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혜선의 중편소설 〈미아〉를 읽고
엄정자 문학평론가

,리혜선의 중편소설 〈미아〉(《연변문학》 20219)는 인간의 결핍과 그로 인해 생기는 욕망(행복에 대한 추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족소설문단에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본성인 욕망에 대한 주제를 취급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는 있지만 〈미아〉와 같이 기표의 반복적인 연속성에 의해서 주제가 드러나는 작품은 별로 없다.

이 작품에는 몇 개의 기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에 의해서 인물성격이 드러나고 플롯이 전개되고 있다. 필자는 그 기표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주인공의 욕망의 프로세스를 해석해보려고 한다.

2021년 10월, 가을의 들판을 바라보는 리혜선 작가
2021년 10월, 가을의 들판을 바라보는 리혜선 작가
  1. 시집 가문 떡두 있구 엿두 있슴까

시집 가문 떡두 있구 엿두 있슴까? 맛있는 게 많슴까?…” 이 말은 의붓아버지에게 얻어맞아 상처가 생긴 어린 딸이 불쌍해서 “너 얼른 커서 시집 가라고 하는 어머니의 말에 되물은 주인공의 질문이다.

 

녀자는 아직 엄마 배 속에 있었을 때에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가구공장에서 일하다가 큰 통나무에 다쳐서 세상을 떠났다. 열여덟살에 과부로 된 엄마는 그후 리발사와 재혼했다. 항미원조에 참가했다가 돌아온 리발사는 전쟁터에서 다리 하나를 잃고 의족을 하고 있었다. 매일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하면충아(돌격이라는 뜻의 중국어)—”를 불렀다. 술이 다 깰 때까지 식구들을 들볶았다. … 계부는 쩍하면 녀자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분풀이를 하고 때렸다. 화가 나면 머리를 까치둥지처럼 깎아놓군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가 없는 존재적 결핍을 가진 인물이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라캉(1901. 4. 3. ~ 1981. 9. 9)은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완벽한 상태로 존재하다가 태어나면서 엄마와 단절되는 순간 원초적인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고 하였다. 이 본질적인 단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인간은 무엇을 가져도 결핍을 느끼게 되는데 녀자는 이 외에도 아바지의 부재라는 결핍을 더 가지고 태어났다. 이런 결핍은 아버지를 갖고 싶은 욕망을 생성시키지만 의붓아버지는 그런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녀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학대하였다.

동생의 탄생도 그에게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주지 않았다. “엄마와 계부는 동생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그 때마다 녀자는 자기가 빠진 세 사람의 집을 쓸쓸하게 들여다보았다.” 가족과 단절된 상황에서 아이는 자기의 결핍을 채워줄 대상이 필요했다.

그런 딸에게 어머니는 “너 얼른 커서 시집 가라, 시집 가…”라고 한다. “시집 가문 떡두 있구 엿두 있슴까? 맛 있는 게 많슴까?…”하는 딸의 질문에 많지, 많구 많지. 글구 맞아대지두 않구 니 편이 돼주는 남자두 있을 게구.” 라고 대답한다. 배고픔과 의붓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나고 싶은 어린 그녀에게 어머니의 말은 한줄기의 희망을 주었고 빨리 커서 떡도 있고 엿도 있고 자기 편이 돼주는 남자도 있다는 그 시집을 가고싶다는 욕망을 심어주었다. 심리학적으로 아이의 욕망은 어머니가 부여한 기의, 의미에 따라 형성된다고 한다. “시집 가면 떡도 있고 엿도 있고 자기편이 돼 주는 남자가 있다는 기표는 녀자인생의 가장 큰 욕망이 되었고 행복을 의미하는 기표가 되었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그리고 욕망이 지향하는 것이 곧 기표이다. ‘

2006년 중국작가협회 제 6기 전국위원회 제7차회의 참가 차 철응 주석과 함께. 
2006년 중국작가협회 제 6기 전국위원회 제7차회의 참가 차 철응 주석과 함께. 

녀자의 첫 결혼 상대는 열네 살이나 이상인 남자였다. 태어나면서부터아버지’의 부재라는 결핍을 가진녀자는 연상인 남자(대상)에게 욕망을 느낀다. 그가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난 아부지두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사람이 아부지처럼 생각됩디다.”

