아의 미의식美意識이 형성되었으며 부모 사랑에 대한 갈망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역의존성逆依存性으로 나타났다.

만약 미아의 애정결핍이 부모와의 재회로 채워질 수 있었다면 미아는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데리러 온 날, 미아는 어머니, 아버지를 만난다는 기쁨보다 너무나 생경하여 어색한 나머지 비밀화원에 꽁꽁 숨어버렸다. 결국 부모를 따라서 시내로 돌아왔지만 어머니, 아버지 사이는 미아가 상상한것과는 달리 그다지 화목하지 못했다. 싸우는 나날들이 많았고 그때마다 미아는 할머니와 꽃밭이 죽도록 그리웠다.” 부모와 다시 같이 살게 되었지만 부모는 딸의 마음의 상처보다 자신들의 갈등과 아픔에만 몰두하다 나니 딸의 아픔 같은 것은 챙길 여유가 없었다. 부모의 방치로 미아의 외로움은 다해갔고 ‘애착외상’은 심해지었다.

이같이 미아의 마음이 위태로운 때에 마음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아름다운 ‘비밀화원’을 만들어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시골에 들어와 리조트를 만들려는 개발상들과 심하게 다툰 이튿날 할머니는 “물가에서 피못에 쓰러진”채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 때문에 미아가 시골로 내려갔을 때 아름다웠던 꽃밭은 “쓰레기장마냥 파헤쳐”져 있었다.

공룡같은 굴착기와 아득히 높다란 크레인과 뿌연 먼지를 날리는 트럭들을 보며 미아는 넋을 잃고 멍하니 서있었다. 울고싶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없어졌어. 다 사라졌어!’

미아는 속으로 수없이 그 말을 되풀이하다가 윙윙거리는 기계소리에 파묻힌 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 일로 인해 미아는 실어증에 걸렸고 “실어증에 걸린 몇달 동안 끊임없이 비밀화원만 그렸다.” “실어증에 걸린지 석달만에 뱉어낸 첫마디”도 다른 그림을 그려 보자는 아버지의 말에 대한 부정을 표명한 “안돼요!”였다. “자신이 완벽하게 비밀화원을 재현했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럴수록 미아는 더욱 슬펐다. 완벽하게 그려낼수록 미아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비밀화원은 사라졌어. 이젠 아무도 없는거야…’

‘아름다운건 언젠가는 사라져…’

이런 불안은 미아 성격 형성의 기본을 이루게 되었고 그 불안을 억누르려는 심리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으로 변해갔다. 그녀가 ‘비밀화원’ 그림에 집착하는 것도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것을 그림에서라도 남겨 영원히 가지고 있고 싶은 소유욕의 표현이었던 것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그녀의 타고난 천부였다면 화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 보여진다.

미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은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미아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미의 상징이었다. “어머니는 예뻤다. … 미아는 어머니를 갖고 싶었다. 그 누구한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한테도 그랬다. 리유는 간단했다. 예쁘니까, 예쁜건 죄다 갖고 싶으니까.” 그녀의 유아기에 결핍했던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고 그 결핍은 아름다운 꽃밭에 의해서 채워졌다. 이런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역의존성은 사랑의 대상인 어머니를 ‘아름다운 것’으로 대상화 하였다. 미아의 의식 속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은 동일화 되었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던 ‘비밀화원’의 상실로 인해 생긴 “아름다운 건 언젠가는 사라져…”라는 부정적인 의식은 그녀에게 제어하기 어려운 불안심리를 조성하였다. 아름다운 것은 사라진다. 어머니는 아름답다. 그러므로 어머니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미아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졌을 삼단논법에 의해서 어머니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지는 결국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변해갔다.

미아는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밤 불안하고 초조하였다. 그럴 수록 미아는 어머니를 자기곁에 두고 싶었다. 배 아프다는 핑게로 어머니를 자기방에 붙들어 두었다. 드디여 리혼얘기까지 나오자 미아의 마음속에 쌓였던 불안은 걷잡을 수 없게 부풀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어머니를 그리기 시작한건.

