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자 문학평론가

소설가 채운산의 중편소설 「귀歸」(『장백산』 2021년 2호)는 인간의 결핍에 대해서 쓴 소설이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있고 또 그래서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이 생기며 그 욕망이 인간을 살아가게 만든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결핍을 가지고 태어나서 결핍을 채우며 살다가 궁극에는 죽음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욕망의 완성은 죽음일 것이고 인생의 완성은 회귀일 것이다.

회귀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말하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태어나 빛속에서 살다가 죽으면서 다시 어둠속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회귀는 돌아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을 걸쳤기 때문에 그의 회귀가 도착하는 곳은 원점이면서도 원점이 아니다. 즉 보다 높은 위치에서의 원점이 될 것이다.

그러면 채운산이 말하는 ’-‘회귀는 무엇인가?

채운산은 이 소설에서 세 여성의 삶의 사이클을 통해서 서로 다른 환경속에서 살아온 세 여성이 오산烏山에서 만나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불안과 혼돈, 선택을 거쳐 자기 삶의 가능성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채운산이 그리고 있는 주인공들의 인생은 원점에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동그라미가 아니다. 그가 그리는 회귀는 원점을 초월하는 무한 루프이다.

필자는 회귀를 키워드로, 「귀歸」에 나오는 이 세 여성의 캐릭터분석을 통해서 그녀들이 그려가고 있는 인생루프가 보여주고 있는 결핍의 완성과 실존의 가능성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채운산 소설가
채운산 소설가
  1. 근원적인 결핍으로 인한 회귀욕망

회귀본능回歸本能과 귀소본능歸巢本能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미국 생태학자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 그의 저서 귀소본능(Homing instinct)에서 귀소본능은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그렇게 찾아 곳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만들고, 떠나갔던 보금자리를 찾아 되돌아오는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동물의 수억 진화과정 동안 이어져온 원초적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채운산은 회귀문제를 인간이 고유하고 있는 이런 동물적인 본능보다는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풀어갔다. 즉 역사적이고도 현실적인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보다 거시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실존의 문제를 다룰 수 있었다.

주인공 화연이가 본 여관집 주인할머니의 모습은 첫 등장부터 강렬하다.

 

“어… 엄마, 엄마!…”

안로인은 지팽이를 팽개치고 엎어질듯 우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기실 안로인은 달려왔던 것이다.) 나와 허성주는 어마지두 놀라서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엄마… 엄마 왜 인제야 왔수?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안로인은 다짜고짜 내 품에 와락 안겼다.

나는 안로인의 생게망게한 행동에 그만 아연실색하여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어쩔바를 몰랐다. 하지만 안로인은 지꿎게 내 팔을 부여잡고 쪼글쪼글한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 계속 넉두리를 하였다.

“엄마, 어서 날 데리고 가주, 양 엄마!”

 

할머니는 조선의 금생리라는 곳에서 태여났는데 8살에 엄마와 헤여졌다”. “두만강을 건너 오산광산 십장으로 있는 일본인 집에 부엌데기로 끌려온 것이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 어머니는 데리러 오지 않았고 14살 때는 일본인 십장에게 강간당한다. 그 사실을 안 십장의 마누라는 그녀를 기생집에 팔아버렸다. 해방이 되며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더렵혀진 몸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서 오산에서 여관집 청소부로 일하게 되었고 그집 아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불임증으로 아이가 없다가 뒷간 옆에 버려진 아이를 입양하여 키워서 여관을 맡겼다.

이같이 할머니가 자기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 배경에는 일제통치시대라는 시대적 환경이 있다. 일제통치시기 많은 조선농민들이 땅을 빼앗겼는데 할머니 역시 그런 농민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그 때문에 일본인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할머니의 결핍은 단순한 감정적 결핍이 아니라 그때 그 시대가 조성한 전 민족성적인 결핍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와의 분리에서 오는 근원적 결핍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 결핍은 자라면서 부모와 가족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낯선 사람의 집에서 그것도 말도 안 통하는 일본인 집에서 하녀로 일해야 했던 할머니는 그런 결핍을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완벽히 충족되는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결핍을 경험해야 하는 그의 의식속에는 충족되지 못하는 잔여殘餘가 항상 남아 있었을 것이다. 비록 입양한 아들을 사랑하고 키우는 것으로 타자 속에서 타자의 결핍과 다시 만나 일정한 충족을 하였을 것이나 완벽히 충족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남은 이 잔여는 어머니께로 돌아가고 싶다는 회귀욕망으로 되어 잠재의식속에 남았다.