 

남자의 큰 품 속에 작은 새처럼 안겨 엄마가 늘 하던 말을 실감했다. 떡두 있구 엿두 있구 네 편이 돼주는 남자두 있구… 녀자는 처음으로 엄마의 자궁 속에 있었던 안전감이 전신에 퍼져오는 걸 느꼈다. 그것은 게나른한 졸림과 같은 것이였다

 

그렇게 녀자는 대상을 행복의 실재라고 믿고 다가섰고 그 대상을 얻는다. 그러나 남편은 결국 그녀의 욕망을 충족해줄 수 없게 된다. “행복한 8을 보낸 뒤 남편이 페결핵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자기 대신 아내의 욕망(행복해지고 싶은)을 충족시킬 다음 대상을 물색한다. 남편의 소개로 만난 두번째 남자는 식료품공장의 보이라로동자였는데 처음 만난 날 사탕과 과자를 알루미니움벤또(도시락을 뜻하는 연변식 일본어)에 담아 내놓았다. 또 구석에 놓인 주머니를 열어보였다. 그 속에는 설탕이 가득 들어있었다.” ‘녀자’가 바라던 대로 그 남자 역시 떡도 있고 엿도 있는남자였다. “나이는 녀자보다 아홉살 이상이였다.”

그런데 운명은 그 남자마저 위암으로 9년밖에 못 살게 만들었다. “남자는 녀자에게 뇌성마비질병을 앓고 있는 아기와 낮다란 단층집 한채를 남겨주고 먼길을 떠났다…

두번의 결혼은 잠깐의 행복은 주었지만 남자들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었다. ‘녀자는 다시 남자를 찾아야 했다. 더구나 지능이 낮은 백치이고 나그네처럼 커버린 아들의 팬티를 내리고 씻어주려고 해도 녀자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녀자는 매일 아들과 함께 약을 먹고 죽어버리는 상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 이웃 매대에 있는, 무대랑처럼 키 작은 순대장수아저씨였다. “그는 팔을 썩썩 거두고 녀자의 아들을 일으켜 팬티를 벗기고 엉뎅이를 씻어주었다. 그 한가지 일만으로도 녀자가 순대장수아저씨를 좋아해야 하는 리유는 충분했다. 녀자는 매일 녀자의 시루떡까지 팔아주고 집으로 와 아이의 엉뎅이를 씻어주는 순대장수아저씨를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이혼했다던 순대장수 아저씨의 본처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녀자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날 그녀의 어머니가 왔고 그녀가 감당 못하는 아들을 데리고 장춘으로 갔다.

매번 녀자가 찾은 대상은 그녀의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했기에 그녀는 번마다 또 다른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욕망 즉 기표는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 고리였다. 그래도 녀자는 그만두지 않는다. “떡도 있고 엿도 있고 자기편이 되어주는 남자를 소망하는 그녀의 욕망은 네번째 대상을 만나게 한다.

네번째 남자는 첫 남편을 연상시키는 파스냄새가 나는 그보다 열살은 이상인 70대의 아저씨이다. 첫 남편을 만나던 날 월병을 열 두 개나 먹었다는 여자의 말에 자기도 월병을 사왔고 “다시는 니가 우는 일이 없게 해주마. 허리만 아프지 않으문 널 실컷 업어주구 싶다…”던 첫 남편의 소원도 대신 풀어주었다. “아저씨는 끄응 하고 소리를 내더니 녀자를 아이처럼 거뜬하게 업고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녀자에게 안정된 노후도 약속하였다. “아들하구 말해두겠소. 당신이 나보다는 후에 갈 것이니 살아있는 동안 내 집에서 편안하게 잘 보내게 하구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길을 잘 바래드리라구 말이오.”