어머니 초상화는 처음부터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언제 잃을지도 모를 두려움 때문일가. 조급할 수록 그림은 더 엉망으로 나갔다.

미아가 어머니의 그림을 잘 그릴 수 없었다는 것은 자신이 어머니를 잡지 못하리라는 불안이 거의 확신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가질 수 없다는 절망은 어머니의 그림들을 전부 태워버리는 폭력적인 행위로 나타났고 결국 그 불 때문에 미아는 어머니를 영영 잃어버리었다.

‘비밀화원’과 어머니의 상실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과 소유욕을 불러일으켰고 그 때문에 미아는 인성에 문제가 있는 품행장애(행실장애, conduct disorder)를 가진 아이가 되었으며 성인이 된 후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소시오패스로 될 가능성을 가지게 하였다.

아름다운 꽃밭과 어머니를 사랑하던 미아美兒는 사랑을 잃고 불안에 떠는 미아迷兒가 되었다.

2. 아름다운 것들의 컬렉션과 죽음의 그림자

채국범은 작품의 서두에서 미아의 갤러리와 화실에 대한 묘사를 아주 섬세하게 하고 있는데 위화감을 주는 환경은 작품에 호러영화같은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4층짜리 갤러리는 옥상 한 가운데 네모난 큰 구멍이 뚫려져 있었는데 격자유리들이 그것과 잇닿은 채 큐브모양으로 불룩하게 튀여나와 있어 채광이 매우 좋았다. 아마 그 때문일가, 서니는 갤러리를 마주할 때마다 마치 머리가 없는 인체상반신을 보고있는것 같아 위화감이 들군하였다. 더욱이 그녀 눈에 거슬리는 건 3층 왼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부드러운 베이지색 건물벽과는 달리 짙은 장미빛으로 칠해진 작은 화실이였다.

“심플하고 온화한 커피숍들이 들어앉은 이 거리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갤러리와 화실은 미아가 세상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더욱이 “장미빛으로 칠해진”화실 외벽은 ‘핏빛’을 연상시켜주면서 죽음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 화실은 미아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작품을 소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작자는 오랜 친구인 서니의 시선을 통해서 미아의 화실을 보여주고 있다. “남향 창문을 통해 쏟아진 오후 해살이 왼쪽 벽에 걸린 머리핀 그림우에 부셔졌다. … 불가사리모양의 핑크색 머리핀이였다, 그 누구보다도 익숙한.”

이 그림 속의 머리핀은 원래 서니의 것이었다. “소학교에 입학하여 생일선물로 반주임 선생님이 노점에서 골라 사온거였다. 그걸 머리에 꽂고 학교에 간 날 미아는 자신도 갖고싶다고 선생님한테 졸랐다. ‘넘 이뻐요, 저도 하나 주세요.’” 기어이 그 핀을 욕심 내는 미아 때문에 서니는 머리핀을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아는 그 머리핀을 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래일 돌려줘. 벌써 사흘 지났어.”하는 서니의 재촉에도 침묵으로 대답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등교해보니 서니의 책상 우에 불가사리머리핀이 놓여있었다. 그것도 두 토막이 난 채로.”

비록 미아가 자기가 한 일이라고 승인하지 않았지만 상황상 범인은 미아로 추론된다. 미아는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비록 7살밖에 안 되는 아이지만 그녀의 심층의식속에 이미 아름다운 것에 대한 소유욕이 형성되었다. 자기 것이라면 좋을 예쁜 물건이지만 서니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그녀는 그림으로 남기는 선택을 하였다. 그러고도 서니가 머리핀을 다시 소유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서 머리핀을 파훼 해버리는 것으로 그것을 막았다. 타인의 물건을 부셔버리고도 전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도 않으며 뻔뻔하게 거짓말까지 하는 미아, 미아의 ‘품행장애’가 드러나는 첫번째 사건이다.