작가 채운산은 이 회귀욕망이 밖으로 드러날 계기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할머니에게 치매라는 설정을 하였다. 치매환자의 기억에는 기억력장애가 오면서 일반적으로 시간상 가깝고 환자 본인에게 중요도가 떨어지는 기억부터 사라진다. 가까운 시일 내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이나 날짜, 며칠 전에 나눈 대화들처럼 복기할 일이 거의 없는 기억부터 사라지고”(namu.wiki),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릴 때 기억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만이 오래 남게 된다.

할머니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었던 기억은 8살에 어머니와 생리별을 한 경험일 것이다. 정상적이었을 때는 잠재의식속에서 잠자던 기억이 치매라는 열쇠에 의해서 봉인이 풀리며 억제능력이 사라지자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회귀욕망은 표면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런 욕망은 엄마를 찾아 나서는 행위로 표현되어 할머니는 두번이나 가출을 한다. 첫번째는 숲속에서 발견되었고 두번째는 여관 뒤의 강에서 발견되었다. “엄마가 금생리 다리밑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던 기억 때문에 려관 뒤쪽에 흐르는 강을 두만강으로 착각하여 무작정 들어섰다가 물살에 떠밀려 쓰러지는 바람에 인사불성이 된다. 결국 그 때문에 할머니는 목숨을 잃는다. 목숨으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을 실현하는 연어같이 어머니께로 고향에로 향한 할머니의 회귀욕망은 할머니가 죽음으로써 실현되었다. 할머니의 육신은 재가 되어 두만강을 따라 고향으로 흘러갔고 할머니의 영혼은 까마귀를 따라서 어머니께로 날아갔을 것이다.

할머니의 인생에서 또 하나의 결핍은 아이가 없는 것이었다. 그 결핍은 뒷간 옆에 버려진 고아를 아들로 입양하고 정성 들여 키우는 과정을 통하여 충족되었을 것이다. 비록 친 혈육은 아니지만 그 아들이 있음으로 하여 가족이 생기었고 할머니의 사랑은 인류애로 확장되었다. 일찍 엄마와 생리별을 하면서 잃어버렸던 가족과 집이 생기면서 자기 존재의 실존적 가치를 실현한 할머니는 횡적橫的으로는 엄마와 살던 옛집, 고향으로 회귀했지만 종적縱的으로 보면 원점보다 높은 위치의 원점에 회귀한 것이다. 일제통치하에서 가족을 잃으면서 생긴 결핍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가족을 이룸으로 하여 충족되었고 완전한 회귀를 할 수 있었다.

  1. 결핍을 극복하며 그려지는 회귀의 무한루프

주인공 화연 역시 결핍을 가진 인물이다. 그에게는 세가지 결핍이 있다.

첫번째 결핍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그녀가 7살 때, 한창 향진기업(乡镇)이 흥성하던 시기에 탄광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탄광사고로 돌아갔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를 끌어안고 얼굴에 뽀뽀를 해주던 아버지가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의 온몸은 석탄가루로 범벅이 되여 까맣게 되여있었다. 얼굴도, 손도, 발도… 다 검은 색이였다.”

아버지가 죽은 그날따라 까마귀가 많았고 외종숙은 총으로 그 까마귀를 쏘아 죽였다. 피를 흘리며 죽은 까마귀의 사체를 보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나고 머리가 뗑해나면서 구역질이 났다.” 그녀의 의식속에서 검은색이 불행의 시루시로 각인되는 순간이다. 아버지 시체의 까만 색과 까마귀의 까만 색이 동일시되었고 아버지의 죽음과 까마귀의 죽음이 동일시되면서 그때로부터 “까마귀”는 물론 모든 검은색에 트라우마를 가지게되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나는 감히 집 밖에 나서지 못했다. 검정버섯, 검은콩, 검은깨를 먹지 않았고 검은 신발, 검은 양말도 신지 않았다. 검은 개, 검은 말, 검은 돼지, 검은오리와 마주치면 귀신을 보기라도 한듯 황기()가 끼여 뒤돌아서 허둥지둥 도망 갔다.

까마귀에 대한 공포증 때문인지 밤마다 꿈속에 까마귀가 나타나군 하였다.

 

결국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서검다’라는 단어와까마귀’는 죽음을 환유換喩하는 기표記標가 되었다.