녀자에게 드디어 이번에는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이 충족될 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다. 그러나 작자는 그 희망에 그림자를 던져주었다. 네번째 남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무의식속에 잠재해 있던 아들이 혹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상황에 따라 의식속으로 수시로 떠올라 그녀를 괴롭혔고 수면 중에 23초간이나 숨을 쉬지 않는 아저씨의 모습(수면중무호흡증후군)은 그녀의 이 행복도 길지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그녀가 살아있는 한 그녀의 욕망은 완전히 충족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그녀는 계속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녀자’(주체)는 매번 남자(대상)를 통해서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꿈의 압축, 언어의 은유) 즉 시집 가면 ①떡도 있고 엿도 있고 ②자기편이 돼 주는 남자가 있다는 꿈이 압축되어 욕망을 이루고 ’, ‘’, ‘자기편같은 기표가 행복에 대한 갈망의 은유가 되었다.

하지만 남자(대상)들은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주체는 다시 다음대상으로 자리를 바꾸었지만 욕망은 의연히 만족될 수 없다. (꿈의 전치, 언어의 환유). 즉 첫 남편이 폐결핵으로 죽음으로써 두번째 남편으로, 두번째 남편이 위암으로 죽음으로써 세번째 남자인 순대장수아저씨로, 그의 본처가 나타남으로써 네번째 남자 파스아저씨, 그렇게 꿈을 의미하는 대상들은 다음대상으로 전치轉置되고 전치되는 대상들은 환유換喩가 된다. 이같이 영원히 만족 안되는 욕망을 쫓는 것은 인간의 비극일지 몰라도 이런 반복적인 자리바꿈(환유)은 인간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욕망의 동인動因이 된다.

작자는 녀자의 네 남자를 모두 나이가 많이 이상인 것으로 설정하였는데 이는 녀자의 욕망이 아버지의 부재라는 결핍으로 하여 생기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이고 애인이지만 자상하고 그녀의 바람막이 되어주는 남자들은 아버지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다.

이같이 불행한 운명속에서도 한번 또 한 번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새 대상을 찾아서 헤매는 그녀는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인생길의미아’일지도 모른다. 작가 리혜선은 주인공의 행복해지려는 끈질긴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타인(남자)에 의지해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그녀의 인생관에는 긍정적인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자기 고유의 이름 대신녀자’라는 일반 명사로 된 호칭만 준 것 같다.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전근대적 사유방식을 가진 그녀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호칭이다.

다른 한 주인공 로인’은녀자’를 자기 죽은 딸로 착각하여영옥’이라 부르는데 이 기표는 딸을 보고 싶은로인’의 욕망을 나타내는 기표인 동시에 주인공의 아들의 죽음을 감지하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기피하려는 심리를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영옥’이라는 기표는아들의 죽음’이라는 의미의 은유가 되고 주인공의 행위를 추진한다. ‘로인’이 죽은 딸영옥’이를 찾는 소리는 “5년 동안 녀자를 괴롭히며 또아리를 틀고 있는 어떤 집념과도 같다. 뿌리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여자는쫓기듯이’ 철길을 찾아갔고 거기에서파스아저씨’를 만난다. 그렇게 플롯이 전개된다.

로인녀자와 마찬가지로 “만수네 집으루 가깁소. 떡두 있구 엿두 있구 맛 있는 게 많습꾸마…”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만수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로인의 첫사랑이었든지 그녀의 혼돈된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적인 존재였든지 간에 로인의 욕망을 나타나내는 기표인 것만은 확실하다. ‘로인’이 손녀의 결혼식 다음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을 때 녀자의 귀가에 다시한번 만수네 집으로 가자는 로인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녀자는 핸드폰에 0082가 들어간 수자를 입력한다.” 한국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여보세요?”

“여… 보… 세… 요…?”

 

서로 전화가 통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작가가 이렇게 결말을 맺은 것은 녀자떡도 있고 엿도 있는꿈에 가족과의 소통이라는 새로운 의미가 부착되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만 국한되었던 욕망의 대상이 가족에게도 확장되었다. 여자의 행복을 찾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2006년 12월 중국작가대표단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던 중 후지산 투어를 하면서 저명한 작가 장항항(우2), 리경택(우3), 륙천명(우4), 장자룡(우5,)류건위(우7)와 함께 후지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함. 앞줄 중간 리혜선 작가.
2006년 12월 중국작가대표단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던 중 후지산 투어를 하면서 저명한 작가 장항항(우2), 리경택(우3), 륙천명(우4), 장자룡(우5,)류건위(우7)와 함께 후지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함. 앞줄 중간 리혜선 작가.
  1. 철길과 기차