두번째 컬렉션은 ‘모르포나비’이다. 일곱살의 어느 여름날, 공원에서 미아는 모르포나비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미아는 다짜고짜 곤충핀을 꺼내 나비를 고정시켰다. 표준적인 표본 만들기가 아니였다. 선생님이 가르쳤던 연화작업도 없거니와 유산지로 날개를 누르지도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핀을 그대로 나비 몸에 수직으로 꽂았다.” 생명이 있는 나비에게 ‘수직으로’ 핀을 꽂는 미아에게는 추호의 주저가 없었다. 그것이 생명체라는 의식보다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려는 자기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하나의 대상물이라는 인식만 있을 뿐이다. 살아있는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는 자기를 떠나버린다는 의식 때문에 미아는 나비를 죽여서라도 자기 옆에 남기려고 했던 것이다. “이쁠 때 남겨둬야해. 두고두고 볼수 있게.”그래서 미아는 그 나비를 그렸다. 모르포나비는 “검은색 테두리의 액자안에서 새롭게 탄생하였다. 완벽한 색채로 완벽히 살아있었다.” 모르포나비도 그림도 모두 소유하게 된 미아는 만족하였지만 친구인 서니는 그것을 피사체의 ‘파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미아를 친구로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무서울 때가 많았다.”

이같이 충동적으로 불을 지르고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망가뜨리며 동물 신체에 잔혹한 해를 가하고도 후회나 자책감이 전혀 없는 미아의 행위는 ‘품행장애자’가 저지르는 전형적인 행위이다.

세번째 컬렉션은 전 남자친구들의 그림이다. 미아는 고등학교 때의 남자친구도 대학교 때의 남자친구도 모두 그림으로 남겼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잘생겼다는 점이다. “잘생긴 남자를 보면 뭐랄가. 그냥 갖고싶어. 사귀고 싶다기보다.” 미아에게 있어서 남자친구는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그리고 싶은 멋진 피사체에 불과하였다. 때문에 시우를 만나고 그의 아름다움에 빠진 미아는 “불현듯 몸을 돌려 벽에 기대 있는 포장지속의 10호 캔버스를 구석쪽으로 쑥 밀어넣었다.” 시우만큼 아름답지 못한 전남자친구들의 그림은 소장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남자친구들의 존재를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아름다운 것’의 컬렉션에서 치워버렸다. '감정적이라기보단 이해타산적이고 목적을 따지는 연애'를 하며 더 이상 이득이 없다고 판단되면 상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소시오패스적 경향이 보이는 실례이다.

어릴 때 품행자애를 앓았고 그것이 치유되지 못한 상황에서 어른이 된 미아는 반사회적성격장애인 소시오패스의 기질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그의 그림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미아의 그림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그림의 기저에는 피사체의 파괴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게 위화감을 줄 수밖에 없다. “시우는 벽에 걸린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미아의 손에서 표현된 그것들은 모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기필코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딱이 뭐라고 짚어낼 수도 없다.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주 신비롭거나 아니면 아주 섬뜩하거나!”

이같이 미아의 그림 자체가 ‘미美’(신비함)속에 ‘추醜’(섬뜩함)를 내포하고 있기에 미아의 컬렉션에 아름다운 그림이 많아질수록 미아의 마음은 추해 져갔다. 작품에서 서니는 “미란 겉면의 조화로움에서 받는 내면의 편안함”이라고 했고 시우는 그 조화로움이 깨질 때 '추'가 생긴다고 했다. 소설 자체도 표면은 '미'를 둘러싼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추'로 인해 아름다운 것이 파멸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때문에 시우는 미아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 그 위험한 기운을 감지하였고 어쩌면 자기의 비극적인 운명을 이미 예감 했을지도 모른다.