두번째 결핍은 아이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왠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것이 남편이 외간녀자를 사귀는 데 빌미를 제공하여 주었고 나 또한 녀자로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여 눈을 감아주었다.” 아이의 결핍은 남편을 외도하게 만들었고 남편의 외도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이혼에 이르게 하였다.

세번째 결핍 그렇게 아이가 없다는 두번째 결핍으로 인해 생겼다. 남편의 이혼사유는 그녀의 이혼 결심을 굳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피부색이 검다는 것”, “이른바 까마귀의 사촌같다는 남편의 지적은 화연의 트라우마를 자극했고 상처를 주었다. 남편이 그녀가제일 싫어하는 까마귀에 비하는 것이 화가 나고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나는 단연히(?) 리혼장에 도장을 찍었다.”

세번째 결핍까마귀라는 기의에 이혼이라는 이미지를 첨가하였고 까마귀의 이미지는 확장되어 죽음’, ‘이혼의 환유換喩가 되었다.

화연은 이런 결핍의 상처를 안고 오산으로 간다. 답답한 마음에 기분전환도 할 겸 문련()에서 성급무형문화재프로젝트로 펴내기로 한 조선족장례문화에 관한 책에 실을 사진도 찍을 겸 대학동창인 허성주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오산은 예전에는 돌골()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조선에서 월강한 조선인들이였다.” 그런데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곳에 묻혀있는 광석을 략탈하려고 광산개발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 더욱 끔찍스러운 것은 광산개발에 내몰린 역부들이 갱내에서 작업을 하다가 심심찮게 죽어나갔는데 일본놈들은 잔인하게도 시신을 골짜기에 무더기로 처넣고 그대로 묻어버렸다. 주검이 점차 많아짐에 따라 까마귀떼가 까욱까욱 음울하게 울어대며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 그때로부터 이곳은 돌골(石)이 아니라 까마귀 오()에 뫼 산()를 붙여 오산()으로 불리우기 시작되였다. 즉 까마귀가 많은 고장이라는 뜻이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은 까마귀란 기표記標에 민족의 비극이라는 이미지가 추가되게 하였다. 그렇게까마귀’의 기의記意는 꼬리를 물고 연결되고 확장되면서 불길한 이미지가 강해진다.

작가는 결핍의 상처로 마음이 공허한 주인공 화연이를 이같이 죽음의 이미지가 강한 오산이라는 곳에 놓음으로써 그녀의 현재 불안한 심리에 어울리는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또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할머니, 죽음을 다루는 장의사인 가막귀신’, 아버지의 죽음을 상징하는 까마귀, 죽음의 환유가 되는 대상들에 둘러싸이게 함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작가는 이 세 대상에 대한 화연이의 인식의 변화를 통해서 자기의 결핍을 채워가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할머니에 대한 태도의 변화.

첫만남에서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달려드는 할머니의 모습에 혼비백산한 나는 털썩 땅바닥에 쪼크리고 앉았다. 마치 금방 귀신과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등골에서 식은땀이 쫙 흐르며 전신이 후들후들 떨려났다.” ‘귀신과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후에 할머니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와 생이별한 할머니의 슬픔에서 아버지를 잃은 자기의 슬픔을, “불임증으로 친자식을 남기지 못했다는할머니의 비애로부터 마찬가지로 아이를 못 낳는 자신의 아픔을 동일시하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이런 동질감은 할머니를 동정하고 할머니를 도와주려는 마음을 생성시킨다.

하여 사경에 이른 할머니가 애타게 엄마를 부를 때 할머니가 너무 애처로워 꼭 끌어안았다.” 이렇게 할머니를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죽음에 대한 그녀의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트라우마로 되었다면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도 하나의 회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로부터 죽음에 초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가막 귀신에 대한 태도의 변화

처음에 검은 상복을 입은 그녀를 보았을 때 화연은 섬뜩한 느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옷차림도 직업도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녀의 트라우마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고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한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듣고는 나처럼 피부색이 검다는 동질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아픔이 엿보여서인지 모름지기 동병상련의 감정이 스멀스멀 가슴 속에서 솟구쳤다.” 때문에 비 오는 날에 거리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꺼이꺼이 통곡하는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키려 한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같이 술도 마시고 같이 울며 신세타령도 한다.