작가 리헤선은 철길기차라는 기표를 반복적으로 쓰고 있다. ‘기차라는 기표는 차량이라는 의미로 근대문명의 상징물이라는 기의記意를 가지고 있는 한편 다음 역을 향해서 떠난다는 뜻과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새로운 곳을 간다는 터닝 포인트적 기의도 가지고 있다. 하나 작품에서 주인공 녀자가 기차를 타는 장면은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길’과기차’가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가장 위로가 되는 일들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어린 그녀의 손을 잡고 처음 철길을 건너던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아들의 손을 잡고 건너고 아들이 떠난 다음에는 홀로 철길을 건너는 사이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먼 옛날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철길이 놓여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철길을 건널 때마다 녀자의 손목을 잡고 동쪽과 서쪽을 몇번이고 살펴보다가 허겁지겁 철길을 넘군 했었다. 그후에는 차단기가 생겨서 기차가 지나다닐 때마다 차단기가 내려와 통행을 금지시켰다. 녀자는 아들의 손목을 잡고 차단기가 들리기를 기다렸다가 철길을 넘군 했다. 엄마와 아들이 기차를 타고 떠난 후부터 철길 밑에 새로 지하도로가 생겼다. 더는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지하도로로 녀자는 혼자 걸어서 철길을 넘군 했다.

 

작자는 이 철길의 변화로서 시대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없던 건널목에 차단기가 생기고 철길 밑에 새로 지하도로가 생기는 사이, 그렇게 시대가 변하는데도 그녀의 존재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욕망을 충족해줄 대상 즉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찾아가는 인생에서 대상이 바뀌고 자리 바뀜은 있었지만 도돌이표 같은 그녀의 인생에 비전은 없었다.

다른 일면 작자는 철길기차아들죽음이라는 의미를 부착시켰다.

우선 철길은 그녀가 아들과 같이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장소이다. 두번째 남편이 죽고 회사에서도 해고된 그녀는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본가에 찾아간다. 하지만 의붓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마저 아이를 낳은 동생만 챙기고 막다른 골목에 이른 그녀의 처지는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가족에게 외면당한 그녀는 삶에 절망을 느끼며 죽는 것으로 이 모든 고난에서 해탈하려고 한다.

 

아들의 손을 잡고 나란히 레일 우에 앉았다. 눈이 그들의 머리와 어깨에 수북이 내려 이불을 들쓴 것 같다.

“여기 이렇게 앉아있으문 우린 천당을 갈 수 있다.”

“천당이란 데는 아무 걱정두 없는 곳이다. 영 행복한 곳이다.”

“행복한 곳이라는 데는… 음… 떡두 있구 엿두 있구 맛 있는 게 영 많은 데지무.”

녀자는 이를 악물고 더욱 억세게 아들의 손목을 잡았다. 기적소리가 그들을 공중으로 날려보낼 정도로 고막을 두들기며 울렸다. 순간 아들이 튕기듯 일어났고 녀자도 튕기듯 일어났다. 둘 다 레일 아래 도랑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녀자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기차는 그들을 담배꽁초처럼 내동댕이치고 멀리로 사라졌다.

 

그 일 때문에 ‘철길’과기차’는 그녀에게 절망과 죽음의 기표가 되었다.

두번째는 어머니가 기차를 타고 그녀의 아들을 데리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장춘으로 떠났다. 손주에게는 하늘색 운동복을 사 입히고 자신은 분홍색 바탕에 노란 국화꽃이 핀 가디건을 사 입고 초록색 렬차의 차창에 얼굴을 대고 녀자를 향해 힘껏 손을 저었다…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떠나버린 기차는 아픈 상처의 기억으로 남았고 어머니의 네번째 편지에서 아들의 죽음을 감지한 순간부터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불안의 기표가 되었다. 폭력적인 주인집에서 뛰쳐나와 로인의 집에 일하러 오는 날에도 녀자’는 마중 나온 주인집 여자의 승용차에 앉기 전에 멀리 동쪽을 바라보았다.” 기차가 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순간 그녀는 기차를 타고 떠나던 아들과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2009년 12월, 리혜선 작가가 중국작가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던 중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니언 투어를 하면서 남긴 사진
2009년 12월, 리혜선 작가가 중국작가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던 중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니언 투어를 하면서 남긴 사진