3. 죽음의 데생과 아름다운 것의 파훼

미아의 컬렉션에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많지만 소장하지 못한 그림도 있다. 그것은 어머니와 시우의 그림이었다. 미아가 가장 소유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피사체였지만 데생을 마치지 못해 미완성으로 남았고 결국은 모두 파훼 당했다.

어린시절의 미아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미아의 집착과 소유욕은 에스컬레이터하여 어머니에 대한 독점욕으로 격화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거부마저 드러냈다. “엄마는 내꺼야, 아빠꺼 아니야!” “나 배 아파요, 곁에 있어줘요.” 어머니를 곁에 남기기 위해서 미아는 수단도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자기 힘으로 부모의 이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혼하면 어머니를 영원히 잃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미아는 어머니를 그림으로 만이라도 남기고 싶었고 그래서 데생을 시작했다.

미아에게 있어서 그림은 아름다운 것을 옆에 남기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림이 아름다운 것을 담을 수는 있지만 ‘아름다운 것’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그림은 어머니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느끼는 어머니의 아름다움(사랑)을 고스란히 그대로 그림에 옮길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를 절망하게 하였다. 어머니 허상에 불과한 그림은 그녀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만 해도 벌써 아홉번째” 그림이었지만 결국 마음에 안 들어 찢어버렸다. 불안이 극도에 달하자 내가 가지지 못할 바에는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하게 파훼 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고 그래서 미아는 어머니 그림에 불을 질렀다. “다 사라져버려!”, 이 처절한 외침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원망, 파괴 충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결국 자기가 지른 불에 어머니가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미아는 “난 엄마를 못봤어!”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자신의 욕망이 어머니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것을 알기에 미아는 “엄마는 집에 없었다”고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미완성한 데생 작품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지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어머니는 영원히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실체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시우는 미아가 어머니 다음으로 강렬한 독점욕을 느낀 대상이다. 미아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비밀화원’과 어머니를 상실하면서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상실의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가진 시우를 보면서 미아는 마음이 충족되면서도 그도 자신에게서 떠나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을 느꼈다. 이 불안을 미아는 돈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우선 시세보다 “열배 가까이 되는 시급”을 주면서 계약을 했다. 첫 데생에서 그녀는 시우의 손에서 “왕성한 생명이, 힘찬 박동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삶 자체가 지루했던 미아는 시우에게서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느꼈고“마음 한 구석에 오래동안 쌓여있던 초조함과 불안감이 차츰차츰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미아는 시우를 잡고 싶었고 그래서 “넉달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돈이 급한 시우의 약점을 이용하여 높은 시급으로 그를 얽맸다. 반신불수 상태인 아버지의 간병때문에 어머니는 일하러 나갈 수 없고 여동생은 “학교를 다니면서 한켠으로 아르바이트를 뛰지”만 여전히 등록금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침에 우유배달을 하고 낮에는 모델 일을 해야 하는 시우는 인생이 고달팠다. 그런 시우에게 두배의 시급을 주겠다며 누드모델을 제안했고 시우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우의 누드를 그리면서 “그 아름다움들에 대한 완성속에 그녀는 기쁨과 환희로 가슴이 벅찼다. 더 없이 안정적이고 더 없이 차분해져 갔던 것이다.

그런데 시우의 얼굴을 그리려는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미아를 휩쌌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숨결이 흐트러지면서 안정을 찾아가던 가슴속에 뚝하고 알지못할 텅 빈 울림이 깊이 퍼져나갔다.” 그림으로도 남기지 못하고 영원히 잃어버린 어머니, 어머니와 비슷한 미소를 띤 시우를 보면서 미아는 결국 그도 자기를 떠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강하게 느꼈다.

그런 불안과 초조는 어머니 때처럼 시우의 얼굴을 그릴 수 없게 만들었지만 미아는 시우를 놓고 싶지 않았다. “여기 갤러리를 청소하고 관리해 주면 급여는 더 올려줄수 있어요. 배달보다 많이요.”하며 다시 한번 돈으로 시우를 붙잡았다.