아들을 잃은 아픔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길을 바래주는 일을 선택하였고 세상사람들의 시선보다는 자기의 아픔이 너무 커서 비만 오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그녀, 홀로 남은 외로움을 다른 남자들의 품에서 달래 보려 애쓰며 방종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도 이 세상에서 결핍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이고 인생의 실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때문에 그녀가 까마귀조각품을 사다 주며 “이걸 강에 뜨워보내오. 그러면 까마귀로 인해 받았던 상처와 검은색에 대한 공포가 사라질거요. 까마귀는 길조요. 까마귀는 화연이를 보우해줄거요…”라고 해주는 말을 들으며 화연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름지기 가슴이 뭉클해나며 코마루가 저려왔다.” 그렇게 화연이는 까마귀 조각품과 함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인간에 대한 불신, 운명에 대한 원망을 다 실어 보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마귀에 대한 태도의 변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까마귀는 화연에게 있어서 죽음의 환유換喩이고 불행의 상징이었고 트라우마의 원인이었다. 그녀의 까마귀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그녀의 꿈을 보면 알 수 있다. “까마귀는 무리를 지어 나를 짓쫗기도 하고 등에 태워가지고 날아가다가 낭떠러지에 버리기도 하였다. 심지어 내 시체를 갈갈이 찢어서 심장이며 간이며 창자며를 나무가지에 걸레짝처럼 걸어놓기도 하였다. 그때로부터 까만 것만 눈에 띄이면 다 까마귀로 보였고 오싹오싹 소름이 돋군 하였다.”

그러던 그녀는 오산에 와서 오산烏山의 역사를 보고 듣고 노천시장에서 파는 까마귀조각품을 보며 까마귀에 대한 생각이 점차 달라지게 된다. 까마귀에 대해 역설하는 하성주의 말을 듣고는 인터넷으로 까마귀를 검색해보기까지 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까마귀전설을 보면서 역사적으로 보아도 까마귀는 인간을 구해주고 예언을 하는 익조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가막귀신이라 불리는 여 장의사의 권고로 까마귀조각품을 풀로 만든 배에 실어서 띄어 보냄으로써 자기의 과거와 결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까마귀는 더는 죽음의 환유가 아니게 되었다.

마지막에 작가는 화연이가 아들을 낳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아이를 못 낳아서 남편과 이혼했는데 이제야 임신을 알게 되는 해프닝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면서도 자신의 결핍을 이겨내고 자기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화연이의 회귀점이 되었다.

인생의 결핍이 두려워서 현실에 대한 도피로 오산에 찾아왔던 그녀는 오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보고 느끼면서 인간의 실존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아이를 가짐으로써 자신의 실존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 ‘죽음의 원점을 상징하는 오산에서 인생의 사이클을 돈 그녀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함으로써 보다 높은 회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위로 상승하는 인생의 무한루프에서 그녀는 또 한바퀴의 루프를 그리었다.

  1. 결핍(욕망)에서 이상자아로의 회귀

이 소설에서가막귀신’은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이다. 그녀의 아들은 3년전에 큰물이 졌을 때 홍수에 밀려가서 죽었는데 아들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 그때부터 상복을 입고다니고 장례에 관심을 가지더니’ “수의가게를 꾸리고 장돌뱅이 장의사가 되여 주검을 다루면서 돈을 번다”. 그녀의 결핍은 아들의 죽음으로 해서 생긴 것인데 그녀는 아직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로부터 아들을 찾으려는 욕망이 생겼고 그런 욕망의 표현으로 작가는 그녀로 하여금 신내림을 받아 점술도 조금 할 수 있게 하였다. 특수한 능력은 아들을 찾으려는 욕망을 더 강렬해지게 하였다.

코리안 드림의 흐름을 타고 한국으로 도피해버린 남편의 부재는 그녀에게 또 하나의 결핍을 주었다. 감정적으로 가장 도움이 필요하고 따뜻함이 필요할 때 그녀의 옆에 남편이 없었다.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서 그녀는 무절제한 성관계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화연이를 만나기 전의 그녀는 사람들에게 가막귀신으로 불렸다. 이 별명이 붙으면서 그녀는 까마귀가 주검을 쪼아먹듯 죽은 사람한테서 돈을 뜯어내는 가막귀신이 되었다. 이 기표에 얽매이면서 진짜 가막귀신이 되었고 자유가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의 주체는 소외되었다.