로인의 집에 들어간 첫날에도 그녀는 “이 집은 다 좋은데 기차소리가 들리는 게 흠이다.”고 말한다. 9년 동안 살면서 기차소리는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요하고 집주인이 말하는데도 그녀는 멀리 아주 가느다란 도마뱀 같은 것이 은밀하게 기여가고 있는 것 같은 기차를 감지한다. 그만큼 그녀는 철길기차에 민감했다.

리혜선은 ‘철길’과기차’를 상처와 죽음을 의미하는 기표로만 쓴 것이 아니라 치유의 기표로도 썼다. ‘녀자가 네번째 남자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철길위였다. 귀신에게 쫓기듯이정신없이 찾아간 새벽녘 철길 위에서 그녀가 본 해돋이 정경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거쳐서 그녀의 불안한 심리를 투영하는 음울한 풍경화가 되었다.

 

높은 뚝 우에 철길이 새벽 쇠내를 풍기며 가로놓여있었다. … 동녘은 해산을 앞둔 어떤 거대한 녀인의 자궁처럼 위태하게 보인다. 서로 꽉 맞물려있던, 바위처럼 두텁고 날카로운 진회색의 구름층들이 서서히 틈이 나고 조금씩 갈라터진다. 그 틈 사이로 간신히 희미한 아침빛이 양수처럼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경적이 울렸다. 그 소리는 녀자가 서있는 땅의 아득히 깊은 곳으로부터 울리며 쳐들어오더니 녀자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송두리채 흔들면서 지나갔다. 잘살고 있을 거다, 꼭 잘살고 있을 거다… 녀자는 눈을 꼭 감고 자신에게 이렇게 최면을 걸었다.

 

이 환경묘사에서 리혜선은 아들의 죽음을 감지하면서도 잘살고 있을 거다, 꼭 잘살고 있을 거다하고 자기에게 최면을 걸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녀자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하여 자궁’, ‘양수같이 출산과 관련된 어휘로 동녘아침빛을 묘사하고 있다. 아무리 백치라 해도, 아무리 혼자 힘으로 키울 수 없어서 보낸 것이라 해도 자기의 생명의 분신인 아들의 죽음을 묵인했다는 죄의식은 그녀의 가슴속에 영원히 풀릴 수 없는 멍울로 맺혔다.

이같이 절망적인 순간에 그녀를 지옥에서 구원해준 사람이 네번째 남자 파스아저씨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간 70대 중반의 아저씨인 남자는 “인생을 이만큼 살다 보면 산전수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소? 울지 마시오.”하며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었고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여자는 또다시 철길을 찾아간다. “이튿날 새벽에도 발길은 철길 쪽으로 움직였다. 예상했던 대로 파스아저씨가 검은색 우산을 들고 와있었다. 그렇게 뜻밖의 인연이 이 철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녀자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도 녀자는 철뚝으로 갔다.” “멀리서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고 서서 자기 쪽을 두리번거리는 그 파스아저씨를 보자 저도 몰래 목구멍에서 할딱거리던 숨을 길게 내쉬였다그날 파스아저씨는 그녀에게 월병을 주었고 그녀를 업어주었다. 아저씨의 등은 포근하고 든든했다”.

그후부터 파스아저씨는 그녀와 함께 로인을 돌봐 주었고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돌보던 로인의 마지막을 지키는 순간에도 파스아저씨는 옆에 있어줬다. “바람인가, 구름인가 귀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당신이 나보다는 후에 갈 것이니 살아있는 동안 내 집에서…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길을 잘 바래드리라구…그렇게 들려오는 환청은 그녀에게 노후를 보낼 을 약속하고 있다. 남편들을 잃으면서 늘 집을 잃어야 했던 녀자에게 드디어 자기집이 생긴 것이다.