하지만 돈의 힘으로 시우를 붙잡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돈 때문에 갤러리에 남은 시우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급여를 올릴 때마다 항상 모순됐어요. 돈 많이 받아서 좋긴는 한데 뭐랄가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할가요. 배부른 소리도 아니고 나쁜 뜻도 아니예요. 그니까 딱 마치 저를 값을 매기는것 같아요. 미아한테 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인 거죠. 인간이 아니라.” “가끔 미아가 저를 뚫어져라 바라볼 때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데다가 졸업하면 상해에 가서 뮤지컬배우가 되려는 꿈이 있었기에 시우는 결국 미아를 떠날 결심을 한다. 만약 미아가 진심으로 시우를 사랑했고 시우의 마음을 헤아리 수 있었다면 어쩌면 시우는 미아 옆에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미아에게 시우는 단지 소유하고 싶은 ‘아름다운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그녀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마지막에도 미아는 “우리 합작하는건 어때요? 워낙 요즘 코로나 때문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앞으로 갤러리운영은 시우씨가 전적으로 맡아요.”하고 좋은 조건으로 시우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실패한다.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미아는 시우의 고향으로 찾아가서 그를 죽인다. 가는 길에서의 미아의 독백은 그녀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가? 길 잃은 아이처럼…

될수만 있다면, 미아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서 할머니를 구하고 싶었다. 꽃밭도 구하고 싶었다. 거기에는 추억과 행복이 묻어있다. 기다림과 외로움이 깃들어있다. 순수함이 잠들어있다. 그 모든 것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한때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깡그리 사라지자 미아는 더는 아무데도 속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마다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갖고 싶었다. 가질 수 없는 것들도 포함하여. 그래야만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아는 이 세상을 향해 항의하고 싶었다. 반드시 되갚아 줄거야, 똑같은 상실과 똑같은 파멸로.

이 심리묘사는 미아가 무엇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해석이 되고 있다. 또한 그녀로 하여금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소시오패스로 될 수밖에 없게 만든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일면 그녀의 소시오패스적인 사유 방식을 보여주는 심리묘사이기도 하다. 미아는 모든 잘못을 세상과 타인에게 돌리며 시우를 울분의 상대로 삼고 있다. 시우는 그녀의 모델이지 연인이 아니다. 단지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로서 버리고 말고 할 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시우를 죽이려 하는 그녀의 심층 의식 속에는 시우를 서니에게 주고 싶지 않은 독점욕이 잠재해 있다. “이 세상을 향해 항의하고 싶었다”거나 “반드시 되갚아 줄거야, 똑같은 상실과 똑같은 파멸로.”하는 생각은 자기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작자는 그녀가 다리를 건너며 범죄 증거인 칼을 버리는 장면에서 어릴 때 어머니 그림을 태워버리려고 “주방에서 서랍안을 들추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때의 ‘품행장애’를 앓은 미아는 이미 잠재적 범죄자였고 그 잠재적 가능성이 오늘의 범죄자를 낳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에 화실에 불을 지른 서니에게 살의를 느끼면서도“넌, 나를 안 떠날테지?”하고 말하는 장면은 소시오패스로서의 미아의 집착과 소유욕을 강렬하게 보여주면서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이뤄주었다.

그런 미아에게 “무거운 침묵을 삼키며, 서니는 머리속에 불가사리 머리핀을 떠올렸다. 모르포나비도.” 작자는 서니가 이같이 파멸된 아름다운 것을 떠올리는 것을 통해서 그녀도 언젠가 미아에게 파훼 당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다.

결론

채국범의 <미아의 화실>은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작자는 플롯을 짤 때 미아와 시우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구성하고 할머니와 ‘비밀화원’, 어머니의 이야기는 미아와 서니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구성하는 복합 구조를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소설의 특징을 잘 살렸으며 서스펜스적인 분위기로 미아의 범죄사건을 흥미롭게 풀어갈 수 있었다.