화연이를 만나면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된다. 즉 화연이가 그녀를 비추는 거울이 된 것이다. 물론 화연 역시 처음에는 그녀가막귀신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한 사정을 듣고 동정심이 생기게 되면서, 그래서 빗속에서 아들을 빼앗아간 하늘을 원망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는 뛰쳐나가서 그녀를 부축해준다. 화연의 이런 행동에서 그녀는 화연이의 의식속의 가마귀신이라는 이미지에 균열이 갔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연이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화연 자신도 그때부터는 가막귀신이 아니라 그녀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면 화연의 인식에 왜 균열이 생기었는가? 그것은 화연에게도 가족을 잃고 남편에게 배신당한 결핍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막귀신)’는 자신의 결핍을 화연이의 결핍과 동일시함으로써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가막귀신이라는 기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결핍과 상처를 안고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화연이의 모습(욕망)을 보면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타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그녀는 계면쩍어 하며 얼른 빨래줄에 걸린 남자팬티를 거두어서 옷장에 던져 넣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욕망을 느낀다.

 

나는 이번에 화연이가 잉태하고 할머니가 저세상의 고혼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깨달은바가 크오. 새 생명의 탄생과 죽음, 인간의 삶이란 결국 륜회이요. 나는 이때까지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소. 마음이 번뇌로 가득차있어 지옥이였고 탐욕으로 가득차있어 아귀였소. 게다가 방종하기까지 했으니… 결국 타락이였지. 나는 삶에 대한 일심(一心)이 없었소. 사람이란 일심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해탈할수 있다고 했거늘…”

 

때문에 그녀는 풀을 뜯어 정성껏쪽배’를 만들아들의 사진을 정히쪽배’에 얹조심스럽게 강에 띄워보냈다.” “아들아, 인젠 엄마도 너를 놓아보내련다. 아마 네가 갈 곳은 따로 있나봐…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아들(과거)을 보냈다. 그의 이런 선택은 새로운 즉 주체의 탄생을 의미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그녀, 실지로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작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보다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 주체가 있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리라는 점은 확실한 것이다. 이 회귀 역시 원이 아니라 무한루프의 한 사이클이었다.

화연이에게 있어서도 그녀는 마찬가지로 화연이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화연은 일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었다. “매일 TV하고만 씨름하면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찔끔찔끔 눈물을 짜기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쏘파에 동그라져 퍼질러 자군 하였다. 문득 잠에서 깨여나보면 머리는 닭둥우리처럼 부시시하고 눈가에는 잠자리가 알을 쓸어놓은 것 같은 누르끼레한 눈곱이 꼬질꼬질하고 입가에는 느침자국이 허옇게 달라붙어있었다. 심지어 며칠 사이에 몸무게도 몇키로그람이나 불어 허리살이 뛰룩뛰룩하고 엉덩이도 부얼부얼 살이 쪄 시골아낙네처럼 덜퍽하였다.”

그러던 그녀가 오산에서 가막귀신이라 불리는 그녀를 만나 그녀의 결핍과 자신의 결핍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이 상실한 것은 남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구의 아내라는 기표안에서는 소실되었던 자아를 다시 찾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고 실존의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아이의 탄생은 그런 주체의 탄생을 상징했을 것이다.

서로 거울이 되는 두 여인의 만남, 이들은 상대방의 기표의 벡터를 넘어서서 상대방의의 결여(결핍)를 경험하고 자신의 현실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이상자아로 회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하여 채운산의 소설에서 결핍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가능성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작자는 결핍과 욕망에 시달리고 방황하면서도 회피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면 인생은 원점으로 돌아오는 회귀가 아니라 위로 향하는 나선螺線모양의 무한루프가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총적으로 채운산의 중편소설 「귀歸」는 중편이라는 그렇게 길지 않은 편폭篇幅에 민족의 백 년 역사를 담고 세 여성의 결핍을 역사적 민족적 차원에서 투시하면서 그들의 인생루프를 통하여 인간의 실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조선족 문학사의 한 페이지에 오를 만한 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장백산』 2021년 6호에 실린 글

 

채운산 약력 :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선후하여 중공연변주위지부생활잡지사 편집, 청년생활 부주필, 연변문학 주필 력임. 현재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 주임. 중단편소설집두만강에 살어리랏다 출간. 연변작가협회김학철문학상, 길림신문두만강문학상 소설본상, 5 중국조선문신문출판문화대상 우수편집상, 1 동북3(북경)조선문간행물 우수 주필(총편집) 수상.

 

 

엄정자 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원,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일본조선학회 회원.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 제9회 『도라지』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0호 『동포문학』평론부문 대상. 제40회『연변문학』 평론상 수상.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