2009년 가을 정률성평전 집필을 위해 가사(歌詞)계의 태두였고 희곡 작가인 전임 중국가극무극원 원장 교우를 북경 순의의 그의 별장에서 취재중인 리혜선 작가.
2009년 가을 정률성평전 집필을 위해 가사(歌詞)계의 태두였고 희곡 작가인 전임 중국가극무극원 원장 교우를 북경 순의의 그의 별장에서 취재중인 리혜선 작가.
  1. ’ ‘우산’ ‘오줌’ ‘강아지구름그리고 파스냄새

이 소설에는 비가 내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녀자에게 있어서 불행죽음의 기표였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그녀의 첫 남편이 죽었고 폭우가 쏟아져서 물란리가 나던 날두번째 남편이 죽었다. 어려서 이미 가족에게서 소외되었던 그녀를 이 무서운 로부터 지켜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그녀의 인생에 새로운 반전이 생겼다. ‘를 막아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날에도 비가 왔고 그녀는 아들을 잃은 절망에 고통의 심연으로 침잠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검은 우산으로 머리 위에 떨어지는 비를 막아준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네번째 남자 파스아저씨였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더는 비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산이 그녀를 로부터 지켜준다는 기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산’의 비를 막아주는 도구라는 원래 의미에 파스아저씨가 그녀를 지켜줄 것이라는 새로운 의미가 부착되었다. 첫날도,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파스아저씨’는 우산을 들고 다녔고 그래서 그녀는 비를 맞지 않게 되었다.

‘파스아저씨’가 그녀를 업고 비물에 의해 두 발로 건너뛸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실개천(불행, 죽음)을 건넌 에피소드는 그들의 보호자와 피보호자적 관계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리혜선은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표현함에 있어서오줌’이라는 기표를 쓰고 있는데오줌’과비’는 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기에 불행이라는 이미지로 통일될 수 있었다. 주인공의 요실금尿失禁 증상은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기인된 것이다. 의붓아버지의만세선인장 같은 큰손이 올라올 때면 녀자는 팬티에 오줌을 쌌다.” 그 후부터 공포스럽고 무서운 일을 당할 때면 오줌을 팬티에 지리게 되었다. ①환자의 수발을 들던 집의 주인인 거구의 사나이가 욕설을 퍼부었을 때 의붓아버지의만세선인장 같은 팔뚝을 높이 추켜들고 그녀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연상되며찔끔하고 아래도리가 뜨거워났다.” ②순대장사 아저씨의 본처인군대말녀자가 커다란 주먹을 쳐들고 덮쳐들 때 머리 속으로 언뜻 만세선인장 같은 팔을 추켜들고 덮치던 계부가 떠올랐다. 녀자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싸쥐였다. 녀자의 바지가랭이 사이로 오줌이 흘러내렸다.” ③돌보는로인’이 설사로 위중하여 지던 날녀자’는 아들을 낳는 꿈을 꾸다가 깼는데아래쪽이 이상해서 살펴보니 팬티가 젖어있다.” 그날부터 설사를 하기 시작한로인’은 결국 손녀가 시집간이튿날 새벽1 9분경에 세상을 떠났다.” 또다시 눈앞에서 생명이 스러진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공포스러운 일이었고 더구나 그 로인이 어머니의 모습과 겹칠 때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녀자는 파스아저씨의 가슴에 얼굴을 틀어박고 숨이 넘어가듯이 꺽꺽거렸다…다행히 그녀에게는 기대어 울 수 있는 파스아저씨가 있었다.

녀자’에게 있어서는비’ 뿐만 아니라강아지구름’ 역시 죽음을 의미하는 기표였다.