또한 서두를 서니의 시점視點에서 시작하고 결말도 서니의 심리묘사로 맺음으로써 미아의 모든 범죄를 관조적 시선으로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니의 키워드로서의 작용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었다. 줄곧 자기보다 우수하고 자기보다 부유한 미아를 질투하면서도 그 옆에서 떠나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불을 질러 미아의 모든 것을 앗아버리는 서니의 행위는 쇼킹한 결말로 극적인 분위기가 이루어지게 하였다. 절대 자기를 못 떠날 것이라 단정했던 서니가 자기가 소중하게 소장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훼멸했다는 것은 미아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쇼크이다. 신의 한수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채국범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소시오패스적 경향을 가진 주인공 미아의 집착과 독점욕이 어떻게 주위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파멸시키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성의 파탄이 주는 아름다운 것의 파훼를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작자는 미아가 인격파탄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무리한 개발로 자연을 파괴하는 무지한 인간들의 욕심, 돈벌이를 위해 자식을 방치함으로써 잠재적인 범죄자를 만들어낸 부모들에게서 찾고 있다. 이런 의식은 이 작품의 사회적 가치를 높여주었다고 본다.

20세기 말로부터 21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조선족의 코리안드림 및 연해 지방과 내륙으로의 이동은 수많은 아동들을 부모의 방치와 방임에 의해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하였다. 현재 학자들은 전 인구의 4퍼센트정도가 소시오패스라는 통계를 내고 있다. 조선족의 특수한 삶의 양상으로 보면 더 많은 소시오패스를 양산量産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채국범의 <미아의 화실>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고 방임하고 있는 위험한 현실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총괄하여 볼 때 채국범의 <미아의 화실>은 미美와 추醜에 대해서 쓴 소설이다. “‘미'와 '추'는 서로 대립되면서도 인간의 욕망에 의하여 통일되기도 한다.”(작가의 말) 작자는 이런 '미'와 '추'의 관계로부터 주제를 더 넓혀 선과 악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미아美儿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며 미아迷我로 변했고 나중에는 악인惡人이 된다. 어릴 때 선함을 대표했던 서니(선이, 善) 역시 최종적으로 악인으로 전환되어‘추醜’로 전락한다. 소설에서는 시우만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미美적 피사체로 남았다. 하지만 미아는 그 ‘아름다운 것’을 파멸시켜 버리었다.

‘미’란 무엇이고 ‘추’란 무엇인가? 미美와 추醜의 본질은 무엇인가? 시우는 미아의 피사체가 되어 로댕의 <지옥의 문>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었다. 작자는 이런 시우의 모습에 빙의憑依하여 욕망에 빠진 탐욕스런 인간들이 벌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로 하여 <미아의 화실>은 독자도 사색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

예술성이 높고 사회적 가치가 큰 작품임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변문학》2022년 10호에 실린 글

 

채국범 약력:

연변대학 일어학부 졸업. 2002년 《연변문학》에 처녀작 시 <하늘과 바다 사이>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시 <한줄기 향기가>로 제27회《연변문학》윤동주문학상 신인상 수상, 중편소설 <노크>로 제37회 《연변문학》문학상 본상 수상. 그외 장편소설 <머나먼 연>, 중단편소설 <섬속의 섬>, <마지막 퍼즐>, <해나>, <동그라미>, <동행>, <날개 돋친 기린>, <미아의 화실> 등 발표.

제8차 전국청년작가창작회의 대표.

로신문학원 제40기 중청년작가 고급연구반 수료.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부주임.

현재 연변작가협회에서 근무.

 

 .엄정자 문학평론가 
 .엄정자 문학평론가 

엄정자 약력 :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원,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일본조선학회 회원.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 제9회 『도라지』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0호 『동포문학』평론부문 대상. 제40회『연변문학』 평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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