 

…엄마하고 강아지는 지금 남호에 앉아있다. 하늘에는 강아지 모양의 구름들이 가득 뜨구 멀리에는 초록색 구름 같은 나무들이 뭉게뭉게 가득하구나. 분홍색 련꽃이 활짝 폈다. 저 부채 같은 잎사귀가 어쩜 저렇게 태연하게 물 우에 떠있느냐. 생전 처음 내 마음이 이리 편안하구나. 우리 강아지두 영 편안해서 하늘을 쳐다보구 있다. 우리는 잘살구 있으니까 걱정 말아. 너나 잘살아라…

 

아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유언 같은 어머니의 편지 때문에 그녀는 죽음을 감지할 때면 강아지구름을 연상한다. ①자기를 죽은 딸 영옥으로 착각하는 로인을 보면서 ‘강아지구름’에 대해 말하던 어머니의 편지를 떠올렸고 ②“날 비석으 세워줍소.”하는 로인의 말을 들으니 남호의 강아지구름이 떠올랐다. … 그리고,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③설사 때문에 죽음의 경계선에 이른 로인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말했던 남호의 경치를 떠올린다. “하늘에는 강아지 모양의 구름들이 가득 떴다. ” ‘강호란 이름 대신 강아지란 애칭으로 부르던 아들에 대한 아픈 사랑이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그렇게 구름의 형상으로 연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파스냄새는 그녀의 치유와 관련된 기표이다. 처음으로 네번째 남자를 만날 때 그녀는 사람보다 먼저 파스냄새에 신경이 쓰인다. 한줄기 파스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②그 다음에야 남자의 존재를 의식하는데 우산을 씌워주는 남자에게서 파스냄새가 더 짙게 풍겨왔다.” ③그리고 울지 마시오.”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남자와 함께 선 우산 안에 파스냄새가 가득찼다.” 작자는 이 첫 대면의 장면에서 연이어 3번이나 파스냄새를 쓰고 있다. 이날 남자는 파스아저씨가 되었고 파스냄새는 그녀를 위로해주는 기표가 되었다. 두번째 날에도 파스냄새 속에서 녀자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세번째 날 남자는 그녀를 업어서 물을 건네 주었는데 아저씨의 경추에서 나는 짙은 파스냄새가 녀자의 페부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녀자가 이와 같이 파스냄새에 집착하는 것은 첫 남편이 허리 때문에 늘 파스를 붙였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소외되어 외롭던 인생에 처음으로 그늘이 되어주고 기댈 가슴을 내어준 남편의 파스냄새’는 그녀에게 사랑으로 위안으로 기억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빨리 파스아저씨’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서 파스냄새’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 가을 제주도 '생각하는 정원' 기념행사 참가 차 한라산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리혜선 작가.
2012년 가을 제주도 '생각하는 정원' 기념행사 참가 차 한라산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리혜선 작가.

이와 같이 리혜선은 중편소설 「미아」는 다양한 기표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소설의 구조주의적 창작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이런 기표들은 처음부터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인물과의 관계, 즉 구조 속에서 의미가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기표의위치’가 바뀜에 따라 상이相異한 의미와 주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기의記意의 변화는 인물의 심리적 변화로서 인간 내면(內面)의 심리적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심리소설의 플롯을 가지게 하였다.

리혜선의 중편소설 「미아」는 스토리위주의 전통적인 소설기법이란커튼’(밀란 쿤데라)을 과감히 찢어 버렸다는 데에 문학사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문화시대》 20222호에 실린 글

리혜선 약력

1956 중국 연길 출생, 연변대학 漢語학부 졸업, 신문학원 졸업.

연변일보사, 길림신문사 편집, 기자, 부주임 역임, 연변작가협회 전업작가(專業作家), 창작실 주임 력임.

국가1급 작가(직함)

6-7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 역임.

 

장편소설빨간그림자,紅蝴蝶(중문),생명,소설집푸른잎은 떨어졌다,야경으로 가는 녀자,아동소설폭죽소리,사과배아이들,자유찾아 만리길-김학철이야기,장편르뽀코리안드림,코리안드림, 희망과 방황의 보고서,두만강의 충청도 아리랑,두만강변의 충북마을,인물전기 률성 평전,鄭律成評傳(중문), 청소년을 위한 조선족인물-정률성 십여권 출간.

5, 7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상 준마상, 『민족문학』2019년도번역상, 5, 6, 8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4 연변작가협회 문학상(소설부문 최우수상), 1 단군문학상, 흑룡강신문사장편 공모상, 기타 간행물 문학상 다수 수상.

엄정자 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원,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일본조선학회 회원.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 제9회 『도라지』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0호 『동포문학』평론부문 대상. 제40회『연변문학』 평론상 수상.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